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어르신들 나무베기·환경미화…오전 6시30분부터 밭일”

  • 서정혁
  • |
  • 입력 2018-02-22 07:26  |  수정 2018-02-22 07:27  |  발행일 2018-02-22 제6면
불법의료행위 요양원 추가 의혹
새로운 내부고발자 인터뷰
20180222
대구 서구 한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에게 일을 시키는 행위가 최근까지 계속됐다고 주장한 제보자가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작은 사진 모자이크 처리)에서 한 장의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지난해 여름에 촬영된 사진 속에는 어르신들이 요양원에서 나무를 베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제보자 제공>

대구 서구 한 요양원의 ‘불법 의료행위에 따른 사망사고’ 의혹이 보도된 직후 영남일보에는 해당 요양원의 전 직원 등 추가 폭로와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감금·강제노역 등 이 요양원의 인권침해 행위를 폭로한 A씨 역시 전 직원이다. 그는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시설의 ‘산증인’이라고 소개했다. 시설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 역시 앞서 불법 의료행위 의혹을 제보한 전 직원(영남일보 2월19일자 8면 보도)과 마찬가지로 방관자로 살아왔다고 했다. 때론 그들의 범죄에 가담도 했고 불법인지 모르고 저지른 행위도 꽤 많다고 인정했다. A씨가 제보한 내용은 시간이 다소 지난 과거 사건이지만 영남일보는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이 요양원을 운영하는 재단이 1977년부터 40년이 넘도록 가족에 의해 운영돼 해당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감안했다. 이번 기사는 내부고발자 A씨 등 2명과의 인터뷰 내용을 종합해 작성했음을 알려둔다.

예전 축사·농장 운영할 땐
산에서 하루종일 풀 베기
마늘 껍질 까기 등 시키고
불만 표출하면 술 사 달래


▶인터뷰에 응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요양원에서 어떤 일을 했나.

“시설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정확한 연차는 답을 피하고 싶다. 원장과 사무국장 등이 시키는 잡다한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직원이라기보단 ‘하인’이라고 보면 된다.”

▶왜 자신을 하인이라 표현하는가.

“하인이 하는 일이 뭔가. 주인이 시키면 어떤 일이든 하지 않나. 나 역시 그랬다. 먼 곳에 있는 지인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라면 아무 말 없이 가서 생필품을 전달했다. 서울에 있는 시설 간부 자식에게 시설운영비로 구입한 쌀과 생필품 등을 보내는 일도 했다. 또 주변 지인이 일손이 부족하다고 요청하면 가서 그 일을 했다. 요양원과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하인이라고 소개한 이유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어르신들이 시설 인근에 보내져 매일 일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이다. 거짓일 경우 처벌받겠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달라.

“시설 간부들이 지인들의 요청을 받고 어르신들을 축사 등으로 보냈다. 1990년대에는 더 많았다. 당시 동네 주민도 이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관련 사실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주민만 50여명이 된다. 그들 모두 해당 사실에 대해 확인서를 써줬다. 만약 요양원에서 이런 사실을 부인한다면 천벌을 받아야 한다. 힘이 없거나 일을 잘 못하는 어르신은 산에 올랐다. 소에 먹이는 풀과 칡넝쿨 등을 구하기 위해서다. 생각해 보라. 어르신들이 산에서 하루 종일 풀을 벴다. 당시 마을 주민과 나 역시 그게 잘못인 줄 몰랐다.”

▶시설에서 풀이 왜 필요한가.

“현 이사장이 당시 칠곡에서 젖소를 키웠다. 그 젖소에게 먹일 풀이었다. 어르신들이 동원돼 일한 건 대부분의 주민이 아는 사실이다.”

▶칠곡 축사에도 어르신들이 가서 일했나.

“당연하다. 요양원에는 어르신이 많지 않은가. 가족과 지인이 없거나 체력이 좋은 어르신들 위주로 칠곡에 있는 농장에 보냈다. 그들은 먹고 자며 일했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4명이다. 그중 한 분은 한쪽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다. 여자 어르신도 한 분 계셨다. 주로 현 이사장의 딸을 돌보는 일을 했다. 그때 축사에 방이 8개 있었는데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며 임금 없이 일했다.”

▶축사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소똥 치우고 밥 주고 청소하고…. 축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당시 농장 규모가 1만1천220㎡(3천400평) 정도 됐다. 그 중 9천900㎡(3천평)는 옥수수를 심었다. 소에게 먹일 ‘엔실리지’(매장사료)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 옥수수밭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언제까지 일한 건가.

“2000년쯤 시설로 돌아와 시설에서 사망했다. 한 10년은 넘게 일하신 셈이다. 현 이사장의 젖소 사업이 잘 안됐다. 그래서 양어장을 했다. 금붕어와 비단잉어 등을 키웠는데 그곳을 관리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어르신들의 주소를 아예 그곳으로 옮겨 일을 시켰다. 아무래도 인원점검 때마다 어르신들을 시설에 돌려보내고 다시 데려오고 하는 게 귀찮았던 걸로 보인다. (시설에서는) 당시에도 시나 구청에서 점검 등이 나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이런 사례가 또 있나.

“시설 인근에 있는 축사에서 일한 이모 어르신이다. 그는 힘이 장사였다. 그래서 이 어르신은 그 축사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당시 어르신을 부린 축사 주인이 해당 사실을 인정한 녹취록도 있다. 어르신은 용돈 정도만 받고 일했다.”

▶일하기 싫다고 의사표현을 한 적은 없는가.

“당연하다. 요양원은 쉬는 곳이다. 누가 일을 하고 싶겠나. 당시 이 어르신은 술을 드시고 양로원 철문을 두드리며 욕설을 하셨다. ‘다시 양로원에서 생활하게 해달라’고 하셨다. 양로원 정문이 (그땐) 철문이었다. 어르신이 문을 두드리며 욕설을 하면 모두 알았다. 그럼 간부들이 나가서 마트에서 술을 사서 어르신을 달래 축사로 다시 돌려보냈다.”

▶충격적이다. 요양원에선 어르신을 축사에 보내는 조건으로 대가를 받았나.

“아마도 은밀하게 이뤄졌을 수 있지만 금전적인 대가를 받은 사실에 대해선 모른다. 명확한 건 명절이면 해당 축사에서 100근(60㎏)짜리 중돼지를 잡아서 요양원에 보내줬다. 이게 대가라고 난 생각한다.”

▶지금도 이런 일이 있나.

“이제 농장이나 축사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동원되는 어르신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요양원 내부에서 일을 한다. 한 어르신은 재활용품 등을 모으는 일을 도맡아 하신다. 요양원에선 그 어르신이 모은 물건들을 파는데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겠다. 또 인근에 있는 밭에서 오전 6시30분부터 일을 하기도 한다. 요양원 주변에서 나무를 베거나 시설환경미화도 어르신들이 직접한다. 시설운영비에서 인부를 고용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 외 또 있나.

“80년대 후반부터 한 농산품 사장과 거래를 시작했다. 마늘을 받아서 껍질을 까는 작업이다. 많은 어르신이 동원됐다. 어르신에게 깐 마늘 무게에 비례해 돈을 주기로 했지만 속였다. 거래를 시작한 사장도 속였다. 1t의 마늘을 받으면 양을 좀 속여서 돌려줬다. 나머지 마늘은 양로원 등에서 사용했다. 결국 그 사장과 싸움이 났고 이 사업은 끝이 났다. 경찰서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시설에서 술과 담배 등을 팔고, 문제가 된 어르신들을 감금했다는 것도 사실인가.

“내가 술을 팔았다. 술은 1천원, 담배와 과자는 시가였다. 규칙이 있었다. 판매 시간은 오후 3시30분부터 4시까지. 반드시 2인1조가 와야 술 1병을 줬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술을 더 원했고 밖에서 몰래 술을 사와서 먹었다. 그러다 소란이 일어나면 간부들 지시로 어르신들을 감금했다.”

▶어디다 감금했나.

“술을 판 장소가 감금장소였다. 현재 양로원과 요양원 사이에 분수대가 있다. 그 분수대 자리가 30평(99㎡) 규모의 창고가 있던 곳이다. 밖에서 문을 잠그는 구조였다. 현재 그 창고는 사라졌다. 경찰조사에서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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