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레저용으로 부활했다 규제 강화되면서 쇠락 ‘비운의 활’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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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2-10   |  발행일 2012-02-10 제36면   |  수정 2012-02-10
영화 ‘부러진 화살’ 흥행 힘입어 관심 급증
쇠뇌·포차·신기전 등 우리역사에 자주 등장, 진주 청동기유적지서 방아틀 뭉치 출토…
한때 동호인 17만명 유원지 등 석궁장 인기
정부 97년 허가제 도입 신체검사 등 엄격규제
미국·유럽 등지의‘콤파운드 보’처럼 레포츠로 발전 못해
“동물에 스트레스 덜 줘 수렵허가 시범운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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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에 등장한 석궁. 최근 경찰이 국내 석궁 소지자 1천224명에 대한 일제점검을 벌이자 소지자들이 공개를 꺼려 촬영 섭외에 애를 먹었다.

총과 활의 짝퉁인가. 아니면 전통무기인가.

영화 ‘부러진 화살’이 흥행하면서 범행도구로 사용됐던 석궁(石弓)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돌 활’, 즉 ‘돌을 쏘는 활’이란 뜻의 석궁은 칼이나 활을 이용한 수렵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기원전 5세기 때부터 고대 서양과 동양에서 사용했다는 설도 있고, 우리나라에 그 기원을 두는 이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쇠뇌, 중국에서는 ‘노(弩)’라고 불렀으며, 서양에서는 ‘cross bow’라고 불렀다. 경남 진주에서 청동기 시대 단발식 쇠뇌의 방아틀 뭉치가 출토된 적도 있다.

◆역사 속의 석궁

쇠뇌는 고대 전쟁에서 사용된 강력한 무기였다. 일반 활과는 달리 화살을 장전한 다음 격발한다. 즉 화살과 총을 결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노궁(弩弓)은 기계장치를 이용해 여러 개의 화살이나 돌을 연발로 쏠 수 있다. 유럽에서는 10~11세기에 처음 개발된 이후 중세까지 전투에서 중요 무기로 사용됐으나, 15세기 말 화승총이 나타나면서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

고구려 시대의 ‘포차(抛車)’는 쇠뇌를 개량한 것으로 주로 성을 공격하거나 방어할 때 사용됐다. 특히 고구려의 쇠뇌는 중국보다 우수했다고 알려진다.

김덕용 대구양궁협회 전무는 “조선시대 신기전은 쇠뇌의 원리에 화약을 사용함으로써 다연발 로켓추진 화살병기로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동호인만 17만명 ‘레저로 각광’

현대에 와서 석궁은 국내에서 1980년대 초 레저용으로 개발됐다. 80년대 후반부터 일반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일부 석궁 제작업체는 석궁을 수출하기도 했다. 88년에는 대한석궁동호인회가 조직돼 94년까지 매년 두 세 차례 전국대회가 열렸다. 석궁소지가 허가제로 바뀐 97년 1월 이전까지 전국에 17만명의 동호인이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유원지나 공원 등 실외석궁장은 물론, 전자장비나 레이저 설비까지 갖춘 실내석궁장이 생겨날 정도였다. 당시 유행했던 석궁은 최대 사거리 300~400m였지만 주로 30~40m의 과녁을 맞히던 놀이였다. 격발할 때 총과 달리 총성이 없는 데다, 명중여부를 금방 확인할 수 있고 배우기가 쉬워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길 수 있었다.

◆갑자기 엄격해진 소지 규제

이렇듯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레포츠로 각광받던 석궁이 갑자기 쇠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원호 동화총포사 대표(57·대구시 북구 대현동) 는 “석궁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정부가 석궁의 소지를 엄격히 규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화총포사는 한 때 한강 이남에서 석궁을 가장 많이 취급했다. 현재 석궁을 소지하려면 총포·도검·전자충격기·분사기 소지와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를 받은 뒤에는 병적기록부가 첨부된 신체검사 공인인증서를 경찰서에 제출해야 한다. 경찰서에서는 전과조회를 한 뒤 보통 열흘 안에 허가증을 내준다.

이 대표는 “전국의 총포사가 다 고사 직전이다.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잘 확보된 나라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인데, 살상무기도 아닌 레포츠용을 이렇듯 까다롭게 규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기자가 석궁을 보기 위해 대구에 있는 총포사 10여 곳에 전화를 했지만 다들 한목소리로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경찰은 영화 ‘부러진 화살’이 돌풍을 일으키자 모방범죄가 일어날 것에 대비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5일까지 국내 석궁소지자 1천224명에 대한 일제점검을 벌이고 있다. 또 3월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는 안전을 위해 개인이 소지한 석궁을 관할 경찰서에 보관토록 할 예정이다.

◆석궁과 콤파운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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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전문가 김광수씨가 콤파운드 보에 대한 사용법을 설명하기 위해 시위를 당기고 있다.

전국 최대의 수렵카페 ‘마이헌팅’을 운영하고 있는 수렵전문가 김광수씨(대구시 동구 불로동)는 경찰이 석궁소지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이유에 대해 ‘석궁은 총과 활이 결합된 위험한 무기’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석궁이 양궁의 일종인 콤파운드 보(compound bow)보다 가볍고 작아 감추기도 쉽고, 들고 다니기가 용이하다”며 “석궁이 콤파운드 보에 비해 격발이 훨씬 쉽고, 명중률이 높다”고 했다.

콤파운드 보는 시위를 당길 때 강한 팔힘을 필요로 한다. 수개월 또는 몇 년간 연습해야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반면, 석궁은 오랜 수련을 요구하지 않는다.

김씨는 “총도 아니고, 활도 아닌 데다, 스포츠종목으로 발전하지 못한 점도 석궁이 쇠퇴하게 된 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콤파운드 보는 영화 ‘람보’에서 실베스터 스텔론이 사용했던 활로 양궁과 비슷하다. 양궁은 활의 형태에 따라 리커브 보(recurve bow)와 콤파운드 보로 분류된다. ‘리커브’는 일반적으로 양궁으로 불린다. ‘콤파운드’는 활의 날개 양쪽 끝에 도르래가 장착된 활이다. 콤파운드 보는 95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선택된 종목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은 아니다.

콤파운드 보는 활시위를 당겨놓으면 도르래가 고정해주기 때문에 리커브에 비해 힘이 덜 소모되고, 쏜 화살도 포물선을 그리는 리커브에 비해 거의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레저문화가 발달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수렵용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콤파운드가 리커브보다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김씨는 “미국에서는 전체 수렵기간을 정할 경우 한 달 동안 활로만 수렵허가를 내주고, 이후부터 총기사용을 허가한다”며 “우리나라도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해 시범삼아 시행해 볼 만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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