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비속어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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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7 07:45  |  수정 2014-10-27 07:45  |  발행일 2014-10-27 제15면
[행복한 교육] 비속어를 위한 변명

버스를 타고 가며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개, 씨, 존’으로 시작되는 욕설이 태반이다. 자기들끼리 말하는 것을 트집 잡고 훈수하기도 뭣하지만, 모른 체 듣자니 교사된 자로 맘이 영 불편하다. 비속어는 욕설과 천한 말이다. 그래서 들으면 누구나 기분 나쁘고, 분노와 수치감을 느낀다. 비속어를 들었을 때 이런 부정적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그 말을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기분 나쁜 감정과 화, 짜증, 공격성이 민낯 상태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비속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난 상태라고 보면 된다. 학생들이 왜 이리 비속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할까를 생각하다 나는 학생들이 왜 이리 일상적으로 화가 나고 짜증이 날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일상의 그 무엇이 아이들에게 화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학생들이 하루 종일 듣는 말을 생각해 본다. 귀를 기울여 들어도 진도를 따라가기 힘든 문제풀이 수업,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는 거의 없고 하루 종일 듣기만 하는 강의식 수업, 짬짬이 듣는 잔소리는 어떤가? 공부 열심히 해라, 말 잘 들어라, 똑바로 해라 등이 대부분이다. 그 말들은 부드럽고 명쾌하며 문맥에 잘 맞으며, 바르고 고운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너무나 반듯하고 당연한 훈계의 말들이 학생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들릴지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행복지수가 세계 최하위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나마 초등학생의 행복지수는 높지만 고등학생으로 갈수록 낮아지고 대학입시에 다가갈수록 떨어진다. 물질적 풍요와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행복지수에서는 극단적인 하위를 차지한다. 외롭다고 느끼는 청소년이 OECD 평균 8%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17%이다. 삶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OECD 평균이 85%인데 우리나라는 54%이다. 나는 이런 수치가 학생들의 비속어 사용 수치로 환산되어 보인다. 비속어가 누군가를 향한 외로움과 울분의 표출로 들린다.

어른들도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지속적인 잔소리와 핀잔을 들을 때, 누구도 자기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을 때 혼잣말이든 속말이든 욕을 하게 된다. 만약 그때 욕설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 둘 중 하나다. 감당하지 못할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되든지, 아니면 자기 안에서 터뜨려 자신을 해치든지. 그런 면에서 욕설은 내면의 부정적 감정을 끄집어내 마음을 가볍게 하려는 일종의 자기표출 방식이고, 더 이상 그 감정에 짓눌리고 싶지 않다는 자기보호 장치이다.

나도 비속어가 싫다. 나보고 들으라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비속어를 할 때 그 말을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보자고 말하고 싶다. 바른 말 고운 말을 써야 한다고 훈계하지 말고 그 아이의 울분을 제대로 들어주자고 말하고 싶다. 바르고 고운 말로도 충분히 감정 표현할 수 있음을 배우도록 어른들이 기다려주고 귀를 기울이자고 말하고 싶다. 이금희<대구공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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