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 업체 자생력 크지 않아…정부·지자체 초기 지원 절실”

  • 이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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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9 07:38  |  수정 2018-05-19 09:56  |  발행일 2018-05-19 제5면
재활용의 새 트렌드 이젠 업사이클 시대
대구 평리동 한국업사이클센터
업사이클 주제 전국 최초 설립
창업 지원·브랜드 개발 등 망라
제품 만들며 환경 소중함 체험
5돌 수성구‘자연닮기협동조합’
일상 업사이클 실천·환경교육
예술작품 제작·전시회도 가져
20180519
① 업사이클업체 ‘파이어마커스’는 버려지는 소방호스를 활용해 가방을 제작한다. ② 한국업사이클센터의 ‘메이커스 클래스’ 심화과정 수업 모습. ③ 자연닮기협동조합 류금남 대표(맨 왼쪽)와 회원들은 업사이클 체험을 중심으로 한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방의 흔적’이라는 뜻의 ‘파이어마커스’는 버려지는 소방호스를 업사이클 해 가방을 제작한다. 아버지가 소방관이었던 한 청년이 무심히 버려지는 폐소방호스가 곧 소방관의 희생과 헌신을 의미하는 상징이라 생각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제품으로 재탄생시킨 것. 파이어마커스는 이와 함께 소방관을 좀 더 친근감 있게 인식할 수 있도록 소방관이 입는 방화복, 근무복도 밀리터리룩과 같은 ‘소방룩’으로 재해석하는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업사이클 가치 확산

대구 서구 평리동 ‘한국업사이클센터’ 1층 전시장에서는 파이어마커스와 같은 국내외 22개 브랜드 315점의 업사이클 대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셔츠, 커피 자루, 우산, 폐목재, 와인병, 자투리 가죽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 만든 창의적인 제품을 상설 전시한다.

전국 최초로 업사이클만을 주제로 설립된 ‘한국업사이클센터’는 2016년 6월 옛 대구지방가정법원 건물을 리모델링·증축해 문을 열었다. 버려지는 폐자원에 디자인을 접목해 고부가가치화를 꾀하는 업사이클 산업 플랫폼을 구축하고 업사이클 산업 인력양성, 창업 지원, 브랜드 및 제품 개발, 유통시장 개척 등을 주요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장과 함께 1층에 자리한 M-Lab(소재 라이브러리)은 기업 및 창업자들이 신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정보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86종 250여점의 다양한 업사이클 소재를 모아놓았다. 청소년, 대학생 등 단체 방문객이 연평균 1만3천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2층으로 올라가자 디자인리메이크팩토리에서 일반인 및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메이커스 클래스’ 심화 과정 수업이 한창이었다. 메이커스 클래스는 일일 체험 위주의 단기과정과 실습 중심의 심화과정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9명의 수강생이 총 5주간의 과정 동안 청바지 소재를 활용한 액세서리부터 가방, 앞치마 등 다양한 제품을 직접 생산해낸다.

이날 참여한 수강생들은 2시간 동안 주변에서 버려지는 청바지 2~3개씩을 가져와 일일이 실밥을 뜯어 분해해 재료화하고 자신만의 패치워크를 구성한 뒤 실습실에 비치된 봉제 기기를 사용해 토트백을 만들어냈다. 패치워크 만들기에 고민하던 주부 최임씨(48)는 “생각보다 창의력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 쉽지 않다”며 “만드는 이에 따라 작품이 다르고, 소재를 가치 있게 활용한다는 점이 업사이클의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현정 강사(할리케이 대표)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아이디어에 따라 방식이 무궁무진한 것을 업사이클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마감재나 핸들에 자투리 가죽 등 고급화한 소재를 덧붙이고, 스텐실·스티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더욱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옅고 짙음이 다 다른 청바지는 그라데이션 등으로 디자인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2층 한편에 마련된 더나누기 상품제작실은 대구의 우수 업사이클 브랜드 ‘더나누기’ 신규 상품 개발과 시제품 제작, 기술 지도 등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전문 봉제장비가 갖춰져 있어 장비 확보가 어려운 기업들이 신규 상품 개발·양산 검증을 위한 시제품 제작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업사이클센터에는 10여개의 업사이클 관련 업체가 입주해있다. 기업 간 제품·기술 융합을 위한 협업공간도 마련돼있다.

장지훈 한국업사이클센터장은 “단순한 산업 확대가 아닌 업사이클 가치에 대한 공감 확대가 함께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며 “시민이 생활 속에서 환경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 증대

“생활 속에서 업사이클을 실천하면서 자연스럽게 환경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환경에 대한 문제를 깨우치고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교육 기반이 갖춰져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14일 대구 수성구 황금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류금남 자연닮기협동조합 대표는 환경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동안 대구시내 대부분의 초·중·고에서 환경부 인증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환경에 대한 조기 교육을 더욱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자연닮기협동조합은 버려진 의류 등을 수집해 분해, 재료화한 뒤 자유학기제,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직접 업사이클 제품을 만들어보는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는 청바지를 활용해 필통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류 대표는 “필통을 만든 이후에도 실생활에서 계속 사용하면서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며 “흥미를 끌기 위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북극곰의 눈물, 바다 오염 등 주제의 영상을 보여주면 학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업사이클 제품이 그러한 환경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이어 “조합 설립 초기에는 업사이클 제품 제조·판매를 위주로 했는데 이제는 교육이 80%를 차지한다. 아이들과 환경 문제에 대해 함께 소통하다 보면 어른들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많다. 성교육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환경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설립된 자연닮기협동조합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환경교육과 업사이클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내달 말쯤 수성구 동성시장예술프로젝트(DAP)에 입주해 본격적으로 업사이클 알리기에 나설 예정이다.

협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주부다. 가정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누어 쓰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좀 더 실용적이고 가치 있게 재활용할 방법을 찾다 업사이클을 알게 됐다. 이들은 막연하게, 어렵게만 생각하던 환경을 좀 더 쉽게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가장 쉽게 응용할 수 있는 청바지 등의 의류로 가방, 앞치마, 쿠션, 동전지갑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다, 최근에는 예술작품도 제작한다. 최근 김광석 거리에서 업사이클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류 대표는 “환경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평소에 어떤 방법으로 실천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시민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업사이클을 알리고 과소비 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류 대표는 업사이클 업체의 자생력이 크지 않은 만큼, 정부와 지자체 등의 초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규모로 활동하는 이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줘야 한다는 것. 이미 서울, 경기는 지자체가 나서 업사이클 공모전이나 대회 등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시민의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글·사진=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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