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스토리 오브 루크’ (알론소 필오메노 마요 감독·2011·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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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0   |  발행일 2019-05-10 제42면   |  수정 2019-05-10
숨은 영화를 찾는 즐거움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스토리 오브 루크’ (알론소 필오메노 마요 감독·2011·미국)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스토리 오브 루크’ (알론소 필오메노 마요 감독·2011·미국)

좋은 영화를 찾아내는 일이 갈수록 어렵다. 기대를 가지고 두 시간여를 투자했는데, 보고나면 실망할 때가 많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릴까 염려가 될 정도다. 언젠가 좋은 영화 고르는 법을 묻는 이에게, 전문가 평점과 관람객 평점이 모두 높은 걸 고르면 된다고 했지만 이것도 정확한 것은 못된다. 그런 영화가 흔하지 않은데다,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영화에서 감동을, 누구는 단순한 재미를, 또 어떤 이는 정보 또는 사회 비판 등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영화에서 감동을 원한다. 사랑과 우정, 용기, 꿈 등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영화에서 ‘영화의 심장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스토리 오브 루크’는 몇 년 전, 온갖 영화들을 섭렵할 때 우연히 발견한 영화다. 시간만 나면 영화를 찾아볼 때였다. 아무런 정보도, 추천도 없이 어쩌다 보게 된 영화인데, 보고나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졌다. 영화를 보고나서는 책갈피에 꽃잎을 꽂아두듯, 마음 한 구석에 곱게 간직해두었다. 명작은 아니지만, 그만큼 사랑스러운 소품이다. 코미디 장르라고 언급된 만큼 재미도 있고 감동이 있는 영화다. 주인공 루크는 자폐증을 가진 청년이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의 살뜰한 보살핌과 교육으로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법을 배웠으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순수한 청년이다. 수많은 레시피를 외워 요리도 아주 잘한다. 사랑으로 돌봐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루크는 삼촌 집에서 지내게 된다.

삼촌의 가족은 문제투성이다. 직업을 구해서 홀로서기를 하려는 루크와 함께 지내면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겉으로는 정상이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병들어있는 삼촌 식구들을 돌아보게 하는 힘은 루크의 솔직함이다. 있는 그대로밖에 말할 줄 모르는 루크의 순수함 앞에서 위선적인 자신의 모습을 들키게 되는 것이다. 애써 아닌 척, 괜찮은 척 하고 있던 거짓된 모습을 스스로 보게 되는데,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직면’하는 것이야말로 문제해결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행복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본 삼촌과 가족들은 조금씩 변해간다.

“정직은 아주 비싼 재능이다. 싸구려 인간들에게 기대하지 마라”고 한 워런 버핏의 말에 따르면 솔직하고 순수한 루크야말로 비싼 재능의 소유자다. 그렇지 못한 주변 인물들이 ‘싸구려 인간들’에 속하는 셈이다. 자신을 포장할 줄 모르는 루크의 타고난 ‘재능’으로 삼촌 식구를 비롯한 주변 인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루크. 작가 수잔 손탁이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자유”라고 칭송했던 정직함의 미덕을 그에게서 배워야할 것 같다. ‘남자답게’ 일도 찾고, 여자도 찾겠다는 루크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과정, 그리고 삼촌 가족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이 따스하게 그려진다. 가족의 회복 과정에는 루크의 요리 솜씨가 큰 몫을 한다.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관계 형성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새삼 일깨운다.

인디 필름답게, 영화는 소품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걸(?) 확인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인디영화제를 비롯한 영화제에서 상을 꽤 받았다. 특이한 것은 페루 출신의 감독 알론소 필오메노 마요인데, 그가 각본도 겸했다. 루크 역을 한 루 테일러 푸치의 연기가 빼어나고, ‘이탈리안 잡’에서 천재 해커로 나온 세스 그린의 모습이 반갑다. 이 영화에서도 괴짜 천재로 등장하는데, 배우들이 대개 비슷한 캐릭터를 맡기 일쑤인 걸 확인하게 된다. 자폐아 역할을 한 루 테일러 푸치 역시 또다른 영화 ‘뮤직 네버 스탑’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청년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보고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영화, ‘스토리 오브 루크’처럼 숨어있는, 좋은 영화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다. 여러 편의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해야 하리라.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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