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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그 중심에 선 대구·경북인 .4] 대구 전역으로 확산되는 만세 함성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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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훈기자 박관영기자
  •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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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운동 주도층 체포에도 학생·시민·불교계가 끈질기게 저항

대구시 동구 도학동 동화사 경내에 자리한 법화당(옛 심검당)의 모습. 동화사 지방학림 학승들은 1919년 3월28일 심검당에 모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1919년 3월8일, 대구 서문시장의 첫 만세함성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이어졌지만, 대구의 만세운동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3월10·30일 두 차례에 걸쳐 대구 남문밖시장(새장 또는 덕산정시장, 현 염매시장)에서 열린 제2·3차 만세운동으로 대구의 만세운동 열기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또한 4월15·26·27일에도 대구 인근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지면서 독립을 향한 민중의 열망이 대구를 중심으로 피어오를 수 있었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학생과 일반시민을 비롯해 종교인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한 특징이 있다. 기독교계를 비롯해 동화사 지방학림 학승 등 불교계까지 만세운동에 가세했다. 특히 동화사 학승 대표 9명은 모두 실형을 받는 등 독립을 향한 의지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1. 남문밖시장에서 열린 3·10만세운동

서문시장에서 열린 대구의 제1차 만세운동은 기관총과 총검까지 동원한 일군경에 의해 처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시위를 주도한 기독교계 인사와 학생들은 일군경에 의해 체포됐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함성의 행렬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독립 의지를 당당히 드러낸 이들에게 시위를 그만둘 생각이라곤 추호도 없었다. 이튿날인 3월9일, 달성공원에 모인 계성학교 학생과 군중 150여명이 만세운동을 다시 전개하려다 일경에 저지당하는 등 만세운동의 열기는 여전했다(행진을 펼치다 일경의 저지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제1차 만세운동 당시 체포의 위기를 넘긴 학생과 시민들은 민중의 독립 의지를 알리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계성학교 교감 김영서와 학생 김삼도, 박태현, 최영학 등을 비롯해 대구고보 학생 박남준, 김재소 및 전당포업자 김재병, 농민 이덕주 등 일반 시민까지 합세해 시위를 계획했다. 제1차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체포된 상황이었지만 남은 이들은 분노와 결기로 단단히 뭉쳐 있었다. 이들은 3월10일 남문밖시장에서 제2차 만세시위를 전개키로 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을 준비한다.

거사일인 3월10일이 밝자 계성학교, 대구고보 학생과 시민들은 거사를 위해 남문밖시장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일군경의 삼엄한 감시 탓에 시장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엿장수 등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일군경의 눈을 피해 주위를 배회하던 끝에 간신히 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3·8운동때 체포위기 넘긴 학생과 시민들
3월10일 남문밖시장서 2차 거사 일으켜
당황한 일제는 휴교령 내리고 경계 강화

기회 엿보던 동화사 학승 3·30운동 주도
日 감시 피해 학생·장꾼 2000여명 참가
4월엔 인근 달성군에서도 3차례나 시위



오후 4시가 되자 시장에 모인 학생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장꾼들 또한 학생들의 외침에 호응하기 시작하면서 이날 만세운동에 참여한 군중은 금세 2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이후 약 1시간 동안 남문밖시장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졌지만 일제의 강제진압으로 해산됐다. 일경은 이날 주동자를 가리기 위해 앞장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의 옷에다 붉은 칠을 하는 등 만세운동 가담자를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일본 측 자료는 이날 만세운동을 “3월10일 오후 4시 개시중의 부내 덕산정시장에서 예수교도 수모자, 학생, 예수교도 등을 중심으로 약 100명의 일단이 한국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고, 갑자기 약 200명의 무리가 시위운동을 시작(후략)”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광복회 대구시지부가 발행한 대구독립운동사에 따르면 이날 만세운동으로 65명이 체포됐다. 이들 중 9명의 학생과 시민은 재판에 넘겨져 옥고를 치렀다. 계성학교 학생 박태현이 징역 1년, 계성학교 학생 박성용과 대구고보 학생 박남준, 김재소가 징역 8월, 시민 김재병, 이덕주, 김치운이 징역 6월을 선고 받았다.

#2. 불교계가 주도한 3·30 만세운동

만세운동에 당황한 일제도 잠자코 있지는 않았다. 만세운동의 확산을 염려한 일제는 3월10일부로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 대구고보에 휴교령을 내리고 대구 주둔 일본군은 경계를 강화했다. 일제의 감시가 강화된 가운데 기독교계에 이어 불교계 또한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당시 불교계 종합학교인 중앙학림(현 동국대) 학승들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일제의 탄압에 적극적으로 항거 중이었다. 중앙학림 학승들은 만세운동 확산을 위해 각자의 연고지역 사찰로 향했고, 달성군 공산면 출신의 중앙학림 학승 윤학조 또한 고향으로 돌아왔다.

윤학조는 3월23일 동화사 지방학림을 찾아 김문옥, 권청학 등을 만나 서울의 소식을 알리고 시위를 계획한다. 뜻을 모은 학승들은 애초 봉기 장소를 공산면 백안시장으로 결정했지만, 윤학조는 ‘장터가 좁고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남문밖시장 거사를 제안했다. 이후 김문옥과 권청학 등은 3월28일 동화사 지방학림 학승 전원을 동화사 내 심검당으로 모아 거사를 결의한다. 이날 김문옥은 “신문기사를 보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조선내 각지에 있어서는 이미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들도 조선민족의 일원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동화사 지방학림 학승들 또한 김문옥의 주장에 찬성하고 3월30일 남문밖시장에서 거사를 펼치기로 결의한다. 김문옥을 비롯한 9명의 학승 대표들은 거사일 전날인 3월29일 동화사 포교당이었던 보현사에 숨어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30일 오후 2시가 되자 남문밖시장에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선 장대에는 태극기가 나부꼈다. 학승들은 물론 학생과 장꾼들까지 만세운동에 호응하면서 2천여명의 군중이 모인 시장은 뜨거운 독립만세 함성의 열기로 가득 찼다. 만세운동이 열린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일군경은 총칼을 앞세우고서야 군중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이날 만세운동으로 동화사 지방학림 학승 이성근, 김문옥, 이보식, 김종만, 박창호, 김윤섭, 허선일, 이기윤, 권청학이 체포됐다. 이들은 대구지방법원 재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했다. 동화사 지방학림 또한 1개월 동안 휴교를 당했다.

#3. 만세운동 확산의 거점

4월이 되자 대구와 접한 달성군 지역(현재의 대구시역)에서도 소규모 만세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4월15일에는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과 공산면 미대동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만세운동의 규모는 작았지만 일제는 체포된 주동자 모두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수성면 대명동 만세시위로 강윤옥과 장용암이 옥고를 겪었다. 4월26일과 28일에는 공산면 미대동에서 두 차례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미대동 주민 채봉식, 채희각, 채갑원, 채학기 등 인천채씨 문중의 선비들은 26일 밤 마을 동쪽 여봉산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 4명은 28일에도 같은 마을의 채경식, 채명원 등과 함께 다시 여봉산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끝에 일경에 검거됐다. 두 번 연속으로 만세를 외친 4명은 징역 8월, 다른 가담자들은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대구의 3·1운동은 타지역에 비해 일찍 시작됐으면서도 오래 지속됐다. 기독교와 불교계 및 학생과 일반시민, 청년유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만세운동 주도층이 조기 체포되고, 일제의 폭력진압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구의 3·1 운동은 경북 등 인근지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대구의 3·1운동 참여 학생들이 경북 각지의 고향으로 향하면서 해당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대구독립운동사. 경북독립운동사. 권녕배의 논문 ‘대구지역 3·1 운동의 전개와 주도층’. 영남일보, 대구 3·8 만세운동, 3·30 만세운동, 4·26 만세운동을 아십니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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