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나는 공무원이다·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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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7-13   |  발행일 2012-07-13 제40면   |  수정 2012-07-13
[신작 對 신작] 나는 공무원이다·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 나는 공무원이다 : 변화거부 구청직원과 좌충우돌 인디밴드의 동거

나이 38세의 마포구청 환경과 생활공해팀 주임 한대희에게 공무원은 천직과 같다. 고액연봉의 폼나는 대기업에는 못미치겠지만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 무엇보다 임금 체불 없이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 직장이라는 점은 그에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변화가 없어 재미없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오히려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한대희는 변화 같은 건 ‘평정심’을 깨는 인생의 적으로 여긴지 오래다. 퇴근 후 10년째 이경규와 유재석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보며 여가생활을 즐기는 현재의 삶에 그는 200% 만족한다.

그런 그의 평온한 삶에 태클이 걸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소음 민원의 근원지인 한 인디밴드의 연습실을 찾았다가 졸지에 그들의 연습실을 구해줘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휘말리게 된 것. 다급해진 한대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집 지하실을 이들의 연습 공간으로 내주게 된다.

인디밴드와의 원치 않은 동거는 평온했던 한대희의 삶을 일거에 뒤바꾸는 사건인 동시에 순탄하게 흘러가던 이야기에 새로운 변화를 발생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흥분하면 지는 것’임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던 ‘평정심의 대가’ 한대희에게 인디밴드 ‘삼삼은구’의 음악은 그저 소음만 발생시키는 시끄럽고 쓸모 없는 행동이다. “이런 시끄러운 음악을 왜 하지?”라며 시니컬하게 그들을 바라보지만, 밴드 멤버들에게 음악은 인생을 걸고서라도 꼭 한번 완성해보고 싶은 꿈이자 희망이다. 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빼면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88만원 고용불안 세대의 고민과 불안감을 우회적으로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게 되면서 대희의 잠재돼 있던 본능도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점. 결국 삼삼은구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참가하게 된 한대희의 삶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그런 점에서 음악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음악 또한 수준급이다. 삼삼은구 밴드 멤버 중 매력적인 보이스를 자랑하는 김희정은 물론, 서현정과 권수현 역시 실제 홍대에서 밴드로 활동하는 뮤지션으로, 각각 ‘3호선 버터플라이’의 드러머, ‘안녕바다’의 전 기타리스트 출신이다. 실력파 뮤지션들이 함께 한 덕에, ‘음악은 가장 값싸고 괜찮은 환각’이라는 영화 속 일침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삼삼은구 밴드의 연주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소음이 아닌, 힐링 뮤직으로 다가온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공무원이다’는 ‘마지막 늑대’(2004)로 데뷔한 구자홍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감독은 전작의 맥락을 이어가듯 이질적인 두 캐릭터에서 파생될 수 있는 상황들을 무겁지 않은 코미디로 능숙하게 풀어갔다. 하긴 변화를 거부하는 안전주의자 7급 공무원과 좌충우돌 인디밴드가 만났으니 이미 그 순간부터 상황은 코미디가 될 것은 뻔한 일. 실제 마포구 지역구민인 감독은 오랫동안 관찰하고 수집한 공무원 관련 자료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얻어진 생활밀착형 에피소드들을 영화에 고루고루 첨가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건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다. 15년 가까이 연극무대를 통해 탄탄히 쌓아올린 그의 깊고 폭넓은 연기력을 생각한다면 원톱배우로 그를 캐스팅한 건 무난해보인다. 흥미로운 건 악인, 조폭, 복수의 화신 등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을 주로 맡아왔던 그가 변화없는 일상을 즐기는 평범한 공무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윤제문은 극 중 한대희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한대희 캐릭터 그 자체가 된 듯한 능청스러운 표정연기는 물론, 그만의 개성 넘치는 대사 표현으로 찰진 코믹 연기를 펼쳐냈다. 게다가 겉으로는 쿨한 척 하면서도 어린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까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에선 귀여운 매력까지 비친다. 이러한 그의 연기는 이탈리아 우디네 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돼 ‘한국의 잭 레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럽고 재기넘치는 이야기와 진한 인생의 페이소스는 무엇보다 이 영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커다란 미덕이다.


[신작 對 신작] 나는 공무원이다·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 황혼의 영국노인 7인이 인도로 간 까닭은…

“인도에 한 번 오게 되면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는 작가 E.M. 포스터의 말처럼 인도는 어느 곳에나 즐거움과 놀라움이 공존하는 마법 같은 나라다. 화려함과 신비로움을 자랑하는 고대 사원과 왕국, 그러면서 빠른 속도로 현대화되어가는 이 나라의 모습은 이국적이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인생의 황혼을 맞은 7명의 영국 노인이 여생을 보내기 위한 최종 목적지로 인도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남편과 사별하고 생애 첫 홀로서기에 도전하는 에블린(주디 덴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평생의 과제를 풀려는 판사 그레이엄(톰 윌킨슨), 다툼이 끊이지 않는 더글라스(빌 나이)와 진(페네로피 윌턴) 부부, 사랑에 목숨을 건 노먼(로널드 픽업)과 마지(셀리아 아임리), 그리고 수술을 받기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온 뮤리엘(매기 스미스) 등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을 지닌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대책 없이 열정적인 호텔 지배인 소니(데브 파텔)의 매력적인 광고에 반해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로 오게 된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모든 것들을 주저할 나이에 용감하게 여정을 떠난 주인공들의 일종의 모험담이다. 사실 황금 같은 노년을 위한 기품 있는 호텔이라는 광고에 이끌려왔지만, 이들 모두는 노년을 풍족하게 보낼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은퇴한 가정부 뮤리엘은 저렴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단 한가지 조건 때문에, 통장 잔고 제로인 더글라스는 아내 진과 저렴하면서도 안락한 노후를 만끽하기 위해 인도에 왔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된 에블린 역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고자 과감히 인도행을 택한 경우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텔은 이들의 처지를 대변하듯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인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방들은 새가 둥지를 틀고, 이끼와 나무 덩굴로 점령당해 흉물스러운 벽은 물론, 문짝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는 호텔이 개장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손님부터 모집한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빗나가는 뜻밖의 상황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발생되기 쉬운 법. 저마다 각기 다른 성향으로 언뜻 조화가 어려워 보였던 이들은 사랑을 매개로 차츰 이곳 생활에 적응해간다.

특유의 영국식 유머가 시종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사랑과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여운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러브 액츄얼리’와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젊고 짜릿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을 통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란 말을 되새기게 만든다. 옛것과 새것이 뒤섞여있는 인도는 그런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불어 넣는 훌륭한 무대가 된다. 낯설고 기이한 인도에 넘쳐흐르는 특별한 에너지 역시 주인공들이 안고 있는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답을 독특하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던져준다.

영화는 데보라 모가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존 매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탄탄한 원작 스토리에 뿌리를 둔 우정과 사랑, 경쟁, 그리고 끝나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존 매든의 손을 거치면서 한껏 활기찬 기운을 입고 스크린으로 되살아났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나이와 성숙함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지 비례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변하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에 대한 질문 또한 황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닌, 남녀들의 사랑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치환돼 진실한 사랑과 인생의 가치로 조명된다.

주디 덴치, 빌 나이, 톰 윌킨슨, 매기 스미스 등 영국을 대표하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들은 흉물스럽고 노쇠한 메리골드 호텔이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처럼, 저마다의 자리에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며 이야기에 설득력을 불어 넣는다. 덕분에 젊은 세대의 관객들은 인생을 길게 보는 혜안을 얻고, 기성세대는 아직 꺼지지 않은 열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공통된 메시지로 응원을 보낸다. “결국엔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 때가 아닌 거죠”라는 극 중 대사처럼 이 영화가 전하는 긍정의 기운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마법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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