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해당화(1)…척박한 모래땅에서 순박하고 곱게 핀 해당화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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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7   |  발행일 2022-06-17 제33면   |  수정 2022-06-1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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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해당화 풍경. 광활한 해안 모래언덕 곳곳에 해당화 동산이 펼쳐지는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해당화 군락지로 꼽힌다.(2022년5월25일) 〈태안군청 제공>

5월부터 3개월 정도 꽃이 피고 지는 해당화. 우리나라 서해와 동해 해변의 모래언덕이나 산기슭에서 자라면서 진분홍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옛날부터 많은 사람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척박한 모래언덕에서도 화사하면서 순박한 아름다움과 은은한 향기를 선사하는 해당화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해 오기도 했다. 그런 정서는 우리 문화와 예술 곳곳에 녹아들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워 마라/ 명년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련만/ 우리 인생 한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이런 내용의 민요가 오래전부터 불려 왔고, 유행가에도 해당화에 당대의 정서를 담은 가사들이 많이 등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행가 가수로 알려진 채규엽(1906~1949)이 1930년대 발표한 대중가요에는 '봄도 짙은 명사십리 다시 못 올 옛이야기/ 해당화에 속삭이던 그 님이었건만'이라는 구절이 들어있다.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1966년)은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19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승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은 조국의 광복을 고대하는 마음을 해당화에 실어 지은 시 '해당화'를 남겼다.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라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 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웠니"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대구의 '천재화가' 이인성은 1944년 6월 한용운이 별세하자 그와 그의 시 '해당화'를 기려 '해당화'라는 제목의 걸작을 남겼다. 먹구름 낀 쓸쓸한 바닷가 모래밭에 핀 해당화 앞에 흰 수건을 쓴 여인이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고, 그 옆의 두 소녀 중 한 소녀는 해당화 한 송이를 감싸 쥐며 보고 있다.

이런 해당화는 나에게도 스며들었고, 20여 년 전부터 실제 접하게 되면서 해당화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2005년 5월 말 금강산 여행을 할 당시, 해금강에서 해당화를 보았을 때 정말 반갑고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전후에 동해안 해변에서도 몇 차례 자생하는 해당화 군락을 보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버티며 오랫동안 자생해온 해안 모래밭 해당화 군락은 점점 사라져갔다. 특히 동해안 해변의 자생 해당화는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얼마 전 동해안을 찾아봤다. 먼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에 있는 사방기념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심어놓은 해당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사방기념공원은 한국의 근대적 사방(砂防) 사업이 시작된 지 10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해 2007년 11월 개장한 공원이다. 오도리 일대는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총면적 4천500㏊를 녹화해 사방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대표적 지역이다.

공원에 도착하기 전 도로변에 있는 주택의 축대 사이에 심어놓은 해당화가 눈에 들어왔다. 진분홍색 꽃 가운데 흰 꽃도 보였다. 조금 더 가니 도로 옆 산비탈 쪽에 인동초와 찔레 등 수풀 속에 해당화 몇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생하는 것인 듯해 매우 반가웠다.

사방기념공원에 가니 주차장 앞 바다 쪽에 해당화 화단을 길게 조성해 놓았다. 이미 꽃이 지고 열매를 맺은 것도 있고, 꽃을 피운 것도 있었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서인지 생육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다시 월포해수욕장을 거쳐 영덕 해맞이공원도 둘러봤으나 해당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전통마을도 가 보았다. 그곳의 갈암종택 해당화를 인터넷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곳 해당화도 벌써 꽃은 지고 열매만 남아있었다. 해당화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 종택 뜰에 꽃을 피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경주 양동마을 회재종택, 고령 개실마을 점필재종택, 대구 옻골마을 백불암종택 등에서도 탐스러운 꽃을 피운 해당화를 만날 수 있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해당화(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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