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33] 中 양저우 수서호, 잔잔한 호수와 어우러진 수양버들·다리·정자 … 가장 살고 싶은 '물의 도시'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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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23 08:14  |  수정 2022-12-26 08:35  |  발행일 2022-12-23 제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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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오정교가 보이는 수서호 풍경.

중국 저장성 항저우(杭州)시 서쪽에 있는 서호(西湖·시후)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호수다. 청나라 황제들의 여름 별궁이던 베이징의 이허위안 호수도 항저우의 서호를 모델로 삼아 조성했다. 중국에 항저우의 서호를 본떠 만든 호수가 40개 가까이 된다고 한다.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楊州)에도 항저우 서호에 비견되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바로 수서호(瘦西湖·소시후)다. 양저우를 대표하는 명소다.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가 여러 차례 찾았던 곳이고, 북한의 김일성(1991년)과 김정일(2011년)이 양저우를 방문했을 때 들러 유람선을 타고 둘러본 곳이기도 하다.

수서호는 항저우 서호보다 크기는 훨씬 작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서호 못지않다. 오정교와 이십사교 등 멋진 다리와 정자, 정원, 사찰 등이 잔잔한 호수 및 수양버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봄날 풍경과 정취가 특히 좋다.

수서호는 원래 양저우성을 휘감아 도는 물길의 강이었다. 양저우성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강으로, 일종의 해자이면서 운하 역할도 했다. 이런 강을 막아 만든 호수여서, 호수처럼 보이지 않고 여러 물길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마른 서호'라는 의미의 수서호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서호는 서호를 본떠 만든 것은 아니고, 그 아름다움이 서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구절 '꽃 피는 춘삼월의 양주로 내려가네(煙花三月下揚州)'에도 잘 나타나듯이 중국 강남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다리 위에 다섯 개의 작은 정자를 지어놓은 오정교는 수서호의 상징이다. 양저우를 대표하는 경치 '이십사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만들어진 지 270년 정도 된 이 오정교는 수서호의 경치를 더욱더 멋지고 풍요롭게 한다. 오정교 위에는 건축미가 돋보이는 5개의 서로 다른 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오정교는 청나라 건륭제 22년(1757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건륭제는 할아버지인 강희제와 마찬가지로 6차례의 남순(南巡)을 했다. 1757년의 첫 남순은 국가적인 큰 행사였다.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가 친히 남중국으로 행차를 하는데, 양저우는 남순 일정 중 핵심 코스였다. 건륭제가 처음 수서호를 방문하기로 정해지자 관리와 지역 염상(소금상인)들이 황제를 환영하기 위해 수서호를 정비하고 다리도 하나 새로 만들었다. 바로 오정교다.

中 최고 호수 서호와 비견되는 수서호
北 김일성·김정일도 찾아 일대 유람
다리 위 다섯개 정자 지어놓은 오정교
수 양제가 미녀와 야경 즐긴 이십사교
뱃사공 청아한 노래 소리 물결에 퍼져
미식가 찾는 양저우식 볶음밥도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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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저우 수서호의 이십사교 풍경. 수나라 양제가 미녀들과 야경을 즐기던 곳이다.

◆수양제 때 만든 이십사교

역사가 오래된 이십사교는 수나라 양제 때 만들었으며, 양제는 이 다리에서 미녀 24명과 함께 야경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이십사교는 아름다운 아치형의 다리다. 다리의 폭이 2.4m이고 길이는 24m이다. 다리 위·아래 양측에 24개의 섬돌이 있고, 둘레에도 24개의 난간이 있어서 건축미를 뽐내고 있다. 24는 24절기를 상징한다. 이 다리는 당나라 시절, 시성으로 불리는 두보의 시 구절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다. 그는 양저우의 판관으로 가는 친구를 전송하며 지은 시 '양주 판관 한작에게(寄揚州韓綽判官)'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청산은 어둑하고 물길 아득한 강남 땅 / 가을 다해도 풀 아직 시들지 않았겠지 / 이십사교에 달 밝은 밤(二十四橋明月夜) / 그대는 어디서 퉁소를 가르치시나'

건륭제가 낚시를 한 조어대도 있다. 조어대와 관련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건륭제가 낚시를 하게 되자, 염상은 황제가 물고기를 잡지 못할까 염려가 됐다. 그래서 어부를 시켜 물속으로 들어가 연잎으로 위장하고 대롱으로 숨을 쉬며 황제의 낚싯바늘에 물고기를 엮었다. 용어(龍魚)였다. '황제의 관상어'라 불리는 희귀 물고기다.

크고 흰 탑인 백탑도 보인다. '관음사 백탑'이라고도 불린다. 백탑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화가 전한다. 건륭제가 수서호에 오기로 한 전날 밤에 건륭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소금을 이용하여 하루 만에 백탑을 만들고, 이후에 다시 돌을 이용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시인 이백이 '꽃 피는 춘삼월의 양주로 내려가네(煙花三月下揚州)'라며 양저우 풍경을 읊은 시는 그가 존경하며 좋아한 선배 시인 맹호연에게 써 준 이별의 시 '황학루에서 광릉(양주)으로 떠나는 맹호연을 전송하며(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이다. 우한(武漢)의 명소인 황학루에서 양저우로 향하는 맹호연에게 이별의 시를 지었다.

'나의 벗은 황학루를 작별하고(故人西辭黃鶴樓) / 꽃 피는 춘삼월의 양주로 내려가네(煙花三月下揚州) / 외로운 돛단배 멀리 그림자 남기며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孤帆遠影碧空盡) / 보이는 건 하늘에 맞닿아 흐르는 창장강뿐이네(唯見長江天際流)'

맹호연은 이백보다 열두 살 위다. 이백은 소년 시절부터 맹호연의 이름을 익히 들으면서 나중에 꼭 만나고 싶어 했던 차에 그를 찾아가 황학루에서 만났다고 한다. 거기서 며칠을 함께 보낸 후에 맹호연이 떠나게 되었는데 이때 이백이 그에게 지어 준 시다. 이백은 양저우를 유람했던 적이 있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양저우의 봄 풍경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백이 맹호연을 얼마나 존경하고 좋아했는지 알 만한 시가 있다. 이백의 '맹호연에게 드림(贈孟浩然)'이라는 시다.

'나는 맹호연 선배님을 좋아하니(我愛孟夫子) / 그의 풍류는 온 천하에 널리 퍼져 있다네(風流天下聞) / 젊은 시절 벼슬길 버리더니(紅顔棄軒冕) / 노년에도 소나무와 구름 속에서 살고 있네(白首臥松雲) / 달에 취해 종종 술 마시고(醉月頻中聖) / 꽃에 반해 임금을 섬기지 않았다네(迷花不事君) / 그 높은 산을 어찌 우러러보겠는가(高山安可仰) / 다만 그 맑은 인품에 읍할 뿐이네(徒此揖淸芬)'

수서호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멋은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면서 뱃사공의 노래를 듣는 일이다. 옛날 민요를 불러주는데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가락이 정취를 더해준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담백하고 청아한 소리가 호수 물결 위로 퍼져 가며 잠시 딴 세상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당나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했던 양저우

대운하의 건설과 함께 크게 발달한 양저우는 복잡하게 얽힌 운하들 사이의 옛 거리와 정원들이 특별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쑤저우와 함께 중국 강남 지방의 '물의 도시'로 유명하다.

삼국시대의 양저우는 쉬저우(徐州) 광릉(廣陵)군에 속했는데, 수나라 시대에 대운하가 양저우 옆에 건설되자 양쯔강과 대운하가 교차하는 환경이 갖추어지면서 엄청난 번영을 이루었다. 강도(江都)로 불리며 남쪽의 부수도가 되었고, 수나라 양제가 수서호를 조성해 즐겨 찾았다.

당나라 시대에는 아시아 각지에서 온 상인들이 광저우나 하노이 등에 내려서 보낸 제품, 사천에서 보내온 비단 등이 대운하를 통해 화북지역으로 보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집결하는 물류의 허브가 되었다. 그래서 환전업과 금융업도 번영하고, 큰 신라방과 페르시아·아랍 상인의 무역거점인 번방(蕃坊)이 존재하던 국제적인 상업도시였다. 당나라 시대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양저우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양저우는 볶음밥만을 위해 찾는 미식가들이 있을 정도로 볶음밥이 유명하다. 수나라 시대에 '쇄금반(碎金飯)'이라는 음식이 있었다. 밥을 볶을 때 기름과 달걀노른자가 어울려 금가루처럼 보인다고 이름 붙은 볶음밥 요리였는데, 수양제가 양저우에 방문했을 때 이 쇄금반을 양저우에 전파한 것이 현재의 양저우식 볶음밥의 기원이라고 한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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