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공들에게 가장 만만한 ‘황등비빔밥’…비빈 밥 위 한줌 육회 ‘화룡점정’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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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6   |  발행일 2018-04-06 제34면   |  수정 2018-04-06
■ 푸드로드 ‘전북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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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불에서 잘 볶이고 있는 진미식당 비빔밥. 간이 시장비빔밥보다 약한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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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등육회비빔밥의 발생지로 불리는 진미식당의 주방. 비빌 준비를 하고 있는 그릇들이 먹음직스럽게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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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한해 별미로 내는 분도식당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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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이 들어가고 토렴을 거치지 않는, 볶듯이 비비는 한일식당 스타일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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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를 섞는 게 특징이고 다른 비빔밥에 비해 간이 강한 시장비빔밥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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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은 양의 화강암을 캐내 원래 산의 형태가 사라져버린 황등산 채굴 현장.

대구와 광주가 ‘달빛동맹’을 체결했다. 이보다 앞서 영호남 교류가 있었다. 7세기 때 경주와 익산은 석탑을 촉매로 동질적 불교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주와 익산이 자매결연도시가 될 수 있었던 건 경주 황룡사와 미륵사 사이에 숨길을 터준 두 여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라 26대 진평왕. 그에겐 지모와 미색을 겸비한 두 딸이 있었다. 선덕(善德)과 선화(善花)였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어 첫째딸 선덕에게 왕위를 넘긴다. 신라 최초 여왕이자 제27대 왕(632∼647)이 된다. 그런데 대립하던 신라와 백제. 둘은 또 한 사람의 걸물을 만나면서 ‘거탑외교(巨塔外交)’를 벌일 수 있게 된다. 바로 미륵사가 있는 금마면에서 태어난, 훗날 백제 30대 무왕(600~641)이 되는 ‘서동(薯童)’이다. 서동의 탄생지로 알려진 곳은 금마면 서고도리 소재 마룡지(연동재) 주변. 근처 마룡지는 서동의 어머니가 물에서 나온 용과 야합, 서동을 낳았다는 삼국유사 무왕조 무왕탄생설화의 공간이다. 서동은 마를 캐고 살았다. 서동은 평소 연모의 정을 품었던 선화를 자기 사랑으로 만들기 위해 적진으로 뛰어든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맛둥(서동) 서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는 ‘서동요’를 퍼뜨리는 묘수로 선화를 얻게 된다. 신라 최초의 4구체 향가로 등극하게 되는 서동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며 영호남 친선의 상징이 아닐까. 언니는 경주에서 ‘황룡사 9층탑’, 선화공주는 아버지의 지원까지 받아 적국의 땅에서 ‘미륵사’를 성사시킨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시신은 석왕동 ‘쌍릉(雙陵)’에 봉안된다. 두 능은 200m 떨어져 있다. 자연스럽게 마를 이용한 음식이 생겨날 수밖에. 18년 전 익산시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을 받아 서동마약밥한정식을 개발한 신동의 ‘본향’이 마 전문 한정식당으로 자릴 잡았다. 미륵사는 정말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미륵사는 전체는 하나지만 3개의 금당이 연결돼 있다. 동서 금당마다 석탑을 세우고 중앙에는 두 석탑보다 훨씬 거대한 목탑을 설치했다. 보통 사찰이 1개의 법당에 1탑 혹은 쌍탑인 것에 비하면 특이하고도 거대한 구조다. 무왕이 왕궁리에 세운 왕궁(600~640)은 남북 450m, 동서 234m. 능(쌍릉)과 국찰(제석사지) 등 궁이 갖춰야 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황룡사·미륵사의 환상적 매치. 이 공력 때문에 불세출의 백제 석공 아사달이 경주 불국사로 초대된다. 불심이 대단했던 김대성이 그 가교가 된다. 그는 불국사의 백미가 될 석가탑 축조를 위해 아사달을 초대한다. 홀로 남은 아사달의 여인 아사녀는 불국사 근처 영지에 비친 석가탑을 남편인 줄 착각해 물에 뛰어들었다가 숨진다. 이 사실을 안 아사달마저 그 못에 함께 빠져 죽는다. 이후 영지엔 석가탑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 그 연유로 세인들은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 했다.

석공의 고향으로 만든 황등석
신라 선화공주와 백제 서동 이야기
황룡사·미륵사 영호남 ‘거탑 외교’
돌 갈고 쪼개는 소리로 연일 호경기

황등비빔밥
민초에 의해 형성된 ‘서민 비빔밥’
채석장 사람의 안주이자 한끼 식사
백종원 먹방으로 알려지면서 대박
황등시장 우시장, 육회비빔밥 특화

진미·한일·분도·시장 비빔밥
뜨거운 국물로 여러차례 토렴 과정
밥알에 국물 코팅되며 부드러운 맛
주방 맞춤식으로 비벼내 갖은 고명
한일식당은 토렴 안 거치는게 특징

◆ 황등석을 찾아서

황등비빔밥을 만나기 위해선 우선 익산을 석공의 고향으로 만든 주인공인 황등석부터 만나봐야 한다. 미륵산의 기운은 황등면에 있는 한국 최고의 화강암을 품고 있는 황등산과 실시간으로 교감한다. 그 황등산은 서북쪽 금강나루를 굽어보는 ‘함라산’과 교신한다. 미륵산의 기운이 미륵사로 화했다면 그 미륵사의 석탑도 황등산 석재를 이용했을 것이다. 실제 미륵사 동탑도 황등석으로 만들었다.

황등산의 화강암은 거창석·포천석·합천석·문경석 등 국내 여러 명물 화강석 중 가장 변질되지 않고 입자가 균일하고 일정한 강도까지 유지하고 있다. 돌 안에 철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명인급 석공이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회의사당, 독립기념관, 청와대 영빈관, 노무현 대통령 묘지석 등에 사용된다.

황등면의 중심 에너지인 황등산. 한때는 산이었지만 이젠 예전 높이만큼 지하로 내려가 버렸다. 매장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진장한 돌산. 일제강점기부터 채굴했지만 아직도 진행형 채석장이다. 한창 시절 황등면 도로변은 돌을 절단하고 갈고 쪼는 소리로 가득했다. 황등산 언저리는 돌가루로 자욱했다. 농공단지로 석공들이 대거 이주하기 전엔 황등면은 연일 호경기였다. 그 석공에게 가장 만만한 음식이 바로 황등비빔밥이었다. 전국 그 어느 비빔밥보다 민초들에 의해 형성된 ‘서민의 비빔밥’이었다.

익산의 석재산업은 전국 석재산업의 70%를 차지한다. 황등 농공석재단지는 국내 유일의 석재가공단지다. 석재산업과 관련한 귀금속, 보석, 석재 가공 자동화 및 디자인 연구개발기술 혁신센터와 국내에서 유일하게 매년 60~70명의 석공예 기술자와 건축석재 기술자를 배출하고 있는 대한광업진흥공사 익산사업소가 있다.

현재 익산에 허가된 채석업체는 11개, 채석장은 13곳이다. 대부분 낭산면에 모여 있고 그외 황등면에 2곳, 함열읍에 1곳이 있다. 총 허가 면적은 75만6천2㎡. 채석을 마친 폐석산 36만8천330㎡를 합치면 112만4천332㎡(약 34만평)로 여의도 전체 면적의 40%에 해당한다.

그런 저력 덕분에 2002년 1만2천여 점의 세계 각국 보석과 화석 등을 갖춘 국내 유일의 보석박물관이 익산에 건립될 수 있었다. 현재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급 기술인력 대부분이 익산공단 출신이다.

◆ 황등비빔밥 4인방을 찾아서

황등석 이야기를 뒤로하고 황등육회비빔밥 총사령부가 있는 황등풍물시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 황등비빔밥은 한국 비빔밥계의 ‘막내’라고 할 수 있다.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 그리고 통영거제권 멍게비빔밥, 문경 산채비빔밥, 달성군 사찰비빔밥, 울릉도 홍합비빔밥이 전국구로 명성을 날릴 때도 황등비빔밥은 별로 알려진 게 없었다. 인지도가 너무 낮았다. 특히 대구·경북권 식도락가에겐 접근하기가 너무 멀어서 사각지대 비빔밥으로 방치돼 있었다. 그냥 ‘황등면의 음식’ 정도로 머물렀다.

그런데 역시 먹방의 위력은 강력했다. 2014년 2월 백종원의 3대천왕을 통해 비빔밥이 알려지면서 대박을 친다. 가장 허름해 보이고 스토리가 풍부해 보이고 식당 내부 그림이 좋은 ‘시장비빔밥’과 허가된 황등비빔밥 1호점인 ‘진미식당’이 나란히 출연했다. 비빔밥은 그렇게 정갈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남은 반찬 갖고 와 큰 양푼에 갓 비벼낸, 조금은 ‘막비빔밥’ 같았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맛은 전국구 비빔밥을 압도할 정도였다. 황등시장. 그리고 그 시장에는 상당한 규모의 우시장이 있었다. 우시장 옆엔 보통 소머리국밥과 순대국밥 등이 유명한데 여긴 육회비빔밥이 특화됐다. 이 비빔밥은 황등산 채석장 인부, 그리고 석물공장 석공들의 안주이자 한 끼 식사였다. 육회를 올린 건 돌작업하는 이들의 특성상 상당한 열량이 필요했기에 자연스럽게 특미 고명으로 채택된다.

황등비빔밥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비빔밥론을 알고 있어야 한다. 허영만의 대박 만화 ‘식객’, 그리고 맛해설가로 잘 알려진 황광해 등이 흥미로운 비빔밥론을 알려준다. 비빔밥도 두 종류라는 것. ‘비빈밥’과 ‘비빌밥’. 손님이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주방에서 미리 이런저런 양념을 넣고 맞춤식으로 내는 게 비빈밥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대다수 비빔밥은 갖은 재료를 자기 스타일에 맞게 비벼서 먹도록 내놓는다. 그건 비빌밥이다. 비빔밥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고조리서 ‘시의전서’를 보면 비빔밥은 주방에서 한 차례 비벼서 나오는 비빈밥 형태였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밥에 반찬을 넣고 고추장 양념에 비빈 뒤 고명을 얹어주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세상은 갈수록 비빌밥 스타일로 굽이쳐 갔다. 하지만 황해도 해주와 전북 익산은 아직도 비빈밥 성지.

◆ 황등비빔밥 4인4색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만드는 과정은 절대 간단치 않다. 우선 여러 차례 ‘토렴’ 과정을 거친다. 토렴이란 국밥의 정수를 그대로 간직한 조리법 중 하나다. 밥이나 국수 등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르기를 반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밥알에 국물이 코팅되면서 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토렴을 마친 밥에 콩나물·참기름·고추장 등을 넣고 비벼준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맨 마지막에 우둔살(엉덩잇살)로 만든 육회와 함께 청포묵, 황포묵, 도토리묵, 상추, 시금치 등 갖은 고명을 얹는 것. 다 만들어진 비빔밥을 손님상에 내놓기 직전 그릇째 불에 올려 데운다. 돌솥밥을 연상시킨다.

황등면에서는 특이하게 유기그릇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토박이들은 유기는 기제사 등에 사용하는 것이라서 왠지 꺼림칙하게 여긴다. 유기는 망자의 몫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다들 스테인리스스틸 용기를 사용한다.

황등비빔밥 4인방이 있다. 5일장(5·10일) 황등풍물시장 안에 있는 ‘진미식당’ ‘시장비빔밥’, 그리고 시장 근처에 있는 ‘한일식당’, 가장 후발주자는 시장 내 정육점구이집으로 유명했다가 뒤늦게 점심에 한해 별미로 비빔밥을 냈던 ‘분도식당’이 그들이다. 다들 배려심이 각별하다. 원래 3대천왕이 한일식당을 섭외했는데 맘씨 고운 한일식당이 시장비빔밥과 진미식당 측에 양보를 했단다.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토렴을 하는 게 특징인데 한일식당은 토렴하지 않는다. 세 곳은 고추장소스를 사용하지만 한일식당은 고춧가루를 쓴다. 묵을 얹는 곳은 진미식당과 한일식당인데 진미식당은 황포묵, 한일식당은 도토리묵을 넣는다. 하지만 모두 육회를 사용한다. 시장비빔밥은 그 육회에 비계를 섞는다.

시장비빔밥은 외관이 무척 허름하다. 간판도 없다. 그냥 창문에 상호가 새겨진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점심때라 왁자지껄하다. 밥집보다 술집 분위기에 가깝다. 왼쪽 오픈 주방이 진풍경을 보여준다. 가마솥 곁에 찬모와 식당주, 토렴조가 모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 주방엔 소고기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각기 순대국밥과 비빔밥을 위해 헌신한다. 가마솥 국물은 순대국밥과 비빔밥용으로 동시에 사용된다. 토렴조는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콩나물이 얹힌 식은밥에 선지와 순대, 그리고 돼지고기 육수가 뒤섞인 투박한 가마솥 국물을 족히 50여 번 부었다 뺐다를 계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밥알에서 나온 전분질이 국물에 섞여 푸르스름하면서도 누른 기운을 발산한다. 토렴된 밥은 특제 고추장소스를 곁들여 잘 비벼준다. 적당량을 용기에 담아주면 재빨리 총대장 김언남(68)이 돼지비계와 무친 파가 섞인 소스 같은 육회 한 점을 콩나물밥 위에 올려준다. 여긴 정월녀와 이기동을 거쳐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육회 식감은 비계 때문에 더 구수하다. 하지만 양념이 다른 식당에 비해 강하다. 오전 5시30분이면 주방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자연산 참기름은 화룡점정. 정종 병에 가득 담긴 참기름은 한눈팔면 바닥을 드러낸다. 네 곳 비빔밥을 동시에 시식을 해야만 했다. 맛있어도 포식은 금물. 적당히 점만 찍고 옆에 있는 진미식당으로 이동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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