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눈 쌓인 강원도 인제 원대리 銀白 자작 나목 69만 그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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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19   |  발행일 2016-02-19 제34면   |  수정 2016-02-19
■ 2월의 자작나무를 讚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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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작나무를 보기 위해 굳이 러시아 등지로 갈 필요가 없다. 국내 사진가 사이에서 2월에 가장 좋은 포토존으로 알려진 원대리 자작나무숲. 900m 숲속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일상은 저멀리 사라지고 내면에 수액처럼 차오르는 환희로 걸어가는 자작나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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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탐방객들이 자동차 열쇠 등으로 수피에 낙서를 하거나 장식용으로 흰 껍질을 벗겨가기도 한다. 벗겨져 흑갈색으로 변한 수피는 더 이상 재생이 안된다고 하니 자작나무 숲에는 추억의 마음만 남겨두고 가야겠다.

대구서 車로 4시간30분 달려 도착
솔잎혹파리 피해 소나무 벌채 자리
4개 탐방코스 ‘한국 자작나무 1번지’
이맘때 가장 빛나는 裸身 보는 재미
수종보호 위해 3∼5월엔 입산 통제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차세대 동절기 절품의 나무는 단연 자작나무. 전체 8.5㎞ 구간 중 500여 그루가 아름답게 늘어서 있는 전남 담양군 담양읍에 위치한 메타세쿼이아 길(2.1㎞), 46만여평의 면적에 수령 80년 이상의 잣나무 5만여 그루가 심긴 전국 최대 규모의 잣나무 숲인 경기도 가평의 ‘잣나무 푸른숲’도 함께 볼 만하다.

대구에서 승용차로 4시간3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의 자작나무숲을 친견하기로 했다. 몇번 가보려다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이번 인제행은 솔직히 설렘이 가득한 ‘신혼여행’ 같았다.

중앙고속도로 남춘천IC를 빠져나와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IC를 빠져나와 인제로 가는 국도변. 겨울의 산세는 쩌렁쩌렁하고 서예로 말하자면 ‘예서체’의 기품을 갖고 있다. 소양강의 상류이고 군사도시이며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의 시를 남기고 31세에 요절한 박인환 시인과 국내 최고봉의 서예인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여초 김응현의 고향이기도 한 인제. 하지만 기자에겐 이제 ‘자작나무의 고장’으로 다가선다.

인제군은 속상처가 많은 고장이다.

남북 이념 갈등의 흔적이 ‘화석’처럼 남은 곳이다. 한때 대한민국 지도에서 잠시 사라진 적이 있었다. 38선이 인제군을 관통하면서 남쪽 인제 땅이 홍천군에 편입된 것이다. 이제는 자작나무의 동네가 된 원대리(院垈里)는 더욱 팍팍한 시절을 겪어왔다. 남북으로 흐르는 마을 중심부 실개천에 38선이 그어진 적도 있었다. 냉전시대 갈등과 분열로 을씨년스러웠던 이 동네가 4년 전부터 ‘한국 자작나무 1번지’란 낭만어린 별명을 얻게 됐다. 새옹지마의 묘미를 원대리가 알려준다.

◆자작나무 조림역사

자작나무숲에 온 사람들은 자작나무 조림 역사를 궁금해 한다.

한국 화전민의 명운은 60년대까지만 보장받았다. 74년 원대리 화전민은 모두 퇴출당한다. 동네 사람들은 앙상한 절골 계곡에 나무를 심었다. 이때 심을 수 있는 묘목은 고작 3종류, 잣나무·낙엽송·자작나무가 전부였다. 그런데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솔잎혹파리가 원대리 일대 숲을 초토화시켰다. 보다못한 산림청이 적극 나서 집중적으로 심기 시작한 수종이 바로 자작나무다. 74년부터 21년간 지속적으로 심었다.

산림청은 자작나무 최적지를 물색했다. 원대리는 춥고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는 자작나무에는 최고의 땅이었다. 원대리 자작나무는 이탈리아 포플러처럼 잔가지가 위로 죽죽 치솟는 시베리아 자작나무 계열이다. 시베리아는 물론 중국, 한반도 북쪽과 일본 북부지역에서 잘 자란다. 산림청은 지금까지 원대리 국유림 138만㎡에 69만여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었다.

한반도 아열대화에 대비해 소나무 대체 수종으로 자작나무가 선택됐다. 자작나무는 그처럼 ‘경제림’으로 조성된 것이다. 60년 키워 목재로 활용할 계획이란다. 예정대로라면 2050년 대대적인 벌목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 명품숲은 향후 문화관광상품으로 존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1시간 걸어 숲을 만나다

처음에는 원대리 주민의 지인들이 찾아와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알려졌다. 이어 입소문을 듣고 사진가들의 멋진 포토존으로 각광을 받다가, 방송을 타면서 졸지에 유명 관광지로 둔갑한다. 벌써 20만명 이상이 다녀간 모양이다.

자작나무숲은 발품을 팔아야 감상할 수 있다. 주차장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서는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원대리 산하가 온통 자작나무로 뒤덮여 있는 건 아니다. 군데군데 섹터별로 조성해 놓았다. 나머지 산지에는 소나무 등 타 수종도 많이 심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작나무 군락지가 더욱 미학적일 수밖에 없다. 원대리 곳곳에 가설된 임도는 3군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생겨날 수 없었다.

자작나무숲의 탐방로는 여러 테마를 갖고 있는 총 4개의 탐방 코스로 구성됐다.

원정임도(7.2㎞)나 원대임도(9.14㎞)를 한 시간가량 걸어 올라가면 순백의 자작나무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1코스(0.9㎞), 자작나무숲을 지나 혼요림과 천연림을 탐방할 수 있는 일명 ‘치유코스’로 불리는 2코스(1.5㎞), 작은 계곡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 3코스(숲길 1.1㎞·원대임도 2.7㎞), 2코스를 지나 원대봉 능선을 따라 자작나무숲을 탐방하는 4코스(숲길 2.4㎞·절골임도 2㎞) 등으로 짜여져 있다.

3.5㎞ 임도를 걸어 자작나무숲 앞에 섰다. 다섯번 정도의 멋진 S자 산길은 아름답고 정겹다. 드문드문 인사를 하는 소규모 자작나무 군락지가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4코스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근처에 도착하면 이곳이 러시아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계곡에 포진한 20년 이상 묵은 5천444그루가 섬뜩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국내에 이런저런 자작나무가 있다고 하지만 20년 이상 제대로 관리된 건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자작나무로 착각하는 수종이 몇 개 있다. 바로 은사시나무, 거제수, 까치박달 등이다. 까치박달은 표피에 거뭇한 다이아몬드 문양이 찍혀 있다. 은사시나무는 표피 색깔이 잿빛이고 거제수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게 차이점이다.

◆자작나무숲 입산 금지

수종 보호를 위해 오는 3월15일~5월15일 입산이 통제된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무 곳곳에 깊은 상처가 낙인처럼 찍혀 있다. 도시에서 맺은 사랑을 자작나무에 또 아로새겨 놓고 싶었던 걸까. 어떤 이는 수피를 갖고 가기 위해 줄기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흑갈색으로 변한 곳은 수피를 인위적으로 벗겨난 자국이다. 그 부위에는 자작나무 피부가 재생이 안된다. 흉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나무가 50여 그루. 부디, 자작나무숲에 추억만 남기고 오시길.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도움말=인제국유림관리사무소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7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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