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단어도 나이를 먹는다 :‘다방’에 대하여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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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1   |  발행일 2019-08-01 제26면   |  수정 2020-09-08
다방보다 카페가 익숙한 요즘
언어학적 관점선 유사하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는 차이가 커
단어도 시대흐름에 따라 소멸
이제 ‘다방’은 늙어가고 있다
20190801

필자는 미국의 모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의 ‘TA’(Teaching Assistant)를 담당한 적이 있다. TA는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나 강사를 보조하여 수업을 돕거나 채점을 담당하는 일을 한다. 당시에 박사 과정의 학생으로 수학 중이던 필자에겐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일자리였다. 필자가 맡은 업무는 일주일에 두 시간 동안 학생들이 한국어를 읽고 말할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 것이었다. 한국어 수업에서는 한국 대학에서 출판한 교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수업에서 사용하던 교재가 출판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언어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한국어 연습 시간에는 교재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교재에 나오는 대화를 학생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익히도록 해야 했다. 교재의 대화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철수: 안녕하세요, 영희씨.

영희: 안녕하세요, 철수씨.

철수: 수업 끝나고 시간 있어요? 다방에 갈까요?

다방? 요즘 어떤 대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다방에 간단 말인가? 급히 ‘다방’이 현재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이고 ‘다방’ 대신에 ‘커피숍’이나 ‘카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 자연스럽다는 부연 설명을 곁들여야 했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다방’이나 ‘카페’와 같은 단어들은 유사한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즉 ‘사람들에게 커피나 차 등을 판매하는 장소’라는 측면에서 ‘다방’이나 ‘카페’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다방’과 ‘카페’를 통해 떠올리는 이미지와 배경지식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다방에서는 레지가 타 주는 계란을 띄운 쌍화차를 마시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는 아저씨가 자리 잡고 있어야 제격이고,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펼치고 과제를 하고 있는 대학생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어야 제격일 듯싶다. 무엇보다도 이제 대학가에는 다방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다방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단어들에 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언어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는 관습적(conventional) 존재라는 점을 알려준다.

우리나라에 상업적 다방이 등장한 시점을 대체로 1909년으로 잡는다. 당시에 다방은 일찍이 서양 문물을 접한 엘리트들이 운영하고 드나들던 모던한 공간이었다. 시인 이상이 제비다방을 운영하고 대구지역 최초라고 알려진 아루스다방을 화가 이인성이 운영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다방이 본격적으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든다. 세시봉으로 대표되는 음악다방에서 장발에 청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DJ에게 팝송을 신청하고, 조영남·송창식·윤형주·양희은 같은 가수들이 통기타 반주에 노래를 부르던 시절. 그 즈음에 다방은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커피 인문학’의 저자 박영순의 분석에 의하면, 1970년대 후반에 커피믹스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게 된 다방은 1980년대 후반에 수입이 가능해진 원두커피의 복권과 더불어 ‘커피숍’으로 간판을 갈아 달았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카페’의 브랜드들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도심부터 변두리까지 촘촘히 크고 작은 카페를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단어들 역시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탄생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겪는다. ‘다방’이란 단어는 시골 다방의 간판과 더불어 사라져 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다방’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은 사람들을 애상에 젖게 한다. 그래서 가수 최백호는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을 하며 낭만 혹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 한탄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도라지 위스키는 뭐지?김진웅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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