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여성인권 렌즈에 담는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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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26   |  발행일 2014-09-26 제37면   |  수정 2015-01-30
“이 세상엔 억울한 약자 너무 많아…난 그저 그들의 심부름꾼일 뿐”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참여한 250여명의 사진가 중 유독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그런 길을 가는 작가가 보였다. 그녀는 패션모델로 나서도 될 정도의 미모를 가졌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응시하는 도도하면서도 도발적인 눈빛을 보면 왜 그녀가 포토저널리스트가 됐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44).

그녀는 남성의 대립개념으로 여성을 적시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 그녀는 자기가 찍은 사진을 작품의 범주에 넣는 것도 싫어한다. 그냥 자기를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그냥 사진기자 정도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인터뷰 때 ‘여성으로서 분쟁지역 촬영을 하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남자세상, 여자세상. 그런 흑백논리식 사고로 뭘 구현할 수 있겠냐’는 핀잔이었다.

그녀는 사각지대 여성의 인권에 올인한다.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바뀔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20140926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그림을 전공하다가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로 변신한 정은진씨.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에 참여한 그녀는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로 돼 있던 세계 주요 분쟁지역인 콩고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열악한 성인권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 정은진은

서울대 동양화과, 미국 NYU 티쉬스쿨 사진과, 미주리대 언론대학원 포토저널리즘과를 졸업했다. 미주한국일보 뉴욕지사 사회부와 문화부에서 6년간 근무한 뒤 AP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2004년부터 전업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활동한다. 2004년 말 태국에서 쓰나미 발생 이후 상황을 촬영한 사진이 뉴욕타임스 1면 톱으로 실렸다. 2007년 9월 초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산모 사망률을 다룬 포토 스토리로 프랑스의 세계적인 보도사진전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에서 CARE 상 그랑프리와 2008년 3월 일본의 Days Japan 보도사진대상 1위, 같은 해 WHO Stop TB 결핵퇴치 이미지 어워드 대상을 수상했다. 콩고의 성폭력 현실을 고발한 포토 스토리 ‘콩고의 눈물’로 2008년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에서 또다시 경쟁 부문인 제1회 피에르 & 알렉산드라 불라 상을 수상했다.

2010년 3월 서울에서 제28회 세계 결핵의 날 다제내성 결핵 퇴치 홍보대사로 위촉돼 시청 앞 광장에서 결핵 관련 단독 전시회를 가졌다. 또한 그해 11월20일 앙코르 포토페스티벌에서 아시아 여성 사진가 1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불교잡지 ‘월간 해인’의 객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서울에서 외신전문 프리랜서 사진기자로서 뉴욕타임스, 타임,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슈피겔, 르 피가로 등 유력 해외 언론사들과 일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물부족, 전시 여성인권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기획·취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프가니스탄 생활을 담은 ‘카불의 사진사’와 콩고의 성폭력 고발 르포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 브라질 결핵과 콩고의 성폭력, 중동분쟁 등의 취재기를 담은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 등 3권의 수필집이 있다.


◆ 동양화에서 사진으로 JUMP UP

- 대구사진 비엔날레 특별전인 ‘전쟁 속 여인’ 기획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역사는 승자와 강대국 출신의 기록이었다. 특히 사진기 등 기자재와 체력, 국적, 언어능력, 진취적 성향, 사회적 지위 등을 앞세운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들도 카메라를 접하거나 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났고, 과거보다 훨씬 체력조건도 좋아졌다. 따라서 그동안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성의 시각으로 뉴스를 접근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아직도 수적으로 열세지만 전쟁을 남성의 시각이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기록한 사진적 결과물을 기획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기획전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분쟁지역 속 여성들의 삶
男 아닌 女 시각으로 포착
성폭력 고발 ‘콩고의 눈물’
세계적 보도사진전서 주목
“現 제3세계는 ‘우리의 과거’
결코 남의 문제만은 아냐
힘 닿는 데까지 취재할 것”


- 이번에 내건 작품은 어떤 건가. 전시되는 사진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번 출품작은 2008년, 2009년, 그리고 올해 등 세 차례 콩고에서 작업한 콩고의 성폭력 피해자 및 생존자들에 대한 르포인 ‘콩고의 눈물’이다. 콩고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달게 된 계기는 2008년 콩고 첫 방문시 ‘고마’라고 하는 곳의 케셰로 병원 내 성폭행 피해환자 병동에서 촬영한 ‘이마퀼레’라고 하는 당시 18세 소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흐르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조선일보에 기고했을 때 신문에 ‘콩고의 눈물’이라고 제목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사진 촬영 당시 나는 여성병동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는데, 갑자기 2~3명의 남자 간호사가 한 환자를 들것에 들고 병동 문 뒤에 있는 침대에 뉘였다. 간호사들은 수술된 복부를 열심히 소독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고향인 마시시 지역 후투족 반군 세 명한테 강간을 당해 임신됐다. 마을 보건소 의사의 실수로 제왕절개 수술까지 엉망이 됐다. 그 후 고마의 케셰로 병원으로 후송된 찰나였다. 1년 후인 2009년, 나는 ‘피에르와 알렉산드라 불라’상의 도움으로 콩고를 재방문, 부카부 판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마퀼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 동양화를 전공하다가 갑자기 미국으로 가서 사진기를 잡은 이유는 뭔가.

“1992년 서울대 재학 시 선택수업으로 사진을 배운 적이 있다. 그 당시 중앙대 류경선 교수님이 잘 찍은 사진이 아니었는데도 내게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동양화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던 것 같고, 칭찬을 들으니 내가 사진에 엄청 재능이 있는 걸로 착각했다.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 동양화로는 유학 가기가 애매해 다른 전공을 찾아야만 했다. 마침 뉴욕대 티쉬스쿨이라는 곳에 사진과 학부과정이 있다는 걸 알고 뉴욕으로 갔다.”

◆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의 정체성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가 뭘 하는 사람인가.

“특정 언론매체에 고용 및 소속돼 있지 않으면서 본인의 역량에 따라 어느 언론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진취재 및 기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보도사진계의 아웃소싱 또는 외주업자와 비슷한 개념이다. 일반인들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기자’라고 하면 정규 직원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전부 프리랜서다. 일부는 장기 계약을 체결, 주기적으로 취재 의뢰를 받기도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고용된 사진부 인원은 10명 남짓한 포토 에디터, 즉 사진 편집자, 사진 부장과 암실 직원들이다.”

- 작업 여건이 녹록지 않을 것 같다.

“직함에 ‘자유’라는 글귀가 있지만 그다지 자유로운 삶을 살지는 못한다. 전 세계 수만 명의 다른 프리랜서와의 경쟁으로 인해 항상 정신적 불안감, 부담감, 우울증 등 스트레스에 치여 산다. 비정규직보다 못한 직종으로 수입이 불안정하며, 4대보험과 산재보험도 인정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직종이다. 대다수 프리랜서는 패션, 광고, 예술 사진 분야에서 활동한다.”

- 현재 유수 신문사와 방송사는 비용은 물론 피살 및 억류 등을 우려해 자사 기자를 분쟁지역으로 파견하지 않는 것 같다.

“피살 및 억류 때문이라기보다는 일단 ‘출장 비용 절감’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뉴욕타임스 연계 언론사들 및 트리뷴 등 대형 언론재벌들이 경영난으로 인해 기자들을 대거 구조조정했다. 이때 예산감축의 철퇴를 맞는 곳이 국제부 아니면 돈이 많이 드는 사진부이다. 또한 유수 통신사와 특약을 맺은 상태라면 굳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자사 기자를 보낼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통신사 사진은 가끔 언론사 구미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프리랜서를 고용하게 된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이 자사 기자가 중동 등 아프리카에서 감금당한다고 해서 그걸 두려워해서 일부러 안 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을 때에는 모든 외교적 방법을 동원해 발 벗고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최근 AFP는 자사 기사를 통해 IS(이슬람 국가) 취재에 있어서 안전문제로 인해 프리랜서 기자를 전면 고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참수당한 제임스 폴리 기자도 AFP에 정기기고를 하던 프리랜서였다.”

◆ 분쟁지역 입국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

- 요즘 참수당하는 외국 기자를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분쟁지역을 누비는 프리랜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 같다.

“사실이다. 프리랜서가 순전히 자기 자신의 개인 작업을 하고 있을 때에는 그 어느 언론사도 도와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 반군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국인 납치에 혈안이 돼있으며, 그중 유대인 출신은 더할 나위 없이 제1순위 대상이다. 2002년 파키스탄의 알 카에다에게 잡힌 월스트리트저널의 대니얼 펄 기자도 유대인이었고,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 처음 분쟁지역으로 진입하는 과정도 한 편의 드라마 같을 것 같다.

“현재 한국인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등 3개국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돼있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입국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 가자지구의 경우 한국인이 못 가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 홍보국의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미주리대 언론대학원 재학 당시인 2003년 봄방학 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에 있는 요단강 서안지구에 처음 갔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공포가 엄습했다. 자살 폭탄 테러가 예루살렘 곳곳에서 횡행하던 때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입국장으로 가는 순간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이 버스 안은 유대인 투성이인데 폭발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 절벽으로 내몰린 제3세계 여성 성인권

- 아프가니스탄 산모 사망률 등을 포토스토리로 발표했는데 일반 사진촬영과 어떻게 다른가.

“‘포토스토리’란 8~20장의 사진이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하지만 꼭 사진 수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산모 사망률 포토스토리의 경우, 주인공인 카마르가 아들을 갓 출산하고 시어머니가 즐거워하는 사진으로 시작해 그녀의 사망과 가족의 슬픔, 고향으로의 이동, 마을 사람들의 통곡과 장례식, 그리고 홀로 남겨진 아기의 사진으로 마무리 지었다.”

- 탐험가적 유전자를 가진 것 같다. 가끔 자신이 운동가란 생각도 드는가.

“‘약자의 심부름꾼’이라는 일념으로 일한다. 약자들은 나를 통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나는 그들을 위해 전 세계에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난 약소국 출신, 일개 프리랜서일 뿐이다. 내 사진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도 오래전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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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소녀 투옴베가 콩고 고마의 케셰로 병원 안 성폭력 피해여성 병동의 창문 옆에 서 있다. 투옴베에 따르면 그녀와 여덟 살 난 동생 오데타는 2007년 9월 감자밭에 있다가 마을에서 후투족 반군 FDLR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피스툴라 병을 얻게 됐다.
20140926
2009년도에는 피에르와 알렉산드라 불라상의 후원으로 콩고민주공화국 동북부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취재할 수 있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이 마시시 구역에 있는 고향마을로 돌아갔고, 가족 상봉 후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 정은진의 제3세계론

팔레스타인행으로 인해 나의 세계관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가 미국의 주요 언론을 통해 들었던 소위 ‘테러리스트’도 사실은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독립투사가 아닐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9·11테러와 지금 현재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및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무장분쟁 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과거에는 제3세계였다. 6·25전쟁 직후 1인당 국민총생산이 53달러 정도로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보다 낮았다고 한다. 과거 선교사들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쓰개치마를 입은 여인들의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의 ‘부르카’와 닮았고, 곤장을 치는 모습은 지금 이슬람 국가의 태형과 같다. 제3세계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인 것이다. 현재 콩고나 아프가니스탄의 문제가 꼭 남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문제가 있고 억울한 약자들이 너무나 많다. 혼자서 다 커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적어도 전시여성 인권문제, 아프리카 물부족 문제, 결핵 등은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데까지는 죽을 때까지 취재해보려고 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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