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신어: 언어의 규칙과 창조성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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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5   |  발행일 2019-07-25 제30면   |  수정 2019-07-25
신어인 ‘취향저격’‘추억소환’…
기존의 언어 창조성과 달리
낯선 조합으로 만든 새 말맛
규칙과 창조성 사이 오가며
언중의 오묘한 능력 드러내
[우리말과 한국문학] 신어: 언어의 규칙과 창조성 사이
남길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인간만이 가지는 언어 능력이나 언어의 창조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의 창조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맥락에 따라, 또는 전공 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관심사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언어의 창조성은 시나 소설 등에서 언어를 아름답게 쓰는 문학적 창조성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지만, 언어학 이론에서는 한정된 문법 규칙을 가지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문장을 생성해 내는 인간의 언어 능력을 뜻한다.

전자의 문학적 창조성은 소수의 문학가들에 의해 발휘되는 유표적인 창조성이지만, 후자는 문법적 창조성이라고도 불리며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무표적인 창조성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 유행하는 일련의 신어에서는 이 두 가지 창조성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새로운 창조성이 존재한다. ‘취향저격, 대략난감’ 같은 신어들이 그러한 부류다. 좀 더 부류를 넓히면 ‘영혼 가출, 폭풍 흡입, 추억 소환, 실물 영접, 불량 엄마’ 등도 유사한 효과를 가진 표현이다.

우리는 왜 ‘취향 존중’ ‘취향 맞춤’과 같은 기존의 표현 대신 ‘취향 저격’과 같은 새로운 표현을 쓰게 될까. 또 단순히 추억하거나 추억을 되살리는 것 대신 ‘추억’을 ‘소환’하며, 실물을 보거나 취하는 것 대신 ‘실물’을 ‘영접’하는 것일까.

우리가 ‘취향저격’을 새로운 말로 인식하고 신선하게 느끼는 이유는 ‘취향’과 ‘저격’의 낯선 조합 때문이다. 사전에서 ‘저격’은 ‘일정한 대상을 노려서 치거나 총을 쏨’이라고 뜻풀이 되어 있고, ‘저격 사건, 저격을 가하다’와 같이 쓰인다. 그런데 이러한 ‘저격’이 ‘취향’과 만난 것은 매우 새로운 사건이다. 심지어 ‘소환’은 법률 전문 용어로 ‘법원이 피고인, 증인, 변호인, 대리인 따위의 소송 관계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하여 … 장소에 나올 것을 명령하는 일’(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풀이된다. 소환장을 발부 받아야 소환을 할 수 있는데, ‘추억 소환’이라니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언중은 이러한 낯선 조합, 일반적인 관습에서 의도적으로 비껴나간 조합에 흥미를 느끼고 말맛의 새로움을 향유한다. 결국 이러한 표현은 기존의 식상한 표현을 대체하며 강한 효과를 주고 신어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일탈은 신어가 엉뚱하게 느껴지거나 규범을 일탈하고 비문법적으로 느껴지는 주된 이유를 제공한다. 낯선 조합의 긍정적인 효과는 의도된 일탈을 통해 언어를 창조적으로 사용하며 강력한 인상과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이러한 창조성을 문학적 창조성과 문법적 창조성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제3의 창조성으로 명명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매우 규범적인 관점에서는 이러한 조합들이 한국어의 규칙을 어겨 언어를 오염시킨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다시 언어의 창조성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그 유명한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나오는, “찬란한 슬픔의 봄”이나 조지훈의 ‘승무’에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는 ‘시적 허용’에 해당하는, 문학적 창조성의 대표적인 사례다. 현실 언어에서 ‘찬란한’은 ‘슬픔’이나 ‘봄’과 어울리기 어려우며, ‘하이얀’ 역시 ‘하얀’의 오기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맥락에서 규범적 표현이 가질 수 없는 효과를 낸다.

이러한 문학적 창조성과 신어의 창조성을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꽤나 유행했던 ‘노오력’ ‘노오오력’이나 ‘소오름’과 같은 신어가 ‘하이얀 고깔’이나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서정주, 국화 옆에서)에서의 ‘하이얀, 노오란’보다 덜 창조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소설, 호갱, 잉문학, 득템’ 등 꽤 높은 빈도로 사용되는 신어는 재치 있는 언중의 창착물로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신어는 언어 규칙과 창조성의 사이 어느 지점에 존재하며, 두 지점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언중의 직관과 창조성은 언어학자가 보기에도 감탄할 만한 대단하고 오묘한 능력이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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