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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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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마약 청정국은 옛말
넷플릭스의 웹드라마 '수리남'이 큰 인기를 끌었다. 남미 수리남에서 대규모 마약 밀매 조직을 이끌다 2009년 체포된 한국인 마약왕 조봉행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K-드라마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보다 한국 마약의 유통 및 중독 실태의 심각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최근 작곡가 겸 가수 돈 스파이크가 필로폰 투약 혐의로 체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마약을 쉽게 사고파는 행태가 적발되는 사례도 꾸준히 보도되고 있다. 특히 10대와 20대의 마약 사범 증가율이 가파른 것으로 나타나 비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최영희 의원실이 법무부를 통해 확보한 '마약사범 연령별 현황'에 따르면 10대 마약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지난해 450명, 20대의 경우 2천112명에서 5천77명으로 증가했다.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에비뉴 거리는 '좀비 랜드'로 불린다. 뇌가 손상된 펜타닐 중독자들이 길거리에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좀비를 연상케 한다. 마약 예방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좀비 랜드가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한국은 이미 2015년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10만명당 마약류 사범 수가 23.3명으로 유엔이 정한 20명 미만을 넘어섰다. 지난해 한국의 마약류 사범 수는 10만명당 31.2명으로 늘어났다. 마약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하다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대구경북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검찰과 경찰이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플렉스와 짠테크
요즘 플렉스(Flex)라는 말을 듣기 어렵다. 플렉스는 1990년 힙합 문화에서 재력이나 명품을 과시하는 모습에서 유래됐다. 플렉스는 욜로(YOLO)라는 단어와 함께 대유행이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MZ세대를 중심으로 번진 플렉스와 욜로 문화는 내 집 마련이나 노후 준비보다 당장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디어나 SNS를 통해 꾸준히 거론됐던 플렉스와 욜로라는 단어가 쑥 들어갔다. 실제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소비 행태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플렉스, 욜로 언급량은 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렉스와 욜로 대신 '짠테크'가 급부상하고 있다. 짠테크는 인색하다는 의미인 '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이다. 푼돈을 절약하고 모아 저축하는 투자 형태이다. 플렉스와 욜로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짠테크를 통해 미래에 대비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짠테크 방법은 다양하다. 몇천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거나, 앱테크로 커피값을 마련하기도 한다. 젊은 층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돈을 버는 앱테크에 적극적이다. 짠테크를 넘어 하루 동안 지출을 아예 하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로 돈을 모으는 젊은 층도 많다. 코인과 주식 폭락, 물가 급등으로 젊은이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의 피플] 우먼 파워냐 이슈 메이커냐…변화와 논란의 중심 유럽 여성지도자
유럽의 여성 정치 지도자들이 화제다. 영국에선 역사상 3번째 여성 총리가 탄생했고, 이탈리아에선 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의 등극이 유력한 상황이다. 핀란드 여성 총리는 '광란의 파티'를 벌여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보수당 소속의 40대 여성 총리 리즈 트러스(Marry Elizabeth Truss·47)와 이탈리아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l)의 대표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45), 핀란드의 30대 여성 총리 산나 미렐라 마린(Sanna Mirella Marin·36)이 주인공이다. 리즈 트러스 총리와 조르자 멜로니 대표의 리더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맞물려 초미의 관심사다. 산나 마린 총리는 심야 파티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논쟁의 대상이 됐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경제부흥 꿈꾸는 '제2 철의 여인'진보→보수 전향 '기회주의자' 꼬리표"대처가 롤 모델"…보수 우파 정책 예고정부 4대 요직 백인남성 제외 파격 개각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서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 시대의 첫 총리이다. '기회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트러스 총리의 아버지는 강성 좌파 수학교수였고, 어머니는 반핵 활동 경력이 있는 간호사였다.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 진보민주당 회장으로 마리화나 합법화와 왕실 폐지론을 주장했다. 대학 졸업 후 진보진영인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에 가입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과거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를 주장하다,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확정되자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트러스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마거릿 대처(1925~2013) 영국 총리와 비교된다. 대처처럼 자유주의 보수 우파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러스 총리도 "마거릿 대처는 나의 롤 모델"이라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외교가 예상된다. 영국의 경제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지는 트러스 총리에 대해 '대처 매운맛'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를 빗댄 표현이다. 우크라이나 의용군 참여를 독려해 논란도 일으켰다. 외무장관 시절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가기로 한 영국인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영국인들이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히는 일이 벌어졌다. '불륜의 아이콘'으로도 불린다. 휴 오리어리와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는 트러스 총리는 원외에 있던 2004년 마크 필드 국회의원과 불륜을 저질렀다. 필드는 이혼했고, 트러스 총리는 지금껏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오리어리와 두 딸은 현재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 살고 있다. 총리 후보 시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대해 "영국의 친구인지 적인지 모르겠다"고 말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트러스 총리는 내각을 파격적으로 꾸렸다. 부총리와, 재무장관, 외무장관, 내무장관 등 4대 요직에 흑인과 여성을 앉혔다. 4대 요직에 백인 남성이 없기는 영국 역사상 처음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 대표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 총리 유력집권땐 무솔리니 이후 첫 극우 지도자지출확대·감세 공약…재정파탄 우려도우크라 여성 성폭행 영상 올렸다가 뭇매이탈리아는 오는 25일(현지시각)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 최근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우파 연합이 중도 좌파 연합을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극우당인 이탈리아형제들이 25.1%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형제들을 비롯해 마테오 살바니 전 부총리가 대표인 동맹(Lega),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설립한 F1이 우파 연합의 중심이다. 우파 연합의 지지율은 46.6%로 중도 좌파 연합(27.2%)을 압도했다. 우파 연합의 집권이 확실시되면서 이탈리아형제들을 이끄는 조르자 멜로니가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멜로니 대표가 집권한다면 무솔리니 이후 최초의 극우 지도자가 된다. 이탈리아형제들은 파시즘을 주도한 무솔리니 추종자들이 1946년 설립한 정당이다. 멜로니 대표는 "파시즘은 지나간 역사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탈리아형제들은 반이민, 반유럽연합, 강한 이탈리아를 내세우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우파 연합이 승리하면 총선에서 승리하면 이탈리아 외교 정책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 멜로니 대표는 아프리카 기니에서 망명 신청한 23세 남성이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의 길가에서 55세 우크라이나 여성을 성폭행하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멜로니 대표가 올린 동영상은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지만, 피해 여성의 울음소리는 편집되지 않았다. 해당 동영상은 삭제 조치됐다. 우파 연합이 집권하고 멜로니 대표가 총리에 오른다면 이탈리아 국가 재정이 파탄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파 연합은 만성적인 부채와 재정 적자에도 아랑곳없이 공공지출 확대와 대폭적인 감세를 공약했다. 이탈리아의 국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0%대에 이를 정도로 높다. 멜로니 대표는 "난 국가 재정을 파탄낼 정도로 무책임하고 부주의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광란의 심야 파티 스캔들로 홍역영상 유출돼 치열한 찬반 논쟁 휩싸여젊은층 "정치 변화" 환호 속 인기 여전중립원칙 깨고 우크라 무기 지원하기도2019년 총리 취임 당시 34세로 역대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자유분방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딸을 수유하는 모습이나 부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2020년 핀란드 패션잡지 트렌디(Trendi)에 가슴골을 노출해 눈길을 끌었다. 파티를 즐겨 '파티 산나'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근 심야 파티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공개돼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마약 검사까지 받았다. 검사 결과는 음성. 핀란드에서 비판과 환호가 엇갈린다. 노인 세대는 핀란드 이미지를 해친다며 인상을 찌푸렸고, 젊은 세대는 핀란드 정치의 변화가 좋다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여성 지도자들은 마린 총리를 옹호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소셜미디어에 2012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 휴식 기간 웃는 얼굴로 춤을 추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마린 총리를 응원했다.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여성 총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마린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하트 문양을 첨부했다. 마린 총리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의미이다. 마린 총리는 '파티 스캔들'과 관련, "나도 인간이고 때로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즐기고 싶다. 하루도 쉰 적이 없고 직무를 단 한 번도 미룬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선 총리의 사생활이 문제가 아니라 파티 영상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판단력 부족이 잘못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마린 총리는 파티 스캔들 논란에도 인기가 높은 편이다. 정치적으로도 과감한 결단으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마린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군사적 중립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보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도 공식화했다.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자유성] 죽비
죽비는 불교의 법구다. 주로 선방에서 참선 시 사용한다. 참선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신호를 보내는 용도이자, 방장이 참선 중 조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경책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보통 어깨를 살짝 치는데 다혈질인 방장일 경우 꽤 아프게 때리는 경우도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유명한 법어를 남긴 성철 스님은 조는 스님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고 전해진다.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의 죽비는 일상이나 정치권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재보궐선거 참패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해 정말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죽비를 맞고도 정신을 차리지 않은 셈이다. 국민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더불어민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정치권에서 죽비가 또 등장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4일 대구 김광석거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구는 다시 한번 죽비를 들어야 한다. 어렵게 되찾아온 정권 그리고 처음으로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을 두고 적극 참여한 대선의 결과, 결코 무너지게 내버려 두면 안된다. 복지부동하는 대구의 정치인들에게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더 약해지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1996년 대구에 휘몰아친 '자민련 바람'을 언급하며 대구 정치권의 변화와 각성을 요구했다. 이 전 대표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은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존재감 없는 대구 정치권에 죽비가 날아들 것인지 주목된다. 조진범 논설위원
[월요칼럼] 시급한 비정상의 정상화
대한민국 정치가 난장판이다. 좌를 돌아봐도, 우를 바라봐도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집권 석 달 만에 이례적으로 비상대책위를 꾸린 국민의힘은 정말 '비상 상황'을 맞게 됐다. 법원이 비상대책위 체제를 무효화하자는 이준석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법원은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주호영 비대위 체제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준석의 승리'다. 그런데 정말 이 전 대표는 이겼을까. 이 전 대표가 신청한 비대위 효력정치 가처분이 인용된 지난 26일 대구의 국민의힘 한 당원은 "대표 한 사람의 분탕질로 당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고 분개했다. 법적으로 이 전 대표가 이겼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물음표가 따른다. 자신이 내뱉은 말처럼 국민의힘이 '망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망하면 이 전 대표는 설 자리가 있는가. '정치의 사법화' 논란도 새삼 불거지고 있다.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할 사안들을 사법부가 결정하는 현상이 정치의 사법화다. 사법부가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로 등장하면 민주주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국민의힘 내홍의 1차적 책임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에게 있다. 일각에서 윤핵관의 정치적 무능이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이라고 지적하지만, 무능이 아니라 탐욕이다. 권력 독점을 향한 탐욕. 국민의힘 내홍을 비루한 권력 다툼의 시각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 비호감'이 된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윤핵관은 국민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대위 출범으로 이 전 대표가 자동 해임된 마당에도 내홍의 또 다른 축인 윤핵관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세등등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재신임을 받아 당연직 비대위원에 들어갔다. 2선 후퇴 요구에 콧방귀를 뀐 셈이다. 사과라든지, 유감이라든지 어떤 입장 표명도 없었다. 성찰 없이 그냥 이 전 대표를 무시했다. 결국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권력 다툼이 파국에 가까운 결말을 불렀다. 윤핵관은 국민의힘 당원들로부터도 눈총을 받고 있다. 대구의 또 다른 당원은 "대통령실 인사의 90%를 윤핵관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한다"고 했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 지지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현 집권 세력에게 나라를 맡겨도 괜찮은가에 대한 회의가 국민에게 퍼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인 대구경북에서도 "요즘 대통령도 보기 싫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윤핵관이 2선으로 물러나야 돌파구가 마련된다. 윤핵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명백한 걸림돌이다.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지난 5년간 상식을 벗어난 국정 운영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았지만 달라진 게 없다. '이재명 사당화', 강경파 '처럼회'의 폭주, 협치 외면을 당연하다는 듯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찬성한 여야중진협의회를 '밀실야합으로 흐를 수 있다'며 반대했다. 또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 인물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추천에 적극 나서지 않고 '김건희 특별법'을 외치고 있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특별감찰관 없이 김건희 여사가 계속 사고를 치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권이나 야권 모두 비정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성찰이 없으니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없다. 정치의 패배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막고 있는 꼴이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조진범 논설위원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Tequila Effect (테킬라 효과)
테킬라는 멕시코의 국민 술이다. 선인장 종류인 용설란을 증류해 만든 술로 도수가 40도에 이르는 독한 술이다. 테킬라에서 파생된 경제 용어가 '테킬라 효과'이다. 독한 술에 이웃 나라들이 모두 취한 것처럼 경제 위기가 파급되는 현상을 말한다. 1994년 12월 외환 유동성 악화로 발생한 멕시코 위기가 주변 국가인 중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영향을 준 데서 비롯됐다. 우리나라도 테킬라 효과를 경험했다. 1997년 태국의 밧화 폭락에 따른 외환 위기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통화 가치 폭락으로 이어졌고, 우리나라도 직격탄을 맞았다.25년 전의 테킬라 효과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와 관련, "금융 위기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의식한 발언이다. 테킬라 효과는 강(强)달러에서 출발한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신흥개발국의 통화 가치는 폭락하게 된다. 더욱이 미국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동남아시아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미 디폴트(국가 부도) 상태에 빠졌고, 라오스와 파키스탄도 디폴트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5일 기준금리를 2.50%로 0.25% 올린 것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 등의 위험을 최대한 줄이려는 조치이다. 테킬라 효과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모든 정책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의 피플] 김요한 대구시 전 청년정책과장 "정부가 지방 이주 청년 의무적으로 지원할 필요"
비수도권에서 청년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비수도권 지자체마다 청년 정책을 펴고 있으나, 한계가 뚜렷하다.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의 발걸음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방 소멸이라는 소리가 심상찮게 들린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청년 유출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 5년 동안 대구시 청년 정책을 담당한 김요한 전 청년정책 과장을 만나 방향을 물어봤다. 김 전 과장은 '청년 문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청년 문제가 아니라 '청년이 겪는 사회 문제'라고 풀어써야 한다. 청년 문제라고 하면 취업 못하고 집 못 구하고 결혼 못하는 게 마치 청년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5년의 임기를 마치고 자유인이 된 김 전 과장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의 내일을 여는 해방일지'를 펴냈다. 그는 "쓰고 싶어서 쓴 책이라기 보다 사실 의무감으로 썼다. 청년 정책이 포괄적이다 보니 숲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 현장의 경험을 토대로 다음 세대와 다음사회, 청년의 내일과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라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대구시 중구에 위치한 대구청년센터에서 이뤄졌다.▶ 청년 정책에서 신경 써야 할 점이 있다면."사실 청년이 겪는 사회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 주거, 부채, 사회적 고립 등의 문제는 모든 계층이 겪고 있다. 다만 청년은 사회적으로 자립 이전 단계이기 때문에 다른 계층보다 훨씬 무게에 짓눌려 있다. 또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관점이라 청년들이 굉장히 민감하고 첨예하게 받아들인다. 청년 정책은 공동체나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에서 투자의 관점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다음 세대의 관점에서 다음 사회의 미래가치를 세울 수 있다. 특히 지방의 경우 청년의 삶과 꿈이 바로 지역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대구시 청년 정책 실무 책임자로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청년 정책은 기능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다. 어느 한 기능에 편중해서 보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도 인터넷에서 정보를 많이 구하지만, 실제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회적 관계망에 의한 선배들의 조언이다. 청년정책 과장을 개방형 직위로 하는 지자체는 대구와 서울 밖에 없었다. '청년보장제'라는 지향가치를 강조한 곳도 대구와 서울이었다. 청년들이 취업이나 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걸림돌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자기 일과 삶에 관련하여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높여주는 게 청년보장제의 가치이다. 청년들의 자율성을 높여주는 정책이라, 청년들이 직접 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다. 청년의 목소리부터 시작을 하기 때문에 정책의 수요자가 정책을 함께 만드는 진화된 정책 모델이다." ▶ 청년 정책을 시행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서울과 비수도권 지역의 청년 정책은 다르다. 다른 지자체에서 초기에는 서울의 청년 정책을 벤치마킹했는데, 나중에는 대구와 광주를 많이 모델로 삼았다. 서울의 청년 정책은 주거빈곤 문제에서 시작했는데, 비수도권과는 처한 상황이 많이 다르다. 지방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해 일자리 기회, 교육 기회, 문화 예술 향유 기회의 격차가 굉장히 심하다. 비수도권은 청년 유출을 걱정하는데, 점점 커져가는 기회의 격차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결국 수도권에서 생활하다 다시 지방으로 돌아오는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대구시 청년 정책 과장으로서 마지막 1년 동안 중앙 정부에 지방으로 다시 돌아오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건의를 했는데, 제대로 추진이 안됐다."▶ 비수도권의 청년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인가."청년들이 서울로 가는 것을 무작정 말려서는 안된다. 더 좋은 기회를 가지려고 이동하는 것은 청년의 자유이고 당연한 일이다. 서울에서 3~5년 정도 생활한 청년들의 60% 이상이 다시 지방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정부는 지방으로 이주하는 청년들을 의무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에 있는 기업이나 대학이 지방으로 이주하면 재정적·행정적으로 지원하는데, 청년이 지방으로 이주하는데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 게 말이 되나. 지방의 청년들이 수도권에 진출해 국가 발전에 기여한 만큼, 지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청년들을 지원해야 한다. 수도권과 국가 발전을 위해 청년들을 키운 것은 지방이다. 그 청년들이 다시 자기가 자랐던 곳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꿈을 펼쳐보겠다고 하면 나라에서 지원해야 하는 게 맞다. 지방 소멸, 저출산 문제가 다 청년의 삶과 연결돼 있다." ▶ 청년들과 소통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현금성 지원이나 일자리, 창업의 기회를 주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청년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길을 찾도록 도와줘야 된다. 지금까지 많은 정책이 이 단계를 생략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는데 스펙쌓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남들이 좋다는 회사에 입사를 하고도 1년도 채 안되어 그만두는 청년들이 많다. 대구시에서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이다. 청년센터에서는 '청년학교 딴 길'을 통해 스스로를 탐색할 수 있는 틈, 여유와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청년들 가운데 졸업을 하고도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청년들이 훨씬 많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의 고민을 방황으로 치부한다. 청년들이 스스로 자기를 알게 되면 노력하게 된다. 딴 짓도 해보고 딴 길도 걸어가면서 자기를 찾는 게 중요하다." ▶ 민선 8기의 청년 정책에 바라는 게 있다면."지난 5년 동안 청년 자강, 청년 희망 공동체를 목표로 정책을 펼쳤다. 민선 8기의 과제는 미래인재 도시이다. 인재가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도 만든다는 인재관점의 지역발전정책이다. 수도권에 진출해 경험을 쌓은 인재도 다시 지역으로 돌아와 도시를 키울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구가 청년들의 꿈을 실현하는 데 과감하게 투자하는 도시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논설위원>■김요한(48) 대구시 전 청년정책과장은 'IMF 외환위기' 세대이다. 경북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 전 과장은 1998년 대기업에 입사할 예정이었지만,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합격이 취소됐다. 대구섬유협동조합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 출범한 대구전략산업기획단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이후 (재)대구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까지 13년 동안 대구지역 중소기업과 미래 산업을 육성하는 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대구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으로 있던 2015년 민간주도 협의체인 대구시 '포럼 창조도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7년 개방형 직위인 대구시 청년정책과장에 임용돼 5년 동안 청년들과 호흡했다. 김 전 과장은 "대구테크노파크 근무 당시 청년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청년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포럼 창조도시를 통해 청년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주목하게 됐다"라고 했다. 대구시 청년정책과장으로 옮기면서 대구테크노파크에 사표를 냈었다. 김 전 과장은 지난 5월, 대구시 임기를 마무리하고 '청년의 내일을 여는 해방일지'를 최근 출간했다. '지역은 청년을 세우고 청년은 지역을 바꾼다'라는 부제처럼 청년의 삶과 지역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정책적인 실험과 도전의 기록이다.김요한 대구시 전 청년정책 과장이 '청년이 겪는 사회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親安反龜(친안반구)
대구시와 구미시의 '물 분쟁'이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홍준표 대구시장이 더 이상 구미시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끈다. 대구시민은 물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라면서도 내심 홍 시장의 대응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대구는 구미 해평취수장을 이용하기 위해 '구미시 달래기'에 급급했다. 지난해 대구시가 구미 해평취수장을 공동 이용하는 '맑은 물 나눔과 상생 발전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서 구미시에 일시금 100억원 지원 등의 인센티브 제공도 발표했다. 지방선거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새 구미시장에 당선된 김장호 시장이 대구시의 해평취수장 이용에 딴지를 걸었기 때문이다. 해평취수장 이용과 함께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통해 안동댐 물을 공급하겠다는 홍 시장의 구상에도 차질이 생겼다. 김 시장은 "취수원 문제는 대구시의 문제이지, 구미시의 현안은 아니다"며 해평취수장의 대구 공동 이용에 난색을 표시했다. 홍 시장은 김 시장을 향해 "괘씸하다"고 불쾌감을 표시하며, 안동시와의 물 동맹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미시에 제공키로 했던 각종 인센티브를 안동에 돌리겠다고 했고, 첨단산업단지를 안동에도 만들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구미에 대해선 달래기보다 압박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구미, 안동이라는 투트랙 대신 '친안반구'(친안동 반구미)의 전략으로 선회한 셈이다. 홍 시장의 승부수는 일단 효과가 있는 듯하다. 김 시장이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을 반대한 사실이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홍 시장의 친안반구 전략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새삼 주목된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바나나볼
최근 미국에서 '바나나볼'이 인기라고 한다. 미국 조지아주의 사바나를 연고로 하는 대학독립리그 소속팀 '사바나 바나나스'가 시작했다. 야구 같지 않은 야구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나나볼의 경기 시간은 2시간이다. 1시간50분이 지나면 새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 타자가 타석에서 벗어나면 스트라이크 한 개를 받는다. 번트를 시도하면 퇴장이다. 파울 볼을 관중이 노바운드로 잡으면 타자는 아웃이다. 선수와 팬이 경기장에서 함께 뛰는 셈이다. 바나나볼은 팬들이 싫어하는 야구의 지루한 부분을 모두 삭제하자는 발상의 전환으로 만들어졌다.올해 2월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치러진 PGA투어 WM피닉스 오픈도 발상의 전환으로 성공한 대회다. 골프가 정숙해야 한다는 통념을 깼다. 특히 야구장처럼 스타디움을 만든 16번홀(파3)은 '골프 해방구'로 불린다. 맥주를 투척하거나 가운데 손가락 욕을 날려도 쫓겨나지 않는다. 피닉스오픈은 일주일 관중이 70만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골프 해방구'는 우리나라에도 도입됐다. 지난 6월 끝난 KLPGA 롯데 오픈에서 '롯데 플레저홀'이 운영됐다.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의 7번홀에서 갤러리들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맥주를 마시고 선수들의 플레이에 함성을 질렀다. 올해 현재 한국프로야구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10분에 달한다. 연장을 포함하면 3시간14분이다. 빠르게 승부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로선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한국프로야구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팬들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의 피플]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유럽 우크라전쟁發 퍼펙트스톰 직면해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식량 위기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주화파와 주전파의 갈등 본격화1년 이상 계속될 가능성과 8개월 이내에 휴전하고 평화협정 맺는 시나리오 공존 에너지 위기 독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평화 원하는 국민이 50% 달해 유럽이 난리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신음하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지난 21일 기준금리를 11년만에 0%에서 0.5%로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에너지 목줄을 조이면서 다가올 겨울에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의 인내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유럽 내에서 주화파와 주전파의 목소리도 동시에 터져나오고 있다. 에너지 가격 인상과 인플레이션을 자유를 지키기 위한 비용으로 여기며 감내했던 분위기가 균열을 보이는 상황이다. 유럽의 '단일 대오'가 흐트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도대체 유럽은 어디로 갈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지난 22일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안병억 교수를 만나 유럽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 교수는 '유럽 전문가'이다. 최근 유튜브 유명 채널인 '삼프로TV 경제의 신과 함께'라는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아 화제를 모았다. ▶유럽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G2(미국, 중국)의 시대지만, 가끔 G3라고 이야기하는데 G3에 유럽이 들어간다. 27개 회원국이 모인 유럽연합(EU)을 흔히 유럽이라고 한다. 유럽은 규범적 권력이다. 군사 강국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인 데다 국제 정치, 경제에서 규범을 만들고 확산한다는 의미에서 규범 뒤에 파워(power)를 붙였다. 그린 딜이 대표적이다. 유럽은 2050년까지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대륙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유럽이 선도하면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비슷한 목표를 제시했고,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이 군사강국이 아니라고 했는데, 원래 제국주의 원조 아니었나."세계 1, 2차 전쟁을 거치면서 국제 무대에서 변방으로 전락했다. 유럽에선 세계 1, 2차 전쟁을 '내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유럽은 통합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찾고 위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럽 통합의 목표는 평화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재무장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군사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나."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유럽연합이 군사 지원을 처음 했다. 군사 지원은 금기였는데 회원국의 정치적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럽 통합을 얘기할 때 경제도 있지만, 외교 안보도 포함된다. 유럽연합은 사실 위기 대응을 위해 회원국에게 외교 안보 지원을 꾸준하게 해왔다. 다만 위기 대응은 어디까지나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지, 미국이나 중국 같은 군사 강국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에 의존적인 외교 안보를 독립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EU 주권이나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목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유럽이 퍼펙트스톰(동시다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도 통합이 유지될 것인가."유럽이 퍼펙트스톰 앞에 놓인 것은 맞다. 에너지, 식량 위기에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주화파와 주전파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러시아가 겨울에 가스를 끊을 가능성이 높은데, 유럽을 분열시키기 위해서이다. 주화파는 빨리 휴전하자는 입장이고, 주전파는 푸틴에게 확실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의 정치 위기도 문제다.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다르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EU에서 차지하는 경제 규모가 54%에 달한다. 이탈리아는 EU 3위의 경제 대국인데,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경제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의 사임으로 9월 조기 총선을 치른다.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한 드라기 총리와 달리 극우 정당은 친러 성향이다. 유럽 단결의 악재인 셈이다. 유럽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종결된다 하더라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지, 에너지 지정학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가 화두다. 외교는 가치와 이익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 것 같은가."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1년 이상 계속될 가능성과 8개월 이내에 휴전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시나리오가 공존한다. 미국과 유럽이 무기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결사 항전하면서 러시아로 하여금 협상에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인데, 지금 보면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높다. 푸틴이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이 되면 유럽은 어떻게 되나. "러시아가 겨울에 가스를 끊을 수 있다. 푸틴이 가스를 무기화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쓸 수 있다. 러시아가 가스를 차단할 경우 독일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 2010년 유로존 위기 때보다 더 안 좋아진다는 의미다. 유럽 경제의 침체는 세계를 위기로 내몰 것이다. EU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중국과 미국이다. 우리나라 교역의 4분의 1이 중국이다. 유럽 경기침체는 중국의 유럽 수출을 줄이고,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도 줄일 것이다. 미국과의 수출도 마찬가지다. 2009년 미국발 경제 위기 못지 않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독일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평화를 원하는 국민이 50%에 달한다. 그만큼 견디기 힘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러시아가 실제 가스를 끊으면 1월쯤 독일의 가스는 동이 난다. 독일의 비상계획을 보면 공장에서 먼저 가스를 줄이게 돼 있다. 가스 공급이 안되면 결국 가정에도 가스를 줄일 수밖에 없다. 독일은 벌써부터 난방 온도를 17도로 낮췄다. 샤워 시간도 하루에 3번으로 정했다. 독일 가정의 가스가 확 줄어든다면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까. 유럽을 분열시키는 게 푸틴의 노림수이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위기에도 유럽은 그린 딜을 강력하게 추진할까."과감하게 추진할 수 밖에 없다. 그린 딜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규범적 권력이라 더 강하게 밀고 나가는 측면도 있다. 독일에는 경제기후부가 있다. 경제부하고 기후부가 별도로 있다가 합쳐서 만든 슈퍼부이다. 경제 정책이 기후 위기에 어긋나면 거부권을 행사한다. 그만큼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의지가 강력하다." ▶유럽과 중국의 관계도 흥미롭다.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중국이 일대일로를 하면서 옛 소련에 있던 17개 나라와 함께 '17 플러스 1'이라는 경제 포럼을 만들었는데, 지난해 말 균열이 생겼다. 타이완하고 관계 개선에 나선 리투아니아에 대해 중국이 보복하면서 유럽연합 회원국을 갈라치기 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EU의 중국 대응은 파트너, 경쟁자, 체제적 라이벌로 표현한다. 기후 위기 대응에선 파트너, 경제는 경쟁 관계이다. 중국이 권위주의적 체제이기 때문에 체제적으로 라이벌이다. EU는 중국에 맞서 미국과 함께 공동 전선을 펴고 있다. EU·미국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출범시켜 기후나 청정기술에 대한 국제 규범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원만하다고 봐야 하나."유럽 입장에서 아시아 나라 가운데 우선순위를 따지면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인도 다음 정도이다. 우리나라와 EU는 아주 원만하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체제가 같고, 경제적으로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었다. 위기 관리 참여 협정도 체결했다. 해적 소탕 등에 함께 한다는 게 위기 관리 협정이다. 유럽에 대해 중요한 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유럽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안병억(57) 대구대 교수는 충남 당진 출신으로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연합뉴스와 YTN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30대 중반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유럽통합을 전공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과 독일의 유럽통합 정책에 대한 비교가 박사학위 논문 주제였다. 5년 10개월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아시아경제와 파이낸셜뉴스에서 잠깐 기자로 활동했고, 전문계약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대구대 사회과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안 교수는 다양한 경험과 관련, "저는 원없이 살았는데 아내가 많이 고생했다"고 웃었다. 지난 2016년 12월부터 대구대 교수연구동 사무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제자들과 함께 주간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과 관련된 글로벌 이슈를 소재로 지금까지 268개의 오디오물을 만들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가 영국 국민의 찬반 투표로 결정된 해가 2016년이다. 브렉시트는 2020년 1월 31일 단행됐다. '한눈에 보는 유럽연합' '미국와 유럽연합의 관계' 등 전공서적을 10여권 냈다. 교양서로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를 출간했다. 최근에는 '홈즈의 비밀을 푸는 12가지 키워드'라는 부제가 붙은 '셜록 홈즈 다시 읽기'를 펴냈다. 안 교수는 "셜록 홈즈를 통해 본 영국의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썼다"고 밝혔다. 실제 책에는 셜록 홈즈가 탄생한 배경이나 제국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대구대 국제관계학과 안병억 교수가 인터뷰에 응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월요칼럼] 이준석과 최재훈
'성 접대 의혹'은 논외로 하자.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얘기다. '당원권 6개월 중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아 정치 생명이 위태로운 처지다. 정말 그런가. 이 대표의 행보를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시위라도 하듯 전국을 돌며 당원들을 만나고 있다. 활발한 장외 정치가 연일 화제다. 차기 국민의힘 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지난 20일 발표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25.2%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2위 안철수 의원(18.3%)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도 29.1%로 압도적인 선두였다. 20대(33.1%)는 물론 60대 이상에서도 26%로 가장 높다. 중징계가 무색한 여론이다.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준다.도대체 '이준석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 대표가 정치권의 중심에 선 것은 2021년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다. 이 대표는 돌풍을 일으키며 당 대표로 선출됐다. 대한민국 정당사 초유의 30대 대표가 탄생했다. 세대교체, 정권교체의 열망, 정치권의 혁신이 이 대표의 돌풍 배경이었다. 정권교체는 이뤄졌다. 나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결국 '이준석 현상'은 새로운 미래,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표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지금 정치권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레임 씌우기' 같은 낡은 문법으로 싸우며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정권교체'는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정권교체를 통해 대한민국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가 핵심이다. '이준석 현상'은 대구에도 있다. 전국 최연소 기초단체장이 배출됐다. 최재훈 달성군수이다. 만 40세에 군수 타이틀을 달았다. 달성군민들이 새로운 미래를 위해 젊은 군수를 선택한 셈이다. 국민의힘 텃밭이라 공천을 받아 쉽게 당선된 게 아니냐고 가볍게 판단할 수 없다. 최 군수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쟁쟁한 경쟁자를 따돌리고 국민의힘 경선을 통과했다. 인구 26만여 명의 달성군은 도농 복합도시이다. 군(郡)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농촌을 떠올리기 쉽지만, 신도시 개발과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는 젊은 도시이다. 전국적으로 군 지역 인구 1위이다. 최 군수는 달성군민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최 군수도 군수라는 자리의 무거움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최 군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당선된 이후 기쁨은 잠시였다. 책임감으로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젊은' 군수를 흔드는 손이 많을 수 있다. 너무 젊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작은 실수에도 나이를 들먹일 가능성이 높다. 최 군수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대목이다. 이준석 대표처럼 '싸움닭'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 게 다행히 장점이다. 관료 집단과의 관계 설정도 최 군수가 염두에 둬야 할 대목이다. 관료에 포섭되면 "군민들의 기대와 변화에 대한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약속은 헛말이 된다. 공직 개혁은 시대적 과제이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공직 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 군수는 군청사 8층에 있는 군수 집무실을 3층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민원인과 직원들이 쉽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공간의 이전은 의식과 소통의 변화이다. '최재훈호'가 대구의 미래와 변화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한다.조진범 논설위원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건희사랑
'건희사랑'이 화제다. 건희사랑 회장 강신업 변호사 때문이다. 건희사랑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이다. 강 변호사는 좌충우돌식 화법으로 정치권을 들쑤시고 있다. '대통령실을 구성하는데 김건희 여사 입김이 제일 셌다'고 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정치 양아치"라고 쏘아붙였다. 국민의힘도 사정권에 포함됐다. 이준석 대표 제명을 주장하면서, 이 대표에게 '성상납 접대'를 했다고 주장한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를 옥중면회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에게도 시비를 걸었다. "팬카페 회장이란 사람이 설치면서 여당 인사들 군기를 잡는 등 호가호위 한다"는 홍 시장의 지적에 "홍준표가 세게 붙길 원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해 주겠다. 설치는 건 강신업이 아니라 홍준표"라고 받아쳤다. 참 어이없다. 강 변호사의 '거친 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 변호사는 '건희사랑' 해체 요구에 "개들이 짖어도, 내일 지구가 망해도 해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여사 측이 '강 변호사와 최근 교류하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강 변호사는 자신의 언행이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여권의 해체 요구를 개 짖는 소리로 일축한 데서 알 수 있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김 여사가 철저히 건희사랑과 '거리두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김 여사는 연예인이 아니라 대통령의 부인이다. 공사의 구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건희의 남자'가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시각에서 건희사랑을 다뤄야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줄탁동기
줄탁동기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밖에 있는 어미 닭과 함께 알껍데기를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서로 협력해야 함을 이르는 말로 불교의 화두다. 선종(禪宗)의 대표 불서인 벽암록에 등장한다. 줄탁동기는 단순히 협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병아리와 어미 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 병아리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게 줄탁동기의 핵심이다. 줄탁동기는 한때 기업 CEO들이 '위기 관리 경영 해법'으로 선택하기도 했다.윤석열 대통령이 초반부터 위기를 맞고 있다. 취임한 지 60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했다. 지난 11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7.0%에 불과했다. 검찰 편중 인사, 외가 6촌 채용 논란 등이 영향을 미쳤다. 부인 김건희 여사의 '지인 동행' 논란도 한몫했다. 윤 대통령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잘 모르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소탈한 표현이지만, 국가의 리더로는 적절치 않다. 장관급 후보자들의 인사 검증 논란에 대해선 "전 정권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고 했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윤 대통령을 향해 "마치 모든 인생의 목표를 다 이룬 사람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고, 국정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줄탁동기라는 화두가 지금 윤 대통령에게 필요하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의 피플] 한국 현대소설로 박사 학위 받은 최초의 인도인 칸 앞잘 경북대 교수
최근 대한민국에서 인도가 거론되고 있다. 신냉전시대를 맞아 인도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는 모습이다. 인도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의 참여국인 데다, 인도·태평양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의 회원국이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로 구성된 쿼드 역시 반중 연대이다. 한국의 가입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주도의 경제 및 안보 협의체에 들어가 있는 인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인도는 미국의 경고에 아랑곳없이 싼 가격으로 러시아산 석유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그런 인도를 제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아시아 패권국 인도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제사회에서 인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국내에 인도 전문가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도대체 인도는 어떤 나라인가. 경북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인도 출신의 칸 앞잘 교수를 만나 인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일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에 있는 칸 앞잘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자연스러운 한국어가 인상적이었다. 칸 앞잘 교수의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은 유심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고(故) 최인훈 선생이 쓴 희곡의 제목이다. '최인훈 전공자'답다.▶한국 사람에게 인도는 '신들의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정말 그런가."신들의 나라보다 더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다. 신들의 나라이면서 사람의 나라이다. '인크레더블 인디아'라고 불리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좋다는 뜻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이면서 이해하면 아주 쉬운 나라이다. 또 기회를 찾기 어려우면서도 쉬운 나라이기도 하다. 양면성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인크레더블 인디아'는 인도 정부가 관광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내건 슬로건이다. 요가, 정신 수양 등 인도 전통 문화와 역사를 전면에 내세워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종교의 발상지라는 점도 작용했다. 인도는 힌두교, 불교 등이 시작된 곳으로 성지 순례를 목적으로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기회를 찾기 어려우면서도 쉽다는 의미는 뭔가. "인도는 사실 무질서의 나라다. 질서가 없기 때문에 빨리할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프라가 잘 된 지역도 있고, 상당히 낙후된 지역도 있다. 인프라가 있는 곳에 투자할 것인지,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투자할 것인지를 잘 선택하면 인도에 진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라가 크고 인구도 많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인구 대국이다. 인건비도 싸다. 기회가 많은 땅이지만, 동시에 인도에 대해 모르면 어렵다." ▶인도를 힌두교의 나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인도를 힌두교의 나라라고 해석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인도는 다종교, 다민족 그리고 완전한 민주주의 나라다. 힌두 세력이 가장 세지만 다양한 종교,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고 종교 집단이 아닌 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도의 불교 인구는 0.7%에 불과하지만, 국가 공휴일로 지정돼 있고, 수상이 직접 불교 행사에 참여한다. 무슬림이 14% 정도인데 동등하게 대우받고, 정치에도 참여한다. 인도에 있는 무슬림은 다른 나라의 무슬림과 다르다. 인도적 무슬림이다. 인도의 발리우드 배우 중에 무슬림이 적지 않고, 종교 차별 없이 모두 즐겁게 어울린다. 인도는 종교의 나라라기 보다 민주주의의 나라라는 게 더 정확하다." ▶종교 차별이 없다고 했는데, 무슬림의 나라인 파키스탄과 갈등이 있지 않나."인도가 영국으로부터 해방됐을 당시 파키스탄과 분리됐다. 한국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 종교적, 정치적 이념으로 갈라지면서 정치의 중요한 수단이 됐다. 한국의 '빨갱이'처럼 인도에서 '이 사람이 파키스탄인이다'라는 말이 사용된다.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에선 힌두교 사람에게 '인도로 가라'고 한다. 인도에서 소수자로서 무슬림이 차별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없다. 다만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종교적 담론으로 이용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분리되면서 원래 원수였던 영국은 선한 존재로 빠져나가 버렸다." ▶인도에 신분 질서제인 카스트제도가 아직 존재하나.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법적으로 있다. 카스트제도를 유지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가촉천민(달리트)으로 불리는 최하 계급을 지원·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최하 계급에게 계급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달리트는 모든 분야에서 할당을 받는다. 대학 입학이나 직장, 정부기관에서 50% 정도를 먼저 달리트에게 할당한다. 인도 중앙정부가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시한 제도이다. 인도에서 카스트를 가지고 태어나고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계급 차별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인도 헌법에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도인이라고 돼 있다. 지금 인도 대통령도 달리트 출신이다." ▶인도가 '포스트 차이나'로서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나."가능성이 충분하다. 일단 인도에는 인재가 많다. 미국 실리콘밸리나 나사(NASA)에 인도 출신들이 많다. G2(미국, 중국)처럼 세계적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또 모디 정부가 적극적으로 인도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열린 마음으로 모디를 지지하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모디 총리는 지난 선거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지지를 받았고, 오는 2024년에 다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 역사상 처음이다. 모디 총리가 '메이크 인 인디아'(해외 기업들의 제조공장을 인도에 유치해 제조업을 활성화시키자는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전세계 기업들을 초대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 때문에 인도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동행한다고 했는데, 미국이 반대하는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는 배경은 무엇인가."미국은 사실 인도의 동맹국이 아니다. 냉전시기 전세계가 미국과 소련의 동맹으로 나뉘어졌는데, 인도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당시 소련이 우호적으로 다가왔고, 미국은 인도를 외면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하고 동맹의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다. 인도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인도의 외교부 장관이 최근 유럽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은 자신의 문제를 곧 세계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세계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유럽도 러시아에서 몰래 기름을 사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 러시아산 기름을 수입하지 말라는 자격이 있느냐를 지적한 것이다." ▶한국이 인도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나."한국이 처음 중국에 진출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해법이 보인다. 초창기 한국이 중국에 갔을 때 중국어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조선족의 역할도 컸다. 인도에는 그런 게 없다. 인도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인도학이라든지, 인도의 연구기관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 한국에는 인도 전문가가 거의 없다. 대구에는 한 명도 없다. 경북대에도 중어중문학과는 있지만, 인도학과가 없다. 대구에 적어도 인도연구센터가 있어야 한다. 인도연구센터를 통해 인도 전문가를 양성하면 인도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 미국을 살펴보면 대학마다 인도학과가 있다. 인도와 적대적인 중국의 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해 성공한 것도 인도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칸 앞잘 교수는 인도와 대구의 인연을 잘 활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수성구 범어공원에 한국전쟁 당시 국제연합 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참전했던 나야 대령의 기념비가 대표적이다. 나야 대령은 낙동강 전투 때 지뢰 폭발로 사망했다. 전쟁 중이라 유해 송환이 어려워 범어동 야산에 묻혔다. 나야 대령의 기념비는 지난 2003년 보훈처로부터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받았다. ▶인도에 한국의 문화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나."인도의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를 엄청 좋아한다. 한류가 열광인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문학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인도 시장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게 놀랍다. 인도는 인구 대국이고, 출판 대국이다. 인도가 한국 문화계의 엄청 큰 시장이라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한국 교육계나 정부가 좀 신경을 썼으면 한다." 칸 앞잘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BK 교육연구단 연구교수는 한국 문학과 인도 문학을 비교한 최초의 인도인이자, 한국 현대소설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도인이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모두 경북대에서 받았다. 석사 학위 논문은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신채호 선생의 문학과 인도의 문학을 비교한 것이다. 박사 학위 논문은 '최인훈 소설의 유토피아 의식 연구'이다. 고(故) 최인훈 선생은 소설가이자 극작가. 장편소설 '광장'이 잘 알려져 있다. 칸 앞잘 교수는 "최인훈 선생은 해방 이후 최고의 지식인이고, '광장'은 분단 이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장'에는 인도의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가 나온다. 주인공 이명준이 중립국으로 가는 배 이름이 '타고르호'이다. 인도와 직접적인 연결성이 있어 박사 논문 주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칸 앞잘 교수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활동했던 곳으로 유명한 왕사성(현 파트나) 출신이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로 이사와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다. 뉴델리 네루대의 언어문학문화학부를 졸업했다. 네루대는 냉전시기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기관으로 설립됐다. 국제관계를 다루다 보니 외국어가 중요해졌고, 대학원 대학으로 발전한 이후 전세계 어문학을 가르치는 언어문학문화학부가 생겼다. 칸 앞잘 교수는 "동아시아에 관심이 많아 한국·일본 및 동북아학과를 선택했다"고 했다. 국비 유학생으로 지난 2008년 한국에 왔다. 전북 익산의 원광대에서 1년간 고급 한국어를 수강했고, 이듬해 경북대로 옮겨 한국 현대문학에 천착했다. 칸 앞잘 교수는 언어 천재이다. 모국어인 힌디어와 우르두어 외에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에도 능통하다. 칸 앞잘 교수는 "문학을 전공하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언어와 문학에는 그 나라의 정서가 담겨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칸 앞잘 교수는 결혼 2년차의 신혼이다. 부인은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후배로 대만 출신이다. 부인도 한국 현대문학 전공자로 최근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칸 앞잘 교수는 "고향에서 한국어학과 일자리가 생기면 교수로 갈 생각이다"라고 했다. 조진범 논설위원칸 앞잘 경북대 연구교수가 인터뷰 도중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블랙베리(BlackBerry)
블랙베리는 캐나다의 리서치 인 모션(RIM)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휴대폰이다. '원조 스마트폰'으로 불린다. 회사 이름도 아예 블랙베리로 바꿀 정도로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점령했다. 강력한 보안성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등 해외 정상들이 즐겨 사용했고, 할리우드 셀럽들도 애용했다. 블랙베리의 가장 큰 아이덴티티는 쿼티(QWERTY) 자판이었다. 블랙베리가 마지막까지 고집했던 아날로그 형태의 자판이다. 휴대폰의 절대강자였던 블랙베리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올해 세계적 전자제품박람회인 '소비자가전박람회(CES)' 개최 하루 전날 자체 소프트웨어 운영체제(OS)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블랙베리가 영남일보 CEO아카데미에 등장했다. 대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지난달 28일 '팬덤 경제학에서 배우는 한국 정치의 과제'라는 강연을 통해 팬덤 경제의 실패 사례로 블랙베리를 언급했다. 또 블랙베리와 애플을 비교하며 민주당이 블랙베리의 길에 발을 들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극성 지지층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팬이 떠나면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30%로 내려갔다. 블랙베리는 대중의 개방성, 다양성, 보편성을 반영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됐다. 정치계도 기존의 전략 한계를 인식하고 다양성, 개방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민주당의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배타성과 폭력성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그나마 '태극기 부대'와의 결별을 통해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한 측면이 있다. 민주당이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재무장할 것인지 주목된다. 조진범 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의대협 "법원 행태는 모순…정부 의대생 복귀 호소는 오만" 주장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정부, 대학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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