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정호승문학관 개관 1년, 무엇이 달랐나

  • 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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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25 06:57  |  수정 2024-04-25 06:58  |  발행일 2024-04-2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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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SNS에 올라 온 영상에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반가운 이들이 보였다. 일흔을 훌쩍 넘긴 정호승 시인과 서른 중반의 고명재 시인, 두 시인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호승 시인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고명재 시인도 덧붙일 필요가 없을 만큼 요즘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다. 볼륨을 높이고 두 시인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을 주제로 두 사람의 질문과 답이 오갔다. 오가는 대화도 흥미로웠지만 원로시인과 젊은 시인이 나란히 앉은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영상은 정호승문학관 개관 1주년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된 북토크였다. 행사에 초대받았지만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었는데, 영상으로나마 달랠 수 있었다.

대구 수성구 범어천변에 정호승문학관이 문을 연 지 1년이 지났다. 문학관이 들어서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작은 2016년 '수선화에게'를 새긴 범어천의 '정호승 시비'부터였다. 당시 일부에서는 '대구 출신도 아닌 시인의 시비가 말이 되느냐'며 비판을 쏟아냈다. 문학관 조성도 그 연장선에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 '대구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폐쇄적인 사고가 불편했다. 그런 주장이 되레 대구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정호승문학관은 외관부터 남달랐다. 외벽이 온통 진한 황톳빛이다. 멀리서 봐도 시선이 갈 만큼 인상적이다. 황톳빛 외벽은 범어천 둑 위로 흘러넘쳤던 황톳물 색깔을 상징화한 것이다. 대구에서 초중고를 보낸 정 시인은 둑 위로 넘치는 범어천 황톳물을 보며 자연을 배우고 인간을 이해했다고 한다. 시인의 꿈도 범어천에서 키웠다. '범어천이 내 시의 고향이자 내 문학의 모성적 원천'이었다고 시인 스스로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사견이지만, 정호승문학관 1년은 '문학관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죽어있는 문학관'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 달에 한번 마련된 독자와의 만남 시간에는 빈자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매달 개근하는 독자도 여럿이었다. 무엇보다 개관 이후 정 시인은 부지런히 서울과 대구를 오갔다. 최근 문학관을 재정비할 때는 거의 매일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전시장을 꾸미는 시인의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독자들은 특별한 날이 아닌 일상에서 시인을 만날 수 있었고 소통할 수 있었다. 생존 시인의 문학관이 왜 더 빛을 발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정호승'의 이름을 내건 문학관이지만 사실상 '독자와 대구시민의 문학관'인 점도 남다르다. 전국의 문학관 구성이 대부분 작가 위주이지만 정호승문학관은 독자와 시민 중심이다. 실제 지난 1년간 문학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쉼 없이 열리면서 연일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시인들의 시집이 전시된 1층 북카페에는 '마실 나오듯' 들른 주민들로 가득했다. 덩달아 정호승 시인의 시 제목을 딴 '낙타 커피'는 시그너처 메뉴가 됐다. 지하 다목적 공간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강연과 콘서트 등이 수시로 열려 북적거렸다. 이 모든 것이 작가 스스로 권위를 내려 놓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정 시인 역시 지난해 필자와 만났을 때 "정호승문학관은 수성구민의 문학관이면서 대구시민의 문학관이 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정호승문학관 1년,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되고 있다.

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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