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과열경쟁 자제” 걸려있던 현수막마저도 철거한 채 조용

  • 최수경,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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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8 07:11  |  수정 2016-05-18 09:38  |  발행일 2016-05-18 제3면
신공항 후보지 밀양시 하남읍 일대를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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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에 이르는 신공항 후보지인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일대.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수백동의 비닐하우스가 길게 펼쳐져 있다. 인접한 송산리 마을 뒷산에서 내려다 본 전경이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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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 송산리의 박상근 경로회장.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유치 열망은 5년전보다 더 후끈
“농사 계속 짓기는 어차피 어려워
공항에 외지인 오는 모습 보고파
후세들에겐 새로운 일자리 기대
조종사도 밀양이 더 낫다고 말해”


17일 오전 11시40분쯤 신공항 후보지인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일대를 둘러봤다. 말 그대로 아직은 광활한 ‘허허들판’이었다. 면적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면적이 무려 7.2㎢(218만평)라는 사실은 갖고 있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길게 줄지어 늘어선 수백 동의 비닐하우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간간이 보이는 농민들은 땡볕 아래서 비닐하우스의 비닐을 걷어낸 뒤 한창 감자, 양배추 등을 수확 중이었다. 군데군데 백산리, 명례리 등 10개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막가파식 경쟁을 하며 온통 현수막으로 도배된 가덕도와 비교해 이곳은 너무 한산했다. 눈을 씻고 둘러봐도 신공항 입지 후보지임을 알리는 현수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밀양시청에서 20분간 차량으로 이동할 때도 도심에는 현수막이 없었다.

5년 전 신공항 백지화 이후 혹시나 이곳 주민들의 유치열기가 식은 걸까. 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만나 보니 그것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과열경쟁을 자제한다는 의미에서 일부러 현수막을 걸지 않았고, 일부 걸린 것도 최근 모두 철거했단다. 마을 주민들은 신공항 입성을 마음속으로만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신공항 입지에 인접한 송산리마을회관에서 만난 경로회장 박상근씨(77)는 신공항 유치의 당위성에 대해 장시간 열변을 토했다.

양배추를 재배하며 3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박씨는 공항이 들어서면 마을 자체가 사라지게 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박씨는 “당연히 밀양으로 신공항이 와야 한다. 지금은 부산이 워낙 큰소리치며 힘으로 밀어붙이니까 잠시 조용한 것뿐”이라며 “절대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된다. 정부가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5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2011년에는 일부 반대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지금은 주변에 주물산업단지(내년 착공 예정)가 생기면 쇳가루가 날려 농산물을 먹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단다. 해외농산물이 대량 유입되면서 힘들게 일군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다 보니 다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단다. 박씨는 “공항이 생기면 나를 비롯해 평생 해온 농사일을 놓아야 하는 이들이 태반이겠지만, 그래도 노인들만 있는 곳이 외지 사람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새로운 일거리도 많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도 갖고 있다”고 했다. 마을 주민 일부 중에는 부산에 터를 둔 자식과 친척들이 신공항이 가덕도에 들어서야 된다고 해서 자주 다투기도 하지만 신념은 확고하단다. 한마디로, 마을 사람들은 변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밀양에 공항이 생기면 대구와 구미의 수출 물량도 이곳에 오겠지만 부산(가덕도)에 가면 물량은 계속 수도권으로 갈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진주 사천공항의 조종사들이 말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큰 위안을 삼는 눈치였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조종사가 공항 입지로는 가덕도보다 밀양이 낫고, 24시간 운행도 여기가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는 것.

마을 들머리에 있는 팔각정 툇마루에 앉아 있던 김석인씨(59)는 “공항이 생기면 후세 사람들이 일자리가 생겨 큰 덕을 볼 것이다. 나이 든 분들에게도 경비 같은 일을 맡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어차피 농산물 시세가 바닥이고, 대부분 노인들이라 계속 농사짓기도 힘들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려 해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며 신공항을 연호했다.

이날 밀양의 낮 최고기온은 28.5℃로 대구(27.4℃)와 엇비슷했다. 매년 여름 최고기온 기록을 서로 앞다퉈 경신하는 두 도시다. 그래서일까. 밀양과 대구시민의 화끈한 기질도 많이 비슷하다고 마을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밖으로 잘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6월 말 신공항 낭보를 학수고대하는 그들의 마음은 대구시민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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