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부터 21년간 주민과 군부대, 산림청이 의기투합해 ‘경제목’으로 군데군데 집중조성한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2월의 잔설과 산책로를 걸어가는 탐방객의 기운이 아련한 울림을 피워낸다. |
2월과 자작나무.
궁합이 별로인 것 같니? 그렇게 생각하지 마.
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뭐랄까, 계절의 서자 같은 2월.
이 어정쩡한 계절을 위해 자작나무가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 봐.
서성거리는 2월이겠지.
남녘 수선화는 만개하고 설중매가 실눈 뜨지만
강원도 오지의 응달은 아직 설한풍 이는 한겨울.
가는 겨울과 오는 봄 사이에 퓨즈처럼 걸려 있는 자작나무.
난 가끔 계절의 사치품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로 환생한 북극의 ‘백야(白夜)’인가.
이렇게 고혹하고 성스러운 수직(垂直)의 미학이 또 있을까?
산하의 푸른 기운을 삼켜버린 저 겨울을 배경으로
도도하게 직립한 한 그루 하얀 경전 앞.
인간들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못하고
그냥 황홀한 현재를 아득하고 아련하게 비상(飛翔)만 할 따름이지.
나는 겨울과 봄 사이에서 가장 빛나지.
다른 나무들이야 봄·가을에 더 고혹하다지만
나는 이 무렵 몸이 곧 ‘꽃’이지.
나는 흰색이 아니라 ‘은백(銀白)’.
내 몸에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조금 묻어 있지.
수은의 기운이 감돌고 우물의 고요함까지 출렁거려.
신화와 설화를 거느리고 별나라로 잠행하고 있어.
다른 나무는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자작자작’ 담소를 나누지.
수직으로 솟아도 난 ‘수평본능’이야.
그대 굳어버린 근육을 말랑한 맘으로 숙성시켜주지.
야심조차 ‘성찰(省察)’이거나 ‘관조(觀照)’로 변속시켜주지.
더 이상 내 앞에서는 반성도 속죄도 필요 없어.
남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향하는 난 한 그루의 ‘오로라’!
내 품속에 안기면 물욕도 맥을 못 추지.
과거에 대한 ‘회한’도 미래에 대한 ‘포부’도 내 앞에서는 모두 무용지물.
그대여, 이제 두 눈 감고 내 맘속에 좌정해 봐.
은하수 속에서 와선(臥禪)하는 듯
굳이 뭐가 될 것도 없고 뭘 바랄 것도 없고….
그냥 생겨먹은 그대로의 그대에게 감사하리라.
나는 시작이면서도 종점
2월 자작나무 옆에 서면
그대 절망도 곧 희망으로 발화(發花)할 거야.
꼭 그렇게 될 거야. ☞ W2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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