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구체적인 어린이…동화책 읽는 어른들, 진짜 어린이를 만나다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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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3 08:00  |  수정 2024-05-03 07:59  |  발행일 2024-05-03 제17면
30가지 주제 어린이책 100여편 소개
아동문학 속 어린이 세계 이해 넓혀
머릿속 보편적 존재 아닌 실제 보기

들안길초등
지난해 5월4일 대구 들안길초등에서 학부모와 함께한 '들樂날樂 놀이한마당'에서 학생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남일보 DB>
구체적인어린이_표1
김유진 지음/민음사/328쪽/1만7천원

"어느 작은 마을 변두리에 잡초가 무성한 오래된 정원이 있었다. 그 정원에는 낡은 집 한 채가 있었고, 이 집에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홉 살인데 혼자 살고 있었다. 삐삐한테는 엄마아빠가 없었지만 사실 그것도 아주 잘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한창 신나게 놀고 있는데 '자, 이제 자야지' 한다거나 캐러멜이 먹고 싶은데 간유를 먹으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까."

1945년 출간된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첫 문단이다. 이 작품은 출간 당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혹평과 찬사가 엇갈렸다. 하지만 이 논란은 결국 긍정적인 의견으로 기울어졌다. 이 작품은 이전 작품과 달리 어린이의 감정과 욕망을 담았고, 어린이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기에 결국 이것이 현대 아동문학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좋은 어린이책은 어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어린이가 아닌, 보편적이고도 개별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아동문학 평론, 창작, 연구와 교육 등 어린이와 문학을 다방면으로 오랜 시간 다뤄온 저자는 아동문학에 등장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늘 같다면 그건 '가짜 어린이'일 수 있다고 본다. 아이들은 모두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하나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보편적 어린이상을 어른들이 실제 현재의 어린이에게 덧씌운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책에서 동시, 동화, 그림책, 그래픽 노블, 청소년 소설 등 여러 장르의 다양한 작품 100여 편을 골라 30가지 주제에 맞춰 소개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어린이책은 어린이와 어른에게 사랑받아온 세계적인 고전과 함께 오늘날 사랑받는 최신 명작을 아우른다.

책에선 학교, 심부름, 가족, 할머니, 밥, 스포츠 등 일상의 소재로 어린이의 세계를 만나본다. 또 전쟁과 폭력, 가난, 죽음, 애도 등 어떤 어린이에게는 현실로 다가오는 슬픔에 대한 문제도 이야기한다. 이는 작고 약하며, 보호 또는 통제받아야 하는 어린이의 존재적 성격에 주목한 것이다. 특히 아동청소년문학에서 여성 화자의 내면과 경험을 조명할 때는 성평등 어린이책을 큐레이션 하는 '다움북클럽'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저자의 시선이 담겨 있다. 저자는 어린이를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로서 재현할 때 진정한 어린이를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 1부 '내 옆의 어린이와 내 안의 어린이'에선 가족이나 부모를 비롯해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의 자리를 주의 깊게 살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부 '지금 이곳의 어린이는'에선 오늘날 어린이를 둘러싼 현실을 다양한 면에서 세심하게 들여다본 작품을 소개한다. 3부 '슬픔에 대한 어린이의 질문들'에선 전쟁과 죽음, 폭력 등 무거운 주제를 어린이책이 어떻게 고민하고 전달해왔는지를 볼 수 있다. 4부 '이야기에서 이야기로'에선 어린이책의 문학적 아름다움과 서사적인 즐거움이 느껴지는 작품을 만난다. 5부 '어린이라는 소수자'에선 저자의 오랜 고민이 담긴 글을 담았다. 그는 가장 약한 존재들과 연결되는 어린이의 존재를 성찰한 작품을 읽어낸다.

저자는 "어느새 경계를 넘어 내 안에 성큼 들어 앉아 마치 주인인 양 당당하게 자연스레 자리 잡은 어린이는 그 어떤 타자보다 더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든다. 나아가 이 경험이 다른 타자들, 특히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에게 열리도록 이끈다"고 말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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