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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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38면   |  수정 2019-06-21
96%의 쓸데없는 걱정에서 자유로워야 성공한 삶…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라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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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운은 문화심리학자로 한마디로 괴짜다. 독일에서 공부한 그는 자칭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다. 최근에는 일본에 가서 느닷없이 일본화를 공부하며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을 기어코 하고 사는 멋쟁이다. 이전에 ‘에디톨로지’라는 책을 낸 적도 있다. 이 책에서도 인간이 하는 모든 창조는 ‘편집’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개성·창의적 건물, 관광객 증가 효과
계단식 논에서 착안한 호텔 공중정원
건축물 기본배경, 이중구조 차양·식물
전통·현대 조화로운 야경 명소 관광지
건물 일부, 시민에게 내어준 그늘공간
튀지 않는 은은한 가로등 분위기 취해



일본에 있으면서도 그는 틈틈이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며 자유를 만끽하며 살더니, 돌아와서는 여수 남쪽 섬의 다 쓰러져 가는 미역창고를 그의 말대로 ‘충동적으로’ 구입하고 아틀리에로 꾸며 ‘美力創考’라고 이름 짓고,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 사고를 한다’고 해석하고는 용감하게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이곳을 ‘슈필라움(Spielraum)’, 우리말로 ‘여유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벼르기만 하다가 결국 실천에는 옮기지 못하는 수많은 소심한 도시인들의 우상처럼 용감하게 저질러 버리는 멋진 지적 유희자다. 저자는 ‘심리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슈필라움의 가치를 너무나 무시하고 살아왔다.

여수에 살면 뭐가 좋으냐는 물음에 대해,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는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말을 들려준다. 공간은 비어 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남자들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다.

우리의 걱정거리 가운데 정말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 일은 고작 4%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나,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 또는 아주 사소하거나 전혀 손쓸 수 없는 일이 96%라는 이야기다. 그는 이 ‘96%의 쓸데없는 걱정’에서 자유로워야 성공한 삶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유로워지려면 나만의 공간을 가지면 좋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읽으면서 중간을 겅중겅중 뛰어넘어도 좋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자유스럽게 읽어도 좋다.

책 속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도 있고(그림에는 ‘오리가슴’이라는 해학적이며 재미있는 사인이 그려져 있다), 남도의 시원한 바다 사진도 있다. 저자도 이렇게 띄엄띄엄 골라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발췌독’이라고 말한다. 골라 읽는 이의 발췌독이야말로 ‘의미구성’이 가능해지는 주체적 독서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정말 독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말이다.

저자는 또 최근의 ‘불안한 인간들’이 습관적으로 ‘나쁜 이야기’만 소셜미디어로 보내는 이야기를 지적하고 있다. 나쁜 이야기에 서로 ‘좋아요’를 죽어라 눌러댄다는 것이다. 각자의 소셜미디어에 쌓이는 나쁜 이야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모여 앉아도, 유튜브에서도 남 욕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타인의 관심을 얻기에는 나쁜 이야기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원시시대에 ‘저기 바나나가 있다’는 정보보다 ‘저기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정보가 더 솔깃한 것은 나쁜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보다 생존에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유한한 존재’의 운명인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라는 것이 ‘나름 화가’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강변이다. 불안한 사회일수록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 탈출구다. 스마트폰에서 벌어지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고 권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유인 김정운과 같이 우리들도 각자 저만의 여유 공간인 슈필라움을 마련해 볼 일이다. 여수에 가서 미역창고를 구입하지는 못할망정 방의 책장 위치를 바꾸어보거나, 장식이나 액자를 바꾸어보는 등 나만의 은밀한 공간을 변형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김정운 지음· 21세기북스·283면·2019·1만8천원)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 <사>대구독서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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