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詩는 대상편에 서려는 시도…내 문학 지탱 축은 진지함·측은함·장난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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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8   |  발행일 2015-08-28 제35면   |  수정 2015-08-28
■ ‘신라’에 사로잡힌 시인 이성복을 경주에서 만나다
20150828
시인은 딴따라이고, 항상 상을 엎을 준비가 돼 있고, 바닥을 치는 잡놈이어야 하고, 남에게 ‘쪼갈리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되고, 자기를 불리하게 만드는 게 시인이라고 말하는 이 시인. 그는 ‘피 안 흘리면서 흘리는 것처럼 사기치는 걸 독자는 제일 싫어한다’고 역설한다. <이성복 시인 제공>



상주에서 다섯 살 때 상경한다.

‘출세욕’ 때문이다. 경기고에 진학한다. 고2부터 ‘세기말 사조’와 조우한다. 그 틈새에서 생애 첫 시를 잉태한다. ‘꽃핀 아유자의 노래’였다. 남한에서 죽은 간첩의 시신에서 사과나무가 자란다는 초현실주의적 시였다. 경기고 화동문학상에 투고했다. 문예반장이었던 소설가 이인성이 작품 일부를 잘라 교지에 싣는다. 하지만 아직 시마(詩魔)를 정통으로 맞은 건 아니었다.

서울대 불문과에 들어간 건 여학생이 많아서다. 그 학교에 운명을 바꿔놓을 문학평론가 김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시는 뒷전이었다. 국회의원 딸에게 연애편지도 썼다. 웅변반장도 했다. 실존주의철학에 문학이 휘감긴다.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플로베르 등을 만나면서 이념보다 문학이 한 수 위란 걸 절감한다. 그 자양분이 점차 시로 건너뛴다.

그에겐 시의 사부가 없다. 있다고 하면 그에게 먼저 관심을 보인 문학평론가 김현 정도다. 김현은 ‘자객’ 같은 이성복의 시를 읽고 보고싶어 했다. 그의 친구를 통해 시를 가져오라고 부탁한다. 그는 캘린더 수첩에 정서해서 김현의 연구실을 찾는다. 그는 시인이 될 줄 전혀 예감하지 못 한다. 대학문학상, 신춘문예에도 한 번씩 낙방했다. 77년 ‘정든 유곽에서’가 ‘문학과 지성(문지)’을 통해 발표된다. 당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있던 문지 사무실에 첫발을 내디딘다.

38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시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 정작 시인들이 다른 시인의 시를 읽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강연장에서 누가 질문을 했다. ‘어떤 선생이 좋은가’라고. 그는 대답했다. 사람 믿으면 지옥 갑니다. 선생 믿지마세요. 선생이 거울이라고 하는데 요즘 선생은 크게 세 종류입니다. 표면이 울퉁불퉁해 난반사되는 거울, 때가 너무 많이 묻은 거울, 뒷면 수은이 벗겨진 거울입니다. 저도 믿지 마세요. 대신 죽은 사람 중에서 골라봐요. 제 사부는 카프카입니다.”

그는 ‘꽃에 이르는 길’이라는 소책자를 지인에게 선물로 잘 나눠준다. 그 제목은‘풍자화전(風姿花傳)’을 쓴 제아미(世阿彌)의 노(能)의 미학에 관한 짧은 글의 제목인 ‘지화도(至花道)’를 염두에 뒀다. 꼭 ‘이성복 시 창작 아포리즘’ 같다. 내용은 대부분 글쓰기와 생사 문제 해결에 지침이 되는 것들로, 예술의 목적과 방법, 태도에 관한 문장과 불교와 힌두이즘에 관련된 구절들이다. ‘꽃’이란 예술의 궁극적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그 경지를 상상(上上)에서부터 하하(下下)까지 총 아홉 단계로 분류한다.

최고의 경지, 상상은 어느 단계일까. 그는 ‘신라야반일두명(新羅夜半日頭明)’으로 본다. ‘신라의 한밤중에 해가 밝게 빛난다’는 경지다. 이는 인간의 분별을 뛰어넘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다. 하급의 경지인 동일성과 차별성의 미학이 분별망상의 현실계에 속해 있다면 이것은 현실의 지평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무경계(無境界)’의 미학이란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평론가 김현의 관심 받았지만
젊은 날 시인이 될줄 예감못해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은 시대
시인은 다른 시인의 시 안읽어
‘시의 시대 종말’이 안타까워

인간 분별 뛰어넘는 不立文字
무경계 미학이 시의 최고경지

시인은 끝까지 시 뒤에 숨어야하고
시는 비유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평범한 것을 항상 귀하게 생각하라


이성복이 말하는 이성복의 시론

시인은 딴따라예요. 항상 상 엎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바닥을 치는 잡놈이어야 하고, 남에게 쪽팔리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돼요.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해요. 그렇지만 죽기 전에 미리 죽으면, 죽을 때 안 죽죠.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있음’의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있음-없음-있음’ 대신, ‘없음-있음-없음’의 구조를 취한다면, 부활의 신비나 극락왕생같은 내러티브 없이도 생사를 건널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진지함, 측은함, 장난기 이 세 가지가 지금까지 제 문학을 지탱해온 축이었던 것 같아요. 만약 진지함이 없다면 진실에 대한 지향이 없을 테고, 측은함이 없다면 윤리적 책임감 같은 것이 없을 테고, 장난기가 없다면 예술가라 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셋 중에서 어떤 사람은 진지함은 넘치는데 자비심이 없다든지, 자비심은 있는데 장난기가 없다든지, 장난기는 있는데 측은지심이 없다면, 예술로서나 인생으로서나 만족스러울 수 없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카프카의 말이 있어요. ‘당신과 세상과의 싸움에서, 세상 편을 들어라’. 이 말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원칙 같아요. 어떤 일에서도 자기 편을 들지 않고 세상 편을 들 때, 인생에서나 문학에서나 진실함, 올바름, 아름다움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시는 자기를 불리하게 하려는 거예요. 꼭 불리하게 만든다기보다, 억지로라도 대상 편에 한번 서보려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세 가지 일이 있다고 하지요. 나의 일, 남의 일, 신(神)의 일. 여기서 신의 일이란 자연법칙을 의미해요. 태어나면 죽어야 하고, 잎이 나면 떨어져야 하는 게 신의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늘 자기 일은 내버려두고, 남의 일과 신의 일에 시비를 건다고 해요.

어떻든 시 쓰는 사람이 시 속으로 들어와 자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인형극을 보면 인형이 움직이고 말하는 것 같지만, 막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대부분의 실패한 시는 인형 조작하는 사람이 밖에 나와 관객하고 직접 말하는 것과 같아요. 시인은 끝까지 시 뒤에 숨어 있어야지, 독자 앞에 나오면 바로 죽어버려요. 햇빛을 쬔 드라큘라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시는 고장난 변기의 레버를 내리거나, 체인 벗겨진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아요. 뭔가 저항하는 느낌이 안 나잖아요. 그 느낌이 없으면 시가 아니에요.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예술은 불화(不和)에서 나와요. 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 나이 들어 좋은 글을 쓰는 건 정신이 젊다는 증거예요.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이제까지 알고 있던 진실도, 거룩함도 다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절망의 자리에서 서 있어야 해요.

시인 줄 알고 빠지는 함정들이 몇 가지 있어요. 우선 비유가 많아야 시가 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시의 비유는 피상적이고 장식적이에요. 다른 함정은 시적인 정서가 따로 있는 줄 아는 거예요. 방금까지 깔깔거리던 사람도 시 쓰라고 하면 금세 그리움, 외로움, 괴로움 같은 폼을 잡아요. 마지막 함정은 시적 화자와 산문적 화자를 혼동하는 거예요. 산문에서는 화자가 떡 버티고 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반해 시에서 화자는 모든 재량권을 ‘말’에게 주지요. 뭐든 바깥으로 꺼내 자랑하려 하지 말고 숨겨야 해요. 그래야 힘이 있어요. ‘의금상경(衣錦尙絅)’이라는 말이 있지요. 비단 옷 위에 삼베옷을 껴입는다는 거예요. 힘 좀 있다고 아무 때나 힘자랑하면 동네 깡패밖에 안 돼요. 뭐 좀 안다고 자랑하면 독자가 웃어요.

낚시로 치면, 지렁이 미끼 끼우는 게 첫 행이에요. 그 미끼를 작은 물고기가 낚아채는 게 둘째 행이고, 그 작은 물고기를 큰 물고기가 무는 게 셋째 행이에요. 낚시꾼이 낚싯줄만 흔들지 않고 지켜보면 큰 물고기들이 알아서 와서 걸리는 거예요. 자기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채고, 자기 힘으로 벨트를 돌리려 하니 어렵지요.

사람 죽으면 관 짜서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흙 떨어뜨리는 느낌, 그 느낌이 시에 내려올 수만 있다면 그럼 다 된 거예요. 피 안 흘리면서, 흘리는 것처럼 사기 치는 걸 독자는 제일 싫어해요. 독자를 속일 수는 없어요. 로댕이 그랬다지요. ‘평범한 것은 바보나 대가만이 건드린다.’ 항상 평범한 걸 귀하게 생각하세요. 신기한 건 노리지 마세요. 오래 못 갑니다.

정리=이춘호기자

TIP= 지상중계된 이성복 시론은 내달 9일 문학과 지성을 통해 극지의 시, 불화하는 말들, 무한화서 등 3권의 시론집으로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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