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마 경제] "이제 더는 못해"…'어머니들 주도' 차례·제사 간소화 바람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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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7 07:28  |  수정 2024-02-13 08:36  |  발행일 2024-02-07 제6면
고물가 탓 음식 가짓수 줄여
간편식 활용·차례상 주문도
시간 당기고 부부 제사 합사
안동 종가서도 변화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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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광산김씨 유일재 종택(왼쪽)·진성이씨 노송정 종택의 설 차례상.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40년 이상 제사 지냈으면 됐지, 인제 그만할 겁니다."

주부 손모(68)씨는 지난해 추석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명절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손씨의 깜짝 발표에 남편 김모(70)씨는 "절대 안 된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그간 제사 준비한다고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명절에 차례 대신 가족끼리 맛있는 식사를 함께하는 게 더 의미있다"고 손씨 편을 들었다. 남편 김씨를 설득하는 데는 꼬박 반년이 걸렸다. 손씨네 집은 이번 설에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다. 대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함께 먹기로 했다.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간소화하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그간 차례 음식 등을 장만했던 '어머니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차례 문화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20~50대 소비자 4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차례를 지내겠다'는 응답자는 43.7%였다. '지내지 않겠다'는 응답자(56.4%)에 못 미쳤다. 당시 농촌진흥청 조사에서도 39%만 설에 차례를 지냈다고 답했다.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상차림을 간소화해 비용을 줄이는 추세다. 고물가에 차례상 비용이 만만치 않자 음식 가짓수를 줄이거나 간편식을 활용하는 것. 6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발표한 올해 설 차례상 평균 비용은 31만6천23원이다. 5년 전(22만5천242원)보다 28.7% 증가했다.

이날 대구 중구 염매시장엔 설을 앞두고 차례 음식을 주문하러 나온 주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며느리와 함께 시장에 나온 박모(70)씨는 "제사상에 올릴 음식만 주문하는 게 오히려 저렴하다"면서 "평소 우리 아들한테 '내가 죽으면 제사상에 다른 거 말고 평소 좋아했던 회나 한 접시 올려 달라'고 말한다"고 했다.

명절 차례 문화만 바뀌고 있는 게 아니다. 제사 문화도 변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날을 앞두고 안동지역 종가 40개의 제사 방식을 살펴본 결과, 제사 문화 역시 시대에 맞게 변하고 있었다.

조사 결과를 보면, 40개 종가 모두 전통 관행에 따라 밤 11~12시에 지내던 제사 시간을 오후 7~9시로 앞당겼다. 부부의 기제사를 합쳐서 지내는 합사(合祀) 방식도 등장했다. 40개 종가 중 35개 종가에서 합사 형태로 바꿨다. 잦은 제사로 인한 경제적·시간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모든 문화가 그렇듯 제사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한다. 전통문화의 롤모델인 종가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지영기자 4to1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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