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속 육지 문화를 찾아서(2)...전국 예술인 제2의 터전·세대 불문 '한달살기' 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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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2   |  발행일 2020-05-22 제34면   |  수정 2020-05-22
섬에 스며든 문화 속살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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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영감을 얻어 추진해 현재 26구간 제주도를 일주하는 코스는 토박이보다 육지인들의 걷기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대정읍 동일리 돌고래가 많이 출몰하는 해변가 올레길의 고즈넉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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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베이커리 카페 '수애기' 대표 빵인 소금 빵과 커피 한잔이 창 너머 올레길을 보며 명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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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읍 토박이 스타일의 고기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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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태어나 서울서 생활하다가 아버지가 경영하던 전분 공장을 카페 '감저'로 리모델링 해 제2의 섬 살이를 시작한 김재우·원정희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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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준비 끝에 태어난 감자 전분 공장의 고태스러운 이미지를 고스란히 살린 토박이가 경영하는 베이커리 카페 '감저' 내부.

제주도. 한때 신혼부부만을 위한 관광지였다가 이젠 '문화적 망명'이란 기치를 내건 육지인의 섬으로도 진화했다. 한 달 아니면 1년 정도 빈집 빌려 '놀멍쉬멍(놀면서 쉬면서란 의미의 제주어)' 이 섬 만의 문화적 속살을 체험하기 안성맞춤인 곳. 강정마을 해군기지와 비자림로 반대, 환경투쟁 등으로 인해 제주 도민의 권익을 위해 육지의 목소리가 구체적으로 틈입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다양한 박물관을 가진 곳, 특히 랜드마크가 될 만한 품격 높은 건축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두 명의 재일교포 출신 세계적 건축가(이타미 준·안도 다다오)가 포도호텔, 핀크스골프장 클럽하우스, 방주교회, 본태박물관, 섭지코지 글라스하우스, 유민미술관(옛 지니어스로 사이), 아고라, 벨라테라스 등을 깔아놓았다. 그 옆에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대정읍 추사기념관도 추가돼 제주 속 '건축물 투어'를 가능케 했다.

미술의 섬 발돋움
예술인 40명 모여든 문화예술인 마을
이중섭 미술관·서예가 현중화 기념관
홍대 행위예술가 김백기 실험예술제
예술 품은 서귀포 올레시장 변화 주도

언론인·방송인 제주살이
포크싱어 장필순, 이효리·이상순부부
출세·성공 허망함 일찍 맛본 드러머…
게스트 하우스·빈티지 카페 등 오픈
지역 출신 예술인 문화망명도 잇따라

육지 사람의 연대기
사진가 故 김영갑, 섬·육지 잇는 스토리
詩의 섬 성산포 알린 시인 미당 서정주
전분공장을 카페로 만든 부부의 섬살이


◆예술의 섬

최근에는 '미술의 섬'으로도 발돋움하고 있다. 이우환·하종현 등 국내 1세대 단색화 양대 산맥이랄 수 있는 박서보와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김창열이 2007년 문을 연 제주현대미술관을 축으로 형성된 제주시 한경면 대정읍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에 정착했다. 힘을 받아 현병찬·조수호·조종숙·강경희·김현숙·박광배·고영훈·민이식·양의숙·이명복 등 40여 명의 각종 예술인들이 예술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꼭 제주도 헤이리마을(경기도 파주에 있는 국내 대표격 출판문화마을) 같다.

예술촌 바로 옆에는 국제 영어도시, 중국 자본이 일궈낸 매머드 테마랜드인 신화월드가 있다. 이 예술촌과 맞물려 서귀포권이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변주되고 있다. 이중섭미술관, 변시지를 기리는 기당미술관, 제주의 대표 서예가인 소암 현중화를 기리는 기념관, 이왈종 미술관 등이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 그 흐름을 잡은 강릉발 커피 브랜드 테라로싸가 제주도의 대표 계곡인 돈네코, 그리고 쇠소깍 절경 심장부에 테라로싸 제주점을 오픈한다.

토박이와 육지것들을 예술적으로 연결해주려고 발 벗고 나선 자가 있다. 바로 서울 홍대 앞에서 행위예술가로 활동하던 김백기다. 그는 1985년부터 홍대 시대를 일궈가는데 집세, 생활비 상승 등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각할 정도로 가속화되자 이주를 결정한 후 2013년 2월 제주에 내려왔다. 홍대에서 개최했던 실험예술제를 이 섬에서 지속시키고 있다. 현재 '서빳(서귀포 문화 배터리 충전소)'을 이끌며 서귀포 올레 시장을 '예술이 있는 시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서귀포 경찰서를 습격해 경찰관에게 수갑을 채워서 춤을 추게 했다.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는 감귤 과수원에 예술인을 불러들여 노래하고 춤을 추게 하는 '드릇팟디파티 문화제'를 열어 토박이에겐 '좀 이상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한 인물이다. 덕분에 이중섭미술관과 그 근처 예술 거리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고 덩달아 이중섭이 좋아한 근처 새섬도 한·일 예술가의 둥지로 키워지고 있다.

광풍에 가까운 제주도 특수는 단연 '올레' 때문이다. 2007년 9월17일 서귀포시 성산읍의 시흥초등학교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15㎞ 구간을 잇는 제주올레 1코스가 개장했다. 이 길 때문에 제주에서 한달살기 신드롬이 일어난다. 총 425㎞ 26코스를 완주하려면 얼추 한 달 정도 소요된다.

◆일탈과 로망의 섬

언젠가부터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하나의 '로망'이다. 이유 없이 떠나 잠시 충전하고 싶은 '가슴 빨래터' 같달까. 특히 먹물이 많이 든 언론인·방송인 등이 앞다퉈 제주도를 갖고 엄청 스토리텔링을 해댔다. 자연스럽게 '제주도환상'이 육지인의 폐부 깊숙이 파종된다.

그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가 있다. 바로 록그룹 '들국화'의 베이스 주자였던 최성원(2011년 6월 제주도로 이사를 감)이 1988년에 작곡한 '제주도 푸른밤'이다. '(초략)/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최성원보다 먼저 제주도행을 결심한 가수가 있다. 2004년 포크싱어 장필순이 조동익과 함께 제주도 애월읍 소길리로 망명을 떠난다. 그 때문에 가수 이효리·이상순씨 부부도 괜찮다 싶어 공항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거기에 2012년 집을 짓는다. JTBC '효리네 민박' 방송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집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아 사생활 침해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지가도 폭등했다. 초창기 평당 9만원 정도에 샀고 최근 10배 정도 오른 가격으로 팔고 다시 사람들이 덜 찾는 제주 중산간 쪽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루시드폴·강산에 등이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2000년쯤 육지는 많이 지친다. IMF 외환위기 탓이 컸다. 출세와 성공의 허망함을 일찍 깨달은 나름 한 캐릭터 가진 유목민 성향의 드리머들이 이 섬으로 건너와 적잖은 게스트하우스와 빈티지 카페 등을 오픈했다. 게스트하우스 중 리더 격은 단연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소낭 게스타하우스', 그리고 카페로는 월정리 바닷가의 땅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든 '아일랜드 조르바(현재 고래가 될 카페)'가 상징적이다.

나도 35년 전 이 섬과 처음 인연을 맺는다. 1985년 겨울, 난 제주도를 횡단했다. 비교적 제주도의 원시적 풍광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이후 남들처럼 신혼여행, 그리고 취재 때문에 이런저런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다. 훗날 제주도로 문화적 망명을 한 예술가 중에서 가장 유명하게 되는 사진가 고(故) 김영갑(그의 모든 작품은 현재 두모악 갤러리에 소장), 또 제주도 올레를 성공시킨 여전사인 서명숙, 두모악 갤러리 박훈일 관장, 제주도 음식의 비밀을 제대로 알고 있는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겸 제주음식 전문식당 '낭푼 밥상' 대표, 영남대 대표 록밴드 에코스 출신으로 2014년 조용필을 젖히고 한국대중음악대상 3관왕을 차지한 대구 출신 윤영배(그도 제주도로 망명), 최근에는 제주도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오픈하기 위해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는 K1음향의 김일태 대표(그는 70년대 록그룹 무당의 베이스주자였고 훗날 가왕 조용필의 순회공연의 제반 업무를 진두지휘),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으로 있다가 2012년 가족과 제주도로 건너간 안재홍 등과의 인연 때문에 제주도는 대구만큼이나 익숙한 섬이 되고 말았다.

◆육지산 예술가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제주 관광은 호텔로부터 시작된다.

제주도 첫 관광호텔 1호는 제주 칼호텔인데 74년 문을 연다. 이어 서귀포 칼호텔이 85년 문을 연다. 그 중간에 78년 중문단지가 가동되고 하얏트, 롯데, 신라 등이 문을 연다. 관광호텔이 줄을 잇자 제주도는 졸지에 신행 여행지로 급부상한다. 당시 관광 가이드는 영업용 택시기사였다. 렌터카 시절 전이었기에 가능했다. 현재 영업용 택시는 얼추 5천여 대, 렌터카는 3천500여대.

섬이 된 육지 사람만의 연대기가 있다.

85년 부여 출신의 한 사진가가 제주도에 정착한다. 2005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김영갑이다. 그가 평생 찍은 수십 만 점의 슬라이드 필름은 폐교된 삼달국민학교(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에 설립된 두모악갤러리에 보관돼 있다. 현재 제자인 박훈일 사진가가 관장을 맡고 있다. 여기는 단순 관광에 만족 못한 자유여행가, 배낭여행가, 워킹홀리데이족들의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제주의 소리'가 2004년 창간된다. 제주도 스토리의 보고랄 수 있다.

제주도 성산포를 '시의 섬'으로 알린 두 명의 시인이 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22세 때 서귀포 지귀도(地歸島)에서 1937년 초여름(4∼6월)을 살았고, 그해 가을 대표작 '자화상'을 발표한다. 이어 제주도와 사랑에 빠진 건 충남 서산 출신인 이생진 시인. 아흔을 넘긴 그는 70년대 성산포와 극적 상봉을 하고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78년에 출간한다. 그는 '성산포에서는 바다는 설교를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란 명구절을 유행시켰다.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에 필적한 시집이었다. 덕분에 2001년 그는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는다.

코미디언 이주일씨(1940∼2002)도 이 섬에 흠뻑 취한다. 1990년대 폐암 선고를 받은 이주일은 자리물회 산지인 보목항 바로 옆 해안가에 별장을 짓고 살다 갔다.

제주도에서 돌고래(수애기)를 볼 수 있는 대정읍 동일리에 가면 핫플 카페 '감저'가 있다. 서울살이를 하던 김재우·원정희 부부가 가업으로 내려온 방치된 감자전분공장을 리모델링해 세련되게 오픈했다. 대구 북성로 조양기계에서 65년 생산한 추억의 발전기가 홀 중간에 비치돼 있다.

모르긴 해도 제주의 속살과 육지의 야심이 가장 그럴듯하게 손을 잡고 있는 공간으로 보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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