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실의 쏙쏙 클래식] 클라라 슈만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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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9   |  발행일 2019-11-29 제40면   |  수정 2020-09-08
천재 피아니스트의 남편 향한 고귀한 사랑과 값진 우정
[권은실의 쏙쏙 클래식] 클라라 슈만
슈만 부부

올해는 클라라 슈만의 탄생 200주년이다. ‘클라라 슈만’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남편인 로베르트 슈만과 브람스가 제일 앞에 뜬다. 클라라 슈만은 낭만주의 대표적 작곡가이자 평론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로 일반인에게는 더 알려져 있다. 그러나 클라라는 슈만의 아내이기 이전에 피아니스트로, 작곡가로 활발한 활동을 한 음악가이다. 여성음악가가 드문 서양음악사에서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서양음악사에서 클라라와 슈만의 러브스토리도 유명하며, 슈만 부부와 브람스와의 인연과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고결한 사랑과 우정에 얽힌 이야기도 유명하다.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 피크

클라라 조제핀 비크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1819~1896)은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당대에 유명한 피아노 교수였던 아버지에게 음악적 영향을 받았는데, 5세에 음악 교육을 시작으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10세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게 된다. 그 이듬해 1830년부터는 유럽 각지로 아버지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녔고, 가는 곳마다 성공적인 연주로 이름을 떨쳤다. 연주여행 당시 당대의 최고의 바이올리스트이며 작곡가인 니콜로 파가니니와 파리에서 협연을 하기도 했다. 또한 작곡에서도 능력을 보였는데, 그녀가 17세 때인 1836년에 그녀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이 당시 최고의 음악가였던 펠릭스 멘델스존의 지휘와 그녀의 피아노연주로 초연되었다. 그 외에도 그녀가 남긴 작품으로는 실내악곡, 가곡, 피아노독주곡들이 있다.

◆로베르트 슈만을 만나다

7세에 피아노를 배우면서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은 문학가이자 출판업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문학에도 심취하였다. 음악과 문학 사이에서 진로를 갈등하였지만 어머니의 뜻을 따라 라이프치히대학 법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해 20세에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서 클라라와의 인연도 시작된다. 비크 교수는 슈만이 큰 재능이 없다고 여겨 당시 9세였던 딸 클라라에게 9살 연상인 슈만을 가르치게 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한 그의 지나친 열정은 모래주머니를 달고 피아노를 연습하는 기괴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손가락 부상을 입어 다시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게 되었다.

클라라가 14세가 되면서 슈만과 클라라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클라라는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1840년 21세의 나이에 슈만과 결혼을 하게 되고, 8명의 자녀를 낳는다. 슈만이 작곡가로, 평론가로 이름을 알리는 데 클라라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 클라라는 그 당시에 이미 천재 피아니스트로 이름이 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명성을 활용해 유럽 각지에서 남편의 작품을 연주했고, 덕분에 슈만은 인정받는 작곡가가 될 수 있었다. 남편이 작곡할 때 예민해지면 그를 위해 피아노연습을 포기하기도 했고 남편의 연주회를 기획·감독했으며, 그의 편곡을 도왔다. 말년에 슈만이 정신병으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을 때는 가정을 위해 경제적 활동과 자녀의 양육을 도맡아서 했다.

슈만이 죽기 직전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주고받은 두 사람의 편지는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하며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슈만이 사망한 이후에 그녀는 작곡활동을 그만두고 연주활동에만 몰두하였다고 한다. 슈만에게 받은 작곡영향이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슈만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깊은 존경과 희생이었다.

[권은실의 쏙쏙 클래식]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를 만나다

슈만 부부와 젊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와의 인연과 우정은 특별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더 이상 음악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브람스가 술집, 연주회장을 전전하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연주하던 시절에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스트 요제프 요하힘을 만나게 된다. 그의 소개로 1853년에 슈만 부부를 만나게 되고,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슈만은 그의 마지막 평론이 된 ‘새로운 길’을 통해 브람스를 전 유럽에 알렸다. 그 이듬해 슈만은 정신발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때부터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과 그의 자녀들을 보살피며 평생을 그 가족을 위해 독신으로 살았다. 그들의 관계에서는 뒷이야기가 있는데, 브람스가 슈만 부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클라라에게 반하여 혼자 흠모하였고, 슈만이 사망한 이후에는 그녀에게 청혼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클라라는 그의 청혼을 단번에 거절했고,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그는 클라라와 우정을 유지하며, 그녀의 곁에서 음악적 동지로, 보호자로 함께 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와 브람스의 음악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겠다.

보통 한 음악가의 탄생 200주년 정도 되면 전 세계에서 그의 기념음악회가 1년 내내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서양음악사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 천재 여성음악가 클라라 슈만의 탄생 200주년인 올해, 그녀의 기념음악회는 그리 많지 않다. 아직 해가 지나기 전에 그녀의 음악과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으로 이루어진 연주회가 있는지 살펴보고 찾아가보자.

작곡가·대구음협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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