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3월, 마음 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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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5 07:56  |  수정 2019-03-25 07:56  |  발행일 2019-03-25 제15면
[행복한 교육] 3월, 마음 데우기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꽃샘추위로 새 학기가 더 버겁던 단발머리 시절, 아직 교복치마가 불편한데 감청색 범표 운동화에 시린 발을 넣고 아직 꾸덕꾸덕한 신작로를 따라 종종거리며 등교했다. 얄팍한 흰 실내화로 갈아 신으면 발이 얼음장 같았다. 새벽마다 할머니는 귀한 4대 독자 남동생의 신발과 아버지 구두는 건넌방 연탄아궁이 부뚜막에 불기운이 들어오도록 비스듬히 기울여 데웠다. 온기가 잠시라도 달아나지 않게 가슴에 품어 건네는 유난을 떠셨다. 그게 얼마 동안 따뜻할까. 신발의 클래스도 다르긴 했지만 놀랍게도 남동생의 눈치 없는(눈치 볼 필요도 없는) 증언에 따르면 이른 아침 데워진 신발을 신고 일정 시간 걷노라면 발에 열이 나서 전혀 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사실 여부를 떠나 차별에 심통이 났다. 아침 일찍, 내 신발을 부뚜막 명당에 두면 할머니는 가차 없이 밀어내셨다. 얼른 학교를 졸업해서 이 지겨운 집을 떠나야지…. 청량리역이 종착지인 기찻길을 바라보며 살아보지 못한 먼 도시를 향한 갈망으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홈스쿨링 5년 만에 중학생이 된 욱이는 변화무쌍한 3월이 즐겁기만 하다. 동생 셋을 돌보며 엄마와 인터넷으로만 공부하다가 날마다 벌어지는 다양한 수업과 학교생활이 다이내믹하여 오늘도 볼 빨갛게 교문으로 뛰어왔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들어 환경전학을 한 연이는 전입 보름 만에 표정이 달라졌다. 이유를 물으니 반 친구들이 착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내가 나답게 행동하고 말해도 그게 별다른 흉이 되지 않는 분위기, 그게 좋단다. 사실 공동체생활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소망이다.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에는 어떤 기저가 있다. 타인의 언행과 취향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격 멋진 사람들이 집단 내에서 자기 일을 잘하면서 재미있게 그들을 조금씩 도와주는 것이다. 사람의 특이한 행동을 순수한 면으로 받아들이고 유머 있게 대처하면 수군대는 사람들이 자체 입단속을 한다.

남도에서 일주일 전 전입한 경이는 오늘도 2교시가 지나서 새벽에 출근했던 어머니의 손에 끌려 왔다. 텅 빈 집에 혼자 눈을 뜬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낯선지…. 창 밖을 내다보면 소읍의 야트막한 산과 고만고만한 집 사이로 보이던 정겨운 나무와 반짝이던 비닐하우스, 들녘의 흙바람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여기에 왜 이러고 있는지…. 학교가 뭔지, 하루를 살아내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그 지긋지긋한 곳으로 돌아가기도 싫다. 어머니는 아이의 충격을 우려해서 우선 학교 잘 다니면 차차 그간의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한다. 그것은 변명거리가 구차한 어른의 입장이다. 아이의 눈을 가려 놓고 빨리 저쪽으로 뛰어가라는 격이다.

남들은 쉽게 배우는 자전거를 처음 탈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부들부들 떨다 페달을 힘껏 밟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엔 어떻게든 앞으로 나갈 생각만, 그 생각만 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나가다 보면 중심은 저절로 잡힌다. 마침내 터득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부대끼는 용기가 필요한 시기다.

자주 코피가 터지고 걸핏하면 비염으로 고생하던 시절,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이라도 흡수시키지 못했다. 한약사에게 가면 우선 장기를 데워야 한다고 했다. 3월 몸과 마음을 데워야 할 때다. 그래야 언 땅을 뚫고 돋아나는 여린 새싹과 메마른 가지에서 팝콘처럼 터지는 분홍꽃 망울의 놀라운 천상의 매직쇼가 보이기 시작한다. 너를 보듬을 나를 데워야 한다. 그래야 데워진 내가 세상을 안을 수 있는 것이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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