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천황은…韓 국권침탈·강대한 군사제국주의 건설, 日 우익집단 상징…'신궁' 역할도 커져

  • 김봉규
  • |
  • 입력 2022-09-02 07:52  |  수정 2022-09-02 07:53  |  발행일 2022-09-02 제35면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은 일본의 제122대 천황이다. 고메이 천황(孝明天皇·1831~1866)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무츠히토(睦仁). 교토 출생이며, 1867에 즉위했다.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를 타도하고 정치권력을 환수한 후 에도(江戶)를 도쿄로 개칭하여 천도했다. 1968년 연호를 메이지(明治)로 정했다. 징병제를 시행하고, 1889년 흠정헌법(欽定憲法ㆍ일명 제국헌법)을 발포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헌법이다. 청일(淸曰)전쟁과 노일(露日)전쟁, 우리나라 국권 침탈 등을 일으키며 강대한 군사적 제국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그는 오랜 쇄국정치로 뒤떨어진 일본을 근대화해 일본 국민에게는 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부는 항상 인민 반항의 위협을 받았고, 이를 탄압했다. 1910년에는 천황 암살을 기도한 고토쿠(幸德) 사건을 야기하기도 했다. 메이지 천황의 개혁 정책에서 이름을 따 연호를 메이지유신이라 불렀으며, 일본에서는 그를 높이 평가해 메이지 대제(明治大帝), 메이지 성제(明治聖帝), 무쓰히토 대제(睦仁大帝) 등으로도 부른다.

메이지 천황은 이처럼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을 근대화하고 부국강병을 이끈 천황으로, 일본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사후에 거대한 신궁을 세울 계획을 세웠고, 국민도 여기에 호응했던 것이다.

메이지 천황을 신으로 모시는 메이지 신궁은 시작부터 천황을 정점으로 따르는 일본 우익집단의 상징 역할을 해왔다. 막부체제에 기반을 두었던 시대를 완전히 종식하고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완성한 메이지 천황은 일본 우익 집단들에게는 정신적인 기둥이나 마찬가지였다. 메이지 신궁은 창건 이래로 수많은 우익집단과 고위인사들이 모이는 장소로 애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이지 신궁의 신직은 일본 우익집단들 사이에서 상당한 명망과 영향력 있는 직책이었다. 신궁의 신직들이 은퇴한 후 우익집단의 지도자나 실무자 역할을 겸하며 메이지 신궁의 영향력은 더욱더 커졌다.

메이지 신궁은 또한 전후에 종교법인으로 탈바꿈한 뒤, 다양한 수익사업을 벌여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였다. 참배객들의 시주, 결혼식장과 조리시설의 운영, 운동시설 대여 등으로 엄청난 수익을 낸다. 이외에도 종교법인 특성상 감사가 느슨한 점을 이용해 비공식적으로 전달하는 고위 인사들의 기부금 등까지 포함하면, 메이지 신궁은 막대한 자금을 움직이는 큰 손이 되고 있다고 한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