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중국 축구와 아레오파지티카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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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3 07:43  |  수정 2024-05-03 07:44  |  발행일 2024-05-03 제12면
프로축구 리그엔 부유한 집안 자녀들로 내정…중국 축구의 몰락은 예정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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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2차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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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1644년, 영국 의회가 출판물의 사전 검열에 해당되는 '출판 허가제'를 부활시키려 하자, 문호 존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라 불리는 짧은 팸플릿을 통해 그것을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밀턴은 자유 경쟁만이 '진짜'를 판별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오픈된 장에서는 절대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신념은 이어진다. "일견 거짓으로 보이는 것에게도 공평하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을 사전 차단하는 것은 악(惡)이다." 밀턴의 저 통찰은 21세기가 된 지금 모든 정상 국가에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항상 보편칙은 지켰을 때보다는 지키지 않았을 때 그 위력을 통감하게 된다.

지난 1월에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3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1골도 넣지 못한 채로 조기 탈락했다. 얼마 전 치러진 U-23 아시안컵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한 명이 퇴장당한 일본에게 0-1로 패배하는가 하면, 우리와 맞붙은 경기에서도 수많은 기회들을 놓치며 결국 0-2로 패배하고는 조기에 짐을 싸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중국이 첫 출전한 그 대회에서 내리 3연패로 탈락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 축구를 대놓고 무시하는 한국인은 없었다. "지금은 경험이 적어서 저렇지만 20년 뒤가 되면 아마 우리가 이기기 힘든 팀이 되어 있을 거야."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축구의 굴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실력이 그 당시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중국 축구가 이 모양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연역적으로 보자면 핵심은 결국 '밀턴의 통찰'과 맞닿아있을 터다. 그 나라에서는 선수 선발의 장(場)이 오픈 된 자유 경쟁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즉, 중국의 '아레오파고스(고대 그리스의 법정)'는 철저하게 '특정 선수'만을 뽑을 뿐, '기타 선수'는 아예 배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중국에서 활약했던 유소년 코치들의 인터뷰를 보면 심증은 확신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애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화를 냈어요. 이렇게 게으르니까 니들이 못하는 거다. 그런데 나중에 애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돈 많고, '빽' 센 아이들이 이미 뽑히기로 '내정'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희망이 없는 애들은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

그렇게 '간택'된 선수들이 가게 되는 프로축구의 환경도 중국 축구의 몰락에 한몫 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선수들이 기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중국의 톱 선수들은 이제 자국 리그에 등 따습게 안주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순지하이, 판즈이, 리티에, 양첸 등의 선배들이 유럽에서 고군분투했던 것을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이렇다 할 경쟁 없이 손쉽게 프로가 된 도련님들이, 쿼터로 자리가 보장되는 팀에서 편안하게 백만장자로 늙어가고 있는 낙원. 나라의 리그가 그래서야 국대의 경쟁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나는 중국 축구가 망하든 흥하든 별 관심이 없다.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스포츠 문화다. 과연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돈과 인맥을 초월하여 유소년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이제 올림픽도 못 나가는 우리네 농구, 배구 선수들은 대체 해외의 그 어떤 리그에서 지금 받고 있는 그 엄청난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밀턴으로 돌아가자.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외국인들에게도 더 크게 문호를 열어라. 스스로 낙원을 버리고, 다시 투쟁으로 나아가자. 14억이 고작 5천만에게 공포를 느끼는, 그 한심한 그들 축구의 무기력을 비웃기 전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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