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미친 아시아 부자들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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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1   |  발행일 2019-01-11 제22면   |  수정 2019-01-11
‘亞서 흥미로운 부자’ 기사는
한국·태국 갑질 민낯 들춰내
갑질 피해는 을에게 오는 법
민주주의 바탕은 바로 평등
인류의 가치임을 명심해야
20190111
국제분쟁 전문기자

새해 들머리부터 달갑잖은 전화를 받았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태국 기자가 한국 경제를 다룬다며 느닷없이 ‘갑질’을 꼬치꼬치 캐묻는 통에 하루를 잡쳤다. 한진그룹 조현아, 조현민, 이명희에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10여년 전 최철원(SK 회장 최태원 사촌)의 맷값 폭행사건, MP그룹 정우현의 폭행사건, 최근 한국미래기술 회장 양진호의 만행과 TV조선 대표이사 방정오 딸의 폭언까지 줄줄이 들이댔다. 다 사실 그대로였다. 달리 할 말도 마땅찮아 “마음껏 까라”고 거들었지만 참 찜찜했다. 그의 기사로 태국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대한민국 민낯이 어른거린 탓이다. 사실 이 대한민국 갑질은 외신을 타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이미 국제화를 이뤄냈다. 외신판에 우리 발음 그대로 ‘Gapjil(갑질)’이 등장하는 걸 보면 ‘Chaebol(재벌)’에 이어 대한민국발 새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오를 날도 머잖은 듯.

근데 가진 자들의 갑질이 오로지 대한민국 특허만은 아닌 듯 싶기도 하다. 내 경험에 따르면 아시아 전역이 한통속이다. 1997년 프놈펜공항을 보자. 그즈음 캄보디아 최고 갑부였던 뗑분마는 에어캄보디아가 자신의 짐을 잃어버렸다며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비행기 바퀴에 총질을 했다. 그러고도 까딱없었다. 훈센 총리 돈줄 노릇을 하던 그 자를 아무도 손대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2003년 인도네시아를 보자. 아시아의 자유언론투쟁 상징인 ‘뗌뽀’가 따나아방시장 화재사건을 다루면서 그 배경이 또미 위나따의 재개발사업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자는 군부를 끼고 금융, 부동산, 도박으로 떼돈을 번 재벌이다. ‘뗌뽀’가 가판대에 깔리자마자 또미가 보낸 조폭 150여명이 편집국에 몰려들어 난동을 부렸고, 편집장과 기자는 경찰서 안에서 그 조폭들한테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편집장 코앞에서 또미 전화를 받은 경찰서장은 조폭들을 그냥 내보냈다.

내가 현장에서 취재했던 이 두 사건을 본보기로 들었을 뿐 아시아 어디를 가나 천박한 자본가들의 갑질은 흔해빠진 일이다. 오죽했으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란 말이 나돌았을까. 이건 케빈 콴의 소설과 지난 해 8월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말이었다.

그 말을 빗대 금융 포털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이 ‘미친 아시아의 부자들 실상 : 2019년 아시아의 가장 흥미로운 부자 10명’이란 기사를 올렸다. 그 기사는 35명을 추려 한 장씩 소개를 했고, 그 첫 장에 한진그룹 조양호와 그 가족을 걸었다. 등수를 매긴 건 아니지만 그 속뜻은 이미 드러낸 셈이다. 그 다음 장에는 2조원짜리 집으로 유명한 인디아 석유재벌 암바니 형제에 이어 음주운전으로 경찰을 죽인 아들을 외국으로 빼돌린 레드불 가문의 태국 갑부 찰럼 유위티야가 속속 등장한다. 다섯 번째는 삼성 이(병철) 패밀리 몫이다. 연속극 같은 배반과 내분 속에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3대째 이어지는 부정과 횡령에 따른 감옥살이를 소개했다. 열한 번째는 야생곰을 쏘아죽여 구속된 태국 건설재벌 이탈타이의 쁘렘차이 까나수따, 열여섯 번째는 부패혐의로 감옥에 갇힌 이명박, 스무 번째는 금융·정보 불법 혐의로 구속된 타이완 금융투자회사 CTBC홀딩의 제프리 구, 스물두 번째는 뇌물 혐의를 받은 넥슨 창업주 김정주를 올렸다.

유독 한국과 태국 부자들은 모조리 범법자들이다. 말만 사업 가문이지 사실은 범죄 집단이란 뜻이다. 폭행과 폭언만이 갑질이 아니다. 뇌물, 공금 횡령, 세금 포탈, 주가 조작, 편법 승계 같은 부정부패는 시민사회를 향한 갑질이며 익명의 을을 짓밟는 짓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와 당신들, 을에게 돌아온다. 이재용과 이부선이 삼성물산 돈을 빼돌려 집수리를 했다. 이게 대한민국 부자들의 갑질 수준이다. 민주주의 바탕은 갑과 을이 없는 평등이다. 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평등은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만이 아니다. 인류의 가치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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