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서두르지 마라

  • 장용택
  • |
  • 입력 2019-07-02   |  발행일 2019-07-02 제30면   |  수정 2019-07-02
반도체 클러스터 놓쳤지만
구미지역 최근엔 잇단 낭보
백년 보장 먹거리 확보위해
지역인재 양성 등을 비롯해
차근차근 초석 다지기해야
20190702
장용택 교육인재개발원장

구미시내 곳곳에 올초와는 달리 또 다른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LG화학 구미5산단 유치를 환영합니다. 사랑해요 LG’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LG그룹 주력계열사인 LG화학이 최근 구미5산단에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공장을 짓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 상위 20개업체 가운데 13개업체는 물론, 국내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양극재는 배터리 용량과 출력에 핵심적인 소재로 생산원가의 40%에 달한다. 향후 5천억~6천억원의 투자에 고용효과 1천명을 웃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LG화학의 현재 전기차 배터리 수주잔고가 무려 110조원에 달하고 1천명 고용에 10년간 안정적인 일자리 유지가 가능하다.

게다가 ‘구미형 일자리사업’ 방식으로 추진되는 이번 LG화학의 경우 기업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투자촉진형’이다. 동종업계 수준으로 임금은 보장되면서 노·사·민·정 협약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가 복지 및 주거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도레이그룹 손자기업인 도레이배터리세퍼레이터필름한국(TBSK)도 리튬이온이차전지 분리막공장을 구미 5산단에 짓겠다고 했다. 이에 경북도와 구미시는 25만㎡에 달하는 부지제공에 적극 협조키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7일 구미5산단 3구역(탄소집적단지)에 입주 가능 업종을 기존 7개에서 9개를 추가하는 조치를 내렸다. 5G 국제표준과 주요 이동통신사 상용화 계획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구축해 제품불량과 사용자 불만을 미리 발견해 보완할 수 있는 시험환경을 만드는 5G테스트베드로 구미산업단지가 지정됐다.

지난해 말부터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위해 구미시민 43만명이 한결같이 힘을 모았지만 결국 지난 2월 말 경기도 용인에 10년간 120조원 투자에 1만7천여개의 일자리 사업을 허무하게 넘겨주고 말았다. 당시 구미시민들은 집단 우울증에 걸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이어진 낭보를 보면서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되고 좌절과 낙심은 금물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어찌 보면 지난 20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두명을 뽑은데 이어 지난해 치러진 6·13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을 선택한 때문이기도 하다. 구미시민들이 적절한 시기에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선택을 한 결과다. ‘꿩잡는 게 매다’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에 기반한 구미시민의 탁월한 선택이 대기업유치에 주효했다.

7월1일은 민선 7기 1년을 넘는 시기이자 21대 총선을 9개월여 앞두고 있다. 지방선거 당선자들은 1년 실적평가를,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 공천에 앞서 지난 3년간 의정 성적을 매기는 시기다. 당사자들로선 절체절명의 순간이며, 낙오라고 하면 시쳇말로 국물도 없을 정도다. 구미가 이대로 주저앉으면, 경북도와 대구시조차 온전치 못하다는 판단 하에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눈썹이 휘날릴 만큼 뛰고 있는 것을 보라. 유권자는 정치인과 공무원을 달달 볶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결과를 낸다. 구미시의 대기업유치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올해로 구미산단 창립 50주년이 된다. 경북대 전자공학부를 위시한 지역 인재들의 피땀으로 세운 대한민국 최첨단 산업단지였으며, IT산업의 메카로 대한민국의 수출을 선도했다. 그런데 구미산단의 현실은 어떤가. 수치를 제시하는 것조차 사치다. ‘구미지역에는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SK하이닉스의 핀잔이 바로 구미의 현실이다.

공자는 ‘서둘러 가려다 오히려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로 ‘欲速則不達(욕속즉부달)’이라는 말을 남겼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인과 리더들은 지역인재양성을 비롯한 향후 100년을 보장하는 먹거리를 얻기 위한 초석을 늦더라도 차근차근 다져나가야 한다. 벌써 구미 일각에선 “달랑 구멍가게 수준의 기업체 몇개를 유치해놓고 자랑부터 먼저 하느냐”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새겨들을 부분이 있다.

장용택 교육인재개발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