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대로 거두리라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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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6-29   |  발행일 2012-06-29 제36면   |  수정 2012-06-29
뿌린대로 거두리라


뿌린대로 거두리라
각종 무기의 비극적 운명을 이제석의 이 광고사진만큼 섬뜩하고 리얼하게 그려낸 것도 드물다. 적을 향했던 병사의 총구가 자신의 뒤통수를 겨냥하고 있는 반전메시지 가득한 이 포스터.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취임에 맞춰 뉴욕과 워싱턴에 나붙어 윈쇼 페스티벌 등 10여개의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한때 미군 등으로부터 블랙메일까지 받은 문제작이다.


총, 꽃, 총, 꽃, 총, 꽃, 총, 꽃….

울고, 웃고, 울고, 웃고, 울고, 웃고, 울고, 웃고….

그믐, 보름, 그믐, 보름, 그믐, 보름, 그믐, 보름….

음, 양, 음, 양, 음, 양, 음, 양….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죽고, 살고….

나였다가 너였다가 나였다가 너였다가….



미루나무처럼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네 개의 철 구멍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군침을 흘리고 있다. 달을 바라보던 그 눈빛이 아니다. 철 구멍에서 천둥소리가 작렬했다. 네 토막의 비명이 놀란 꿩처럼 허공을 향해 달아나고 그 빈자리에서 베고니아 꽃이 돋아났다. 순간 미루나무 가지가 일제히 해바라기처럼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하이에나는 고독해진 제 몸을 이끌고 어디론가 길을 떠났다.

뜨거운 몸을 감당하지 못한 대포의 포신이 나팔꽃처럼 피어난다. 강철꽃처럼 보였다. 누가 말했다. ‘총알이 꼭 씨앗 같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 씨앗은 흙이 아니라 살점 안에 파종되고 싶어할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총알을 가슴이 아니라 땅에 심으면 무슨 싹이 돋아날까’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도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세월이 슬그머니 일어나 이렇게 대답했다.

‘씨앗은 싹으로 부활하지만 총알은 흙을 만나면 녹을 끼얹고 흙으로 죽어버리겠지.’

식목일을 ‘식탄일(植彈日)’로 바꾼다면?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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