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모스트 원티드 맨·허큘리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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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08   |  발행일 2014-08-08 제42면   |  수정 2014-08-08

모스트 원티드 맨 (장르:스릴러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그 흔한 총소리 한번 없지만…스릴 만점 첩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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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의 근원지였던 함부르크는 현재까지 주요 경계 도시로 분류된다. 정보 수급 실패와 지나친 부처 간 경쟁 탓에 크나큰 재앙을 막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뒤늦은 반성과 의지의 결과다. 영화 ‘모스트 원티드 맨’은 여기에 주목해, 여전히 각국 정보원들의 활발한 첩보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독일 최대 항구도시 함부르크 이면의 차갑고 냉혹한 기류를 포착해간다.

한때 독일 최고의 스파이였지만 지금은 정보부 대테러부서 책임자로 있는 군터 바흐만(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법적으로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 비밀조직은 테러리스트 제거 및 정보원 확보를 주요임무로 하고 있다. 군터는 특히 정보원을 미끼 삼아 더 큰 목표물을 제거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그런 그에게 흥미로운 먹잇감 이사(그리고리 도브리긴)가 나타난다. 러시아인 아버지와 체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사는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찾기 위해 함부르크로 밀항했다. 군터는 그가 찾는 유산이 러시아 마피아의 비자금이라는 첩보를 입수한다. 그 과정에서 이사를 돕고 있는 인권 변호사 애너벨 리히터(레이첼 맥아담스)와 유산을 관리하는 은행장 토마스 브루(윌렘 데포)까지 자신의 정보원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이들을 이용해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줄로서 각국 정보부의 용의선상에 오른 닥터 압둘라를 체포할 계획을 세운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이미 영화화된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에 이은 존 르 카레의 또 다른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영국 출신의 존 르 카레는 냉전시대에 실제 스파이 활동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의 이념적 혼란과 그 속에서 희생되는 스파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냉전은 종결되었지만 변화된 세계, 시대상에 맞춰 사회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통찰력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유독 빛을 발했다. 특히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경계 대신 끊임없이 갈등하고 의심하는 불안정한 존재들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다. 단, 그 점이 상업적 코드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들에겐 조금 싱겁게 느껴질 수 있겠다.

흥미롭게도 이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낸 건 세계적인 포토그래퍼이자 MTV 어워즈 수상자 출신의 안톤 코르빈이다. 자신만의 스타일리시함이 농축된 이 영화에서 그는 첩보물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액션과 이야기 대신 인물들 간의 치열한 심리전과 정보싸움으로 러닝타임을 밀도감 있게 채워간다. 그 흔한 난투나 총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지만 스릴감과 긴박감으로 관객을 서서히 조여들게 만드는 힘이 대단하다. 여기에 더해 9·11테러 이후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강한 적대감,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과 정보전쟁 등 다양한 현대사의 사안들을 녹여내 이를 요란하지 않은 첩보 스릴러물로 풀어가는 솜씨도 제법이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예술적 감각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다. 항상 모든 관점을 그만의 특유한 시점으로 바라본다”며 그의 세련된 연출감각을 극찬했을 정도다. 물론 이 영화를 주목하게 만드는 건 이제는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존재감이다. ‘카포티’(2005)로 제78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그는 다양한 필모그래피에서 보이듯 작품이 더해질 때마다 상상 이상의 연기를 선보여왔고, 이번 역시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줄담배와 덥수룩한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군터 바흐만은 마치 그의 분신같다.

여기에 레이첼 맥아담스, 윌렘 데포, 로빈 라이트, 다니엘 브륄 등 현재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 화려한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미장센이 돋보이는 세련된 연출력,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베스트셀러 원작, 그리고 관객과 평단 모두에 사랑받는 연기파 배우들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모스트 원티드 맨’은 충분히 기대감을 가질 만하다. 그럴수록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이겠지만.


허큘리스 (장르:액션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제우스 아들 허큘리스…신 아닌 보통남자의 영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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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는 ‘질투의 화신’으로 통한다. 물론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바람둥이 제우스 탓이 크다. 헤라는 누구보다 제우스를 사랑한다. 때문에 그녀의 공격 대상은 언제나 제우스와 바람을 피운 여인과 그로 인해 잉태된 자식들에게로 향했다. 허큘리스(영어로 헤라클레스) 역시 그런 이유로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헤라로부터 끊임없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강했다. 결국 허큘리스는 신들이 내준 불가능에 가까운 12과업을 완수하면서 헤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화살과 칼로도 꿈쩍 않는 네메아 사자를 맨손으로 죽이고, 머리 아홉 달린 히드라와 괴수 멧돼지를 잡는 등 허큘리스가 달성한 12과업은 이후 온 세상의 전설로 통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동고동락 해온 다섯 명의 전사들이 있다. 예언자 암피아라오스(이안 맥쉐인), 책사 아우톨리쿠스(루퍼스 스웰), 벙어리 티데우스(엑셀 헨니), 궁수 아탈란타(잉그리드 볼소 베르달), 그리고 이야기꾼 이올라오스(리스 리치)다. 그의 명성을 들은 이웃나라 트라키아 왕(존 허트)은 허큘리스와 그의 동료 전사들에게 켄타우로스 군대를 거느린 마법사를 물리쳐달라고 요청한다.

“생각만큼 위대하진 않군요.” 허큘리스(드웨인 존슨)를 처음으로 마주한 인간들의 말처럼 영화 ‘허큘리스’는 신도 영웅도 아닌, 단지 힘세고 용맹한 한 남자의 영웅담을 따라간다. 게다가 그는 명예보다는 돈을 위해 일하는 속물적인 용병에 가깝다. 이처럼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던 신화 속 영웅의 모습보다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한물간 영웅이자, 재기를 꿈꾸는 허큘리스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에 주목한다.

슈퍼히어로물의 이야기와 소재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에게 ‘허큘리스’가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전설을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사람들의 의심에 맞서 완전한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한 이 여정은 단순한 볼거리만을 천착해왔던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도 차별된다. 연출을 맡은 브렛 래트너는 스티브 무어의 그래픽 노블 ‘허큘리스: 트라키아 전쟁’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신화를 해체하고 현대적 감각을 살리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틀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호기심과 함께 극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주효하게 작용했다.

물론 이야기의 새로움만을 추구한 건 아니다. ‘엑스맨:최후의 전쟁’ ‘타워 하이스트’ 등을 연출했던 장본인답게 허큘리스의 눈부신 활약상 역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화려한 볼거리와 스펙터클한 액션으로 담아냈다. 그 과정에서 원작의 액션, 유머, 전투, 시각적 효과를 고스란히 21세기 모험극으로 녹여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CG와 실사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후반부 전투신은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역동적인 재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치 ‘글래디에이터’에서의 날 것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허큘리스를 연기한 드웨인 존슨은 “할리우드에 입성하면서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역할”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더 락’으로 활약하며 8차례나 WWE챔피언에 오른 레슬러 출신인 그는 특유의 친근한 이미지를 녹여내 허큘리스를 유쾌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브렛 래트너 감독 역시 “허큘리스는 그리스 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보통 남자라는 점에서 기존 신화물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와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조합도 좋다. ‘설국열차’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존 허트와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의 검은 수염 이안 맥쉐인,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조셉 파인즈 등의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극에 무게감을 더했다. 흥미로운 서사와 스릴 넘치는 액션, 그리고 판타지가 골고루 녹아있는 꽤 만족스러운 여름용 블록버스터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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