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비자격증 따 5개 사방댐까지 척척…‘힐링1번지’ 조성 박차

  • 이춘호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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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4   |  발행일 2017-11-24 제34면   |  수정 2017-11-24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독림가(篤林家)’우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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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부터 온갖 고생을 하면서 마련한 5기의 사방댐. ‘치산은 치수(治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있는 우 대표. 그는 장마철 종잡을 수 없는 물길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 개인 산주로서는 드물게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의 기술지원을 받아 함박산 사정에 맞는 신개념 사방댐을 자연친화적 공법으로 완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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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로 정비와 축대를 쌓기 위해 중기자격증도 취득한 우 대표. 굴착기는 그의 ‘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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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기 위해 매년 희망자를 초청, 밤따기를 겸한 팜파티를 벌인다. <우상태씨 제공>

어떤 이들은 날 임업멘토, 팜파티 전문가, 사방댐 선구자, 선도 임업인 등으로도 부르지만 난 스스로를 독림가라 부른다. 독림가도 두 종류가 있다. 소유 산지가 10㏊가 넘으면 ‘개인 독림가’, 100㏊ 이상이면 ‘법인 독림가’, 그 외에 산림 관계자를 ‘임업인 후계자’로 통칭한다. 독림가는 산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고 숲에서 새로운 인문학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일종의 ‘산림운동가’다.

사회복지학 전공 살려 치유의 숲 계획
주민 민원제기에 ‘모두의 숲’ 깨달음
농업회사법인 <주>E·G·T수목원 설립
산촌생태마을6차산업화사업 공모 선정

방문객 위해 매일 헛개 열매 약차 준비
1천여평 밭 가꿔 방문객에 농작물 나눔
올해도 200여명 5t의 밤 따서 가져가
장남 힘보태 ‘치유의 숲’ 기본안 탄력


지금 난 청도군 각남면 함박리, 청도와 밀양의 경계에 있는 99만㎡(30만평)의 적잖은 넓이의 함박산에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내가 함박산을 살 수 있었던 건 조상 덕분이다. 조상이 물려준 대구권역에 산재한 적잖은 산지가 개발붐을 타면서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 1993년도 산을 구입할 때 가장 많이 심겨 있던 수종은 77년 산림녹화사업 일환으로 대량 식재된 1만2천주의 밤나무다. 그 후 특용수인 백합(6천주)·편백(6천주)·느티(400주)·은행(3천주)·대추·때죽·헛개·호두·감·산벚나무를 비롯해 매실·복숭아·헛개 등을 심었다. 심은 지 얼마 안 돼 복숭아와 대추나무는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처참하게 죽어버렸다. 멧돼지가 두 유실수를 엄청 좋아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처음부터 치유의 숲으로 방향을 잡은 건 아니다. 내 전공인 사회복지학을 이용해 함박산에 적당한 시설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무산이 됐다. 재차 저온창고 버섯재배사 허가를 받고 공모사업을 실시하려고 했지만 역시 일부 주민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나는 함박산을 내 개인이 아니라 모두의 숲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믿었다. 그걸 위해 일단 농업회사법인인 <주>E·G·T수목원이란 회사부터 만들었다. 경북도의 5억원짜리 공모사업에 선정돼 산촌생태마을 6차산업화사업 관련 최종보고도 했다. 덕분에 무농약으로 생산된 함박산 밤이 청정숲푸드로 지정됐고 이를 계기로 해외조림사업 관련 특강도 하게 됐다.

이젠 산이 내 직장이다. 57년간 살던 대구 계산동을 떠나 경산시 중방동으로 이사했다.

◆ 난마처럼 얽힌 산지 관련법

남들은 내가 투기 목적으로 산을 지닌 줄 안다. 작고한 우방그룹의 이순목 회장이 골프장 부지로 괜찮다 싶어 한때 괜찮은 가격에 매입할 의향을 보였다. 내가 호의호식할 생각이었다면 그때 처분했을 것이다.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독림가는 산을 개인적으로 처분하지 못한다. 그런 걸 남들이 알 리 없다. 난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을 몽땅 산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한두 푼으로는 도무지 표시가 나지 않았다. 무려 20년 이상 공을 들이니 이제 조금 변화의 징조가 보인다.

예전에는 펜대만 놀리며 탁상행정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산쟁이’가 됐다. 손가락 밑에 새까만 때가 늘 들러붙어 있다. 예전에는 내밀기가 뭣했는데 이제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도끼에서부터 발전기, 굴착기, 톱, 관리기, 예초기 등 산막은 각종 농기계와 연장으로 가득하다. 도끼질도 힘으로 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모든 일에 요령이 있었다.

1천여평의 밭도 직접 가꾸어야 된다. 봄이 되면 물과의 전쟁을 벌여야 된다. 가뭄에 대비해 지하수 확보가 절실했다. 그래서 2천여만원을 들여 하루 200t의 지하수를 쏟아낼 수 있는 관정을 팠다. 이제 여유를 갖고 배추, 가지, 무, 더덕, 방울토마토, 상추 등을 돌볼 수 있게 됐다. 난 여기서 나오는 여러 농작물을 나눔의 대상으로 본다. 그래야만 치유의 숲 지킴이가 될 수 있다. 지인과 방문객에게 필요한 걸 갖고 가도록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가 필요한 뭔가를 준다. 산막에 있는 냉장고의 먹을거리도 그들이 거의 채워놓은 것이다.

◆ 사방댐과의 전쟁

여름에는 태풍과 장마가 복병이다. 어느 언저리에서 산사태가 일어날지, 어느 나무가 쓰러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거센 물길이 내려오는 메인 계곡에는 사방댐을 구축해야 된다. 모두 5개의 사방댐을 6년 전부터 구축했다. 이놈들은 정말 ‘고생댐’이었다. 3개까지 공사할 때는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가 컸다. 나머지 2기를 공사할 때는 집안의 석공 장인(우인범)을 불렀다. 또한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의 기술 조언을 통해 제대로 된 사방댐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자연 암반석을 잘 이용해 최대한 자연적인 계곡처럼 보이게 신경 썼다. 개인이 5개의 사방댐을 마련한 경우는 없다.

물길을 잘 터주기 위해 곳곳에 축대를 쌓고 배수관을 묻었다. 손으로는 다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중기자격증도 따야만 했다. 작은 굴착기는 이제 내 ‘애마(愛馬)’다. 일에 심취한 나머지 얼마 전 발을 헛디뎌 벼랑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다. 나는 매년 1월15일에 산신제를 꼭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별 탈이 없었다. 하지만 산신제만으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산 아래 일은 우긴다고,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서로의 이해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련법의 제약조건을 샅샅이 파악해야 한다. 관련법, 관련 당국자, 연관업무 등을 혼자 다 챙겼다. 산림청 사유지 담당, 농업기술센터 친환경관리과, 시·군 산림지원과·산업산림과, 산림조합, 한국임업진흥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시·도교육청 과학진흥과, 대구와 경북수목원 등을 내 집처럼 들락거렸다. 고압선 관련 민원은 한국전력공사 보상과가 담당이다. 개인이 전기를 가설하려고 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3가구만 공동제안하면 관련법상 적은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노력의 결실이 조금씩 드러났다. 산림청 지정 ‘청정숲푸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스타팜’, 경북도농업기술원의 ‘팜타피’ 추진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 부모 수목장으로 배수진

내게 함박산은 일종의 삶의 ‘배수진’이다. 내가 1부 인생에서 배우고 익힌 모든 지식과 지혜, 그리고 적잖은 재산을 쏟아부었다. 비장한 각오로 부모부터 수목장으로 모셨다. 팔아치우는 산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조만간 앞산공원에 있는 윗대 산소 4기도 이장할 예정이다. 물론 나도 여기에 묻힐 것이다. 내 자식들도 별일이 없으면 여기에 묻힐 것이다.

예전에는 물 좋고 공기 좋은 세상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산이 답’이란 직감이 든다. 산이 병원을 대신하는 ‘힐링 1번지’로 발돋움할 것이다. 나는 그날을 대비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 6시30분에 아침을 먹고 차를 몰고 함박산으로 온다. 7시10분쯤 도착한다. 11시30분 점심을 먹는다. 정오부터 30분간 꼭 오수를 청한다. 오후 5시에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 방문객을 위해 매일 헛개나무 열매로 약차를 만든다. 올해도 200여명이 5t 정도의 밤을 따 갔다. 영천에 사는 천연염색가 김용부씨는 500그루의 오배자나무 열매를 갖고 염색을 한다.

어떤 때는 계곡 2개, 봉우리 5개, 총연장 6㎞의 임도를 걷는다. 산길에서 새로운 지혜를 얻는다. 야생동물의 이동로도 훼손되지 않게 정비해 준다. 내 일상은 거의 군대생활을 방불케 한다. 좋은 공기와 꾸준한 노동, 그리고 긍정적 사고. 그래서 아직 피가 잘 돌아간다. 깡마른 체격이지만 청년만큼 팔굽혀펴기를 한다.

앞으로 강원도 인제군 못지않은 자작나무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일반 잔디와 달리 3㎝ 이상 자라지 않는 ‘진지’라는 특수 잔디도 시범적으로 심어볼 계획이다. 산길과 숲, 그리고 각종 시설물이 잘 어우러져야 비로소 함박산 미학이 완성되는 것이다. 함박산은 보존가치도 높다. 1998년과 2014년 현지 포유류 조사결과 멸종 위기야생생물인 수달, 삵, 담비 등도 발견됐다.

장남(종석)은 도쿄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건축디자이너. 요즘 임업 후계자가 되기 위해 막바지 조경기사 시험에 매달린다. 언젠가 이 산은 사회적기업이 될 것이다. 내 것이 아니라 모두의 숲이기 때문이다. ‘함박산 치유의 숲’ 기본안은 다 짜였다. 산책, 사색, 토론, 물놀이, 트레킹, 캠핑, 휴양 등이 모두 가능한 ‘복합산림인문학 클러스터’를 만들고 싶다. 함박산 힐링숲길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사랑의집짓기 운동본부와 함께 지은 휴먼빌리지로도 연결될 것이다.

마지막 낙엽이 우수수 지고 있다. 내 삶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꾼 숲만은 더 오래, 더 넓고 깊게 돋아날 것이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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