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방송 먹통…일부 공무원은 업무 보거나 담배 피우기도

  • 사회부,서정혁,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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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0 07:18  |  수정 2016-10-20 07:19  |  발행일 2016-10-20 제2면
지진 대피훈련 ‘낙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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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대구시 수성구 파동에서 실시된 지진 대피훈련에서 주민들이 지진에 취약한 고가다리 아래서 교육을 받고 있다.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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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지진 대피훈련에 참여한 대구 동구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학교건물 밖으로 대피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학생들은 진지함 없이 우왕좌왕
대피요원 안내 전에 이동하기도
수박겉핥기식 훈련…효과 의문


19일 오후 대구에서 진행된 ‘지진 대피훈련’은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대부분 수박겉핥기 식이었고, 시민들의 참여도도 낮았다.

이날 오후 2시1분쯤 라디오 방송에서 훈련 지진경보가 울리자 동구 A중학교에선 학생들이 곧바로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훈련 시나리오에 따르면 경보 2분 뒤 책상에서 나와 국민행동요령 방송을 청취하고, 경보 4분 뒤 대피요원의 안내에 따라 운동장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몇몇 교실에서 그 전에 학생과 교사들이 교실에서 나온 것.

이를 본 구청 관계자들이 허겁지겁 뛰어올라가 학생과 교사들을 교실로 되돌려보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본격적인 대피가 시작된 뒤에도 학생들의 모습에서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피할 때는 책이나 가방으로 머리를 가려야 하는데 이를 지킨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책을 손에 들고 나왔고, 운동장에 모여서는 햇빛가리개로 썼다.

실제로 지진이 나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학생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 학생은 “해마다 학교에서 지진 대피훈련을 하는데 너무 형식적인 것 같다”며 “실제로 지진이 났을 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수성구 파동 B아파트에선 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파트 앞에는 주민 60여명이 모여 훈련이 시작되길 기다렸지만 방송이 제때 나오지 않아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이 지역이 난청지역에 속해 라디오 주파수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시청과 구청 직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라디오 방송을 켰고, 주민들은 훈련이 시작된 지 5분 만에 대피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이 대피요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곳이 고가다리 밑이었기 때문이다. 고가다리 아래는 실제 지진 발생시 붕괴 위험이 있어 대피장소로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원래 대피장소는 근처 학교인데 도보로 이동하기엔 다소 거리가 멀어 오늘 훈련에서만 고가다리 밑을 임시 대피장소로 정했다”고 말했다.

관공서조차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청 별관(옛 경북도청)의 일부 부서 공무원들은 사이렌 소리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모니터를 응시하며 업무를 하기에 바빴다. 일부 직원이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두리번거렸지만 잠시뿐이었다. 심지어 몇몇 공무원은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전에 짜인 각본대로 하는 훈련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공하성 경일대 교수(소방방재학부)는 “최근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지진대피 훈련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불시에 훈련을 하는 일본이나 선진국과 달리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을 진행하는 것은 형식적이며 오히려 실효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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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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