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나라 시즌3] 왕의 나라, 다시 가고 싶은 곳

  • 이두영 장석원 황준오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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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9-24   |  발행일 2013-09-24 제3면   |  수정 2013-09-24
리뷰/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장면 전환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사, 기가 막혔다. 이곳이 지방 소도시로 알려진 안동인가, 어느 국제도시 유수의 공연장에 내가 앉아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다 곧 화려한 군무(群舞)와 짜임새 있는 무대 연출에 그 생각마저 잊은 채 다시 몰두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도성을 빠져나와 쫓겨 다니던 공민왕과 왕비는 가는 곳마다 홀대를 당하고 있다. 게다가 왕비인 노국대장공주는 이민족이면서 원수의 나라 공주로 지극히 왕과 고려를 사랑하게 된 이다. 아, 이 소재는 확실히 세계에 통용될 보편적인 소재로군. 니벨룽겐의 반지, 로미오와 줄리엣, 초패왕과 우미인의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곧 또 세계적인 뮤지컬들과 비교를 해본다.

마케팅과 완성도 측면에서의 캐스팅도 뛰어나다. 안동 출신의 ‘나가수’ 출신 적우와 ‘스타킹 기적의 목청킹’ 멘토 권순동의 강력한 무대 장악력이 여실히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고려의 장군 홍언박과 왕비의 호위무사 여랑 역의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2년 동안 민속촌 야외성곽에서의 공연 내공이 축적된 무대는 점점 실경(實景)을 넘어서 진경(眞景)으로 접어든다.

왕비의 고려 사랑을 알게 된 자존심 강한 안동 아낙들이 놋다리를 놓고, 지친 왕의 군사들을 위해 술을 푸는 인정스러운 안동 사람들. 복색이 좀 어색하고 대사가 약간 늘어지는 감은 있지만, 놀라웠다. 모두 오디션을 통해 안동 시민들을 캐스팅한 것이란다. 이 또한 장예모 감독의 인상여강을 연상케하는 대목이어서 절로 흥이 난다.

하지만 극은 그 흥겨움을 바로 이어 우리를 바짝 긴장시킨다. 홍건적들이 그 평화를 무자비하게 부숴버리는 탓이다. 내 소중한 것들을 꼭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여랑의 장렬한 죽음과 저항하는 안동 민초들의 처절한 죽음,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이런 낭패가 있나, 뮤지컬을 보고 흐느끼다니! 그런데 나뿐만 아닌 모양이다. 좌석 곳곳에서 헛기침 소리와 훌쩍거림이 들려온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제대로 된 품격있는 세계적인 토종뮤지컬 하나가 드디어 안동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조금만 더 물심양면의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뮤지컬 한 편의 역사적인 순간을 내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그 영광에 나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안동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간고등어집에서도 고속도로 휴게소의 커피숍에서도 동행한 교수님들과 계속 공연의 매 장면들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뮤지컬공연을 관람하며 한 사람도 졸지 않았다며 우리는 파안대소했다.



-감동 ★★★★ (왕의 나라, 대구에서 안동까지의 거리와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웃음 ★★★☆ (안동 사투리가 주는 깨알웃음!)

-음악 ★★★★ (아직도 귓가에 도는 노국대장공주의 아리아)

-무대 ★★★★ (원형에 가깝게 제작된 안동 영호루와 멋진 조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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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명품 뮤지컬 ‘왕의나라 시즌3’ 공연이 추석 연휴기간인 19~21일 3일간 총 5회에 걸쳐 안동 문화예술의전당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왕의 나라’는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 몽진한 왕의 아픔과 백성들의 이야기 등 공민왕이 안동에 머물렀던 70일간의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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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나라 시즌3’ 공연이 끝난 뒤 출연진이 객석을 돌며 관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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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 많은 관객들이 출연진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결산

안동 문화의 힘, 신도청시대 문화도시 가능성 한층 높여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뮤지컬 ‘왕의 나라 시즌3’ 공연이 매회 매진사례를 빚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추석을 맞아 친척과 가족 단위로 공연장을 많이 찾아 지역 문화예술 발전의 현주소는 물론 안동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알렸다.

아이들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이 지역의 역사를 순수한 지역민의 역량으로 그려낸 명품 뮤지컬 공연을 접하는 모습에서 신도청시대 문화도시의 가능성을 엿보이게 했다는 평을 받았다. 관람객들의 성숙한 관람의식도 돋보였다. 총 5차례 공연에 5천여명이 공연장을 찾으면서, 수준 높은 관람 태도를 보여 지역문화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였다.


게이코씨 일본팬들 환호


◇…노국공주의 호위무사인 만옥 역을 맡은 도미타 게이코씨(여·29·일본 도쿄)의 일본 현지 팬 10여명이 공연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한국 뮤지컬을 배우기 위해 체류하던 중, 왕의 나라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합격해 배역을 맡은 게이코씨는 이미 일본에서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일원으로 전국 투어 공연을 하는 등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게이코를 보기 위해 공연 이틀 전에 한국을 찾았다는 도모네 와다나베씨(여·31·일본 도쿄)는 “한국말이 서툴러 공연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음악이나 배우들의 표정만으로도 감동이 전해졌다”며 “미처 몰랐던 한국의 역사나 문화를 이번 공연을 통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적우 팬클럽 열렬한 응원

◇…공연 기간 적우 팬클럽 회원들은 안동예술의전당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고 첫 뮤지컬 무대에 선 주인공 적우를 열렬히 응원해 눈길을 끌었다.

전남 순천에서 차례를 지내고 올라온 김재열·우재순씨 부부는 “‘나는 가수다’를 통해 우리 부부는 3년 전부터 그녀의 팬이 됐다”며 “그녀가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것은 팬들에게 또 다른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옥씨(여·58·서울 서초구)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공연된다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손홍량 후손들도 관람

◇…뮤지컬 ‘왕의 나라’는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고려의 충신이었던 손홍량은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안동의 지주로 살던 중,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할 때 왕을 극진히 맞이하고, 이후 개성을 수복할 때까지 공민왕을 끝까지 보필한 인물이다.

지난 19일 첫 공연 때 손홍량의 후손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손용덕씨(46·안동 일직면)는 “아이들에게 손홍량 조상님이 공민왕을 모시고 함께 후일을 도모하는 활약상을 보여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으면 했는데, 아이들도 감명 깊게 봤다고 해 기분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지역인사들 찬사 쏟아져

◇…주낙영 경북도 행정부지사는 “모든 과정에 지역 인재들이 구슬땀을 흘려 탄생한 소중한 작품이어서 지역 문화융성의 초석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안동의 역사성을 살린 공연콘텐츠는 안동의 매력을 알리고, 지역민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림 국회의원은 “지난해 ‘왕의 나라’가 중등 교과서에 소개되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전국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았는데, 앞으로 경북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컬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근환 안동시의회 의장은 “안동의 킬러콘텐츠로 발전하고 자생력 있는 문화관광자원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동 사투리 구수한 매력”

◇…“홍건적의 침입으로 70일간 안동에서 피신한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민초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안동의 대서사시를 노래한 점이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김미경 영남대 해양과학연구센터장은 “배우들의 목소리, 동작이 힘이 있고 무대 장치와 동영상 등의 세트가 짜임새 있다. 또한 안동 사투리의 구수함이 녹아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안동시민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작품인 것 같다. 여기에 안동출신 가수 적우가 노국공주의 따뜻함과 카리스마를 잘 전달해 금상첨화였다”며 “내년 공연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안동=이두영기자·장석원기자·황준오기자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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