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선출 “헌법 1조” 외친 劉…보수개혁 내세워 대통령 후보됐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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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9   |  발행일 2017-03-29 제3면   |  수정 2017-03-29
‘원조친박’서 ‘핍박’된 TK 정치인
보수층 ‘배신 프레임’ 극복이 과제
20170329
28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대통령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가운데)이 후보 수락연설을 마친 뒤 부인 오선혜(오른쪽), 딸 담(왼쪽)씨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당사자로 낙인찍혔던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이 바른정당의 제19대 대통령 후보가 됐다. 유 의원은 28일 원내교섭단체 4당 중 가장 먼저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를 가진 바른정당의 첫 대선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미국 유학 후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12년간 근무한 경제전문가인 유 후보가 2000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한 지 17년 만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한 유 후보는 2002년 16대 대선과 2004년 17대 총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특히 2005년 1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아 그해 비례대표직을 던지고 ‘대구 동구을’ 재보궐선거에 차출돼 지역구 의원으로 명함을 갈아탔다.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4선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아 선봉에 서며 이명박 후보의 재산문제, 대운하 공약과 이른바 BBK 공격수로 활약하며 ‘원조 친박’(親박근혜)으로 분류됐다.

당시에도 박 전 대통령을 도우면서도 공개비판과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유 후보는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뒤 2015년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정부의 경제와 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던 차에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6월 유 후보(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을 공무원연금개혁안과 함께 통과시키자, 유 후보를 ‘배신의 정치인’으로 지목하며 본격적인 찍어내기에 나섰다.

결국 유 후보는 원내대표로 선출된 지 5개월 만에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다”고 응수했다. 그 여파로 이듬해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유 후보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대구가 낳은 정치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보수를 지키겠다며 새누리당에 재입당한 유 후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탈당, ‘따뜻한 보수’를 기치로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마침내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유 후보가 내건 보수개혁의 가치가 서울과 야권에서는 인정받으면서도 몸담고 있는 보수층이나 고향인 TK(대구·경북)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이 상대적으로 강한 TK정서와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층이 ‘배신자 프레임’으로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선을 앞둔 유 후보의 남은 과제는 보수층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이들과 호흡하며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지도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엘리트 학자’였던 유 후보가 ‘배신의 정치’를 불식시키고 ‘개혁보수의 아이콘’이 되기 위해 남은 시간은 불과 41일이다. 유 후보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보수, 깨끗한 보수, 개혁적 보수를 바로 세우는 길에 앞장서겠다”면서 “이 길이 저의 정치적 소명이고 운명이라고 믿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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