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인식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일”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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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2   |  발행일 2019-06-22 제16면   |  수정 2019-06-22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빈곤은 인식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일”
책은 우리 주변에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또 이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빈곤은 인식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일”
조문영 지음/ 21세기북스/ 324쪽/ 1만9천원


영화 ‘기생충’이 인기다.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택 가족이 글로벌 IT 기업 CEO인 박 사장네 집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가난한 집과 부잣집의 비교,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다툼 등 영화는 의외로 쉽게 읽힌다. 하지만 웃긴 장면이 꽤 많이 나옴에도 우리는 쉽게 웃을 수 없다.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기택네 가족이 꼭 우리와 닮아서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무언가 내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또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생들, 反빈곤 활동가 10인 인터뷰
“경쟁사회선 주변인에 눈돌리기 어려워
빈곤문제, 개인 탓으로 치부하면 안 돼
가난 자체 인정 않으면 근본 개선 불가”
‘부양의무제’ 등 정부정책 문제 제기도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는 너무 멀거나 막연하게 생각했던 가난을 학생들의 관점에서 다룬다. 조문영 연세대 교수의 ‘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 진행한 ‘청년, 빈곤을 인터뷰하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학생들은 반빈곤활동가들을 만난다. 홈리스, 철거민, 복지수급자, 장애인, 노점상, 쪽방촌 등 뉴스에서나 봤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들이 만난 활동가들은 한국사회 가난의 현장에서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고, 문제는 무엇인지, 가난을 없애려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야기한다. 용산참사가 제일 처음 나온다. 10여년 전 발생한 용산참사에서 시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엔 개발의 풍경만 남았다. 학생들이 만난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는 “땅은 투자의 대상으로 거듭나 몸값을 올리지만, 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쌓여 있던 먼지처럼 청소돼 버린다”고 말한다.

책 속에 학생들은 빈곤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우리가 빈곤과 가난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가 ‘홈리스’란 단어 대신 ‘노숙인’이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게 단적인 예다. 홈리스는 국제인권법상 ‘노숙인뿐만 아니라 고시원, 쪽방, 컨테이너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 ‘홈리스 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노숙인 운동’에서 ‘홈리스 행동’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정부가 노숙인으로 범위를 한정짓는 것은 수많은 홈리스들을 정책 대상에서 탈락시키기 위한 의도라 말한다. 그는 책에서 “비주택 거처에 사는 분들이 전체적으로 37만가구 정도로 추정되는데, 2016년 복지부 실태조사를 보면 1만1천800명밖에 안 나왔다. 엄청난 차이가 나는데, 이로 인해 정책 대상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빈곤을 고립의 시대라고 말한 부분도 흥미롭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에서 활동하는 최인기 활동가는 빈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관계와 소통의 단절”이라고 답한다. 그는 “무한 경쟁의 압박과 청년 실업의 위협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기란 어렵고 사회적 약자, 도시 빈민은 우리의 공간에서, 인식상의 경계 밖으로 자꾸만 밀려난다”고 말한다. 우리 삶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주변 가난에 눈을 돌리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논골신용협동조합 유영우 활동가는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인식을 지적한다. 그는 “가난한 건 본인의 노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배웠고,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라고 한다.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 ‘가난’은 개인 스스로의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도 볼 수 있다. 난곡사랑의집 배지용 활동가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뭔가를 나눠주는데, 그러다 보면 받는 것에 길들여진다”고 말한다.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처럼 느끼면서 가난의 비인간화, 대상화가 진행된다는 게 배씨의 주장이다. 또 정부가 부양의 문제를 통해 가난을 가족에게 지우거나 통제를 쉽게 하고자 시설에 가두는 문제도 함께 지적한다. 시민단체들이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시설을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3대 적폐’로 규정하고 5년 넘게 맞선 이유이기도 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학생들은 우리에게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생명, 밥, 일과는 있지만 삶과 나 그리고 일상이 없는 삶이 과연 인간다운 삶이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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