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어나더 라운드'(토마스 빈터베르 감독·2020·덴마크)…음주 예찬 영화? 인생 예찬 영화!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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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3 07:51  |  수정 2024-05-03 08:24  |  발행일 2024-05-03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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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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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93회)에 빛나는 영화의 관람을 오랫동안 미룬 까닭은, 아마도 소재 때문일 것이다. 원제가 'Druk(덴마크어로 폭음이란 뜻)'인 이 영화의 소재는 술이다. '어나더 라운드'란 제목도 '한 잔 더'라는 뜻이란다. 애주가에게는 혹할 말이겠으나, 영화는 결코 음주 예찬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비극 가운데서도 인생을 예찬하는 영화다. 단순히 '음주의 찬반'을 넘어서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깊이 있는 영화다.

등장인물은 중년의 위기를 맞은 네 명의 고등학교 교사다. 음악 교사 니콜라이의 생일날, 심리학 교사 페테르가 노르웨이 학자 스코르데루의 이론을 말한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활발해지고 창의적이 된다"는 가설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이 가설을 직접 실험해보기로 한다. 이들의 실험에는 규칙이 있다. 최소 0.05%를 유지할 것과 저녁 8시 이후에는 술에 손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효과를 톡톡히 본 이들의 생활은 생기가 돌지만, 실험은 갈수록 대담해진다.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인데, 기억이 끊어질 데까지 술을 마시는 일은 비극을 불러온다.

영화의 시작은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글이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함축적이고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이 글귀가 말해주듯, 영화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청춘을, 사랑을, 인생을 이야기하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청춘도 사랑도 사라져버린 중년의 사내들이다. 남은 건 인생, 술이 아니고선 견딜 수 없는 사내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실험하는 알코올 0.05%란 와인 한두 잔 정도다. 실험에 성공하고 활기를 찾지만, 사실 그 이론은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스코르데루 본인이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영화를 위해 기꺼이 그 이론을 인용하라고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괴테는 "취해야 하리, 우리 모두. 술 없이도 취하는 게 젊음"이라 했다. 물론 노년에 쓴 시다. 젊음은 누구나 한때일 뿐인 것. 마음만은 젊게 하는 게 뭔지, 삶에 생기를 돌게 하는 0.05%가 무엇인지는 각자가 찾아볼 일이다. 영화가 주는 팁 하나는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는 것인데, 이 또한 키르케고르에 근거한다. 인간의 불안은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영화는 시험의 두려움에 떨던 학생의 입을 빌려 말한다. "실패 가능성을 받아들임이 타인과 삶을 사랑하는 비결"이라고.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 마르틴 역 매즈 미켈슨의 춤이다. 배우 이전에 댄서였던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삶의 기쁨과 환희를 노래하는 역동적이고 멋진 춤이다. 마르틴이 춤을 추며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난다. 그리고 자막 하나가 나온다. '이다를 위하여'. 이 문장으로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 이다는 감독의 딸이다. 촬영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매즈 미켈슨의 춤에는 감독의 깊은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노래하겠다는 결단이 녹아있는 것 같다. 슬픔과 기쁨과 연륜이 한바탕 춤에 들어 있다. 청춘의 때엔 결코 알지 못했을 깊이로 말이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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