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도 맛있는 짱뚱어전골…보양·안주·해장 ‘팔방미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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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8   |  발행일 2017-09-08 제34면   |  수정 2017-09-08
■ 푸드로드 전남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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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 매운탕과 해물탕의 경계에 있는 순천식 짱뚱어전골. 탕은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반면 전골은 짱뚱어를 통째로 넣어 더 매콤하게 요리하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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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갯벌탐방데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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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돼지고기로 만든 전주콩나물국밥 같은 웃장돼지국밥.

10년 전만 해도 순천만에는 탐방데크가 없었다. 어업 종사자말고는 그 갯벌의 속살을 들여다 볼 접근로가 없었다. 사진가들이 맨 먼저 입소문을 낸다. 초창기엔 용산에 올라가도 조망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사진가들이 시야를 가리는 잡목을 하나둘 제거해나갔다. 어느날 그곳이 최고의 순천만 전망 포인트가 된다. 순천시가 나서 번듯한 관광용 전망대를 구축했다. 2003년부터 갈대밭 투어데크도 생기고, 2013년 여수국가정원박람회 때부터 관광객으로 흘러 넘친다.

갯벌존을 걸어갈 때 두리번거리며 짱뚱어를 찾아봤지만 거의 잔챙이들 뿐이다. 간조의 갯벌은 습기가 별로 없어 추수기의 논바닥 같았다. 각기 다른 크기를 가진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다. 붉은발말똥게, 농게, 칠게 등이 들락거리는 구역이다.

추어탕처럼 끓여낸 걸쭉한 짱뚱어탕
70년대까지 민어탕과 복달임 주메뉴
엄지손톱 크기 ‘애’가 탕의 맛 좌우
방아잎과 들깨를 넣어 비린내 잡아
전골은 짱뚱어 통째 넣고 맵게 양념

콩나물 듬뿍 들어간 순천식 돼지국밥
순천 웃장·아랫장 50여 국밥집 성업
웃장선 매년 9월8일 ‘국밥데이’축제



출렁다리, 용오름다리, 갯바람다리, 솔바람다리 등 4개의 다리를 지나 전망대에 도착했다. 일망무제! 모처럼 호사스러운 풍광을 만끽해본다. 30분마다 유람선이 지퍼처럼 갯강을 찢으며 지나간다. 드문드문 빨간 산호초처럼 형성된 칠면초 군락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올해는 생육상태가 별로다. 칠면초는 ‘변화무쌍초’. 새싹 때는 자줏빛, 이어 초록을 거쳐 나중에 다시 붉게 되다가 죽을 때는 백색이 된다. 색깔이 7번 변한다고 해서 칠면초다. 신안군 증도의 명물인 함초(일명 ‘퉁퉁마디’) 등과 함께 국내엔 60여종의 염생식물이 있다. 대다수 식용이다.

호수에 떨어진 빗방울의 파문 같은 크고 작은 둥근 갈대밭. 그것 때문에 순천만은 더욱 기하학적 미학을 뽐낼 수 있게 됐다. 해넘이 명소인 와온마을과 해돋이, 짱뚱어마을로 불리는 화포마을이 장승처럼 서서 순천만의 만조와 간조를 지켜주고 있다. 먼 바다 쪽으로는 남해의 뭇 섬들이 수련처럼 떠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는 갯강이 흐른다. 그 사이를 파고 든 유람선 한 척. 여기가 ‘갯벌 사진미학의 완결판’인 것 같았다.

2013년 박람회 등을 통해 시 전체가 ‘국민정원’으로 등극한 순천(順天). 그들의 메인 슬로건은 ‘여기는 도시가 아니고 정원이다’. 순천(順天)의 지명을 순천(順川)으로 하면 어떨까. 이제 순천만 때문에 ‘하늘 천(天)’보다 ‘내 천(川)’ 자가 더 어울리는 지명일 것 같았다.

용산전망대에서 내려와 대망의 짱뚱어탕을 친견해야 할 시각. ‘대대선창’과 함께 순천 짱뚱어탕 1세대 업소로 불리는 ‘강변장어’로 갔다.

◆예전엔 꼬막, 지금은 짱뚱어가 주인공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짱뚱어는 고기 축에도 들지 못했다. 그보다 더 잘나가는 어패류가 지천으로 널렸기 때문이다. 참꼬막이 제일이었다. 다들 벌교꼬막이라지만 그땐 판로가 마땅치 않아 다들 벌교꼬막도 순천역전 번개시장에서 유통됐다. 순천만이 ‘서남해 꼬막 사령부’였다. 그래서 순천만이 ‘꼬막만’으로 불렸지만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한 벌교꼬막 때문에 전국 관광객은 이제 벌교꼬막에만 눈길을 준다. 아무튼, 만조 구역이 줄어들자 꼬막의 집산지도 점차 순천만에서 벌교 장도 등지로 이동됐다.

짱뚱어탕. 70년대까지만 해도 민어탕과 함께 하절기에만 반짝 사랑받는 서남갯벌권의 복날 보양식이었다. ‘조생종 추어탕’ 같았다. 부산시 기장군의 말미잘탕과 같은 급이라 보면 된다. 가을로 접어들면 짱뚱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럼 미꾸라지가 짱뚱어 뒤를 잇는다. 9월30일쯤 가을무를 심으면 곧 전잎이 나는데 그걸 뜯어 추어탕 끓일 때 사용했다. 통영권만 해도 그 탕의 존재감은 전무했다. 그런데 80년대부터 언론에 소개되면서 전국구로 비상한다.

비지탕처럼 걸쭉한 짱뚱어탕, 언뜻 해물탕과 매운탕의 절충식 같다.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전골과 탕이다. 전골은 짱뚱어를 통째로 넣어 끓인 것. 대구식 추어탕처럼 살점만 발라내 끓인 건 그냥 탕이다. 예전과 달리 기장멸치처럼 회로 먹거나 구워 먹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식당에서도 전골과 탕, 딱 두 종류만 판다.

탕의 맛을 결정하는 건 바로 짱뚱어의 간인 ‘애’다. 겨우 엄지손톱만 한 크기지만 홍어탕에 홍어애가 들어가야 제맛이듯 짱뚱어탕도 마찬가지. 특이하게 짱뚱어탕에는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된장과 들깨가루가 걸쭉하게 들어간다. 예전에는 시래기와 우거지보다 호박잎을 많이 사용했다. 점액질을 제거할 때도 까끌거리는 호박잎을 이용했다. 또한 방아잎도 많이 사용한다.

강변장어 이현주 사장. 갯벌여인네 같지 않고 ‘도시풍’이 감돈다. 사진가로도 활동하는데 생태공원이 되기 전 괜찮은 순천만 갈대밭 안개사진을 여러 장 건졌다. 올해 일흔살의 노모(조순임)는 딸과 함께 윗대로부터 배운 요리법을 지키고 있다. 이젠 고기를 직접 잡지 않고 도매상에서 주 2회 물량을 공급받는다.

탕을 할 땐 내장은 물론 대가리까지 제거한다. 하지만 전골은 머리까지 그대로 사용한다. 상당수 업소는 으깬 살점을 체로 걸러내 쓴다. 이 집은 대가리를 잡고 훑어내려 장만한 살점과 믹서로 간 뼈와 지느러미를 섞어 사용한다. 전골은 탕보다 양념을 더 넉넉히 넣고 맵게 한다. 내장의 비린맛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관광객은 탕, 토박이는 전골을 선호한다.

◆웃장과 아랫장 돼지국밥

짱뚱어와 작별을 하고 순천웃장돼지국밥을 만나러 갔다. 순천의 양대 전통시장은 웃장과 아랫장이다. 그런데 두 곳 모두 돼지국밥으로 유명하다. 웃장에는 20여군데, 아랫장에는 30여군데가 몰려 있다. 시 단위에 이렇게 많은 돼지국밥집이 몰려 있는 데는 순천이 유일하다.

누가 ‘순천도 돼지국밥으로 유명하다’고 했을 때 속으로 ‘순천이 무슨 돼지국밥’이라면서 피씩 웃어댔다. 그런데 순천웃장번영회 조동옥 고문의 안내로 100여년 역사를 가진 동외동 웃장돼지국밥촌을 둘러보곤 생각이 달라졌다. 전주콩나물국밥처럼 콩나물을 베이스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해장용 돼지국밥이었다. 그 국밥의 유래를 파고들었다.

예전에는 배가 인근 조곡교까지 올라왔다. 하역된 어패류는 도보도 20여분 떨어진 웃장에서 팔려나갔다. 장꾼들의 한끼 식사로 출발한 게 지금의 돼지국밥이다. 40년전만 해도 장터 근처에는 이렇다 할 만한 식당이 없었다. 고작 우거지·시래기 들어간 해장국이 전부였다. 선지도 들어가고 가끔 두부와 콩나물이 들어가기도 했다. 지금 버전과 달랐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정말 장사가 잘됐다. 제수용품거리가 활성화됐다. 당시 ‘황전식당’ ‘순흥식당’ ‘상원식당’, 그리고 마지막에 ‘살찐식당’ 등이 터전을 일궜다. 현재 번영회 회원 업체가 17군데, 그밖에 6개를 포함해 웃장 돼지국밥집은 얼추 23군데가 된다. 대를 이은 한성욱 사장이 운영하는 살찐식당을 찾았다. 여기는 내장을 사용하지 않고 머리 고기만 쓴다. 그리고 콩나물이 듬뿍 들어가는 게 다른 데와 차이점이다. 또한 수육에도 보신탕처럼 삶은 부추를 곁들인다. 국물맛이 다른 고장과 확연이 다르다. 뭐랄까, 돼지국밥이 아니다. 잘 우려낸 곰국 같다. 콩나물 굵기도 식감에 영향을 준다. 너무 굵어도 너무 가늘어도 안된다. 중간 굵기여야 한다. 레시피는 회원업소가 공유를 한다. ‘순천웃장돼지국밥’이란 상호는 특허까지 받았다. 2012년부터 전국적 마케팅을 위해 매년 9월8일을 ‘국밥데이’로 정해 축제를 연다. 71세인 ‘쌍암국밥’의 장정자 사장도 순천장터의 지난 세월을 표정에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보성강의 어둔 밤물결 소리를 듣고 싶어 주암면 구산강변길로 차를 몰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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