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살릴 돈 되레 삼키는 국책사업… “황금알인 줄 알았는데 애물단지”

  • 송종욱
  • |
  • 입력 2014-08-18 07:18  |  수정 2014-08-18 07:20  |  발행일 2014-08-18 제3면
정부에 속은 '경주 방폐장'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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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방폐장을 유치한 뒤 9년이 흐르는 동안 정부의 지원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이 크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하역동굴(위)과 저장소인 사일로 전경.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경주가 좀 더 잘살기 위해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이상 방폐장)을 유치했는데, 이젠 애물단지가 됐네요. 당초 약속한 지원 사업도 제대로 진행되는 게 없고, 결국 정부에 속은 꼴입니다. 이렇다면 앞으로 어느 지자체가 정부를 믿고 주민 기피 및 혐오 시설을 유치하겠습니까.”

경주 시민들이 2005년 11월 주민 투표를 거쳐 유치한 방폐장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경주 방폐장에 저장되는 중저준위방사성 물질인 ‘세슘-137(Cs-137)’의 반감기(半減期)는 30년으로, 10회 반감기인 300년이 지나야 방사성이 완전히 소멸된다. 결국, 앞으로 최소한 300년간 방폐장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경주시민들은 정부 지원 사업이 지지부진한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며,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방폐장 불안감만 증폭
9년간 잦은 설계변경·건설비리… 市와 협의않고 2단계 추진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방폐장 1단계 공사(10만 드럼 규모)를 진행하면서 비리와 안전성 문제 등으로 주민 불안감만 증폭시켰다.

방폐장 1단계 공사는 2009년 12월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방폐물 저장공간인 사일로 부지에서 연약 지반이 발견됐고, 지하수 유입 문제로 5회에 걸친 설계 변경으로 48개월이나 지연됐다. 또 공사비도 당초 2천548억원에서 무려 2배 이상인 6천80억원으로 늘어났다.

잦은 설계 변경과 공기 연장으로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자, 경주시민과 환경단체는 발주처에 공사 중단을 수차례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원자력환경공단 임직원 19명이 시공사인 대우건설로부터 설계 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증액해 주는 대가로 5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방폐장 건설과정에서 비리가 속속 드러나자 경주시민은 부실 공사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기다 원자력환경공단이 총 사업비 2천635억원을 들여 천층처분 방식으로 2단계(25만 드럼 규모) 사업을 추진하자, 경주시민은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원자력환경공단이 1단계 공사 준공도 하기 전에 경주시·경주시의회와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고 2단계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민이 더 속상한 것은 순수하게 지역 발전에 투자해야 할 정부 지원금을 국책사업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점이다.

방폐장 유치에 따른 3대 국책사업인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건립(총 3천147억원)에 지방비를 무려 전체의 37.5%인 1천182억원(부지매입비 395억원·기반시설비 362억원·영구지원시설 425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주시는 양성자가속기 건립에 지방비 997억원(도비 180억원)을 지원했다. 여기에는 정부로부터 받은 방폐장 유치 특별지원금(3천억원)도 무려 310억원을 투입했다. 결국 어려운 지방 재정으로 인해 방폐장 사업을 유치한 대가로 받은 특별지원금을 또다시 국책사업에 투입하는 악순환이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에 더 들어가야 할 지방비 185억원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해 오는 12월 준공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경주 방폐장 지원 사업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수원 이전 ‘하세월’
조기 이주·사택부지 흐지부지… 자사고 약속도 물 건너가

경주시민은 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직원의 경주 이주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올 연말 완료 예정이었던 한수원 본사 직원의 경주 조기 이주가 백지화된 데 이어 사택부지 조성마저 흐지부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본사 직원의 경주 조기 이전 계획이 무산되자, 2015년 12월 사옥 준공과 동시에 경주로 직원을 이전한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한수원의 직원 사택은 모두 1천가구로, 동천·진현·황성동 3개 지역에 주택 건립 또는 매입형식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한수원의 직원 사택은 황성동에 신축 중인 D산업의 아파트 300가구 매입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추진한 진현동 사택부지(아파트 500가구 건립)는 국·공유지 매입 등의 어려움으로 무산돼 한수원이 대안 부지를 찾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19일 정수성 국회의원, 최양식 경주시장, 정석호 경주시의회 의장, 조석 한수원 사장이 ‘4자 회동’을 갖고, 본사 직원의 경주 조기 이주 백지화 결정과 함께 2015년 본사 사옥 준공에 맞춰 사택 마련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진척을 거두지 못하자 경주시민들은 한수원과 정부, 정치권 모두 사업 추진에 무관심하다며 비난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9일 방폐장 착공식 때 약속한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추진, 지난 4월29일 이사회를 통과시켰다. 자율형 사립고는 787억원의 사업비로 7만1천㎡에 연면적 2만9천㎡ 규모로 경주시내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정원은 360명(학년당 120명)으로, 경주지역과 전국으로 구분해 모집, 2018년 개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자사고 설립 또한 물 건너갈 판이다. 기획재정부는 자사고 운영이 한수원의 정관상 목적 사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자사고 정책 변화에 따라 경북도교육청도 학교 신설에 부정적인 입장도 한몫하고 있다.

경주시민은 자사고 건립 무산이 한수원 직원들의 경주 이주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국비지원 42% 불과
정부 지원사업 중 6개는 계획도 못잡아
톱다운 예산 편성… 방폐장 지원 뒷전

당초 정부는 방폐장 유치지역을 위해 55개 사업에 총 3조5천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경주시는 2006년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 사업을 당시 산업자원부에 요청했으며, 이어 2007년 6월 정부와 함께 지원 사업 시행 계획을 최종 조율했다.

8월 현재,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 사업 55건 가운데 경주교촌한옥마을 조성 등 28건은 완료됐고, 추진 중인 사업은 경주 읍성 정비 복원 등 21건에 이른다. 하지만 양성자가속기 배후단지 조성 등 6건은 아직 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외형과 달리 정부에서 지원된 예산을 따져보면 실상은 훨씬 열악하다. 당초 정부는 국비 기준 55개 사업에 2조3천154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노무현·이명박정부를 거쳐 박근혜정부까지 9년간 국비 지원 사업 이행률은 고작 42.5%(국비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정부는 방폐장 지원 사업의 부진 이유를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이 방식은 정부 예산기관인 기획재정부가 총지출 규모와 부처·분야별 지출 한도를 정한 이후, 각 정부 부처가 한도 내에서 재원을 배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별 예산 편성 때 경주지원 사업의 우선 순위가 뒤처진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총체적으로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에 대해 홀대를 하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게 경주시의 설명이다.

이재근 경주YMCA 원자력아카데미 원장은 “정부가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와의 약속은 지키지 않은 채, 사용 후 핵연료를 공론화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정부 원전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방폐장 유치 후속조치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주=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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