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명필이야기 .16] '해동 서성' 김생…옛 서법 잃지 않은 파격적 아름다움으로 독보적 위치 '조선 필법의 종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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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1 08:19  |  수정 2022-03-11 08:23  |  발행일 2022-03-11 제34면

김생-망여산폭포1
이백의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를 쓴 김생 글씨(부분).

'해동서성(海東書聖)'이라 불리는 김생(711~791)은 우리나라 서예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이다. 고려 사신이 중국 송나라에 갔을 때 김생의 글씨를 보이자 그들이 '왕희지 친필'이라고 말할 정도의 필력을 보였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에 김생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약소한 내용이지만 서예가로서의 명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생은 부모가 한미하여 그 세계(世系)를 알 수 없다. 711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으며 평생토록 다른 기예를 전공하지 않았다. 나이가 80이 넘어서도 붓을 잡고 쉬지 않았는데, 예서(隸書)와 행초(行草)가 모두 입신(入神)의 경지였다. 지금도 가끔 그의 진적이 있어 학자들이 서로 전하여 보배로 여긴다.

숭녕 연간(1102~1106)에 고려 학사 홍관(洪灌)이 진봉사(進奉使)를 따라 송나라에 들어가 변경에 묵고 있었는데, 당시 한림대조(翰林待詔)였던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황제의 칙명을 받들고 숙소에 와서 글씨와 그림 족자를 구하였다. 홍관이 김생이 쓴 행초 한 권을 보여주자 두 사람이 크게 놀라며 말하기를 '뜻밖에 오늘 왕희지(왕우군)가 쓴 친필 글씨를 보는구나(不圖今日得見王右君手書)'라고 말했다. 이에 홍관이 '그게 아니라 이는 신라사람 김생이 쓴 것'이라고 하였으나, 두 사람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천하에 왕희지를 빼놓고 어찌 이런 신묘한 글씨가 있겠소' 하면서 홍관이 여러 번 말하여도 끝내 믿지 않았다."

고려 말의 이규보(1168~1241)는 우리나라 역대의 유명 서예가를 품평하면서 김생을 '신품제일(神品第一)'로 극찬했다. 이규보는 김생의 글씨를 평가해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쓴 '동국이상국집'에서 그때까지의 우리나라 대표적 서예가 네 사람을 '신품사현(神品四賢)'으로 칭했는데, 신라의 김생과 고려의 유신·탄연·최우다. 그는 신품사현 가운데서도 김생의 글씨를 최고로 꼽고 이렇게 평했다.

'아침이슬이 맺히고 저녁연기가 일어나며, 성낸 교룡이 뛰고 신령스러운 봉황이 난다. 마음과 손이 서로 응한 것은 천연의 신비가 붙은 것이다.'

조선 때도 서거정, 이황, 허목, 홍양호 등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처럼 고려·조선의 문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면서 김생은 마침내 우리나라 서예의 비조(鼻祖)로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서예가 이광사는 '우리나라 필법은 신라 김생을 종주로 여기는데, 오늘날 그의 진적으로 전하는 예는 거의 없다. 그러나 탁본한 작품 역시 기위(奇偉)하고 법이 있어 고려시대 이후의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며 극찬했다.

김생이 이처럼 단연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당시 유행했던 중국풍의 글씨를 외형적으로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화로운 구성과 활달한 운필로 자신만의 독창적 경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김생의 대표작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예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글씨는 왕희지체에 근간을 두었으면서도 상투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짜임을 구사했다. 옛 서법을 잃지 않으면서도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는 이유다. 특히 굵고 가는 획을 섞어 변화를 주고, 굽고 곧은 획을 섞어 조화의 묘를 살려낸 점이 두드러진다. 그의 필적으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序)', '해동명적'의 '송하빈객귀월(送賀賓客歸越)', '대동서법'의 '망여산폭포시(望廬山瀑布詩)' 등이 있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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