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9] 아이스클라이밍 메카 '청송 얼음골'
콱 찍고, 싹 걸고, 휙 날고, 탁 미끄러지고, 쓱 떨어진다. 빙벽을 타고 오르는 이는 저이인데 두근두근 내 몸에 힘이 바짝 든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도 한다. 마침내 빙벽의 정상에 다다르면 환호의 아쉬움과 함께 모든 긴장이 한순간 풀리지만 짜릿한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들은 빙벽을 '겨울 산의 꽃', 빙벽 등반을 '겨울 등반의 꽃'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얼어붙은 빙벽을 산이 써 내려간 한 편의 시(詩)라고 했다. 시를 음미하듯, 시를 쓰듯, 꽃을 탐하듯, 꽃을 피우듯, 빙벽을 오르는 일에는 서슬 퍼런 낭만이 있다.◆얼음골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 청송 주왕산의 남쪽, 영덕 바다로 향하는 산길을 달리면 비교적 느슨하던 산길이 내룡리를 지나면서 좁고 깊게 휘휘 돌아나간다. 그러다 갑자기 원을 그리듯 급하게 휘돌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대한 암벽 하나가 길을 막아선다. 누구든 멈출 수밖에 없는 이곳은 청송 얼음골이다. 한여름 기온이 높아지면 얼음이 어는 기이한 골짜기, 얼음골은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이기도 하다. 길 막은 암벽은 높이 62m로 탕건봉이라 불린다. 모양새가 말총을 길게 줄 세워 뜬 탕건과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1999년 5월 청송군은 탕건봉 수직 벽에 인공폭포를 설치했다. 이 폭포는 여름내 시원하게 쏟아지다가 겨울이면 거대한 빙폭이 된다. 그러면 모험과 스릴을 즐기려는 등반가들이 얼어붙은 폭포를 오르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빙벽 등반이란 등반 장비를 갖추고 얼음벽을 오르는 행위다. 자신이 오르는 곳이 곧 길이 된다. 빙벽은 한번 얼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날씨에 따라 날마다 해마다 다르게 녹고 얼기 때문에 빙벽을 오르는 것은 항상 새로운 일이기도 하다. 탕건봉에서 약 500m 떨어진 골짜기에도 거대한 빙벽이 있고 그 앞에는 특수 제작된 국제 규모의 아이스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이 아찔한 높이로 서 있다. 겨울이면 이곳에서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와 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 선발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과 아시아선수권 대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산악부문 아이스클라이밍 경기 등이 열린다. 봄, 여름, 가을철에는 빙벽 등반 장비를 이용해 자연암벽과 인공 구조물을 혼합 등반하는 '드라이툴링' 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경기장 앞에는 지상 3층 규모의 청송 아이스클라이밍센터가 자리한다. 내부에는 운영본부 사무실, 사진 전시장과 프레스센터, 4-D체험장, 로커룸, 샤워장, 화장실, 농산물 홍보 및 판매장, 특산물 전시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실내외 관람석이 설치되어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관람 환경을 제공한다. 멋진 빙벽을 두고 왜 인공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얼음은 기후나 환경으로 인한 제한이 많고 선수들의 출전 순서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빙질의 차이는 순위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동일한 루트에서 진행할 경우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청송 얼음골에 조성된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과 부대시설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얼음골 탕건봉 62m 높이 암벽스릴 즐기는 겨울 등반가 성지인근 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은아시아 지역 최초 월드컵 열려세계대회 기준으로 꼽히기도◆국제산악연맹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대회스포츠 경기로서 아이스클라이밍의 시작은 1912년 이탈리아 쿠르마이어 지방의 브렌바 빙하에서다. 이후 러시아, 프랑스,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다가 2000년 이탈리아의 코르티나 대회에서 국제적인 월드컵 경기로 발전, 2002년부터 국제산악연맹(UIAA)이 주관해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는 2009년부터 프랑스의 쿠르슈벨과 이탈리아 코르티나, 오스트리아의 피츠탈, 러시아의 키로프 등 유럽의 4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매년 열리고 있으며 아시아지역에서는 2011년 대한민국 청송 얼음골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은 세계랭킹에 올라있는 전 세계 유명 선수들이 참여하는 대회다. 2011년부터 5년간 청송 얼음골에서 매년 열린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는 세계인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었다. 이후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재유치가 확정되었고 다시 2025년까지 재연장되면서 청송군은 명실상부한 빙벽 등반의 성지이자 산악 스포츠 메카로 자리 잡게 됐다. 지난 '2020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의 대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국제산악연맹(UIAA) 부회장 졸자르갈 반즈락크(Zoljargal Banzragch)는 인터뷰에서 "운영팀 조직이나 미디어 관리, 경기 진행 등의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 UIAA는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전 세계 월드컵 대회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2023 청송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2023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지난 1월13일 금요일부터 15일 일요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현재 UIAA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은 국제산악연맹(UIAA)·아시아산악연맹(UAAA)·<사>대한산악연맹(KAF)이 공동 주최하고, 청송군과 경북도산악협회에서 공동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경북도·대한체육회·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서 후원하고 있다. 종별은 남자 일반부와 여자 일반부로 나뉘어 있고 종목으로는 아이스클라이밍 리드와 스피드 경기가 있다. 참가 자격은 매 시즌 UIAA 아이스클라이밍 라이선스를 취득한 만 16세 이상 각국의 남녀 선수들이다. 대회기간 중에는 청송꽃돌전시, 청송백자 전시, 관광 및 특산물 홍보와 청송사과 시식코너, AR기념사진촬영 이벤트 등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린다.독특한 환경과 장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먼저 인공 벽에 부착되어 있는 돌 모양의 장치는 '홀드'다.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서 예선전 홀드는 청색, 준결승에는 은색, 결승에는 금색 홀드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밧줄에 연결되어 늘어뜨려져 있는 클립 모양의 고리는 '퀵 드로우', 샌드백처럼 매달린 커다란 원통형의 얼음덩어리는 '아이스캔디'다. 선수들이 양손에 들고 있는 낫과 같은 장비는 아이스 클라이밍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스바일'이다. 신발은 바닥창이 구부러지지 않는 빙벽 등반 전용이어야 하며 신발에 부착하는 곰 발톱 같은 금속 장비는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것으로 '크램폰'이라 부른다. 크램폰의 앞쪽 날을 사용해 벽을 찍으며 이동하는 '키킹', 한쪽 다리를 반대쪽 다리에 올려 4자 모양으로 교차시키고 한쪽 팔을 홀드처럼 이용하는 '피겨 포', 한쪽 다리를 같은 쪽 팔 위에 올려 숫자 9 모양을 만드는 '피겨 나인' 등의 동작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대회 종목인 '리드'는 '난이도' 종목이라고도 하며 정해진 루트를 주어진 시간 안에 등반하는 경기다. 안전 장치인 로프를 설치된 퀵 드로우에 끼워가면서 세팅된 홀드를 아이스바일을 이용해 타고 올라가 완등 지점까지 클라이밍 한다. 미끄러운 아이스캔디도 리드 종목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난 덩어리다. 한 번 떨어지면 다음 기회는 없다. '스피드' 종목은 말 그대로 육상처럼 스피드를 겨루는 경기다. 두 명의 선수가 똑같이 세팅된 두 개의 벽을 각각 타고 누가 더 빠른 시간 안에 완등하는가를 겨룬다. 등반 경기가 펼쳐지는 벽 뒤쪽에는 루트세팅 공간이 있다. 루트세터들은 선수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루트 수를 결정한다. 선수들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어야 공정한 루트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특정인의 신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루트를 만들지 않도록 홀드 간의 거리를 신중히 결정한다. 루트세터는 직접 등반을 하며 선수들의 안전과 적절한 경기를 위해 수차례에 걸쳐 홀드와 등반라인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검증을 거친다. 월드컵 경기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기량을 가리기 때문에 고난도의 루트가 주를 이룬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가 경기 루트에서 흥미와 진지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등반자의 긴장감은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지기 때문에 선수와 관중들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도 루트세터들의 일이다. 이러한 조율능력은 루트세터가 가져야 할 중요한 역량이며 다년간의 경험과 감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루트세터들은 한국만의 루트 스타일을 발전시켰고 이는 조금씩 유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기 첫날인 13일에는 선수등록과 테크니컬 미팅·개회식이 있었고, 이튿날 남녀 리드 예선과 준결선에 이어 15일에는 종목별 결선과 시상식 등 순으로 진행됐다.결승에 진출한 선수가 한 명 한 명 소개될 때마다 관중석을 꽉 채운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선수의 등반이 시작되면 이내 경기장의 관중들도 몰입하여 선수의 한 동작 한 동작마다 호흡을 함께한다. 마지막 선수가 등반을 이어가면 경기장의 열기는 절정의 끝에 다다른다. 그는 톱 홀드에 아이스바일을 거는 순간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다. 탄성과 환호와 축하의 박수가 터진다. 2024년 겨울 산에 꽃 피는 날이 머지않았다.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청송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에서 'UIAA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 참가한 외국인 선수가 아이스바일을 이용해 등반하고 있다. 청송은 2011년부터 매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를 열고 있는 세계 빙벽 등반의 성지이자 산악 스포츠 메카다. 〈영남일보DB〉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의 모습. 〈청송군 제공〉
2023.10.11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 해외 사례] 지역 전체 박물관화…日 아사히마을 주민 대부분 학예사 능력 갖춰 활동도
◆일본 아사히마치 박물관일본 야마가타현 니시무라야마군에 위치한 아사히마치 에코뮤지엄(https://asahimachi-kanko.jp/detail/?no=10777)은 지자체에서 1991년 마을 장기발전계획의 하나로 에코 뮤지엄 개념을 도입했다. 2000년 아사히마을 에코뮤지엄이 공식 출범했고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지역문화, 자연환경, 문화 등에 대해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했다. 지역 전체를 지붕 없는 박물관화 하고 주민 대부분이 학예사 능력을 갖도록 했다. 2004년 6월에 오픈한 창유관(創遊館)은 지역 17개 에코뮤지엄의 중심시설로 도서실, 문화센터, 회의실 등의 시설이 있다. 17개 에코뮤지엄은 사과농원, 공기사원(신사), 숙박시설, 포도와인공장인 와인성 등이다. 운영은 지자체에서 관리한다. ◆프랑스 브레스 부르기뇽 박물관프랑스에서 시작된 에코뮤지엄은 프랑스의 역사, 즉 전통에 대한 애착심, 농촌과 농산물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 등의 가치관과 맞물려 있다. 대표적인 것이 브레스 부르기뇽 박물관(http://www.ecomusee-bresse71.fr/)이다.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프랑슈 콩테 지역의 피에르 드 브레스 (Pierre de Bresse)의 도성을 중심으로 설립됐다. 브레스 부르기뇽 지역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연구·보존하고 관광 자원화하자는 목적이었다. 지역의 건축물, 유물, 유적,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 등을 수집하고 알리면서 지역정체성을 이해하고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거점 박물관 1곳, 위성박물관 5곳에 방앗간, 기와공장, 기름판매소, 대장간 등을 연결해 관광루트로 개발했다.◆영국 플로든 1513 박물관1513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접경지에서 일어난 플로든전투를 테마로 한 전쟁유산형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2013년 플로든전투 500주년 기념으로 '플로든 1513 에코뮤지엄'(https://www.flodden1513ecomuseum.org/)을 만들었다. 건립을 위해 뉴캐슬대학의 국제 문화유산연구센터와 협력해 이해관계자 리스트 작성 후 '플로든 500 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여러 이벤트를 통해 지역사회 참여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운영위원회에서 주민들에게 자신만의 '플로든 프로젝트'를 추진하도록 지원한 결과 2011년까지 90개의 프로젝트가 정리됐다.현재 플로든 전투와 관련된 장소, 기념물 등을 관리하고 있다. 영국 전통 유산 복권 펀드 약 88만파운드를 모금해 고고학, 문서 연구, 교육 프로젝트, 전시, 기념행사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LEADER와 헤리티지 로터리 펀드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프랑스 브레스 부르기뇽 에코뮤지엄 시설 중 하나인 빵의 집에 어린이들이 견학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1〉 지속가능한 마을 생태계 구축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농촌마을에는 폐가가 늘고 있으며 마을 전체가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마을도 많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경북의 자연마을은 2015년 9천210개였으나 불과 5년 뒤인 2020년에는 7천446개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 경북의 마을은 고령화, 빈 공간화 촉진, 빈곤화가 지속돼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마을의 소멸은 중장년 세대에게는 삶의 추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소중한 유무형 문화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경북의 마을은 저마다의 소중한 추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수천 년 이상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마을의 가치를 다시 재조명하고 우리 삶 속으로 끌어올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영남일보는 대구경북학회와 함께 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해보는 '경북의 마을-지붕 없는 박물관'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기획취재는 지면반영과 함께 마을의 전경을 담을 동영상을 함께 제작해 외국어로 번역해 유튜브에 업로드할 예정이다.저마다 소중한 추억·역사 간직한 마을방치해두면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몰라자발적 커뮤니티 형성·주민 교육 필수마을상품 기획 등 콘텐츠 개발 힘써야◆마을의 가치마을은 인위적인 도시공간과는 다른 가치를 지닌다. 초기 대부분의 마을은 지형을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마을은 유무형 자원의 보고로 마을전체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은 곳이 많다. 산업화 이전까지 삶의 주된 터전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마을을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마을이 본래의 기능, 원초적 역할은 다했다고 할지라도 보존하고 가치를 복원해야 할 마을들도 많다. 주마간산식으로 지나치면 이 마을, 저 마을이 같아 보이지만 마을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가치는 다 다르다.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마을이다. 마을이 해가 갈수록 무서운 기세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 아직은 더 많다. 비록 젊은이들이 많이 떠났지만 건전한 커뮤니티가 형성돼 아직도 마을을 가꾸고 있는 주민들이 많으며, 삶의 터전으로서 소중한 마을이 많다.경북의 마을은 역사문화를 통한 자기실현, 자연환경에 대한 경외, 인간 삶의 존중, 산업 및 전쟁의 다이내믹한 문화 등 문화자본으로서의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 마을 붕괴, 지역소멸의 위기 상황에서 삶의 거주공간이자 자연생태역사문화의 현장인 마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마을을 위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관광자원화 가능한가하지만 이런 마을들도 그냥 방치해 두면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모른다. 인구감소와 산업화·도시화로 순환구조(생태계)가 무너져 지속 가능한 마을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경북의 마을은 역사문화, 생활문화, 자연친화성, 문화재 등 관광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관광자원으로서 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들이다.전 세계 관광트렌드 또한 바뀌고 있다. 세계 유명 대형 박물관 중심 관광이 숙지고 지역주민의 삶과 문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일상공간에 대한 여행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관광지 단순 방문과 관람보다 기억에 남는 경험과 체험, 참가 등 여행지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체험형 관광이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깊은 산골짜기와 유유히 흐르는 강과 계곡을 배경으로 형성된 경북의 마을은 빼어난 자연 경관과 다양한 마을 유산들로 가득 채워진 문화 집합체로서 최고의 관광지이자 문화뮤지엄이라 할 수 있다. 마을 그 자체가 박물관인 것이다.◆전통 박물관전통적인 박물관은 가치가 높은 유산을 그 현장에서 분리해 박물관에 소장한다. 박물관 건물 안에 유물 중심의 보존과 전시가 큰 역할을 한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박물관 유물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공개하고 전시하는 공적 기능을 하는 것이 전통박물관의 모습이다. 이 같은 박물관과 미술관은 아직도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유층의 전유물이다. 개인 컬렉션 등을 통해 일부 부유층에만 공개되는 등 권위적이며, 주로 도시에 사는 엘리트를 위한 공간으로 인식된다.이들 박물관은 18세기 말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공공박물관이 탄생한다. 초창기 공공박물관은 계몽과 교육이 주요 목적이었고 제국주의를 거치며 국가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에코 뮤지엄(Eco Museum)에코뮤지엄은 1973년 조르주 앙리 리비에르(Georges Henri Riviere)가 프랑스의 지역 상황과 지역 주민의 삶에 지역 민속학을 접목해 인간, 자연, 지역유산을 박물관의 범주로 만든 개념이다. 생태를 의미하는 에콜로지(ecology)의 접두사 에코(eco)와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탄생했다. 지역재생운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중핵 자원인 거점 박물관, 분포된 유산의 거점 공간인 위성박물관, 지역의 자원과 유산을 발견하는 탐방로 등이 조성돼, 지역의 건축물과 역사문화유산, 자연경관, 주민의 경험과 기억,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유산을 내외부인을 대상으로 전시했다.지역 주민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지역 유산의 수집, 보존, 조사, 연구, 기획, 실행하는 보존 기관으로써 연구소,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어 한 지역주민이 지역전문가로서 역량을 축적하는 유의미한 박물관이기도 하다.◆지역 공동체박물관공동체박물관(Community Museum)은 지역의 낙후된 건축물의 재생과 기존 박물관의 문턱을 낮춘 신개념 박물관이다. 생활환경 개선을 넘어 문화, 복지, 교육 등의 변화 및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한 지속 가능한 공동체 조성을 중요시하며 주민의 자생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역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지역 주민의 삶을 바탕으로 하며, 마을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전시, 체험 등이 이루어진다. 지역 주민의 삶과 의견, 이를 반영하고 제작하는 문화기획자와 예술가 등의 협업으로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자 지역의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1967년 설립된 미국 아나코스티아 커뮤니티뮤지엄(Anacostia Community Museum)이 대표적이다. 당시 마을 내 오래된 극장을 개조하여 전시시설로 활용했다. 지역 내 공동체의 다층적 의미와 공동체박물관의 역할 변화, 지역사회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등 지역의 문화유산과 지역 이슈를 다루는 박물관으로 성장했다.◆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정부나 지자체에서 박물관 건물을 짓고 공무원을 파견해 관리하는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전혀 다른 주민주도 박물관이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의 특징이다.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은 마을과 박물관의 융복합적 모델이다. 에코뮤지엄의 핵심 기능인 지역 유산(Heritage), 주민 참여(Participation), 박물관 활동(Museum) 등의 3요소를 확대·진화한 것으로 지속 가능한 마을 발전을 지향한다. 에코뮤지엄(Eco Museum)과 공동체박물관(Community Museum) 기능에 지역주민의 자발적 커뮤니티 기능을 중요시하는 한국형 박물관 모델이라 할만하다.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은 마을의 자연환경, 경관, 사이트, 문화재, 문화유산, 문화 공간, 생태 공간, 생활공간, 마을산업(상업) 및 특산품, 적정기술(음식, 농업, 어업 등), 역사적 공간, 지역공동체 등 유·무형의 유산(Village Heritage)을 현지 보존한다.또 마을 이해를 시작으로 정체성 확립과 마을의 고유한 유산에 대한 역사성, 자긍심 고취 등 주민 스스로 지역 공동체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Resident Participation)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을 주민이 박물관 활동의 중심이 되어 유산의 현지 보존 및 관리, 박물관 콘텐츠를 기획하도록 했다.마을 관광(Village Tourism)도 주민 주도하의 관광 활성화 기획 및 공유 경제 실현으로 지속 가능한 마을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 마을의 자발적 커뮤니티 형성은 필수적이다. 마을 주민, 지역 학생, 참여자 등을 대상으로 마을박물관 학교(교육)를 운영해 마을박물관 주민 학예사 양성 교육, 자료 인덱스 교육, 카페(셰프) 교육, 마을 상품 기획 및 경제 교육 등을 추진하도록 했다.박승희(영남대 교수) 대구경북학회 회장은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 되는 공간적 전환과 더불어 대중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마을을 지향한다"면서 "마을 주민이 주체가 돼 마을유산을 보존하고 지역사회의 발전과 관광, 교육 등을 함께 도모함으로써 마을의 대중화를 실현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박물관으로의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경북의 마을 가운데는 보존해야 할 유무형 유산과 빼어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많다. 소중한 추억과 역사를 가진 마을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 지붕 없는 박물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포항시 장기읍성에서 바라본 농촌마을 전경.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워케이션 경험해 보니…부산 '더휴일×데스커 워케이션 센터'
지난 5일 오후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더휴일×데스커 워케이션 센터'를 찾았다. 여러 가지 종류의 테이블 중 바다를 향해 있는 개인용 책상에 짐을 풀고 노트북을 꺼냈다.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다 책상 앞 통유리창으로 고개를 들자 반짝이는 바닷물이 넘실대는 항구와 줄지어 정박된 선박들이 두 눈에 꽉 차게 담겼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서 '물멍'(물을 보며 멍하니 있는 것)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바다를 감싸는 육지에 들어선 고층 빌딩들과 대교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대도시이면서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에서 경험하는 이색적인 풍경이다.'물멍' 가능 공유오피스 제공자연+도심 인프라 함께 즐겨평소보다 집중이 잘 된다고 느껴진 건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마주한 색다른 환경이 매일 하던 업무마저 설레게 했다. 일의 능률도 올랐다. 커피를 들고 사무실 앞 바닷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피로감을 풀고 머리를 맑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사무실 책상 배열과 창문 밖 풍경, '부장님' 등 주변 인물들은 바뀌었지만, 사무 및 회의에 필요한 기기와 비품은 기존 사무실과 다름없이 제공됐다. 원격 소통을 위한 화상회의 등을 할 수 있도록 1인용 부스도 마련돼 있었다. IT업계 종사자 홍모(31·서울)씨는 "회사 공지를 보고 일행 3명과 함께 3일간 체험하러 왔다"며 "일을 하면서도 휴가를 보내는 듯한 기분이다. 즐겁다"고 활짝 웃었다. 더휴일×데스커 워케이션 센터의 일 평균 이용자는 15명 정도다. 올해 1월 개소할 때는 주로 IT기업이나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이용했지만, 점점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센터의 김대섭 매니저는 이용객들이 '지역과의 관계'를 만들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면서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생기면 부산으로의 생활인구 유입이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매니저는 "관광지도 주중에는 방문객 수가 현저히 적다"며 "워케이션은 '주중 비수기'를 메우고 지역 소비가 일어나게 한다.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역 소비 활성화에 워케이션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센터 이용객들은 점심 식사와 커피를 영도구에서 하고, 퇴근 후에는 인근 남포동부터 해운대·광안리 등 유명 관광지를 찾는다. 대구와 가까운 부산은 소멸위기 지역을 워케이션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받는 지자체인 동구, 중구, 서구, 영도구, 금정구에서 워케이션 지형을 넓혀 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워케이션 경험해 보니…제주 세화리 '질그랭이 거점센터'
제주도는 워케이션 대표지역이다. 특히 제주 동쪽 해변 마을에 위치한 질그랭이거점센터(제주시 구좌읍 세화리)는 '워케이션의 성지'로 불린다. 질그랭이거점센터는 2020년 문을 열었다. 당초 피로연장, 예식장 등으로 운영하기 위해 '세화리 종합복지타운'으로 2008년 만들어졌지만 청년들의 결혼이 적은 탓에 제대로 운영이 안 됐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에 선정, 리모델링을 거쳐 거점센터로 거듭나게 됐다.올해 대상·현대 1천여명 예약마을 상권활성화 등 긍정 변화질그랭이거점센터 1층에는 세화리사무소와 여행자센터, 2층에는 카페 477+, 3층은 공유오피스, 4층은 숙박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3층에 있는 공유오피스가 워케이션의 핵심 공간이다. 지난해에만 600여 명이 다녀갔다. 올해는 이미 1천명이 예약해 마감된 상황이다. 대상웰라이프, 현대중공업 등의 기업 직원들이 찾고 있다. 이용객들은 평균 4박 5일 정도 머물면서 워케이션을 경험한다.다른 워케이션 지역에 비해 질그랭이거점센터가 눈에 띄는 건 이용객에게 마을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질그랭이거점센터는 2019년에 결성된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워케이션 참가자들은 마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해녀투어, 노르딕워킹, 다랑쉬웰니스투어 등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또 '세화 웰컴킷트' '맛집 엽서' '슬리퍼존 지도' 등을 통해 마을을 즐길 수 있게 했다.질그랭이거점센터 활성화는 세화리 마을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다. '상권 활성화'가 대표적이다. 월요일마다 진행하는 '네트워킹 식사자리' 프로그램으로 가게마다 월 정산 금액이 200여만 원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 맛집 엽서 관련 가게들을 방문하는 이용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인구 증가'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2012년 1천960명이던 세화리 인구는 지난해 2천258명으로 10년 사이 15.2% 증가했다. 전국 대부분 농어촌 마을 주민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생활인구'로 지방소멸 위기 넘는다…'워케이션' 활성화 박차
새 피가 돌아야 몸이 건강해지듯 새로운 인구가 들어와야 마을에 활력이 생긴다. 영남일보는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2부를 시작한다. '대구경북 생존보고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대구경북이 소멸 위기를 딛고 활력 넘치는 공동체를 만드는 방안을 모색한다. 전문가들의 진단을 토대로 대구경북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자 한다. 생활인구 개념과 워케이션 전략을 소개하고 새 인구 유입을 위한 산업 및 청년 정책, 도시 브랜드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오는 11월 말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를 주제로 세미나도 열 계획이다.대한민국의 인구는 2019년 11월부터 45개월째 내리 자연 감소하고 있다. 대구경북(TK) 역시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은 자연 감소 지역이다. 인구 절벽 위기를 맞아 '새로운 인구 개념'이 등장했다. 기존 주민등록상의 인구가 아니더라도 지역에 장시간 체류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까지 지역 인구로 보는 '생활인구'가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한정된 인구를 놓고 지역 간 인구 유치 경쟁이 사실상 시작된 상황에서,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인구감소지역 통근·통학하면생활인구로 집계…올 7곳 시범하루 3시간 월 1회 이상 요건에'워케이션' 통한 인구유입 전략경북 등 9개 지자체 사업 경쟁◆이동성·실생활 반영한 생활인구현행 등록인구는 인구의 단기간 이동성을 반영할 수 없는 만큼 효과적인 인구 정책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경산에 자택이 있지만 대구시에 위치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경우 광역자치단체가 달라 경제인구에 대한 집계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장단기 파견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등록 주소지는 서울이지만 주거는 물론 식료품 구매 등 핵심 경제생활은 대구에서 할 경우, 현행 등록인구 제도에서는 실제 행정 수요를 반영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사정으로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을 통해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인구 및 외국인등록인구 외에 지역에 체류하는 인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교통·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이동성과 활동성이 늘어난 생활유형을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통신사와 협업을 통해 생활 인구를 분석하기도 했다. 휴대전화 통신 신호 정보를 분석한 결과 2017년 기준 서울에서 생활하는 인구가 서울시 주민으로 등록된 인구보다 138만명가량 많은 1천151만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주민등록상 서울 인구는 2010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생활인구는 계속 증가 추세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법령을 통해 정한 생활인구 요건은 기존 주민등록법에 등록된 사람에다 2가지가 더 포함된다. 통근·통학·관광 등의 목적으로 주민등록지 외 지역을 방문해 하루 3시간 이상 머무는 횟수가 월 1회 이상인 사람, 외국인의 경우 외국인등록을 하거나 국내거소신고를 한 사람도 해당 지역의 생활인구로 집계되도록 했다. 산정 주기는 월 단위이며 성별, 연령대별, 체류일수별, 내·외국인별 생활인구 등이 집계될 전망이다. 다만 모든 지역을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라 지정된 인구감소지역으로 한정된다. 올해 영천을 포함해 인구감소지역(7개)을 대상으로 생활인구를 시범적으로 산정해 진행되고 있으며 연말 공개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전체 인구감소지역(89개)으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행정안전부 측은 "국가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활인구는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인구 확대에 '워케이션' 경쟁행안부는 생활인구 늘리기 위한 시범 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워케이션(Workation)을 비롯해 두 지역 살아보기, 로컬유학 생활인프라 조성, 은퇴자 공동체마을 조성, 청년복합공간 조성 등이다. 학계 및 지자체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워케이션의 활성화다. 우리나라보다 인구 소멸이 먼저 시작된 일본은 정주인구 유입정책의 한계를 '관계인구' 전략을 통해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의 일종으로 워케이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합친 신조어로 일과 관광 모두를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방식을 뜻한다. 최근에는 휴가지에서의 근무라는 개념으로 국내 일부 대기업 및 IT 기업들 위주로 시행되고 있다. 제주도 등에서 유행한 '한 달 살기'도 워케이션의 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는 프리랜서 또는 재택·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종에서 할 수 있는 근무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활성화만 된다면 생활인구 증대는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평가다. 일본의 경우 워케이션 장소를 지역 내 빈 건물이나 사무실 등 유휴공간을 재생시켜 활용하고 있다. 호텔이나 리조트 등 같은 숙박 인프라가 부족할 경우 지자체의 빈집 개선을 통한 활용 등 다양한 사업으로의 확대가 가능한 게 특징이다. 또 외부인들이 장기간 워케이션 장소에 머물게 됨으로써 지역과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생활인구 확대 및 향후 '인구 유치'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도 워케이션 활성화를 위해 비용을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워케이션에 대한 지자체의 유치 경쟁도 시작된 상황이다. 17개 시·도 중 경북을 포함한 9개 지자체가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성윤 부연구위원은 "지금은 워케이션이 1주일 정도 기업에서 '복지'나 '출장'의 차원으로 인식되지만 업무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는다면 지역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워케이션(worcation)은 단순 원격근무를 넘어 일과 관광 모두를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형태로 지역 활성화 방안, 특히 생활인구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농촌풍경 보며 '일쉼동체'…수도권 사무직 '경북스테이' 각광
워케이션을 활용한 '생활인구' 확보를 위해 경북도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올 초 경북도는 '2023 인구대반전 프로젝트 추진 계획'과 함께 대도시 주민들의 지역 체류를 장려하는 경북 스테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제2 생활 거점에 경북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도록 '1시·군-1생활인구' 특화 방안을 필두로 경북형 작은 정원(클라인가르텐), 두 지역 살기 기반 조성을 순차적으로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경북도가 경북문화관광공사와 함께 올해 처음 선보인 '경북형 워케이션'은 수도권 사무직군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적한 농촌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가다.경주에서 경북형 워케이션 상품을 운영 중인 권유진 디어멘데이 대표는 "서울이나 판교에서 활동하는 IT 업계 종사자분들이 주로 2박3일, 많게는 6박7일까지 머물다 간다"라며 "관광이나 외식 비중이 상당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경북도는 의성과 경주, 포항, 문경을 중심으로 13개의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농촌에선 논·밭뷰(view) 워케이션을, 해안가에선 바다를 활용한 자연 속 공유오피스와 숙박시설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올해 첫선을 보인 경북형 워케이션 상품은 출시 3개월 만에 전체 판매의 60% 이상 이뤄졌다.경북도는 현재 경북형 워케이션 상품 온라인 기획전, 사업 설명회, 기업 인사담당자 대상 팸투어 등을 기획하며 생활 인구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경북 문경에 위치한 경북형 워케이션 공유오피스 화수헌.
[경산 뉴 파노라마 .8] 뛰어난 정주 여건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던 경산에 대규모 주거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대부터다. 1992년 옥산1지구(51만㎡)를 필두로 옥산2지구(1993년·33만㎡), 임당지구(1998년·42만㎡), 사동1지구(2000년·60만㎡), 사동2지구(2008년·93만㎡), 신대·부적지구(2009년·45만㎡), 하양지구(2019년·48만㎡)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대규모 주거지역 개발로 경산시 인구는 꾸준히 늘어 2018년 26만명을 돌파했다. 경북에서 셋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급성장한 것이다. 경산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살기 좋은 도시'를 꿈꾸고 있다. '경산 뉴 파노라마' 8편에서는 갈수록 개선되고 있는 경산의 정주여건에 대해 소개한다.◆쾌적한 환경을 갖춘 주택지구들대구도시철도 2호선 사월역 3번 출구를 나와 동쪽으로 300m만 걸어가면 오른편에 신도시가 나온다. 전체 면적이 축구장 11개 정도(24만여 평)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다. 높게 솟은 고층 아파트 사이로 병원과 식당, 대형마트 등 각종 편의시설을 비롯해 공원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깔끔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전형적인 신도시, '중산제1지구'의 모습이다.중산제1지구는 큰 저수지인 중산지를 가운데 두고 원형으로 조성 중에 있다. 중산지 주변은 근린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성암산(해발 472.3m) 자락에 위치해 매우 친환경적인 공간이다. 대형마트와 인접해 있고 소방서와 초등학교도 품고 있다. 앞으로 공공도서관과 학교들이 잇따라 들어설 예정이다. 중산제1지구는 전체 면적 중 주거용지는 2.29%에 불과하다. 준주거용지(26.19%)를 합쳐도 30%가 안 된다. 나머지 45.93%는 공원과 녹지, 광장, 주차장, 학교, 공공청사, 공공업무시설 등 공공시설용지다. 이 외에 문화 및 집회시설(0.80%)과 사회복지시설(1.31%)도 기타시설용지로 들어간다.위치적 조건도 뛰어나다. 서쪽에는 대구 사월지구, 동쪽으로는 경산 정평·중산지구와 경산 옥산2지구, 남쪽으로는 경산 옥산1지구가 인접해 있다. 즉 대구와 경산을 잇는 주거밀집지역의 중심지다. 그만큼 교통 편의성과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사월역, 정평역과 인접해 있고 남서쪽으로는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동쪽으로는 경부선 철도가 지난다. 교육, 환경, 교통, 시설 등 수준 높은 생활을 위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중산제1지구 계획인구 2만1천여명공원·병원·학교·대형마트 들어서경산대임공공주택지구도 조성 추진2025년 완공되면 1만124가구 입주교통인프라 확충 등 정주여건 개선도시철 연결·종축고속화도로 추진경산 중산동 일원에 시가지조성사업으로 조성되고 있는 중산제1지구 사업은 전체 면적 80만5천759.4㎡, 총사업비 7천282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도시 개발 프로젝트다. 장래 계획인구만 2만1천342명(9천279가구), 경산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수준이다. 중산제1지구는 1999년 12월 시가지조성사업 상세계획구역으로 결정되며 사업이 추진됐다. 이듬해 1월 시가지조성사업 상세계획이 마련됐고, 2005년 10월부터 순차적으로 공사가 하나둘 마무리되고 있다. 1단계 사업에 이어 2-Ⅰ단계, 2-Ⅱ 단계 사업도 각각 2017년, 2021년에 완공된 것. 마지막으로 남은 2-Ⅲ 단계 사업은 2028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경산의 대규모 주택지구 사업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임당역 북쪽 경산 대평동과 임당동 일원에 '경산대임 공공주택지구'를 조성 중에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67만3천141㎡로 중산제1지구의 두 배에 달한다. 완공되면 1만124가구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갖게 된다. 경산대임 공공주택지구 개발 사업은 2025년 12월 마무리될 예정이다.◆경산시의 다양한 정주여건 개선 노력지난해 7월 취임한 조현일 경산시장은 5대 시정 목표 중 '살고 싶은 도시환경'을 첫째로 내세울 만큼 정주여건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관련 공약만 22가지다.그 가운데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교통 인프라 확대다. 실제 경산시는 '경산전철시대 조성'과 '종축고속화도로 건설'을 5대 핵심과제로 선정했다. 전철시대 조성은 대구도시철도 1, 2호선을 진량으로 연장해 두 노선을 순환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더불어 대구도시철도 3호선 경산 연장도 포함돼 있다.대구와 경산은 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대구도시철도 연결은 이를 더욱 가속화했다. 대구도시철도는 1998년 5월 1호선(진천~안심·24.9㎞), 20015년 10월 2호선(문양~사월·28.0㎞), 2015년 4월 3호선(칠곡경대병원~용지·23.95㎞)이 완전 개통됐다.대구도시철도가 경산까지 연장된 것은 2012년 9월이다. 2호선 경산 연장구간(사월~영남대·3.3㎞)이 개통되며 대구도시철도는 경산까지 운행에 돌입했다. 2호선에 이어 1호선도 경산 연장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12월 말이면 안심~하양 구간이 정식으로 개통된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안심~하양 연장은 안심역에서 경산 하양읍 하양역까지 8.89㎞를 잇는 사업이다. 전체 구간 중 0.7㎞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상으로 건설된다. 정거장은 대구 동구 사복동, 하양읍 부호리, 하양읍 금락리 등 3곳에 들어설 예정이다.사업이 완료되면 안심에서 하양까지 10분 이내에 접근이 가능해진다. 경일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호산대 등에 다니는 학생들과 진량산단 등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교통 편의성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종축고속화도로 건설은 쉽게 말해 경산을 남북으로 잇는 도로망을 만드는 것이다. 경산시는 이 사업을 통해 △청통와촌IC 연결도로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국도 대체도로(남산~하양) △국도 대체도로(남천~남산) △남천 하이패스IC를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해 지역 핵심 교통망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지역 내 이동 편의성을 높이고, 물류산업 경쟁력도 한층 향상시킬 수 있다.이외에도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도 다채롭다. 대표적인 것이 남천 자연생태하천 조성과 경산향교 주변 도시숲 조성, 주민참여 도시재생사업 추진 등이다. 경산하수처리장 고농도 악취방지시설 구축, 탄소중립·친환경버스 도입, 음식물류 폐기물 감량기 설치, 가축 분뇨 배출 제로화 시스템 구축 등은 친환경적인 주거환경을 위한 정책이다.경산시는 또 반려동물 인구 1천만명 시대를 맞아 대구대 안에 유기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행복동물복지 치유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장동훈 경산시 도로철도과장은 "대구도시철도 2호선에 이어 1호선까지 경산 연장이 이뤄지면 주민들의 교통 편의가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외에도 경산의 숙원사업인 대구도시철도 추가 연장과 종축 고속화도로 건설 등도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 기자 zone5@yeongnam.com경산 중산 제1근린공원 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늘어선 '중산제1지구' 모습이 보인다. 대구와 경산을 잇는 주거밀집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한 중산제1지구는 깔끔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다.중산제1지구에는 병원, 학원, 음식점 등 상업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중산제1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된 수생 비오톱(생태 정원).경산 중산 제2근린공원 내 거울연못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2023.10.10
[노벨문학상 산책]-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철학자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란 매우 드문 일이고, 그마저도 1964년 수상을 거부한 장폴 사르트르가 마지막이었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철학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루돌프 크리스토프 오이켄(1908년 수상), 버트런드 러셀(1950년 수상), 앞서 말한 사르트르, 그리고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앙리 베르그손(1927년 수상), 단 네 사람뿐이다.그런데 철학자가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 영예로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철학자는 엄밀한 논리와 보편적 개념 체계로 현실 세계를 해명하는 반면, 예술가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니 문학상을 받은 철학자란 한눈파는 철학자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네 철학자 중에서 특히 베르그손은 철학과 예술이라는 상반된 인간의 정신 활동을 무리 없이 융합했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그에게 상을 수여하는 이유로 베르그손의 "풍부하고 생생한 생각들, 그리고 이 생각들을 표현하는 뛰어난 솜씨"를 들었다. 이 함축적인 평가에 따르면, 베르그손은 철학자로서 풍부하고 생생한 생각들을 품었을 뿐 아니라 이 생각들을 언어적으로 표현해내는 데에도 탁월했다.사실 베르그손의 철학에서 이 두 가지, 곧 생각과 언어적 표현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1859년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의 음악가 아버지와 영국계 유대인 출신의 어머니가 이룬 가정에서 출생한 베르그손은 프랑스 파리의 엘리트 교육 코스를 밟으면서 성장한다. 그는 과학적 재능이 뛰어났음에도 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서, 인문계 최상위 대학인 고등사범대학 졸업 후 클레르몽페랑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첫 번째 저작이 될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한다. 1889년 출간된 이 논문에는 '의식의 직접 소여들에 관한 시론'이라는 다소 길고 학술적인 제목이 붙었다. 이 제목은, 훗날 영어 번역본을 출간하면서 작품의 주제 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시간과 자유의지'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된다.이 책의 중심 주장은, 무수한 감정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서로 뒤엉키며 이어지는 우리 마음의 내적 흐름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획일적으로 모두에게 똑같은 속도로 흐르는 시계의 시간은 인위적 약속의 산물에 불과하다. 베르그손은 각자가 경험한 과거의 체험들이 현재의 경험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과거와 현재가 각자의 삶 속에서 얼마나 분리될 수 없게 연속되어 있는지를 정묘하게 서술한다. 이 저작에서 독자는 고통의 감각에서부터 깊은 사랑의 감정에 이르는 다양한 의식 상태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접하게 된다. 베르그손이 '지속'이라고 일컫는 진정한 시간 개념은 바로 우리 인간의 의식적 경험에 대한 거의 예술가적인 묘사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고 전달 가능한 것이다. 마치 소설가가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몇 개의 낱말들을 통해서 인물의 감정을 독자 스스로 경험하도록 유도하듯이 말이다. 베르그손의 새로운 철학적 관념들은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언어적 표현 방식에 의해서만 드러낼 수 있는 것이었다. 베르그손은 철학이 과학과 같은 엄밀한 방법을 따르며 실증적인 경험 증거들에 근거해 진보하는 학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못지않게 철학은 예술과 같이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구체적인 경험을 최대한 언어 안에 담아내는 창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적 사유로 포착한 세계의 규칙성과 엄밀성을 배경으로 할 때 그러한 과학적 사유를 벗어나는 섬세한 정신과 생명의 차원이 어렴풋이 전경에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베르그손의 철학은 과학의 틀을 빠져나가는 정신과 생명의 모습을 독창적인 예술적 감수성으로 감지하고 그려낸다. 그는 20세기에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철학 모델을 창안한 것이다.이러한 철학관이 가장 높은 완성도에 이른 저작이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1907년작 '창조적 진화'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이미 이 책이 제기하는 철학적 도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당대에 한창 논쟁 중이던 다윈의 진화론을 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과학적 진화론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진화론이 말하는 대로 생명체들은 지구상에서 진화한 것들이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베르그손은 생명 진화란 다양한 생명체들이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적응 과정이라는 진화론의 주장에는 반대한다. 생명체들은 환경의 제약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새로운 생명 형태들을 창조하며, 생명 진화의 과정 전체는 무기 물질을 가로질러 세계 안에 자유를 도입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을 무기 물질에서부터 시작하는 진화의 산물로 보면서도 생명의 본질 자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물질에 저항하면서 물질 안에서 자유의 경향을 실현하는 독립적인 힘으로 본 것이다. 생명의 진화는 인간 의식의 지속처럼 창조와 새로움을 향하는 경향성이라는 이 저작의 주장은, 당대의 과학적 진화론보다 한 발 앞서 나아가며 자유로운 생명,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고전적인 관념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생명의 창조적 운동을 포착하기 위해서 베르그손은 여러 가지 언어적 이미지들을 동원한다. 무수한 생명체들을 가로지르는 단일한 생명적 본질의 전체적 운동을 도약, 곧 뜀뛰기로 표현하기도 하고, 물질과 생명의 대립적인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쇳가루를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이미지를 동원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물질적 우주를 창조한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본질은 여기저기 틈이 나 있는 용기에서 분출하는 수증기 가닥들로 형상화된다. 러셀은 이 저작을 두고 경멸의 의미를 담아 철학 저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시라고 말한 바 있는데(정작 이렇게 말한 러셀 자신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는 근대 자연 과학의 성취 위에서 그려낸 장대한 우주적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창조적 진화'는 베르그손이 무명의 젊은 학자이던 시절 발췌 번역하여 출간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근대적 언어로 다시 쓴 저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당대의 진화론과 생물학의 과학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러한 과학이 말해주지 못하는 생명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논구하는 이 저작은 베르그손을 단박에 세계적인 철학자로 만들어 주었다. 박사학위논문과 두 번째 저작인 '물질과 기억'(1896)을 통해 프랑스의 신진 철학자 그룹 선두에 있었던 그는 '창조적 진화'를 통해 당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철학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베르그손이 당대 진화론에 맞서 내세운 여러 실증적 논변들은 현대 생물학과 진화론의 수준에서 논박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조적 진화'의 실증적, 논리적 논변들이 힘을 잃고 나면 남는 것은 그저 우아한 표현들로 포장한 근거 없는 몽상적 사변들이 아닐까? 이러한 신랄한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그와 함께 어쩌면 이 저작의 여전히 살아 있는 핵심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과거의 틀린 철학 이론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를 던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저작이다. 철학과 문학을 종합한 이 책이 발휘하는 강력한 설득력을 어떻게 현대과학의 성취들 위에서 갱신하고 계승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으로 남아 있다. 주재형 교수는 프랑스 파리에서 베르그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단국대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현재 단국대 철학과에서 '생활과 철학' '서양근대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프랑스 근현대 철학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한편 현대과학의 수준에 걸맞은 새로운 우주론 형이상학의 구축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철학연구회 총무이사, 한국프랑스철학회 총무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단국대 철학연구소 '철학논고'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역서로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문학과지성사, 2008, 공역), '현대 프랑스 철학' (길, 2014), 저서로 '철학, 혁명을 말하다'(이학사, 2018, 공저), '서양근대교육철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공저), '푸코와 철학자들'(민음사, 2023, 공저)이 있으며, '베르그손의 순수 기억의 존재 양태에 대하여'(2016), '들뢰즈와 형이상학의 정초'(2017), '데리다: 진리의 탈구축'(2020), '러브크래프트와 철학: 반우주로서 생명'(2021), '노화의 자연경제'(2022) 등의 논문을 썼다.주재형 교수 (단국대)
2023.10.06
[무한 상상과 도전 정신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상주 .1] 농업 혁신 거점도시
▶시리즈를 시작하며저력 있는 역사도시 상주가 시대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미래 산업을 주도할 2차전지 클러스터 산업단지를 발판삼아 첨단산업 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 또 정보통신기술(ICT)을 비롯한 과학기술을 접목시킨 스마트 농업의 저변 확대를 통해 국내 농업 혁신 거점도시로 거듭난다는 목표도 세웠다. 양질의 일자리가 넘치는 청년들이 살고 싶은 도시, 지속 가능한 성장이 보장된 도시, 앞으로 상주시가 만들어나갈 미래 모습이다. 영남일보는 오늘부터 격주로 '무한 상상과 도전 정신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상주' 시리즈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면적 42.7㏊ 스마트팜 2021년 완공청년창업보육센터·실증단지 등 갖춰교육·경영·창농·주거 원스톱 지원농업 인구 2만6천명 전국 일곱번째지난해 농특산물 30여개 나라 수출상주는 예로부터 한국 농업의 중심이었다. 일찍이 벼농사와 양잠업이 발달했고, 지금도 배와 포도 등 다양한 농특산물이 전 세계로 수출된다. 최근에는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조성되면서 국내 농업 혁신의 최전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리즈 첫 편에서는 상주 농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소개한다.◆ 농업 혁신의 중심 스마트팜 혁신밸리상주 동쪽 중부내륙고속도로와 낙동강 사이 사벌국면 일원에는 한국 농업의 미래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면적만 42.7㏊에 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스마트팜이다. 상주시는 2018년 전북 김제, 전남 고흥, 경남 밀양과 함께 전국 4대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선정된 바 있다.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2021년 12월 준공됐다. 2021년 9월 청년창업보육센터를 시작으로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A동, 실증단지, 혁신밸리 지원센터,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B동, 청년농촌보금자리,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C동이 잇따라 완성됐다. 내년에는 문화거리 등이 추가로 들어선다. 국내 스마트팜 혁신밸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는 농업과 관련한 교육, 경영, 창농, 주거까지 농업인에게 필요한 지원이 원스톱(One-Stop)으로 이뤄진다. 그중에서도 스마트 농업 교육이 핵심을 이룬다. 첨단 기술과 정보통신을 활용한 농업 기술의 확대·보급을 위해서다. 최근 세계 농업은 각종 센서를 이용해 농축산물의 생장, 생육 단계부터 온도·습도·CO2 등의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병충해 등의 피해를 막는 것은 물론 네트워크, 분석 소프트웨어, 스마트기기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추세다. 노동집약형 산업이자 자연 환경에 의존성이 높은 한계를 극복 가능하기 때문이다.스마트팜 전문인력 육성은 청년창업보육센터가 도맡고 있다. 청년창업보육센터는 경영실습장(1.91㏊)과 이론실습장(0.17㏊) 등 2.27㏊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현장 위주의 실습을 통한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매년 만 18세 이상~39세 이하 청년 52명이 스마트 농업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첨단 농업기술은 이미 입소문이 났다. 미래 농업에 관심 있는 다양한 기관·단체들이 찾아와 견학 명소로 자리매김한 상태다.임대 경영도 혁신밸리의 주요 기능이다. 임대형 스마트팜의 온실 규모만 12.75㏊에 이른다. 5.75㏊는 청년을 위한 임대형 스마트팜이고, 나머지 7㏊는 기존 농업인에게 임대하고 있다. 임대형 스마트팜은 온실과 히트펌프, 양액시스템, 지열펌프, 축열조, 폐양액 회수저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임대기간은 최대 3년이다.스마트팜의 주요 재배작물은 딸기, 토마토, 멜론, 오이다. 이외에도 농업용 로봇, 병해충 연구, 플랜트 수출이 특화전략으로 설정돼 있다.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내 실증단지에는 시설재, 기계장치, 농업로봇, 병해충 진단 솔루션 등의 일을 하는 기업, 기관, 대학, 연구소 등이 입주해 있다. 이곳에선 스마트팜 제품과 기술의 품질을 향상시켜 사업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스마트팜 재배 작물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추적인 역할을 실증단지가 맡고 있는 셈이다.혁신밸리 지원센터도 주요 시설 중 하나다. 지원센터 1층에는 R&D 라운지, 오픈강의실, 실증장비실, 카페 및 식당이 위치한다. 2층은 빅데이터센터, R&D연구실, 공용제작실, 회의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내에는 청년 농부를 위한 주거지원 시설도 갖춰져 있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만 18~39세 청년 가구에게는 '청년농촌보금자리' 입주 자격이 주어지는데 월 임대료가 8만원~24만원, 보증금은 500만원~2천200만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더욱이 청년농촌보금자리에는 공유형 주방과 북카페, 공동육아실 등이 있는 커뮤니티센터도 마련돼 있어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거주기간은 2년 단위로 최대 6년. 상주 농업의 혁신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3월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근처인 상주시 모동면에 한국미래농업고등학교가 문을 연 데 이어 2026년 하반기에는 경북도농업기술원이 사벌국면으로 이전한다. 인재 양성과 농업 기술 향상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 국내 농업 혁신을 이끌고 있는 상주경북 서북쪽 내륙에 위치한 상주는 낙동강 상류를 끼고 있어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난해 일찍부터 농경과 목축이 발달했다. 넓은 평야, 적당한 강우량, 풍부한 일조량 등은 상주 농업 발달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더욱이 백두대간의 도움으로 자연재해마저 적었다.천혜 환경을 바탕으로 상주는 농업의 고장으로 이름났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농업이 꽃피었다. 삼백은 본래 쌀, 목화, 누에고치를 뜻했는데 지금은 곶감이 목화를 대신하고 있다. 조선 전기 경상도 전체를 관할하던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위치해 있었던 것을 보면 당시 상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상주는 현재도 농가 수, 농업인구, 농지면적 등 모든 지표에서 전국 탑 10에 드는 농업도시다. 상주 전체 면적은 1천254.78㎢으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여섯 번째로 넓고, 농지면적 역시 2만4천849㏊로 전국에서 여섯 번째 규모다. 농가는 1만2천582가구로 전국에서 네 번째, 농업인구(2만6천146명)는 일곱 번째다. 상주의 감 생산량은 전국 1위며 쌀과 배, 시설오이, 양봉 등의 생산량은 경북 1위다. 현재 상주의 농특산물은 쌀, 곶감, 사과, 포도, 배, 복숭아, 오이 등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상주의 한 해 농업 총생산액만 1조원이 훌쩍 넘는다. 경북에서 농특산물 수출이 가장 많은 상주는 한국 농특산물 수출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베트남과 미국 등 30여 개 나라에 모두 372억원어치(4천564t)의 농특산물을 수출했다. 상주 농특산물 수출을 이끄는 품종은 포도(151억원·736t)와 배(111억원·3천73t)다.상주시는 농특산물 수출 확대를 위해 2017년부터 해외 주요 도시에 상주시 해외 홍보관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홍보관은 뉴질랜드, 대만, 베트남, 독일, 프랑스, 몽골, 홍콩 등 7개 국가의 10개 도시에 모두 12곳이 운영되고 있다.상주시는 2025년까지 '농산물 종합물류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각지에 흩어져있는 노후화된 도매시설을 모아 15만㎡ 규모의 자동화 종합물류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상주시는 농특산물 집하, 패키징, 공판 등 전통적인 공판장의 기능에 유통, 교육, 문화 기능까지 더할 예정이다.상주시는 매년 엄청난 규모의 농업·농촌 예산을 집행하며 농업을 지원한다. 올해 상주시의 농업·농촌 예산은 2천억원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부터 2026년까지 4년 동안 스마트 농업 육성, 농촌 소득작물 발굴, 청년농업 활성화 등에 모두 1조원이 넘는 농업·농촌 예산을 편성해 투입할 심산이다. 김영록 상주시 농업정책과장은 "기존 농업 분야별 지원사업을 보강하고 스마트 농업 등 첨단농업 육성사업을 적극 발굴해 청년 농부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해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농업 혁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 기자 zone5@yeongnam.com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청년창업보육센터 교육생들이 경영형 실습온실에서 딸기모종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면적만 42.7㏊에 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지능화 농장이다.실증단지와 유리온실 등을 갖춘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전경.스마트팜 혁신밸리 직원이 빅데이터관제실 상황판을 보고 있다.매년 가을이면 상주 곳곳에서 곶감을 만드는 작업이 이뤄진다.
[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8] 영양의 석탑들
탑은 묘였다. 석가모니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었다. 불상은 더 많은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해 나타났다. 절집은 탑과 불상을 위해, 그것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절집이 사라진 탑, 절집보다 작아진 탑, 논 가운데 혼자 서있는 탑, 마을의 한가운데서 집들에 둘러싸인 탑, 천변의 풀밭에서 나날이 늙어가는 탑에서 보이는 것은 탑이 아니다. 그것은 간절한 기원, 지극한 정성, 무수한 발자국 소리다. 그것은 살아있었던 사람들의 것이고, 현재적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오래된 호흡이며,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의 증여가 되어 돌아오는 현재다. 국보 187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 조성 추정보물 610호 현리삼층석탑 9세기 건립12지신상·8부중상·사천왕상 등 새겨현리 모전석탑, 감실 당초문양 특이◆ 입암면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신구리 삼층석탑, 신사리 석탑첩첩으로 둘러싼 검푸른 산들은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장엄하다. 소리도 없이 흐르는 강물은 소쇄하고 물가의 대지는 텅 비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국보 187호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이 자리한다. 진입하면서 바라보면 자연의 스케일 때문에 그리 크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탑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산과 물과 대지로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듯 팽팽하고 조밀한 시선이다. 바람마저도 저 시선의 언저리를 맴돌다 떠날 것 같다.산과 물의 골짜기라는 산해리의 반변천 변이다. 마을 이름이 봉감(鳳甘)이어서 이 탑은 오래전부터 봉감탑이라 불렸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모전석탑과 전탑 대부분이 긴 시간 동안 파손되고 결실되어 그 원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참 귀하다. 무엇보다도 이 탑은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해체되고 연구되고 복원된 유일한 탑이라 한다. 탑은 굉장히 크다. 높이는 11.3m, 초층의 너비는 3m가 넘는다. 토석을 섞어 만든 단층기단 위에 2단의 탑신 받침을 쌓고 수성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5층의 탑신을 쌓아 올렸다. 1층의 탑신에는 화강암 테두리의 문이 남쪽으로 열려 있다. 속은 어두워 보이지 않지만 직사각형의 방이라 한다. 사리함이 있었을 듯한데 함의 조각만 발견되었을 뿐 사리구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 주변에서 기왓장과 청자 조각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에 저 모전석탑의 규모에 맞는 큰 절집이 있었을 법하나 그에 대한 기록이나 전해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반변천 물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오르면 입암면 소재지인 신구리에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84호인 '영양 신구리 삼층석탑'이 자리한다. 조금은 한산한 신구2리의 마을 안, 조선 중기에 지어진 약산당 바로 앞이다. 2층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소박한 모습으로 신라 시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1층 탑신석 상부에는 직사각형 사리공이 있었으나 사리 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옆에는 마멸이 심한 불상 하나가 앉아 있다. 작고, 훼손이 심한 데다 보수의 흔적마저 보인다. 석탑과 석불좌상은 마치 보리수 아래의 싯다르타 같다. 반변천 서편 신사리 새골마을 입구에도 작은 석탑이 있다. 그저 '영양 신사리 석탑'이라고 불리는 이 탑은 훼손된 탑신부 부재들을 이리저리 쌓아 놓아 간신히 돌탑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고 건립 연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새골은 고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고 배산인 부용봉에는 산성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석탑은 마을의 선두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 제 모습은 잃었지만 여전히 강건해 보인다. 흩어진 부재를 수습해 쌓아 올린 이는 누구였을까. ◆ 영양읍 현리 오층모전석탑, 현리 삼층석탑, 화천동 삼층석탑반변천을 거슬러 올라 영양 읍내로 들어서기 직전에 현리라는 마을이 있다. 원래 영양현의 읍치였던 곳으로 예전에는 현동이라 불렀다. 천의 남쪽은 현2리, 북쪽은 현1리다. 현2리 반변천 변에 오층의 모전석탑이 자리한다. '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이다. 석재를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축조한 이 탑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서리 돌들이 둥글고 부드러워 시간의 흔적이려니 했는데 그리 치석한 것이라 한다. 1층의 탑신 남쪽에 감실이 있고 안에는 최근에 모신 듯한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감실의 문설주에 새겨져 있는 당초문양이 특이하다. 일제 강점기 때는 4층 일부까지 남아 있었다 한다. 이후 2층까지만 남아 있던 것을 1979년경에 5층으로 복원했다. 해체복원과정에서 일부 변형되었지만 봉감탑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고 같은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최근 보물 2천69호로 지정됐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인 영성사(永成寺)가 이 탑을 지키고 있다. 현리 오층모전석탑에서 반변천 너머 들판을 바라보면 영양로 고가도로의 다리 사이로 쓸쓸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보물 610호인 '영양 현리 삼층석탑'이다. 탑의 높이는 4.27m로 아담하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아래층 기단에는 12지신상, 위층 기단에는 8부중상, 1층 탑신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구성과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삼층석탑에서 150여m 떨어진 곳에는 2.1m 높이의 당간지주가 하나 서 있다. 둘이어야 하는데 하나다. 장대를 꽂는 구멍이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깊게 파였다. 주변에 신라와 고려 시대의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저 너른 들판이 옛 절집의 규모를 상상케 한다. 현리의 동쪽으로 반변천의 지류인 화원천을 따라가면 대천리 지나 화천리다.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물이 화원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천 따라 200여m를 들어가면 몇 채의 민가에 둘러싸인 삼층석탑이 있다. 보물 609호인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현리 삼층석탑과 '쌍둥이 탑'으로 불린다. 축조연대와 조각장식, 전체적인 모양 등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한 석공의 손에서 두 탑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화천리는 영양읍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가의 마을이다. 고개를 넘어 고을과 고을을 오가던 많은 사람들의 걸음이 이 탑 앞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탑신에 새겨진 사천왕이 발밑에 악귀를 꽉 딛고 서 있다.◆ 영양읍 삼지리 모전석탑과 일월면 용화리 삼층석탑영양읍 북쪽에 삼지리가 있다. 세 개의 연못이 있어 '삼지'다. 아주 오래전 연못은 반변천이었으나 어느 날 천지가 변하여 못이 되었고, 또 어느 날 못에는 연꽃이 피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중턱에 신라 시대 고찰인 영혈사가 있었다고 전한다. 절집은 400여 년 전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연대암이 들어섰다.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사월(沙月) 조임(趙任)이 임진왜란 이후 지은 암자다. 암자 뒤편에는 자연 석굴이 있는데 '영혈(靈穴)'이라는 샘이 솟는다. 18세기 초의 기록에 따르면 영혈에서 기우제를 올렸는데 영양의 진산인 일월산보다 먼저 제를 올리는 영험한 샘이었다고 한다. 암자의 오른쪽 절벽 끝 햇살이 스며드는 자리에 전탑이 서 있다. 과거 영혈사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없어 '삼지리 모전석탑'으로 불린다. 삼국통일 이전에 만들어진 호신불이라 하니 탑은 천년도 더 된 셈이다. 높이는 3.14m로 원래 3층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2층까지만 남아 있다. 1962년 탑을 수리할 때 감실 바닥에서 4좌의 금불동이 발견됐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1998년의 해체 보수 때는 석재 사리함과 사리 1과가 출토되었다. 탑은 오랜 세월 풍화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지만 여전히 당당하다. 탑에서 연지가 내려다보인다. 연지에는 지금도 신라 시대의 연인 법수홍련이 피어난다. 이제 더욱 북쪽으로 거슬러 반변천이 시작되는 일월산으로 향한다. 일월산의 북쪽과 서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반변천을 이루는 깊은 골짜기에 옛날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용들이 모두 뜻을 이루어 하늘로 올라간 뒤 골짜기에는 용화사(龍化寺)라는 절이 지어졌다. 지금은 전설과 오래된 탑만이 남아 있는 그곳이 오늘날 일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마지막 마을인 '용화리'다. 탑은 길가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다. '용화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으로 네 개의 판석을 세워 조립한 기단석 위에 높이 3.41m로 올라 있다. 상륜부는 없어졌지만 안정감 있는 단아한 모양이다. 용화리 삼층석탑을 떠올릴 때마다 푸른 밭의 가장자리에 나 있던 탑으로 가는 희미한 길이 떠오른다. 그 길에 서면 탑은 바다에서 솟은 듯했고, 마당 넉넉한 집에서 들려오던 고추 쏟아붓는 소리가 파도 소리 같았다.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참고=영양군.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문화재연구소.영양군 입암면 산해리의 반변천 변에 자리한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해체되고 연구되고 복원된 유일한 탑이다.영양 현리 삼층석탑영양 삼지리 모전석탑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
2023.10.05
[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8] 태행산 MTB코스
짜릿하고 쫄깃한 다운, 울퉁불퉁한 낙타봉의 연속, 적당하게 까칠한 다운, 시원하게 내리 쏜다, 열심히 쏜다, 샤방하게 달린다, 흙과 자갈과 풀의 상태를 살핀다, 끌바 등의 표현이 있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종종 쓰는 표현이다. 산속을 달리는 자전거를 상상해보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언젠가 엉금엉금 올랐던 산길, 미끄러질 것만 같아 조심스레 빗겨 밟았던 길섶의 풀, 헉헉 거친 숨소리와 가파르게 오르는 심박 수, 후다닥 잰걸음으로 달려 내려갔던 내리막길, 탁 트인 곳에서 내 몸을 감싸고 지나가던 바람 같은 것들. 산악자전거 챔피언 네드 오버렌드는 이렇게 말했다. "산악자전거는 사람들이 환경 보호론자가 되도록 도와준다. 산악자전거는 자연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다."2009년부터 5~6월 청송군수배 대회올 450여명 참가 전국구 대회 명성크로스컨트리·다운힐 등급별 열려울퉁불퉁한 낙타봉·울창한 숲으로MTB의 묘미 맘껏 즐길 수 있는 곳◆산악자전거 197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북쪽 마린 카운티(Marin County)에 있는 타말파이스(Tamalpais) 산에서 젊은이들이 낡은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내려왔다. 그들은 그저 재미로 산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점차 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들이 늘어났고, 험한 산길에서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자전거도 만들었다. 산악자전거 초기에 라이더들이 가장 선호한 것은 두꺼운 바퀴의 자전거였다. 그들은 두꺼운 바퀴의 자전거를 개조해서 산길을 달렸고 울퉁불퉁한 지면 위를 달리고 도랑을 뛰어넘고 인근의 숲을 돌아다니거나 호수에 자전거를 담그기도 했다. 이후에는 변속기를 달았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산악자전거라고 부르는 자전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1976년 10월21일, 마린 카운티의 젊은이들은 누가 산에서 가장 빨리 내려오는지를 겨뤘다. 경기는 타말파이스 산에 있는 소방도로를 달려 내려오는 다운힐 방식이었다. 그것이 최초의 산악자전거 대회다. 현재의 산악자전거는 산악능선을 질주하기 위해 바퀴의 지름이 20~27인치로 도로 사이클보다 작고, 두께는 도로용보다 1.5~2.5배 두꺼워 모터크로스(오토바이형) 자전거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높은 충격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프레임과 구동계열 부품, 특수 충격 흡수장치와 강력한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으며 특히 경사진 길을 보다 쉽게 오르내리기 위해 27단, 30단, 33단 등의 고단의 기어가 장착되어 있다. 경기 종목으로는 험난한 산악 지대를 달리는 크로스컨트리와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힐클라이밍(Hill Climbing),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다운힐(Down hill), 2명이 한 조가 되어 언덕을 내려오는 듀얼슬라럼(Dual slarom), 인공적으로 설치한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트라이얼(Trial) 등이 있다.이 가운데 크로스컨트리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하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경기 코스는 오르막과 내리막, 직선로와 굴곡이 골고루 섞여 있어 여러 가지 기술을 종합적으로 숙련해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은 선수가 올바른 코스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일정 간격으로 표지판을 설치해야 하며 때에 따라 위험 지역을 알리는 표시와 방어벽 설치도 요구된다. 산악자전거 경기 종목 중 가장 화려하고 인기가 높은 것은 다운힐이다. 3~4㎞ 거리를 최고 속도 80㎞로 3~5분 내에 내려오는 경기로 박진감이 넘친다.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를 내는 경기라 항상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출전자는 오토바이 헬멧과 같이 머리 전체를 감싸는 헬멧과 팔, 다리, 어깨, 가슴, 등 온 몸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출전한다. 산악자전거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80년대 초다. 이후 큰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많은 동우회가 운영되고 있고 각종 대회들도 개최되고 있다.◆청송군수배 전국산악자전거대회매년 5월 혹은 6월이면 수백 명의 자전거 탄 사람들이 청송으로 몰려온다. 청송 태행산 MTB 코스에서 열리는 청송군수배 전국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청송군은 2008년 10월 태행산 일대 임도에 MTB 코스를 개설하고 2009년에 '제1회 청송군수배 전국산악자전거대회 및 국가대표 2차 선발전'을 개최한 이후 해마다 대회를 열고 있다. 태행산 MTB코스에는 3종의 표지판 84개가 설치되어 있고 종합안내판과 자전거거치대, 안전을 위한 목책 등도 설치되어 있다. 경기 종목은 다운힐과 크로스컨트리며 각 종목 등급별 수상자에게 메달과 상장, 시상금이나 시상품을 수여한다. 보통 대회 첫날에는 초급, 중급, 상급 등 6등급의 다운힐 경기가 치러진다. 둘째 날에는 초급, 중급, 남자부, 학생부, 여자부 등 22등급의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펼쳐진다. 각 코스에 초, 중, 상급으로 나뉘어 경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다양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한다. 2023년 제13회 청송군수배 산악자전거대회는 지난 6월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간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45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해 명실상부한 전국대회로 자리매김했다.태행산은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와 청송읍 월외리에 걸쳐 있다. 높이는 933.1m이며 동서 방향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이 일대에서 비교적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의 군락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산악자전거 코스는 지형이 만든다. 태행산 코스는 울창한 숲, 굴곡이 심한 계곡과 능선, 시원스러운 풍광으로 산악자전거의 묘미를 맘껏 즐길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태행산에서 열리는 청송군수배 산악자전거대회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기다려지는 대회로 통한다. 산소카페 청송의 자연과 함께하기에 참가 그 자체로도 이벤트라 여긴다. 대회 출발지점은 청송읍 부곡리 달기약수터가 있는 약수공원 공영주차장이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관광객과 주민들이 대회를 응원하러 모이고 카메라, 영상, 식사, 심판, 수송 등을 담당하는 운영 스태프들, 경찰관과 의료진들, 동호회 회원들 등으로 떠들썩하다. 개회식에는 다양한 경품이 걸린 추첨행사도 진행한다.◆태행산 MTB 코스오전 10시 정각, 시총과 함께 선수들이 달려 나간다. 먼저 1그룹인 상급 일반부, 대학부, 고등부, 중등부와 중급부 전체, 초급 시니어부, 베테랑1, 2부가 출발하고 5분 뒤 2그룹인 초급 그랜드마스터부와 마스터부가 출발한다. 초반은 도로구간으로 4.5㎞의 도로를 달리게 된다. 약한 내리막과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는 길이다. 누적거리 3.6㎞ 정도에 한번 짧고 굵게 오르는 300여 m의 오르막이 있다. 선두에서 후미를 쪼개놓기 위해 확 치고 오르며 강하게 달려 오르는 구간이다. 짧지만 12~13% 경사로 오르는 도로구간이기에 순간 심박이 꽤 오른다. 다시 내리막이다. 약 500m쯤 시원하게 내리쏜 뒤 옹점교 다리를 건너기 전 우회전 해 평지구간을 신나게 달려 나간다. 5.5㎞ 지점에서 비포장으로 바뀌고 7㎞ 지점 정도가 되면 슬슬 오르막으로 변하는 것이 체감 된다. 선두에서는 강력하게 도망가며 속도를 내고 뒤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게 달려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힘 손실이 많은 구간이다. 8㎞ 지점부터는 경사가 강해지는 임도다. 경사도는 15~22% 정도까지 변하고 속도는 떨어진다. 경사가 센 구간에서는 앞바퀴가 들썩들썩하는 느낌까지 든다. 다행히 이 경사는 그렇게 길지 않고 약 300m 급경사 오르막을 달려 코너를 돌면 어느 정도 경사가 완만해지기 시작한다. 9㎞ 지점부터는 약간 더 완만해지는 편이라 여기에서부터는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가기 좋다. 간격을 벌리기 위해 더 열심히 쏘는 선수들도 많다. 9.8㎞ 지점부터 태행산 정상 10.8㎞ 지점까지는 4~5% 경사의 완만한 오르막으로 속도를 좀 더 높여서 달릴 수 있다. 정상을 500여m 정도 앞두면 임도 옆으로 목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좀 더 속도를 높이고 힘을 내 영차! 10.8㎞ 지점 정상을 통과하면 바로 신나는 내리막이다. 13㎞ 지점까지 2㎞가 넘는 내리막으로 중간에 두 차례 정도 짧게 치고 오르기도 하지만 굉장히 속도가 붙는 고속 내리막 구간이다. 13㎞ 지점 이후로는 계속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울퉁불퉁한 낙타봉이 연속되고 짜릿하고 쫄깃한 다운과 적당하게 까칠한 다운, 급 오르막 구간 끌바도 이어진다. '끌바'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다는 뜻이다. 좁은 산길을 추월해 나갈 때는 '좌측으로 갈게요' '우측으로 갈게요' 소리도 지른다. 누적거리 17.5㎞ 지점이 되어야 오르막이 끝난다. 그때까지는 죽기 살기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이다. 17.5㎞ 지점을 통과하면 800여 m의 짧고 신나는 내리막이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만나게 되면 본격적인 레이스 코스는 거의 끝났다고 봐도 된다. 이제 2㎞ 정도 남아있는 대회 코스, 마지막 500m는 샤방하게 달려 피니시 지점을 통과한다. 서로를 축하하는 환호가 터진다. 이들에게 수상은 뿌듯한 기쁨이고 완주는 더없는 기쁨이라고 한다. 라이딩 후 달기약수로 만든 닭백숙은 "끝내준다."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참고=청송군. 대한자전거연맹. 체육학대사전청송군 진보면 괴정리와 청송읍 월외리에 걸쳐 있는 태행산은 국내 산악자전거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울창한 숲, 굴곡이 심한 계곡과 능선, 시원스러운 풍광이 어우러져 산악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이다. 〈청송군 제공〉지난 6월 태행산에서 열린 '제13회 청송군수배 전국산악자전거대회' 참가자들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청송군 제공〉
2023.10.04
[박한우의 웹3.0과 밈코인] <17> 읽기에서 쓰기로 그리고 이제는 페이(pay)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서울에 있는 한 언론사의 관계자가 연락을 해왔다. '웹3.0과 밈코인' 시리즈를 잘 읽고 계시다며, 언론사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현재 이 분야 전문가들도, 연구기관도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뉴스 제작부터 유통까지 기존 공급망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하지만, 진단이 아닌 처방을 원하는 언론사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병원 처방이 환자의 특성에 따라 다르듯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회사를 위한 웹3 기반 뉴스와 콘텐츠 전략도 회사의 특성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웹1)가 정보의 보편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언론사닷컴에서 뉴스를 주로 읽었다.웹2가 되면서 읽기(문해력)보다 쓰기(참여성)가 더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언론사닷컴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포털뉴스의 댓글 공간, 동호회 카페,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뉴스 공유를 통해 감정을 표현했다. 때때로 의견 충돌을 통해 재미를 찾고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언론사닷컴이 웹1에서 웹2로 전환하면서 중개자(콘텐츠 유통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포털과 소셜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데스킹을 맡은 국장이나 경영진은 언론사닷컴을 단순히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수준의 조직으로 저평가했기 때문이었다. 포털에 콘텐츠를 제공해 주면서도, 낡은 관행에 빠져 페이퍼 저널리즘이 최고라는 허상을 좇는 언론사는 아직 많다.독자와 시청자는 뉴스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 직접 생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웹1에서는 콘텐츠를 읽는 데 돈이 들었는데, 웹2에서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돈이 들지 않게 되어,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생산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웹3은 웹1의 장점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인터넷에서 웹2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던 중개자가 무력화될 수 있다. 분산적 특성을 지닌 웹3을 작동시키는 스마트 계약이 신뢰할 수 있는 중개자의 필요성을 없애기 때문이다.또한, 포털과 소셜미디어에서 이용자가 작성한 희노애락의 콘텐츠와 사람들과 공유한 정서적 유대가 플랫폼 회사의 알고리즘에 의해 이용당한다는 이용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회의와 절망도 포털과 소셜미디어가 지배한 중개자의 종말을 요구한다.언론사는 이제 블록체인에서 스마트 계약 코드를 구현하여 제3자 없이 생산자와 이용자 간의 계약을 쉽게 실행하고 집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ID 시스템이 필요한 요소이다.블록체인 중에서도 비트코인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구동되는 반면, 다양한 디애플리케이션(dApp)이 실행되는 스마트 계약용 블록체인은 자기인증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탈중앙화 ID에 대한 인식과 초기 투자가 없다면 어떤 언론사도 현재로서는 웹3으로 나아가기 어렵다.읽기에서 쓰기로 그리고 이제는 페이(pay)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웹1에서 수용자는 원하는 뉴스를 읽기만 했다면, 웹2에서는 뉴스에 대한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웹3에서 뉴스를 통해 거래하고 싶다는 이용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만이 알고 있는 새로운 소식과 현장감 있는 사진으로 보도 자료를 작성하여 배포하고 싶다.그리고 이 뉴스를 통해 언론사가 수익을 얻었다면, 나의 노력이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보상받기를 원한다. 그 보상으로는 언론사가 생산한 뉴스를 읽고 반응하는 데 지불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해당 언론사의 경계를 넘어 원하는 물건을 쇼핑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 이러한 웹3 서비스는 보편적 ID가 원활히 작동하는 스마트 계약 없이는 불가능하다.이 과정에서 대화형 AI와 생성형 언어모델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반 이용자는 해당 언론사와 제휴한 생성형 AI 서비스를 통해 스트레이트 기사뿐만 아니라 기획 기사까지 작성할 수 있다. 뉴스룸의 데스킹은 이제 사람들이 매일 올리는 콘텐츠의 팩트체킹으로 변화해야 한다. 사실 웹3에서 팩트체킹의 개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뉴스 생산 과정에서 이용자는 시공간에 대한 자기인증 프로토콜을 이미 사용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콘텐츠의 품질에 대한 사전 검증은 AI의 몫이다. 또한, 언론사는 이용자의 자발적 기여로부터 얻는 뉴스와 콘텐츠와 그들의 체류 시간으로부터 발생한 광고 수입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언론사가 상생을 위한 제도적 노력을 갖추지 않으면, 이용자는 스마트 계약의 블록체인이 존재하더라도 결국 또 다른 신뢰할 수 있는 중개자를 찾을 것이다.결론적으로, 언론사는 웹3 시대에 급격히 달라지는 이용자의 수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변화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보고 대응해야 한다. 뉴스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이용자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처방전을 발급해도 약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약값을 지불해야 하듯이, 언론사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정기적인 진단을 통해 진행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쇠퇴하는 뉴스 미디어 산업을 구제할 결정적인 처방전만을 찾지 말고, 조금씩 고쳐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남대 교수·사이버감성연구소 소장, nft-korea.eth>박한우 교수는?박한우 영남대 교수는 대구에서 초중고를 보내고 한국외국어대(학사), 서울대(석사), 미국뉴욕주립대(SUNY-Buffalo)(박사)를 졸업했다. 네덜란드 왕립아카데미(NIWI-KNAW)와 옥스퍼드인터넷연구원(OII) 등 글로벌 연구기관에서 근무했다. 영남대 부임 이후에 WCU웹보메트릭스사업단, 세계트리플헬릭스미래전략학회, 사이버감성연구소 등을 주도했다.물리적 경계 속에 한정되어 있던 인간관계와 시대이슈가 온라인을 통해서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기존 법칙에 도전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빅데이터 네트워크 방법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데이터 기반 주요 연구방법론인 과학계량학(scientometrics), 하이퍼링크분석(hyperlink network analysis), 웹계량학(webometrics), 대안계량학(altmetrics), 트리플헬릭스(triple helix) 등을 국내에 소개하고 선도해 왔다. 하이퍼링크 연결망은 INSNA(International Network for Social Network Analysis) Connections가 출판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 목록에 포함되기도 했다.SCImago-EPI Award, ASIST Social Media Award 등 국제 저명 학술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Quality & Quantity, Journal of Contemporary Eastern Asia 편집위원장(EIC)을 현재 맡고 있다. 최근에는 Scienceasset.com의 웹3 국제학술지 ROSA Journal의 초대 편집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사회연결망과 빅데이터를 통해서 데이터와 정보의 흐름 및 지식생산과 혁신체제 관련 이슈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로서 SSCI급 저널에 100편 이상의 논문을 출판했고, 최근 2023년 5월에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nternational Communication Association)가 선정하는 석학회원(ICA Fellow)으로 뽑혔다.글로벌 연구성과에 못지않게, 이미 오래 전부터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가 심해지면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등 국내외 이슈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창의적 지식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활용에 관한 중앙정부 및 지자체 자문위원으로서 이 분야에서 소외계층의 삶의 개선과 지역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로 보는 우리 지역 세상을 탐구하자는 방향에서 '빅로컬 빅펄스(Big Local Big Pulse)' 랩을 운영하면서, 데이터 기반한 이슈탐지와 융합학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023.10.01
[논설위원의 직터뷰] 개그맨 겸 대학교수 김홍식씨 "만만하지 않은 직업 '김샘'…폰게임보다 더 흥미 있는 수업 다짐"
"너그 아부지 뭐하시노?" 선생님들이 대놓고 이렇게 말한 시절이 있었다. 영화 '친구'에서 담임교사를 연기한 배우 김광규의 명대사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오래전 KBS TV '폭소클럽'의 '떴다 김샘'에 출연한 개그맨 김홍식의 이 대사가 귀에 더 익다. 얼마 전 TV 토크 프로그램에 나온 그를 봤다. 재담(才談)이 여전했다. 하 수상한 작금의 세상, 당최 웃을 일이 없다. 문득, 개그맨인 그는 웃으며 살고 있는지, 웃으며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얘길 듣고 싶었다. 그의 인생 스토리도 함께. 틀에 박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관계가 아닌 오랜 개인적 인연으로서. 그를 만났다. '떴다 김샘'에 나올 때가 서른다섯, 지금은 쉰넷이다. 트레이드 마크인 '헌팅 캡'은 그대로였다. 이젠 턱수염 말고도 콧수염도 있다. 또 어엿한 대학교수가 돼 강단에 서고 있다. 근데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인생의 등불과도 같았던 어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신 후여서다. 그는 상을 치른 뒤 한 달간 매일 어머니 묘소에 들렀다고 한다. "약속엔 10분 일찍 나가 기다리고, 남한테 뭔가를 받으면 꼭 배로 돌려줘래이." 생전 어머니가 늘 강조하신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숙연한 분위기에서 첫 질문을 던졌다.▶대학에선 무역학도, 사회 첫발은 이벤트 MC. 흔치 않은 진로였습니다. "글쎄요. 천상 '마이크 체질'이랄까. 어릴 때 소풍·운동회 장기자랑 사회를 도맡았죠. 무역학과(영남대 87학번)는 그냥 취직 잘된다 해서…. 입학 후 첫 신입생 환영회에서 사회자를 본 순간 '히어로'처럼 느껴졌어요. 강렬한 그 첫인상이 절 이벤트 MC로 이끌었죠. 초·중·고 때 했던 가락도 있어서. 몇 가지 스킬을 익혀 MC 알바를 뛰었죠. 학과·동문회 페스티벌….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마냥 대학 등 젊은 층 행사를 할 순 없었죠. 졸업 후엔 '무대'를 바꿨어요. 회갑·칠순·팔순 잔치 등으로. 그렇게 제 첫 명함을 파게 된 겁니다.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트로트 가수 이찬원도 같은 영남대 상대 출신인데, 재학 중 이벤트 MC로 이름을 날렸다네요. '동종업계 선후배' 사이인데, 언젠간 한번 만나겠죠.(웃음)"▶'김홍식' 하면 '폭소클럽'의 '떴다 김샘'이죠.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는데."'궁하면 통한다' 옛말 틀린 게 없어요. 2004년,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죠. 지인에게 큰돈을 빌려주는 바람에…. 걱정하는 아내에게 '1년 안에 답을 낼게'라고 큰소리쳤죠. 믿는 구석도 없이. 정 안되면 쪽지('성공해서 돌아올게, 미안해') 써놓고 떠날 생각도 했어요. 그러던 중 '폭소클럽'에 평소 존경하는 MC 선배 한 분이 나오게 됐어요. 근데 무대에서 진땀을 흘리는 선배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어요. '내가 만약 저 무대에 선다면…' 평소 운전 중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해요. '김샘' 캐릭터도 운전 중에 나온 것입니다. 학창시절 별의별 선생님이 다 있었잖아요. 영화 '선생 김봉두'처럼 돈 밝히는 선생님도 있었고, 영화 '친구'의 단순무식한 선생님도 있었고. '두 캐릭터를 짬뽕해 보면 어떨까.' 폭소클럽 담당 작가에게 제안했죠. 결국 'OK' 사인을 받아 코너를 따냈어요. 결과는 대박이었죠.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내 인생의 큰 재산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떴다! 김샘' 인기에 힘입어 '투사부일체' 등 영화에도 나왔죠. 큰물에서 계속 놀 수 있었는데, 왜 대구에 남았는지."제가 전국구 스타가 된다고 쳐요. 대구를 떠나 서울에 살아야 하고, 친한 친구도 자주 만나기 어렵고. 많은 걸 포기해야겠죠. '가늘고 길게 살자'고 다짐했죠. '팔자를 고쳤어도 난 변한 게 없다.' 그런 모습을 주위에 보여주고도 싶었어요. 저보다 앞서 방송에 진출해 변한 사람을 많이 봐 온 터라,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대학교수로서 인생 3라운드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학교 생활은 재미있는지."2009년 개그맨 남희석씨 추천으로 강의(대경대 초빙교수)를 시작했죠. 지금은 사학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전임교수가 됐고요. '공동체 질서와 삶' '대인관계' '리더십'을 가르쳐요. 어때요, 어울리나요? '짝퉁 샘'에서 진짜 선생이 됐지요.(웃음) 처음엔 직업병인지, 과거 '김샘' 이미지로 학생들을 웃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연차가 쌓일수록 '재미'가 다가 아니더라고요. 짧은 한 시간이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요. 수업 내용 중 뭐가 좋고 안 좋은지를. 수업 중 휴대폰 게임 하는 친구를 꾸짖을 순 없어요. '내 수업이 지루하다'는 방증 아니겠어요. 게임보다 더 흥미를 주는 교수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지요. 아무튼 선생이라는 직업, 결코 만만치 않아요. 그렇지만 다양한 분야에 있는 졸업생들을 보면 큰 보람을 느껴요."▶요즘 '일타강사 김샘'으로도 유명하던데요. "다 '김샘' 캐릭터 덕분이죠. 강연 활동의 피크 시절은 지났죠. 지금은 '하향 안정화'에 있지만 여전히 소중한 밥벌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 강의의 특징은 '주문식'이라는 점입니다. 의뢰 기관에 '원하는 주제'를 먼저 물어 보지요. 이래야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 오거든요. '입맛'을 맞춰 주니까. 청중이 청소년이라면 미리 아이돌 가수 등 그들의 최애 관심사도 함께 공부해 놓고요. 강연 집중도가 확 달라져요. 과거 정보통신부에서 한 강연이 변곡점이 됐어요. 신문 기사에 '김샘, 정보통신부 최고 강사로 등극하다'라는 제목이 뽑혔어요. 강의 평점이 무려 96점. 직전 강연이 황우석 박사였는데 85점을 받았거든요. 강연가로 클 수 있는 기폭제가 됐죠. 이후 관공서 강연 의뢰가 줄을 잇기 시작했어요. 역시 '인생은 타이밍'입디다."▶코로나 팬데믹 땐 강연이 없어 답답했겠습니다."직격탄을 맞았죠.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니. 매출 감소 '100%'. 미치겠더라고요. 학교 말고 내가 뭐라도 일을 더하고 있다는 걸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장 수입도 급감했고요. 이만하면 'N잡러 강박증'이죠? 결국 큰 딸과 함께 밤에 택배 알바를 했답니다. 몸은 고됐지만 저는 물론 딸에게도 '돈보다 값진 그 무엇'을 몸소 느끼게 해 준 일이었죠. 우리, 더 늙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합니데이.(웃음)"▶교육자로서 최근 이슈인 '교권 추락'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겠네요."오래전부터 학부모들을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었어요. 모든 게 가정교육인 것 같아요. 좀 야박한 얘기 같지만, '학부모 과잉 민원'도 그 학부모 윗대로부터의 가정교육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봐요. 과거 사립 중고교 교장 모임에서 '공교육과 학부모' 주제의 강의를 제안한 적이 있어요. 교장들이 좋은 생각이라며 동석한 교육계 윗분에게 건의를 했죠. 근데 그분이 저를 힐끗 보더니 '내가 얘기를 해도 안 듣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더라고요. '하물며 니가 뭐라고'라는 말이 생략된 뉘앙스였죠. 솔직히 자존심 상했죠. 교권이든, 학생 인권이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새겨야 합니다. 임시처방격으로 어느 한쪽을 옹호하면 다른 한쪽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 있잖아요. 양자 관계가 '풍선'은 아니잖아요. 함께 존중돼야 하니까. 서로가 지키지 않으면 안될 강력한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 몫이겠지요"▶과거 영남일보 칼럼에서 '인생 뭐 있나'라는 화두를 던졌지요. 김샘표 '웃으며 사는 법'은 무엇인지. "'그럴 때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 제 카카오톡 대문에 적힌 글입니다. 인생 좌우명이죠. 제 행복감의 원천이기도 하죠. 타인들 때문에 상처받아 화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이 글을 떠올려요. 귀신같이 그런 감정이 사라진답니다. 습관적으로 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다시피 하니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는 것 같아요. 기자님도 한 번 실천해 보세요. 인생 뭐 있나요."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팬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식당 등에서 가끔씩 저를 알아보는 분들에게 물어 봐요. 제가 어떤 이미지였냐고. '촐랑촐랑 까불지 않고도 대중을 즐겁게 해줬다'고 덕담을 해주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언젠간 잊히겠지만 '골치 아픈 일도 쉽게 풀어주는 선생이었다'라고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김홍식씨가 화이트보드에 적은 인생 좌우명 글귀 '그럴 때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를 가리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이 글만 떠올리면 웃고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2023.09.27
[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7] 청송의 아름다운 등산코스
언젠가 가을 삼자현을 넘어 청송으로 들었을 때, 탄성조차 삼키게 하는 세상 때문에 애달팠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산행(山行)이라는 시에서 '멀리 가을 산 위로 돌길이 비껴 있고/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보이네/ 단풍 든 숲의 저녁 경치가 좋아 수레를 멈췄더니/ 서리 맞은 잎이 봄꽃보다 더 붉다.'라고 했는데, 그 가을 주왕산에서 두목의 이름 위에 내 이름을 얹고 싶었다. 산 오르기 참 좋은 계절이다. 가만 청송자연휴양림을 걸어도 좋고, 신성계곡을 쉬이 흘러도 좋겠지만, 고단하고 부단히 산을 올라 큰 숨을 푹푹 내 쉬는 것이 오늘은 조금 더 좋겠다. 알다시피, 큰 숨은 몸에 좋다.5.3㎞ 주왕계곡 대표 탐방코스 꼽혀대전사~주봉~후리메기삼거리 코스탐방로 잘 정비 초보자도 산행 가능난이도 높은 가메봉코스 동해 조망얼음골 출발 등산로 가족산행 적당◆ 주왕산의 등산 코스, 편안하게 또는 약간 고되게주왕산에는 등산 코스가 많다. 주왕산국립공원에서 추천하는 코스는 7개나 된다. 그러나 금은광이, 후리메기, 가메봉 등의 분기점을 활용해 조금 더 길게 혹은 조금 더 짧게, 조금 더 편안하게 혹은 조금 더 멋지게 새로운 코스를 개척하는 사람들도 있다. 첫 번째는 주왕계곡 코스다. 대전사에서 주방천 계곡을 따라 용추협곡과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를 지나 내원동 옛터까지 이어지는 5.3㎞ 코스로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주왕산국립공원의 대표 탐방코스로 용추폭포까지는 유모차나 휠체어도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용추폭포에서 내원동 구간에는 돌길이 많지만 목재 데크나 교량 등이 설치되어 있고 기울기가 완만해 운동화로도 가능하다. 절구폭포는 등산로에서 살짝 이탈해 200m 정도 들어가야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보통 용연폭포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명소를 따라가는 탐방객이 다수다. 대전사에서 자하교까지 1.3㎞는 맨발로 걷기에 좋고 발 씻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수달래가 피어나는 봄과 단풍이 물드는 가을을 최고로 꼽지만 사계절 멋있지 않은 날이 없는 길이다. 두 번째는 주봉코스다. 주왕산 산행코스 중 가장 일반적인 코스로 잘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대전사에서 '주봉 마루길' 따라 주봉, 칼등고개갈림길, 후리메기삼거리를 지나 주방계곡으로 내려오는 10.1㎞ 길로 4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계단으로 오르며 시작하는 경사진 길이라 다소 힘들 수 있지만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가면 어렵지 않다. 주봉에서 후리메기까지는 내리막과 계단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주방계곡에 닿으면 조금의 수고를 더해 용연폭포와 절구폭포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 울창한 숲길이라 여름과 가을을 추천한다. 세 번째는 장군봉 금은광이 코스다. 대전사에서 장군봉, 금은광이 삼거리에서 용연폭포, 주방계곡으로 내려오는 11.8㎞ 길이다. 기암을 바라보며 가파른 데크길을 오르며 시작한다, 장군봉까지는 2㎞로 급경사의 암벽 길이라 난도가 높다. 늦가을의 이른 새벽, 아직 사위가 어두울 때 출발한다면 장군봉 가는 길에 광활한 구름바다를 볼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 깊고 넓은 운해를 보려고 미리 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가을에는 단풍과 어우러진 기암과 주봉의 산세를 탁 트인 시야로 감상할 수 있다. 장군봉에서 금은광이 능선 구간은 두어 차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주로 평탄하다. 오솔길 양쪽으로 아름다운 숲이 우거져 있어 봄의 연두가 특히 아름답다. 금은광이 삼거리에서 용연폭포 구간은 내리막길로 무릎을 잘 보살펴야 한다. 네 번째는 가메봉 코스다. 대전사에서 후리메기 삼거리까지는 주봉코스의 하산 길과 동일하다. 그러나 후리메기에서 가메봉까지는 난이도 '매우 어려움'으로 주왕산 산행 코스 중에서도 가장 험난하고 고된 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천천히 치고 올라가 가메봉 정상에 닿으면 힘들었던 기억은 완벽하게 사라진다. 만추의 날이면 낭떠러지 아래로 보이는 절골의 모습에 숨이 턱 막힐 것이고 화창한 날이면 저 멀리 보이는 영덕 바다에 탄성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기상 여건에 따라 광활한 운해도 볼 수 있다. 대전사에서 가메봉까지는 7.2㎞로 약 4시간 5분 소요된다. 왕복 8시간이 넘으니 출발과 하산 시간을 잘 계획해야 한다. ◆ 주방계곡으로 수렴되는 긴 길들다섯 번째는 절골 코스다. 절골분소에서 대문다리와 가메봉을 거쳐 대전사로 하산하는 장장 13.5㎞ 길로 7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보통 대문다리까지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이 많고 가메봉 코스에서 절골로 내려가는 산행 꾼도 있다. 여섯 번째는 월외 코스다. 달기약수로 유명한 월외리 탐방지원센터에서 노루용추계곡과 달기폭포, 너구마을을 지나 금은광이 삼거리를 통해 장군봉, 대전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너구마을 입구까지는 시멘트 포장길로 멋진 풍경과 함께 설렁설렁 걸으면 된다. 너구마을을 지난 뒤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 산길이 1시간 정도 이어지다 금은광이 삼거리를 바로 앞에 두고 오르막이 시작되고 이후는 장군봉 코스와 겹친다.일곱 번째는 갓바위 코스로 주왕산국립공원의 신규 탐방로다. 영덕의 달산면 용전리 갓바위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소원성취의 전설을 가진 갓바위, 주왕산국립공원의 동쪽 끝자락인 대궐령, 청송과 영덕의 경계인 왕거암을 지나 내원마을에서 주방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길이다. 총 13.3㎞로 갓바위탐방지원센터에서 대궐령까지 경사가 심한 편이고 전체 거리가 멀어 숙련된 성인이 적절한 장비를 갖추고 시간을 철저히 계산해가며 산행해야 한다. 갓바위와 대궐령 전망대에서는 영양과 영덕 일원의 풍력발전단지가 조망되고 날씨가 좋으면 동해까지 보인다. 대궐령에서 왕거암으로 가는 길은 동해를 바라보며 걷는 원시림이다. ◆ 청송 얼음골에서 출발하는 가벼운 등산청송 얼음골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도 있다. 첫 번째는 해월봉 코스로 얼음골 주차장에서 돌탑봉, 해월봉, 구리봉으로 간 뒤 원구리마을로 하산해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산행 거리는 약 5.5㎞이며, 3시간 안팎 걸린다. '여기는 청송 얼음골입니다'라는 입간판을 지나 데크길을 10m쯤 가면 등산로 입구다. 얼음이 언다는 잣밭골 너덜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고 여름에는 폭포, 겨울에는 거대한 인공 빙벽장이 되는 높이 60m의 암벽도 내려다보인다. 원구리 마을로 내려와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너 도로를 만나 들머리였던 얼음골 주차장까지 1.5㎞ 거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 위험한 구간이 없어 가족 산행으로도 추천할 만하다. 얼음골~해월봉 코스 외에도 영덕의 옥계계곡 상류까지 이어지는 코스, 도등기마을까지 이어지는 코스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두 번째는 무장산 코스다. 얼음골 주차장에서 시작해 국화마을, 무장산 정상 갈림길, 632m 봉 데크 쉼터, 국화마을, 무장산 정상 갈림길, 청송 얼음골 아이스 클라이밍 월드컵 경기장을 거쳐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산행 거리는 약 5.7㎞에 시간은 2시간 30분 안팎이 걸린다. 주차장에서 도로 건너편에 '울진장씨 묘도입구' 비석 왼쪽의 계단이 무장산 입구다. 활엽수와 소나무가 주종을 이뤄 삼림욕장을 걷는 기분이다. 굵은 소나무의 허리춤에는 일제강점기와 1960~1970년대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남아 있다. 엄청난 크기의 데크 쉼터가 펼쳐지는 곳이 632m 봉이다. 이곳이 무장산 정상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진짜 정상은 쉼터에서 약 200m 더 가야 한다. 삼각점이 있는 진짜 정상을 밟는 일은 선택이다. 하산은 국화마을로 향하는 경사 급한 길이다. 도로에 내려서면 '산소 카페 청송군' 광고판이 반긴다. 오른쪽에 청송 얼음골 아이스 클라이밍 월드컵 경기장과 인공폭포가 있고 주차장은 왼쪽으로 15분 거리다. 4월 사과꽃 필 무렵이면 부남면에서 얼음골까지는 꽃길이다. 여름에는 얼음골의 서늘한 진가를 경험할 수 있고 가을에는 단풍과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반짝거리며 겨울에는 거대한 빙벽을 마주할 수 있다. 어느 때든 산행 후 얼음골의 약수 한잔은 보약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청송 대전사~주봉~칼등고개갈림길~후리메기삼거리~주방계곡으로 이어지는 '주봉 코스'에는 전망대가 갖춰져 있어 주왕산의 장군봉과 기암, 연화봉, 병풍바위 등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주왕산 주봉 정상부 모습. 대전사와 2.3㎞ 떨어져 있다.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의대협 "법원 행태는 모순…정부 의대생 복귀 호소는 오만" 주장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정부, 대학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 속도"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말띠 5월 18일 ( 음 4월 11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