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에 보내는 서분숙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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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41면   |  수정 2018-03-09
정규직 아버지와 비정규직 아들

1990년대 초반 울산엔 노동자가 정규·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 노동자만 있었다. 그들은 민주노조를 만들었고 수배를 받고 구속되기도 했다. 98년 무렵이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실시되었다. ‘함께 살자’는 구호 아래 노동자들은 뭉쳤으나 노조집행부는 노동자들의 뜻에 반한 정리해고를 수용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났다. 그 빈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비정규직이 가득한 공장 안에서 정규직은 점차 ‘자본가’의 모습을 닮아갔다. 비정규직을 지배하는 위치에 섰을 때 누리는 안락함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규직이 좀 더 쉬기 위해 비운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야 했다.

임금뿐만 아니라 작업복, 작업화, 심지어 간식에서조차 차별받는다. 정규직에게 배급되는 간식은 비정규직에겐 돌아가지 않는다. 임금은 덜 받고 힘든 일은 더 해야 하는 비정규직의 노동현실, 정규직도 처음엔 그게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상한 일이다. 비정규직을 차별함으로써 누리는 안락함과 편리함. 정규직은 그것에 눈부신 속도로 적응했다. 이제 굳이 회사 관리자가 나와 감시하지 않는다. 정규직이 알아서 비정규직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나 갈 것인가. 최근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 자녀들이 비정규직으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했다. 정규직 아버지는 “결국 내가 내 아들을 죽였구나”라며 오열한다. 소외된 비정규직 하나 품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 과연 대기업의 횡포를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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