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수로 원해연과 경주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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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종욱기자
  • 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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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경주의 모든 원전 시설물을 다 가져 가라.” 원전해체연구소(이하 원해연)의 알짜배기로 통하는 경수로 원해연 부지가 결국 부산·울산으로 결정나자 분노한 경주시민들이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경주에서 오랫동안 살아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고도 남을 말이다. 하대근 경주 양남발전협의회장은 “정부가 지난 40년간 각종 국책사업에 주민을 이용만 하다가 이제와서 헌신짝 취급을 하고 있기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가 주민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고 동경주에 원전과 사용후핵연료, 방폐물만 가득 쌓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월성원전 정문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전국 24기 원전 가운데 4기뿐인 중수로(월성본부 1~4기) 해체연구소 분원을 경주에 짓겠다는 것은 경주시민을 철저히 외면하고 우롱하는 처사”라고 분개했다. 김재동 양북면발전협의회장도 “중·저준위 방폐장에 방폐물 반입을 틀어 막고, 동경주 주민을 비롯한 경주시민이 물리적 행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주시는 2014년 3월 ‘원자력해체기술연구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한 뒤 지난 5년간 원해연 유치 활동을 벌여 왔다. 원해연 경주유치위원회를 만들고, 2014년 12월 경주시민 22만5천명(경주시 인구 대비 86%)의 서명을 받아 국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 전달했다. 경주는 그동안 원전의 ‘설계-건설-운영-해체-폐기’ 전 과정이 집적된 인프라를 갖춰 ‘원해연 설립 최적지’로 평가받았다. 특히 2017년 8월엔 산업부가 후원한 ‘소비자 평가 NO1.브랜드 대상’에서 원자력해체기술 선도도시로 선정돼 대상을 받았다.

신수철 경주시원전범시민대책위 부위원장은 “동경주 주민 등 경주시민들은 정부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이전 등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원해연도 정치적 셈법으로 부지를 선정한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처사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감포지역 주민 B씨는 “경주는 원전 6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중·저준위 방폐장 등 원전 관련 시설 ‘백화점’”이라며 “그러나 정부는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주민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했고, 사용후핵연료 이전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수로 원해연 경주 설립 소식에 경주 도심 주민도 함께 분노했다. 이동우씨(54·용강동)는 “이번 기회에 경주시민들이 항의의 뜻으로 월성본부 6기의 원전과 중·저준위 방폐장 운영을 모두 중단시켜야 한다”면서 “정부가 경주를 더 이상 ‘들러리’로 취급하지 않게 실력 행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경주의 민심을 진정으로 새겨 들어야 할 때다.

송종욱기자<경북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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