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고향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하자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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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05 06:55  |  수정 2023-10-05 06:55  |  발행일 2023-10-0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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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편집국 부국장

이번 추석명절에 약 4천만명의 귀성객이 이동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동과 대면접촉이 엄격히 제한됐던 2020년 코로나 때도 2천700여만 명이 이동했으니, 세태변화에도 설과 추석은 여전히 최대의 명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명절 풍속은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1990~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명절 귀성 하면 당연히 서울에서 고향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어릴 적 삶의 터전이 대부분 농산어촌 마을이었고, 학업이나 직장·결혼 등으로 도시 생활을 하다 명절을 맞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시골마을 찾는 것이 당연한 듯이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각박한 도시생활을 잠시나마 잊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가 고향마을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향에만 가면 깊은 잠을 자곤 했는데 내 몸의 생체리듬이 그 시절을 기억하고 반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하게 된다.

명절 때 고향 시골 마을의 분위기는 왁자지껄했다. 가족, 집안 친지는 물론 옆집 친구와 어르신까지 뵐 수 있었다. 집집마다 고향 떠났던 자식들이 돌아오니 조용한 시골마을에 때아닌 주차난을 겪을 정도였다. 고향 시골마을이 어릴 적 삶의 터전이었고 부모님과 친인척, 친구, 후배들이 있으니 명절에 고향 마을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의례로 느껴졌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1세대들이 도시에서 결혼에 정착하면서 귀성의 개념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의 20~30대는 대부분 고향이 시골마을이 아니라 도시다. 시골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기도 하지만 안 계신 가정이 더 많다. 태어나면서부터 도시에서 자란 세대들이 부모님들이 가지고 있는 고향 시골마을에 대한 추억과 감상은 별로 없다. 시골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부모세대와는 다른 환경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역귀성객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로 보인다. 도시에서 고향 시골로의 귀성이 아닌, 시골 부모님들이 자식들이 사는 도시를 찾는 경우다. 또 고향 마을에 부모님이나 친인척이 안 계시거나, 선대 산소가 없는 경우 귀향하지 않는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추석연휴에 4천만명이 이동했다고는 하지만 예전처럼 고향마을 찾는 비중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인구감소와 산업화·도시화로 농촌마을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세태다. 20년 가까이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면(面)이 있다고 할 정도로 농촌 인구감소와 노령화, 마을소멸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화 이전 수백~수천 년간 삶의 소중한 터전이었던 마을이 이제는 그 주된 역할을 도시에 넘겨준 뒤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러면 농산어촌마을은 이제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그냥 두면 급속히 마을이 사라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정주여건이 훌륭하고 지역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마을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현대인에게 중요한 생활편의, 즉 위생, 교육, 보건, 안전, 삶의 편의, 관리 효율성 등은 도시가 월등히 뛰어나다. 하지만 도시가 가질 수 없는 매력을 시골 마을은 많이 가지고 있다. 자연과 동화된 삶, 삶의 여유, 마음의 안식, 치유, 자유와 평화, 휴머니티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시골마을이 사라지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이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영원한 우리의 안식처 고향 마을을 명절 때만 잠시 추억하고 잊어버리지 말고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의 고향마을은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박종문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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