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LP로드] 범물동 ‘베토벤하우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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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6   |  발행일 2019-07-26 제41면   |  수정 2019-07-26
실황 능가하는 LP 사운드, 살롱 음악회…스페셜티급 커피의 ‘중후한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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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하우스’는 매월 한번 이상 정상급 연주자 등을 초청해 살롱음악회를 갖는다. 올해 바로크 바이올린 특집 살롱음악회 때 초청받은 브뤼셀 왕립음악원 교수 겸 바이올리니스트인 페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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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원음에 대한 그리움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클래식 연주자, 음악평론가 등 15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갤러리 같은 대구 수성구 범물2동 ‘베토벤하우스’ 외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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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자장을 이용해 진동을 최소화시킨 게 특징인 프랑스제 턴테이블인 ‘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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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회가 없는 평일에는 베이커리 커피숍으로 변하는 ‘베토벤하우스’. 2층에는 자가 로스팅룸을 갖추고 있다.

◆음악을 마시는 카페

그 하우스 서쪽에는 성당이 살고 있다. 그 동쪽에 있는 사찰은 매일 성당을 향해 눈인사를 한다. 대구 수성구 범물2동, 사방은 용지봉 자락에 앉은 아파트촌에 둘러싸여 있다. 매일 해가 스멀거리며 서편으로 질 때 그 중간 언덕배기 벤치에 앉아 커피를 하염없이 마셔도 좋겠다고 생각한 ‘LP맨’들이 있었다. 그런 맘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 일을 냈다. 그 언덕배기 자투리 땅에 묘한 하우스 한 채를 지었다. 그 집 이름은 ‘베토벤하우스’. 노출콘크리트조 갤러리 같은 천고 높은 뮤직홀이 그 집의 심장이다. 누군가는 이곳을 ‘음악을 마시는 카페’라 한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여 투합
갤러리 같은 뮤직홀‘음악 마시는 카페’
현대인에 찾아주는 아날로그 사운드
주말 음악회, 평일은 베이커리 커피숍
1만장 LP·CD, 2억원대 오디오시스템
벽에 구로철파이프 2t 붙여 음향효과
초하이엔드 음악과 커피 동시에 즐겨

매월 정상급 연주자 초청 살롱음악회
하절기 맞아 클래식 전문가 강의 마련
블루마운틴·게이샤 등 원두 13종 보유


집을 지을 때 개념없는 업자들의 대충대충 마인드는 철저히 거부했다. 엄선한 건축사와 숱한 도상작전회의를 거쳐 수정을 거듭해 나갔다. 11개월간의 설계, 인테리어 시공기간만 5개월. 기하학적 형태미를 강조하고 미니멀한 외관, 심플한 창호를 선택하려 하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2017년 8월 우여곡절 끝에 건물이 완공된다.

이 공간은 누구만을 위한 게 아니다. 스티리밍 음원이 만연하는 세상에 진정한 사운드가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태어났다. 이웃사람들은 유럽에나 있을 법한 정갈하면서도 모던한 이국적 건축물을 좀 수상쩍게 여기다가 지금은 동네명물로 존중한다. 하루의 노독을 풀기 위해 커피잔을 든 채 중후한 하이파이 원음으로 힐링하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몸은 단아하게, 의식은 또렷하게, 그리고 영혼은 평화롭게. 그게 베토벤하우스의 목표점이다.

1층 같은 2층 사이에 호주머니공원처럼 앉아 있는 중정(中庭). 서쪽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선셋데크 같은 길쭉한 테라스를 세팅해놓았다. 머그잔, 그리고 책 한 권 정도 놓아둘 수 있는 도마 크기만 한 송판이 식탁보처럼 개별 자리마다 놓여 있다.

◆하이파이 & 유토피아

적잖은 LP맨이 이 공간을 위해 독립군처럼 의기투합했다. 5명의 이사(김미희·최훈락·이승규·한수현·남우선)들이다. 최훈락씨는 피아니스트, 이승규씨는 섬유회사 사장, 한수현씨는 이 커피숍의 매니저. 그리고 클래식 평론가 박제성과 클라라하우스 대표인 평론가 유혁준 등 10명의 짱짱한 강사진이 매주 화요일 밤에 진행되는 ‘클래식 아카데미’를 후끈 달궈놓는다.

평소 뮤직홀은 베이커리커피숍으로 운영된다. 베토벤하우스 김미희 대표. 그녀는 현재 서울에서 영어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국제 바리스타. 2002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커피를 처음 배우고 IBS(이탈리아 바리스타)와 SCAE(유럽바리스타) 등 국제바리스타 자격증을 갖고 있다. 또한 3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구 오디오 동호회인 하이파이클럽 대구지부 회원들도 이 공간을 애지중지한다.

베토벤하우스의 건립목적은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클래식을 강의하고 살롱음악회를 여는 등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시작한 음악동호회 운동(무지크페레인)을 대구에서도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법인까지 설립한 것.

그 연결고리는 남우선 대구MBC PD. 그는 디지털음원이 난무하는 세상에 도저히 접할 수 없는 아날로그 사운드를 현대인들에게 찾아주는 것, 그게 자기 팔자란다. 그는 이 공간의 머슴. 온갖 궂은 일은 독차지. 30여년 원음을 찾아 탐험했다. 스스로 ‘아날로그에 중독된 사내’라고 말하는 그는 2005년 ‘아날로그 전도사’로 화제가 된다. 디지털 음악의 폐해를 고발하는 과학다큐멘터리 ‘생명의 소리 아날로그’ 때문이다. CD와 MP3에 중독된 세상에 보내는 경고였다. 이후 그의 일상의 화두는 LP사운드였다.

문을 열고 뮤직홀로 들어섰다. 반도체 지판을 연상시키는 입구 정면 벽체의 파사드. 1만여장의 LP와 CD가 책처럼 꽂혀 있다. 여느 LP공간은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고퀄리티를 유지한다. 코러스라인처럼 도열한 각종 음반은 전시용이 아니다. 플레이어의 열정과 관심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무턱대고 대기순서대로 음악을 쏘지 않는다. 그날의 기후 상태, 그날의 주요 이슈, 그리고 현재 홀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와 수준 등. 그런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그 순간에 딱 맞는 그 음반을 족집게처럼 찾아 텐테이블에 장착한다. 실패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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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식혀주는 ‘베토벤하우스’ 빙수

◆수정을 거듭한 룸튜닝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명품 뮤직홀은 ‘음향공학’에 최적화되어 있다. 공연 기능, 감상 기능, 세미나 기능, 커피숍 등의 기능까지 모두 충족시킨다. 여러번 ‘룸튜닝’한 결과다. 2억원대의 오디오시스템 덕분에 음의 전대역(Full range)가 고스란히 홀의 전 방향으로 안배된다. 전국에서 초하이엔드로 이런 음악과 커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으론 이곳을 비롯해 빈티지 오디오를 설치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DJ 황인용이 운영하는 파주 헤이리의 ‘카메라타’ 정도가 유일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귀 대신 심장을 스피커를 향해 열어뒀다. 얼마전 작고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알론 로잔드의 선율이 첼로처럼 육중하게 홀을 핥고 지나간다. 이어 빙상 여제로 은퇴한 김연아가 경기 때 사용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세계적 재즈 디바가 된 나윤선이 부른 ‘사의 찬미’, 그리고 아이돌 여자 가수 아이유가 부른 ‘개여울’ 등을 찬찬히 들었다. 실황을 능가하는 사운드였다. 여린 건 극도로 여리게, 떨림은 더욱 정교하게, 그러면서 강한 건 강하게, 웅장할 건 웅장하게, 깊은 건 깊게, 굴곡진 건 굴곡지게…. 흠잡을 데가 없는 사운드다. 일본에서는 최고의 연주자가 녹음한 음반을 그 실황보다 더 멋지게 소리내주는 기술자를 ‘레코드연주가’로 명명한다. 오디오로 극치감을 안겨주는 예술가인 셈이다. 이런 영역은 기계만 알아서도 음악만 안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악기별 고유 음역대와 컬러를 알아야 하는 건 기본. 기악, 성악, 교향악, 실내악, 솔로 등에 맞는 최적의 음역과 음량을 찾아야 한다. 그건 우주선이 달나라에 착륙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테크닉이다. 지금 우린 어쩜 중구난방된, 음역대가 서로 붙어버린 턱진 사운드에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수많은 룸 튜닝재가 있다. 이들의 목적은 주파수 대역만 다를 뿐 결국 확산 혹은 흡음 기능으로 대별된다. 음향학상 오디오로 가장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장고는 4~4.5m. 가정용 오디오를 썼을 때 공간의 높이가 이보다 높아지면 소리의 도달시간에 미세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공간이 좁으면 흡음재, 공간이 넓으면 확산재를 쓰는 게 좋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쉽게 말해 공간이 좁은 곳에서는 반사되는 소리의 양을 줄이는 흡음재를 사용하여 공간이 커지는 듯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반대로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반사되는 소리의 양을 늘리는 확산재를 사용하여 공간을 아늑하게 만드는 효과를 노린다.

정면 벽체도 음향학적 공법을 이용해 만들었다. 검정 파이프가 정면 벽을 촘촘하게 채웠다. 5.5m 천고를 가져 공명이 유난히 좋은 걸 이용하기 위해 흡음보다 반사기능이 좋은 포항제철에서 생산되는 구로철파이프를 2t가량 벽에 붙였다. 주철 파이프를 확산재로 사용하여 반사되는 소리의 양을 늘렸다. 이를 통해 소리의 도달 시간을 짧게 만든 것이다. 그 덕분에 공간은 그렇게 크지만 실제로 소리를 들을 때에는 그렇게 큰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했다.

◆오디오 스토리

왼쪽 실연용 피아노 뒤편 벽에는 베토벤, 맞은편 벽에는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강조된 터치로 걸려 있다. 여느 뮤직감상실의 스피커는 집채만 한 게 많은 데 여기는 아니다. 모든 기능성을 알집버전으로 축소시킨 하이엔드급 하이파이 시스템이다. 그래서 현대미술처럼 극히 심플하고 깔끔해 보였다.

나는 오디오의 히스토리가 궁금했다. 이 공간의 시스템은 상품이 아니라 작품급 안목에 의해 세팅돼 있다. 일단 전기부터 제대로 관리해야만 했다. 오디오 전용으로 10㎾의 전기를 따로 끌고 왔다. 일반 오디오 케이블은 음의 왜곡이 심해 전용 케이블을 사용했다. 무대에는 모두 30가닥의 각종 동축 케이블이 가설돼 있었다. 그 가격만 3천여만원. 그래서 실제로 음악을 들을 때에도 전원 문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트러블은 전혀 없다.

홀 내부 인테리어의 핵심인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에는 덴마크 다인오디오의 에비던스 스피커, 턴테이블은 프랑스 베르디에, 호주 할크로의 DM-68이라는 파워 앰프와 DM-10 최상위 프리앰프, DVD보다 4배 영화관급 더 고화질을 보여주는 블루레이 플레이어, 그리고 150인치 스크린을 사용한다.

그동안 스페이스 정(SPACE JUNG) 초청연주회와 네덜란드의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아렌트 흐로스펠트 독주회, IGNIS(이니스)앙상블 현악4중주, 벨기에의 브뤼셀 왕립음악원 교수인 페르난데스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회 등 모두 16번의 살롱음악회를 진행해 왔다.

특히 이번 하절기를 맞아 매주 화요일 오후 7시30분 7차례의 클래식 전문가의 강의가 있는 ‘서머살롱음악회’를 갖는다. 오는 30일에는 비올리스트 최영식, 8월6일에는 첼리스트 이윤하, 8월13일은 피아니스트 최훈락이 특강을 하고 8월20일 플루티스트 황효정의 무대는 살롱음악회 형식으로 치러진다. 입장료는 음료포함 3만5천원. 이와 별도로 매주 화요일 오후 7시30분 10명의 강사진에 의해 진행되는 초하이엔드 오디오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는 클래식 아카데미가 상설돼 있다.

이 집 커피는 스페셜티급이다. 루왁, 블루마운틴, 게이샤 등 모두 13종의 원두를 보유하고 있다. 베토벤은 커피정신도 남달랐다. 생활비의 4분의 1이나 되는 큰 돈을 원두구입에 썼다. 밥은 굶어도 커피는 굶지 않았던 베토벤은 매일아침 원두 60알을 꼼꼼히 세어 핸드밀로 갈아서 커피를 내려마셨다. 이 공간 바리스타(한수현, 송유리)도 드립 1인분에 30g을 갈아서 내린다. 수성구 지범로52길 66. 매주 월요일 휴무. (053)781-0096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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