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해당화(2) 약초꾼·난개발 수난사…동해안 해변 수놓은 진분홍빛 군락 '멸종위기'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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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7   |  발행일 2022-06-17 제34면   |  수정 2022-06-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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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천 둔치에 핀 해당화. 요즘은 해당화를 조경용으로도 많이 심어 해안이 아닌 곳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울진의 월송정과 망양정 주위에도 최근에 심은 해당화를 만날 수 있다.

요즘 동해안에서 보게 되는 해당화 군락 대부분은 조경을 위해 인공적으로 심어 조성한 것들이다. 옛날부터 자생하던,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 멋진 풍광을 선사하던 모래밭 해당화 군락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항의 화진포와 월포를 비롯해 영덕, 울진, 삼척, 강릉, 속초, 고성 등의 해변을 수놓던 해당화가 백사장 난개발과 약초꾼 등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몰려야 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해당화 복원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으나 별 성과를 못 거둔 것 같다.

포항 송라면 화진리 천연기념물 보호
300m 군락지 조사 중 훼손 당하기도
영덕·울진·삼척·강릉·속초·고성 등
민간단체 복원운동 불구 점차 사라져

국내 최고군락 꼽는 태안 신두리사구
서해안 군락지는 동해안 보다 잘 보전

약재 사용·울타리에 심어 잡귀 쫓아
바닷가 오누이 이야기 속 슬픈 전설
中 양귀비 일화속 등장·詩句에 사용


포항시 북구 송라면 화진리의 자생 해당화 군락지의 경우 천연기념물로 보호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아들여 문화재청이 2004년 현지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2005년 5월 강원도 누군가 포클레인을 동원해 300m의 해당화 군락지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후 민간단체가 2005년 6월 훼손된 해당화 군락지 모래언덕에 해당화나무 400여 그루를 심는 등 복원사업을 펼쳤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삼척시 근덕면 맹방해변 해당화도 1994년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해당화 심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이후 한동안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무단채취, 도로개설, 관리 잘못 등으로 다시 대부분이 사라져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해당화가 군화인 강원도 고성군에서는 2002년 토성면 봉포리에 해당화공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다 최근 다른 꽃들을 심어 재정비하자, 다시 그 자리에 해당화를 심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해안과는 달리 서해안에는 자생 해당화 군락지가 잘 보전되고 있는 편이다. 국내 최대의 모래언덕인 태안 신두리 해안 사구의 해당화 군락은 우리나라 최고의 해당화 군락으로 꼽힌다. 광활한 모래 언덕 곳곳에 피어있는 진분홍 해당화의 풍경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시간과 바람이 빚어낸 신두리해안사구의 거대한 모래언덕 곳곳에 옹기종기 해당화 동산이 펼쳐지면서 특별한 풍광을 선사한다.

인천시 옹진군의 '삼형제섬' 신시모도, 대청도, 덕적도, 백령도 등에서도 5월이 되면 멋진 해당화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자생 해당화 군락지는 많이 사라졌지만, 근래 들어서는 해당화가 조경용이나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해변이 아닌 곳에서도 해당화를 종종 만날 수 있다. 며칠 전 대구 신천 둔치에서 진분홍 꽃이 핀 해당화를 만날 수 있었다. 심은 지 얼마 안 된 듯했는데, 한 군데 몇 포기 심어놓은 것이 전부였다. 주변에 서부해당화, 장미 등을 같이 많이 심어놓은 것 같은데, 해당화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더 많이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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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무첨당 화단에 핀 해당화.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 종택의 사랑채 이름이다.
◆해당화는

해당화(海棠花)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다. 줄기에 가시와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며 두껍고 타원 모양이다. 표면은 주름살이 많고 윤기가 있으며 털이 없고, 이면은 잔털이 많다.

지름 6∼9㎝ 정도의 향기로운 꽃이 5∼7월에 홍자색으로 핀다. 흰색도 있고, 연분홍색도 있다. 꽃은 계속 피고 지는데, 9~10월에 피어나는 예도 있다. 5개의 꽃잎과 꽃받침이 있고, 다수의 수술이 있다. 둥근 열매는 8월 이후 황적색으로 익는다. 해변의 모래밭이나 산기슭에서 주로 자라났다. 우리나라 해안 모래언덕에서 쉽게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드물다.

해당화는 꽃이 아름답고 특유의 향기를 지니고 있으며 열매도 아름다워 관상용으로도 선호된다. 꽃은 향수원료로 이용되고 약재로도 쓰인다. 열매는 약용 또는 식용한다. 해당화의 붉은 꽃잎은 향기가 좋아 여인들이 꽃잎을 넣은 향낭을 만들어 차고 다녔다. 색도 고와 옷이나 음식에 색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해당화로 담근 술은 향기와 붉은빛이 좋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해안가 사람들이 즐겨 담가 먹던 전통술이었다.

해당화는 잡귀를 쫓아내는 의미가 있어 해안가 민가에서는 울타리로 심기도 했다.

해당화는 한약재로도 사용되었다. 주로 피의 운행을 순조롭게 하거나 어혈을 풀어주는 데 활용되었다. 민간요법으로는 당뇨나 관절염에 쓰이기도 했다. 한때 그 뿌리와 열매가 당뇨에 특효라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마구 캐가 바닷가에서 해당화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해당화에서 뽑아낸 추출물은 당뇨의 예방과 치료 목적으로 연구되고 있기도 하다.

해당화는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붓 모양이어서 '필두화'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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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 국도 옆 산비탈에 핀 해당화. 인동초와 찔레 등이 무성한 수풀 속에 피어 있었다.
◆해당화 전설

'매화는 맑은 손, 복사꽃은 요염한 손, 연꽃은 깨끗한 손, 해당화는 외로운 손'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시대인 1809년 빙허각 이씨가 가정 살림에 관한 내용을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나오는 구절이다. 해당화에 대한 당시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해당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바닷가에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관청에서 누이를 궁녀로 뽑아 배에 태워 데려가 버렸다. 누이 잃은 동생은 그 자리에 서서 며칠을 울다가 선 채로 죽고 말았다. 이후 그 자리에 동생의 서러운 눈물과 같은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그 꽃이 바로 해당화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지만, 해당화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중국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다.

현종은 어느 날 심향정(沈香亭)에 올라 사랑하는 양귀비를 불렀다. 이때 양귀비는 전날 밤에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래도 양귀비는 황제의 부름을 받고 거역할 수가 없어서 황급히 일어나기는 했으나, 얼굴은 창백하고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시녀의 부축을 받고 나온 양귀비의 얼굴은 그래도 예쁘기만 했다. 백옥같이 흰 얼굴에 불그레한 홍조가 곱게 피어 있었고, 눈은 가느다랗게 뜨고 몇 가닥 흩어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나부꼈다.

현종은 한동안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너는 아직도 술에 취해 있느냐"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양귀비는 "해당화의 잠이 아직 깨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양귀비는 자신의 붉은 얼굴을 해당화에 비유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해당화를 '수화(睡花)'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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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해당화 열매(2010.10.29).
◆해당화 명칭에 얽힌 이야기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해당화는 우리나라의 해당화와 명칭은 같으나, 우리가 지금 지칭하는 해당화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해당(海棠)'이라고 부른 식물은 중국에서는 '매괴( 괴)'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해당'이라고 지칭하던 식물은 꽃사과 또는 명자나무라고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문헌에서 해당화와 관련해 불일치하거나 상충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해당(海棠)'이라는 한자 식물명이 이처럼 중국과 한국에서 서로 다른 식물을 지칭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고문헌에서 나타나는 '해당'이라는 식물명을 번역할 때는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양귀비나 두보와 얽힌 고사 등 해당화와 관련된 중국의 고사는 우리나라의 해당화가 아니라 꽃사과 또는 명자나무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두보는 해당화 명소인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오래 살았지만 해당화를 읊은 시가 하나도 없는데, 두보의 어머니 이름이 해당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해당화와 관련한 시 두 수를 소개한다. 먼저 이규보의 '해당(海棠)'이라는 시다.

'해당화가 잠이 깊어 노곤하게 늘어지니(海棠眠重困의垂)/ 양귀비가 술에 취했을 때와 같네(恰似楊妃被酒時)/ 다행히 꾀꼬리가 울어 잠을 깨우니(賴有黃鶯呼破夢)/ 다시 미소 지으며 교태를 부리네(更含微笑帶嬌癡)'

'악학궤범'을 편찬하고 '용재총화'를 지은 학자이자 문신인 성현(1439~1504)의 '매괴( 괴)'라는 한시다.

'한 그루 매괴 나무 있으니(一朶 괴樹)/ 전하는 말에 해당화라 이르는데(人傳是海棠)/ 이슬 내려 꽃가루를 가벼이 씻고(露華輕洗粉)/ 바람 불어 향기를 살살 풍겨주네(風骨細通香)/ 처음엔 붉은 비단을 오렸나 했더니(始訝紅羅剪)/ 결국은 비단 우산을 펼친 듯하구나(終成錦산張)/ 어여뻐라 더없이 고운 자태 뽐내며(憐渠矜絶艶)/ 글 읽는 책상 가까이 피어 있는 게(開近讀書床)'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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