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사의 선언들

  • 서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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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3 07:46  |  수정 2024-05-03 08:31  |  발행일 2024-05-03 제14면
K-무비, 끊임없는 도전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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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위부터 둘째) 영화감독이 1931년 9월1일자로 펴낸 종합지 '시대공론' 창간호. 시대공론을 통해 김유영은 '정당한 계급운동에 입각해 나아가겠다'고 천명했지만 조선총독부의 검열과 대중성·통속성이 부족한 글로 일관해 2호까지만 발행되고 폐간됐다. 맨 아래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감독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영남일보 DB·Propaganda 제공>

영화 역사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사조(思潮)가 등장한다. 이 사조들은 당대 혹은 후대의 평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가령 영화 역사의 가장 도도하고 혁신적인 흐름이었던 프랑스 누벨바그의 경우는 '까이에 뒤 시네마' 등 당대의 비평가들에 의해 호명되면서 자연스럽게 명명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누벨바그 감독들은 그 이전 영화들, 즉 '아버지의 영화(Le Cinema De Papa)'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영상언어와 미학을 선보이고자 일련의 시도와 실험을 진행했다. 그것은 결국 후대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누벨바그는 영화역사에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반면 누군가의 선언이 이러한 사조를 앞당기기도 한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자극을 받은 독일의 젊은 영화감독 26명은 1962년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에서 모여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한다. 이들은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Papa's Kino ist tot)'며, 기존 영화산업에 사형 선고를 내리고, 관습적 영화로부터의 탈피, 상업주의로부터의 자유 등을 내세웠다. 결국 이 선언은 독일의 '뉴저먼시네마(New German Cinema)'라는 새로운 영화 사조를 탄생시켰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빔 벤더스, 베르너 헤어초크 등이 '뉴저먼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들이다.

기존 영화에 반기 든 혁신적 선언들
'뉴저먼시네마' 등 신사조 탄생시켜
1920년대 김유영 감독 카프영화운동
식민지 현실 보여주는 영화제작 주창

뻔한 스토리·획일화된 영화들 속에
실험적·개성있는 작품 여전히 등장
영화로써 혁신 시도하는 모습 지지해


비단 이 선언은 새로운 독일 영화를 열었을 뿐 아니라 '코뮤날레 키노(Kommunale Kino, Community Cinema)'라는 영화 상영 운동을 추동시키기도 했다. '오버하우젠 선언' 이후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자, '다른 형식의 영화는 다른 틀 안에서' 상영해야 한다는 관객의 열망이 이러한 움직임을 만든 것이다. '코뮤날레 키노'의 활동은 상업영화관이 아닌 카페, 살롱 같은 비상설 상영 장소를 거점으로 펼쳐졌고, 영화를 보고 열띤 토론을 나누며 새로운 영화문화를 만들어갔다. 결국 이러한 활동의 공공성을 인정받아 독일 전역에 공공상영관(코뮤날레 키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선언도 있다. 바로 '도그마95 선언'이다. 이 선언은 '킹덤' '님포매니악' '살인자 잭의 집' 등 만드는 작품마다 큰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주도한 것으로, 이 선언에는 4명의 다른 덴마크 감독들이 함께하였다. 이들은 이른바 '순결의 서약'을 통해 영화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10가지 원칙, 즉 십계명을 제시하였다. '촬영은 세트장이 아닌 로케이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카메라는 반드시 핸드헬드(들고찍기)여야만 한다' '필름은 컬러여야 한다' '감독의 이름은 크레디트에 올리면 안 된다' 등이 있다.

'도그마95 선언'은 반 할리우드 노선이자 작가주의 영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 이러한 10가지 원칙을 다 지킨 영화는 정작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 혁신적인 시도는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키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1925년에 결성된 카프(KAR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회원이었던 구미 출신의 영화감독 김유영은 카프영화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당시 만 스물두 살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기성 영화예술이 필연적으로 몰락과정을 과정함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우리들의 예술시대는 장쾌한 심포니, 생명력, 강력, 용기, 명확, 동철 같은 신경, 대항성, 리듬, 스타일, 인내 등이 추체화되어서 '패스트 페이든인'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유물론적 사고에 입각한 영화운동을 주창하였다.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인들에게 장악된 식민지 조선 영화계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 농민이 중심이 되어 조선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75년 하길종을 중심으로 결성된 '영상시대'가 새로운 영화를 주창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새 세대가 만든 새 영화' 이것은 구각을 깨는 신선한 바람, 즉 회칠한 무덤 같은 권위주의를 향한 예리한 투창이어야 한다. 과연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누벨바그'나 '뉴 시네마'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었는가?"

당시 억압적 상황 속에서 한국 영화는 발전하지 못한 채 뻔한 스토리의 영화들만이 양산되고 있었다. 하길종은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였고, '영상시대'는 새로운 한국 영화 시대를 열고자 했다. 결국 이들의 활동은 1980년대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장선우 등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를 촉발시킨 프리퀄로서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의미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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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사에서 관습을 깨고 새로운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도전과 선언은 항상 존재해왔다. 비록 그것이 성공하든 그렇지 않았든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에도 획일화되어가는 영화들 사이에서 개성을 가지고 실험과 도전을 불사하는 한국영화들이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이들 영화는 어떠한 선언 아래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몸소 영화로써 그 선언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범람하는 플랫폼의 시대에도 이러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들은 여전히 설 자리가 많지 않다. 'K-무비'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영화 개념의 재정의와 같은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새로운 영상언어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영화예술로서의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영화들을 위한 우리의 '지지선언'이 아닐까.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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