[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지구에 왔다 간 1천억명 인류 중의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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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30   |  발행일 2018-11-30 제38면   |  수정 2018-11-30
‘인생의 발견’ (시어도어 젤딘 지음·어크로스· 2016·16,800원)
[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지구에 왔다 간 1천억명 인류 중의 한 사람

이 책의 저자 시어도어 젤딘은 철학과 역사를 전공한 특이한 사람이다. ‘다음 세기에도 지속될 사상을 가진 4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된 그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은 바로 ‘지상에 사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1천억개 정도의 삶이 덧없는 촛불처럼 타올랐다가 일말의 기대도 남기지 않고 영원한 망각 속으로 꺼져갔다. 1천억은 인류가 처음 등장한 이래로 지구상에 살다간 인류를 가장 근접하게 추산한 수치라는 것이다. 지구에 왔다가 간 인류의 수가 1천억쯤 된다는 계산에 우선 나는 놀랐고, 나는 그 1천억 명 중의 한 사람이고, 1천억 분의 1은 0에 수렴하고 있어서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희귀하고 독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지구에 왔다 간 1천억명 인류 중의 한 사람

젤딘은 이 1천억의 인류를 탐색함에 있어서 공적 생활로 역사 속에서 이미 유명해진 사람보다는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사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일반적인 성공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인간을 살펴보는 방법으로 ‘인생’을 탐색하여 28가지 유형의 특별한 인생을 찾아내어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역사책보다 일기나 전기를 많이 읽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가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인물들이 많다.

그중에서 특별히 나의 시선을 끄는 한 사람은 하이마바티 센이라는 한 기구한 여인의 일생이었다.

1866년 인도의 뱅골에서 태어난 하이마바티 센은 아홉 살에 마흔다섯 살 남자에게 시집갔지만 1년 만에 남편을 여의었고, 이어서 부모도 죽었다. 센은 떠돌면서 더부살이를 했으나 매춘부가 되기를 거부하고, 범죄와 연관된 일들로부터 도망쳤다. 스물세 살에 센은 관대한 남자와 재혼했고, 그제야 그도 안정을 찾았으나 곧 남편은 ‘신을 찾는’ 일에 몰두했고 센이 밥벌이를 떠맡았다. 남편이 죽자 가정을 모두 그녀가 맡았다. 센은 남자형제들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우고 꾸준히 공부해서 결국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었다. 센이 의학시험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을 때 남학생들이 여자가 금메달 받은 전례가 없다면서 항의하였고, 센은 그에 반발하지 않고 그냥 은메달을 받기로 했다. 센이 그런 세상에 저항한 방식은 잔혹한 세상 옆에 그녀만의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자만하고 옹졸한’ 남자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디어도어 젤딘은 하이마바티 센이 ‘나의 뮤즈’라고 말했다. 센은 사실 무력감과 체념에 자주 압도당하긴 했지만 가난한데다 여자이기까지 한 그녀를 억압하는 모든 전통에 맞서 싸운 불굴의 전사이기도 했다.

그녀의 처절한 인생 역정은 어느 역사책에도 기술되지 않았고, 어느 성공 사례에도 나오지 않았기에 그냥 없었던 일인 것처럼 지나칠 뻔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가슴 저려오는 일생인 것이다. 그는 제도와 관습, 그리고 편견의 굴레 속에서 나름대로의 철저한 가치관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면서 묵묵히 한 세상을 살아갔다. 그는 특별히 사회의 제도를 개선하거나 큰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가 그의 인생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오늘의 삶에 집중하다보니 오늘의 삶에 필요한 과거만 끌어들이고, 나와 연관되고 우리에게 필요한 사실만 선택하고 중요시하며 인용한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련을 겪으며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오며 눈물을 삭이며 흔적 없이 죽어간 우리의 조상들의 모습은 모른 척 잊으면서 무시한다.

젤딘의 이 책을 읽고 젤딘과 같은 독특한 시각을 가질 때 세상에 가볍게 볼 인물은 아무도 없었고,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결코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인물이라고 하여 우리는 없었던 것처럼 1천억의 인류 개개인을 무시하며 지나칠 수 있겠는가. 1천억 분의 1은 0과 거의 같지만, 우리 모두는 1천억 분의 1만큼 희귀하고 소중하며 가치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현 (사)대구독서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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