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감기·세상의 끝까지 21일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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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8-16   |  발행일 2013-08-16 제42면   |  수정 2013-08-16
[신작대결] 감기·세상의 끝까지 21일



★ 감기

“걸리면 36시간 안에 죽는다” 변종 바이러스의 공포


감염속도 초당 34명, 발병 뒤 36시간 내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고병원성 변종 바이러스가 분당에 퍼진다.

한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려던 필리핀 노동자들을 통해 전파된 것이다. 그들과 처음 접촉했던 한국인 브로커를 매개체로 이 변종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분당을 지옥으로 탈바꿈시킨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격한 기침과 함께 피가 섞인 토사물을 쏟아내는 동일한 증상을 보이고, 분당에 위치한 병원들은 이런 환자들로 포화상태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예방도 치료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더 이상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분당 폐쇄’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린다. 한편 감염내과 전문의인 인해(수애)는 딸 미르(박민하)가 바이러스에 전염된 것을 알게 된다. 딸을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백신 개발을 위해 최초 발병자를 찾는 것. 인해를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119구조대원 지구(장혁)는 그런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감기’는 충분히 발생가능한 현실적인 공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불안하고 끔찍하다. 극 중 조류독감 H5N1의 변종으로 설정된 이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호흡기를 통해 감염이 되고,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확산되며 치사율도 높다. 기시감이 든다. ‘감기’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가정하에서 출발한다.

사실 극중에서처럼 대규모 감염사태가 발생한다는 건 영화적인 허구에 가깝다. 하지만 ‘감기’에서 펼쳐지는 모습들은 앞서 언급했듯 충분한 개연성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 역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폐쇄는 물론, 더 이상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감염자들의 살처분과 매립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가 더욱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감기’는 위급한 상황과 마주한 개개인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이타심의 충돌을 동력으로 삼는다. 국환(마동석)과 지구는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군수비리로 퇴역한 군 작전과장 출신의 국환은 분당을 빠져나갈 유일한 방법으로 미군특수부대 수송차량을 이용한다. 하지만 바리케이드에 막혀 실패하자 사람들을 선동해 소요사태를 일으킨다. 반면 구조대원 지구는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다.

영화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보다 중반 이후 전시되는 살풍경의 모습이 더욱 공포스럽다. 한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탄천변은 비밀 장막으로 어지럽게 둘러쳐진 대단위 수용캠프로 탈바꿈 되고, 방독면과 장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은 분당 시민들을 범죄자 다루듯이 무력으로 통제한다.

‘감기’는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8), ‘무사’(2001) 등을 통해 한국 액션영화의 한 정점을 찍었던 김성수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장소가 바이러스로 인해 죽음의 공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비쳐지길 바랐다. 이를 위해 세트의 구성은 물론, 카메라 워킹, 특수효과, CG까지 국내 최고의 기술력과 물량을 동원했다. 재난영화가 관객을 설득시키기 힘들면서도 한편으로 커다란 파급력을 발휘하는 게 재난의 규모와 양상이라고 본다면, ‘감기’는 일단 그 조건은 갖춘 셈이다.

특히 축제와 함성의 메카인 종합운동장이 인간을 대규모로 살처분하는 극단적 광기의 장소로 사용되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 김성수 감독은 “구제역 사태 때 돼지들을 대량으로 살처분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며 “‘감기’ 역시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그러한 위협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게 진짜 공포”라고 말했다.

열정과 투혼을 불사른 장혁과 수애는 물론 유해진, 마동석, 이희준 등은 역시나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건 관객의 가슴을 울릴 만큼 야무진 연기력을 보여준 아역 박민하다. 주부관객층이 늘었다면 아마도 그건 박민하의 공일 것이다.

[신작대결] 감기·세상의 끝까지 21일



★ 세상의 끝까지 21일

지구멸망 21일 전…그래도 그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게 된 인류는 희망이 사라졌다. 지구와의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21일.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통신 수단은 무용지물이 됐고, 수도와 전기도 곧 중단될 예정이다. 이런 긴박한 상황을 뉴스로 전달하는 리포터의 첫 마디 역시 “엿같네요”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지구멸망을 앞두고 시한부 삶을 살게 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과 혼돈의 상황을 포착한다. 종말에 따른 모든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다는 보험사의 황당한 마케팅이 등장하는가 하면, 일부 고위층 관계자와 종교지도자, 그리고 연예인들이 탑승할 우주선을 정부가 따로 준비해뒀다는 등 유언비어까지 판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더 이상 해볼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담담하게 받아 들인다. 미등록차량을 운전했다는 이유로 구금까지 당하는 판국이다. 물론 무법천지로 변하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풍경도 전시된다.

사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좀더 극적인 이야기와 거대한 스케일을 첨가한다면 블록버스터급 재난영화로도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영화는 규모의 미학도, 진중한 묵시록적 메시지도 관심이 없다는 듯 인류보다는 개개인에 천착해 이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담았다. 그러고보니 무거운 주제지만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왠지 낯설지 않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인생에 대한 주제를 코미디로 완성시켰던 ‘50/50’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영화다.

‘50/50’을 제작한 니콜 브라운과 나단 카헤인이 총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500일의 썸머’를 통해 감성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음악감독 롭 시몬센까지 가세했다. 연출은 시나리오 작가는 물론, 싱어 송 라이터로도 활동 중인 만능 재주꾼 로렌 스카파리아가 맡았다. 로렌 스카파리아 감독은 “시간의 유한성을 통해 그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원’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진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가 궁금했다는 것.

이를 위해 영화는 평범한 인물 도지(스티브 카렐)와 페니(키이라 나이틀리)에 초점을 맞췄다. 평생 가치 있는 일을 해 보지 못한 도지는 지구 종말을 앞두고도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없는 무기력한 남자다. 그런 그가 우연히 자신의 베란다에서 울고 있던 이웃여자 페니를 만나게 된다.

세상이 끝나는 날에도 15분 지각을 할 것 같다는 페니는 수면과다증으로 인한 게으름 때문에 가족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도 자신에게 실망하며 무너지지만, 언제나 그렇듯 다시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자신에게 잘못 배달된 도지의 편지를 미처 전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의 첫사랑을 함께 찾아 주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페니는 가족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서로의 버킷 리스트를 완성시키기 위해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여행을 떠난다.

종말의 시간을 앞두고 있지만 사람들의 일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누군가는 평소와 다름없이 편안한 잠을 청하고, 누군가는 언제나처럼 출근해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못다 이룬 꿈과 욕망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남은 시간 동안 채우려 한다. 페니와 도지도 그렇다. 페니는 더 이상 잘못된 남자친구에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며 뒤늦은 반성과 후회를 한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고, 이 남자가 내 짝일까, 내 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인가를 이것저것 골치 아프게 따질 필요가 없다.

도지 역시 적극적이지 못했던 자신의 성격 탓에 헤어졌던 학창시절 첫사랑과의 재회를 꿈꾼다. 그 과정에서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화해와 치유의 시간도 갖는다. 그리고 비로소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후회없이 사랑하고 많이 웃고 즐기라고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일지는 결국 각자의 몫으로 남겠지만.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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