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풍경과 사람 .8] 이강소와 오리그림

  • 입력 2007-06-15   |  발행일 2007-06-15 제36면   |  수정 2007-06-15
소통의 꿈…그 넘실대는 기운 위에 '오리'가 '섬' 처럼 떠있다
[이하석의 풍경과 사람 .8] 이강소와 오리그림
이강소는 늘 페인트 묻은 옷차림으로 생활한다. 배경그림은 이강소의 유명한 오리 그림 '섬에서'.

대구 중구 봉산동 리안갤러리의 '한국현대미술 계보전'에 선보인 이강소(64)의 그림 다섯 점이 반갑다. 한국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상태지만, 이번 전시는 그 계보가 기실은 대단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김환기, 박서보, 이우환, 이강소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은 새로운 조형언어의 진경을 드러내면서 매체에 대한 특이한 관심으로 그 심도가 드러난다. 이들은 이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이들 가운데 이강소는 가장 나이가 적은 세대다. 그는 대구출신이다. 1970년대 초 일군의 젊은 화가들이 펼쳐보인 대구현대미술제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전국의 패기 넘치는 젊은 실험화가들이 대구에 몰려들었고, 중앙 일간지의 기자들이 대거 내려와 취재경쟁을 벌이는 등 대구 미술계가 가장 조명을 화려하게 받은 게 대구현대미술제였다. 이를 통해 대구가 현대미술의 메카라는 말을 지금도 듣는다. 이번의 리안갤러리 전시는 그의 그러한 활동을 새삼 상기시킨다. 물론 그동안 대구와 경주 선재미술관 등에서 그의 개인전과 그룹전들이 열려왔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준 것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현대미술제 중심멤버이기도

이번 전시에 선보인 이강소의 평면작품은 유명한 오리 그림들이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굵은 선들 사이로, 위로, 또는 아래로 오리들이 있다. 뚜렷한 윤곽선으로, 또는 엷은 빛깔의 선으로 오리 형태를 떠올린다. 몇 마리의 오리들은 흐릿하게 지워져 있기도 하다. 굵은 선은 구름을 나타내는 것 같다. 구름은 물에도 비쳐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검은 선과 푸른 선만으로 이루어진 단색조의 단순한 그림이라 동양적인 정신성이 환기되는 한가한 풍경같지만, 필선의 속도감이 아주 빨라 이상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구름과 오리, 물을 드러낸다고 했지만, 오리의 단순한 윤곽선은 무슨 기호같거나 이미지 같이 느껴진다. 말하자면 이들 그림은 물 위에 뜬 오리를 암시할 뿐, 구체적인 풍경을 보여주진 않는다. 선으로 끄적거리다 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기는 했지만, 그려지지 않은 상태를 보여준다는 말도 듣는다. 표현과 비표현, 드러냄과 감춤, 그림과 그림 아닌 것의 간극과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작업이다. 어쩌면 동양사상의 심오한 세계인 공과 색, 존재와 비존재, 욕망의 갈등과 충돌 또는 그 화해, 부조화와 조화를 포괄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소통 열망 담은 '섬에서'시리즈

제목은 한결같이 '섬에서'이다. 1990년대의 '무제' 시리즈와 '강에서' 시리즈에 이어 최근 집중적으로 드러내보이는 시리즈의 제목이다. '섬에서'라니까 시인 정현종의 아주 짧은 시 '섬'의 전문('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이 떠오른다. 정현종의 시가 소통을 꿈꾸는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한다면, 이강소의 '섬에서' 시리즈도 어느 정도 소통의 꿈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다. 표현과 대상의 소통, 몸과 캔버스와의 소통, 작가와 독자의 소통은 물론, 물질과 정신의 소통과 존재의 확인을 위한 소통의 꿈, 나아가서는 인간과 자연의 소통까지를 꿈꾸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섬에서' '강에서' 시리즈가 보여주는 소통의 매개체는 물과 구름이라는 넘실대는 기운이다. 그 기운 위에 오리와 배가 떠 있다.

빠른 붓질로 유명한 그의 평면작업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지만, 이제는 한국 현대미술의 한 특징으로 꼽힐만큼 유명세를 탄다. 기실 그 전부터 그는 문제적 작가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특히 1970년대 초부터 벌인 설치작업은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전시된 선술집만 해도 그러했다. 화랑내부에 선술집을 차려놓고, 관람객들이 술집에 들어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술잔을 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 설정이 의외였고 대담해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는 전시장 안에 닭을 끈으로 묶어놓은 다음 바닥에 밀가루를 뿌려놓고 먹이를 산재해 닭이 이리저리 움직임에 따라 그 흔적을 남기도록 설정된 작품을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작업들은 미술작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의 행위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다방면에 걸쳐 왕성하게 이루어진다. 평면작업 외에도 석판화와 비디오 작업, 진흙 덩어리를 던져서 만드는 테라코타 작업, 목조각, 돌조각은 물론 사진작업까지 망라하고 있다. 이들 작업을 통해 그는 일관되게 '환원적 표현'의 미묘함을 드러낸다. 단순함과 암시적인 드러냄을 통해 작업과 비작업, 표현과 비표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보여주는 일에 천착하고 있다. 대구현대미술제 이후 그의 실험정신은 부단히 개진되어왔고, 그리하여 이제 그는 여전히 현실에 대한 강력한 질문으로 우리 화단의 중심을 휘젓고 있는 것이다.

날로 커지는 작품제작 욕심

그의 집은 서울에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남풍리에 있는 작업장에서 기거한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숙식을 하면서 작업에 몰두한다. 8천 평의 야산 기슭이 온통 작업실을 겸한 큰 창고들로 들어차 있다. 테라코타 작업을 위한 가마도 두 개나 있다. 창고가 모자라 다시 크게 증축 중이다. 이 어마어마한 '작품공장'은 그의 작업의 규모가 상상이상임을 증명한다. 그는 1982년에서 1993년까지 10년 동안 경상대교수로 있었으나 작업을 위해 교수직을 버렸을 정도로 작품 제작 욕심이 컸고, 여전히 크다. "시골에 틀어박혀 작업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시골'에 있어도 외국에 잘 알려진 작가 또는 현대미술의 국내 대표적인 작가라는 점 때문에 작업실에는 내외국인 작가 또는 화상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전시는 간단없이 이루어진다. 지금도 서울 샘터화랑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전시를 하고 있다. 지난 봄에는 서울 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서 4인전이 열렸다. 지난해 가을에는 남프랑스 니스의 아시아미술관에서 그의 사진작들이 전시되어 호평을 받는 등 해외전도 활발하다.

이따금 대구에 들린다. 아버지가 여전히 대구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구시립미술관 건립 자문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대구출신인데다 대구현대미술제를 주도한 만큼 그의 대구 화단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대구지역의 현대미술 화가들도 만난다. 대구현대작가협회 활동에 대한 기대와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대구 화단의 폐쇄성을 꼬집는다. "대구화단이 활기를 띠기 위해서는 개방과 교류의 폭 확대가 우선돼야 한다"며, 서울 작가들은 물론, 국제적인 작가들의 대구 방문이 많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이강소는

△1943년 대구 출생

△서울대 미대 회화과 졸업

△국립 경상대 교수 역임

△뉴욕 트라이 앵글 아티스트 워크 참가 및 뉴욕 현대미술연구소의 국제 스튜디오 아티스트 프로그램 참가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우수상, 제3회 이인성 미술상 등 수상

△1973년 이후 대구와 서울, 부산 및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

그의 작품은…

굵은 선들 사이로 오리들이 있다

단색조의 단순한 그림이라 한가한 풍경 같다

그래서 그리기는 했지만 그려지지 않은 상태를 보여준다

표현과 비표현, 드러냄과 감춤 간극과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붓질은 아슬아슬한 작업이다

[이하석의 풍경과 사람 .8] 이강소와 오리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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